앵커: 북한이 핵 협상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비핵화가 진전될 가능성은 사실상 희박하며 '핵을 가진 북한 대 핵 없는 한국'의 대치구도가 장기화될 것이라는 전망이 나왔습니다. 서울에서 한도형 기자가 보도합니다.
서울외신기자클럽(SFCC)이 1일 서울에서 개최한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의 ‘북한 핵문제의 현주소와 미래 전망’ 강연.
이 이사장은 이 자리에서 “북한이 협상을 재개한다고 하더라도 협상을 통한 비핵화가 진전될 가능성은 사실상 거의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 이사장은 그 근거로 과거 북한과 진행한 협상 내용을 제시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비핵화에 가장 가까웠던 합의가 1994년 제네바 합의였는데 여기에도 이미 추출된 핵물질은 협상 대상에 포함되지 않았으며 그 이후 6자회담, 두 차례 미북 정상회담에서도 핵시설만 논의됐다”고 설명했습니다.
“오히려 제네바 합의 이후로 점점 더 비핵화로부터 멀어지고 비핵화 가능성이 사라지는 합의를 계속 해왔다”며 “결국 현 시점에서 본다면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는 환상에 불과했다”고 그는 강조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향후 가장 가능성 높은 한반도 상황은 ‘핵이 있는 북한과 핵이 없는 한국이 대치하는 구도’가 장기화 또는 영구화되는 것”이라고 바라봤습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오히려 비핵화에서 점점 멀어지는, 비핵화 가능성이 점점 없어지는 합의를 계속 해왔습니다. 결국 지금 현 시점에서 본다면 처음부터 (협상을 통한 북한 비핵화는) 환상에 불과했다고 생각이 듭니다. 아마도 가장 가능성 많은 상황은 현재와 같은 상황이 장기간 또는 무제한 계속되리라는 것이 가장 현실적인 판단일 것으로 생각을 합니다.
이 이사장은 “유엔 제재조치가 마지막 남은 희망”이라면서도 “북한이 경제적 붕괴 가능성에 도달하기까지는 오랜 세월이 소요될 것이기 때문에 그때까지 한반도 안전을 어떻게 유지하느냐는 것이 한국 정부에게 주어진 큰 과제”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이 이사장은 전략폭격기, 전략핵잠수함 등 미국 전략자산의 한반도 전개와 북한을 압도하는 한국의 재래식 군사력 구축, 미사일방어망 고도화를 대응 방안으로 제시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북한이 갖고 있는 탄도미사일이 약 1200개로 추정되는데 이들을 모두 격추할 수 있는 미사일방어망을 갖춘다면 효과적인 방어태세가 될 수 있다”고 바라봤고 “이를 위해서는 사드 추가배치 등을 통해 중고도ㆍ고도도 두 층의 미사일방어망을 추가 도입해야 한다”고 제언했습니다.
또 “핵무기로 미국을 위협해 전쟁에 개입 못하도록 묶어놓고 한국과 1대1로 대결해 통일한다는 것이 북한의 전략인데, 한국이 북한을 압도하는 재래식 군사력을 갖춘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사실상 쓸 용도가 없게 될 것”이라고 강조했습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만약 한국이 압도적으로 재래식 군사력을 증강시켜 미군의 개입이 없더라도 북한이 도저히 이길 수 없는 강한 군사력을 갖추게 된다면 북한의 핵무기는 사실상 쓸 용도가 없게 될 것입니다.
이와 함께 북한의 현재 상황에 대해서는 더 이상 핵을 통한 위협이 먹혀들지 않고 우크라이나 러시아 전쟁, 이스라엘 사태까지 겹쳐 북핵은 거의 잊혀진 사안이 됐다며 유엔제재에 따른 경제난이 심화됐음에도 불구하고 마땅히 출구가 없는 상황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북한의 핵무기 보유 상황과 관련해서는 “현재 100개 내외 혹은 100개를 조금 넘는 핵탄두를 보유했으며 한국, 일본, 괌 미군기지 등을 겨냥한 실전배치를 완료했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습니다.
또 “북한이 7차 핵실험을 아직 실시하지 못하고 있는 것은 아직 소형 전술핵무기 (기술) 개발에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이며 “전술핵이 한 차원 높은 기술이기 때문에 향후 북한이 성공할지 여부도 불투명하다”고 바라봤습니다.
이밖에 일각에서 주장하는 ‘북한과의 단계적 비핵화 추진 방안’에 대해서는 핵무기란 유사시 1~2개밖에 사용하지 못하는 무기이며 평시 100개를 보유하든 1000개를 보유하든 큰 차이가 없기 때문에, (강선, 분강 등 북한의 다른 핵시설을 남긴 채) 영변 핵시설만 전면 폐기한다는 것은 아무런 의미가 없다고 비판했습니다.
이용준 세종연구소 이사장은 6자회담 차석대표, 외교부 북핵담당대사, 청와대 정책조정실장 등을 역임했습니다.
이 이사장은 2018년 저서 ‘북핵 30년의 허상과 진실’에서 북한은 결코 핵을 포기한 적이 없으며 북한이 오랫동안 핵무장을 집요하게 추진한 이유는 (많은 사람들의 생각과 달리) 수세적ㆍ방어적 목적이 아닌 정반대에 있다고 주장했습니다.
2019년 저서 ‘대한민국의 위험한 선택’에서는 안보의 근간인 한미동맹이 지속적으로 상처 입었으며 여기에는 의무를 외면한 채 보호만 받으려한 한국의 태도도 원인이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한편, 북한과의 비핵화 협상은 2019년 2월 하노이 미북 정상회담이 결렬된 이후 중단된 상황입니다.
김정은 북한 노동당 총비서는 2019년 4월 최고인민회의에서 행한 시정연설에서 미국과의 관계만 좋아지면 잘 될 것이라는 판단이 잘못됐다고 밝혔고 그해 12월 당 전원회의에서는 ‘자력갱생을 통한 제재 정면돌파’ 기조를 내세웠습니다.
존 커비 미국 백악관 국가안전보장회의(NSC) 전략소통조정관은 지난 8월 “바이든 행정부가 북한에 정상회담 개최를 제안했었지만 김정은 총비서는 전혀 관심을 보이지 않았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