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망한다” 혜산 공개총살 직후 낙서 발견
2023.12.27
앵커 : 노동당 구호판에 낙서하는 사건이 북한 양강도에서 발생했습니다. 특별 경비가 선포된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 발생한 사건에 사법 당국은 수습을 서두르고 있습니다. 북한 내부 소식,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양강도의 한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은 24일 “지난 19일 밤부터 20일 새벽 사이 삼수군 포성협동농장에서 구호판 낙서 사건이 발생했다”며 “이 사건으로 혜산-김정숙군 사이 도로가 통제되고, 외부 주민들에 대한 검열이 삼엄해졌다”고 밝혔습니다.
“낙서가 발견된 구호판은 포성협동농장 관리위원회 맞은편의 종자보관창고 벽에 붙어있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판자로 만든 구호판에는 붉은색으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라는 구호가 적혀 있었는데 누군가 숯으로 글자 하나를 더 보태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망한다”로 만들어 놓았다는 것입니다.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한다”는 식량난이 한창이던 고난의 행군 시기 등장한 구호로 북한에서 가장 널리 사용되는 노동당 선전 구호입니다.
소식통은 “사건이 발생한 밤에 약간의 눈이 오고 바람이 세게 불었다”면서 “낙서를 처음 발견한 사람은 협동농장 관리위원회 경비원이었다”고 말했습니다.
“낙서가 발견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관리위원장과 기사장, 초급당비서를 비롯해 협동농장의 여러 간부들이 현장으로 급히 달려왔다”며 “다른 사람들이 보기 전에 협동농장의 간부들이 숯으로 쓴 낙서를 즉각 지워버렸다”고 소식통은 설명했습니다.
“그러나 정작 포성리 담당안전원(경찰)과 담당보위원은 관리위원회에서 멀리 떨어진 곳에 살고 있어 낙서가 지워진 후에야 사건 현장에 도착할 수 있었다”며 “협동농장의 간부들이 모여들어 낙서를 지우고 발자국도 많이 남겨 범인의 흔적은 아무도 남지 않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와 관련 삼수군 포성리 가까이에 살고 있는 양강도의 또 다른 소식통(신변안전 위해 익명요청)도 26일 “포성리에서 구호판 낙서 사건이 발생했다는 소식이 양강도에 빠르게 확산하고 있다”며 “김정일 사망 추모 기간에 발생한 사건이어서 주민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 했다”고 전했습니다.
양강도 보위부는 “사건 발생일인 19일 밤, 숙박 등록을 하지 않고 포성리에 머물던 외지 주민을 조사했으며 또 같은 날 열린 혜산비행장 공개폭로모임에서 재판받은 포성리 주민의 가족들도 도 보위부에 구속돼 수사받고 있다”고 소식통은 덧붙였습니다.
도 보위부는 공개 재판 등 당에 불만을 가진 사람의 소행일 것으로 추정한다는 것입니다.
양강도에서는 19일, 혜산비행장 등판에서 공개폭로모임을 열고 살인을 저지른 23살의 청년을 즉결 사형에 처했습니다. 또 공개폭로모임 무대에 올라 선 12명의 주민에게 10년 이상의 징역형을 선포했는데 그 중에는 포성협동농장의 주민도 포함됐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관련 기사 )
소식통은 “구호판이 어른의 키보다 훨씬 높은 곳에 설치돼 있어 누군가의 도움 없이 혼자서 낙서하는 것은 불가능하다”며 “이런 이유로 양강도 안전국과 보위부는 최소한 범인이 2명 이상일 것으로 보고 수사를 진행하고 있다”고 설명했습니다.
소식통은 “삼수군 포성리는 국경연선인데다 양강도 소재지인 혜산시와 김정숙군을 잇는 도로의 중간에 위치해 있어 사건 관련 소식이 매우 빠르게 전파되고 있다”며 “2016년 1월에도 포성 역에서 김정은을 비난하는 낙서가 발견되었으나 범인을 잡는 데는 실패했다”고 말했습니다.
(관련기사)
그러면서 소식통은 “현재 포성리에는 농촌살림집건설을 끝낸 당원돌격대 남포시 대대가 설 명절을 앞두고 집에 갈 준비를 서두르고 있다”며 “그들이 집에 돌아갈 경우 ‘당이 결심하면 우리는 망한다’는 구호판의 낙서 내용이 전국으로 걷잡을 수 없이 전파될 것”이라고 예상했습니다.
에디터 이현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