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은 ‘두 개의 조선’ 원한다”

서울-박성우 parks@rfa.org
2015.12.24

앵커: 남한 내 북한학계에서는 요즘 ‘Two Koreas’, 그러니까 ‘두 개의 조선’ 혹은 ‘두 개의 한국’이라는 개념이 관심을 받고 있습니다. 북한이 ‘우리민족끼리’를 강조하기 보다는 이젠 남북한이 각각의 국가로 유지되길 희망하고 있는 것 같다는 해석이 나오고 있습니다.

서울에서 박성우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은 항상 대남 적화통일 야욕을 갖고 있는 것으로 평가됐습니다. 그런데 김일성 때나 김정일 때도 마찬가지였던 이 대남 전략이 김정은 시대 들어 변화한 것 같다는 분석이 남한 내 일부 북한학자들 사이에서 제기되고 있습니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 회장은 지난 21일 서울에서 열린 학술회의에서 현재 북한 정권은 이른바 ‘3대 혁명역량’이 모두 쇠퇴하자 사실상 ‘두 개의 조선’ 전략을 활용해 남북한 상호 인정을 추구하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고 분석했습니다.

북한의 ‘3대 혁명역량’은 남한을 공산화하기 위해 북한 지역 자체의 힘을 기르고, 남한 공산화에 유리한 국제적 여건을 만들며, 북한의 도움으로 남한에서 공산주의 혁명이 일어나도록 하는 힘을 뜻합니다.

김일성 시절 북한은 이 같은 전략 하에 ‘하나의 조선’을 목표로 삼았으나, 김정일 정권 당시 동구권 붕괴 등으로 국제혁명 역량이 소멸됐고, 김정은 정권 들어서는 남한혁명 역량도 쇠퇴해 북한은 더 이상 ‘하나의 조선’ 전략을 추구할 수 없는 상황이 된 것으로 판단된다고 조성렬 회장은 평가합니다.

조성렬 북한연구학회 회장: 김정은 시대에는 탈냉전기 이후 ‘국제혁명역량’에 이어 이른바 ‘남한혁명역량’도 완전히 와해됐다고 볼 수 있습니다. 우리가 흔히 친북, 종북 세력이라고 이야기하는데, 이런 용어를 쓰지 않더라도, 남한 내에서 북한 노선을 추종하는 세력이 사실상 소멸된 전략적 수세기 상황에서 북한은 체제 보존이 국가의 최대 목표일 수밖에 없고, 이를 위해 사실상 두 개의 조선, 그러니까 그동안은 ‘원 코리아’를 원했지만 지금은 ‘투 코리아’를 추구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이른바 ‘두 개의 조선’이라는 표현은 지난 8월 중순 김근식 경남대 교수가 신문 기고문에서 사용한 이후부터 학계에서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김근식 교수와 조성렬 회장은 똑같은 표현을 사용하고 있지만, 그 배경 분석에는 차이가 있습니다.

조성렬 회장은 수세기에 몰린 북한이 체제를 유지하기 위해 어쩔 수 없이 ‘두 개의 조선' 전략을 활용하고 있다고 생각하지만, 김근식 교수는 그 배경으로 김정은 제1비서의 ‘자신감'을 들고 있습니다.

“경제가 나아지고 있다는 자신감, 권력 장악에 성공했다는 자신감, 그리고 핵 보유와 미사일 발사 기술의 고도화로 인해 안보에 대한 자신감도 갖게 된 것 같다"는 겁니다.

김 교수는 지난 9월 서울에 있는 동아시아연구원(EAI)이 주최한 토론회에서 “두 개의 조선은 두 개의 이웃 나라로 서로 불간섭하며 살자"는 개념이라고 설명했습니다. “뭘 주겠다고도 하지 말고 통일을 하겠다고도 하지 말자"는 내용이라는 겁니다.

북한이 남측 민간단체의 대북전단 살포 금지 등 “정치적 비방 대결" 중단을 요구하는 이유도 “두 나라가 공존하기 위해서는 상대 지도자에 대한, 상대 체제에 대한 정치적 간섭이나 비방을 해서는 안 된다는 생각에 기반한 것으로 보인다”고 김 교수는 말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북한은 최근 들어 가시적인 변화를 시도했습니다.

김근식 경남대 교수: ‘투 코리아’ 전략의 최근 행보로 제가 몇 가지 생각해 본 게, 최근 8.15 때 표준시 변경입니다. 명분으로는 일제 잔재를 청산하겠다는 것이지만, 갑자기 이걸 내 건 이유는 두 나라가 다른 나라다, 남쪽에서 북쪽으로 갈 땐 시간이 바뀌는 건 당연하다는 거고요. 그리고 이건 강인덕 (전 통일부) 장관이 하시는 말씀이지만, 대남 정책과 관련해 외무성 성명이 나온다는 거죠. 이런 것도 그런 맥락이라고 봅니다.

또한 지난 8월 남북 고위급 접촉 당시 북측 언론매체는 ‘회담이 열리게 됐다’는 내용의 보도를 하면서 남측을 ‘대한민국’이라고 표기했다는 점을 김 교수는 주목합니다.

“정상회담 선언문에 대한민국이라고 쓰는 건 당연하겠지만 회담이 열린다고 보도하면서 대한민국이라고 쓴 건 이례적”이며, “이는 북한이 ‘두 개의 조선’ 전략을 구사하고 있음을 보여준다”는 겁니다.

이밖에 김 교수는 최근 북측의 문헌을 분석해 보면 ‘우리민족제일주의'를 필두로 ‘민족공조'를 강조하는 표현은 줄어든 대신 ‘강성 국가’나 ‘애국’ 등과 같은 “국가 담론”이 증가했다고 설명했습니다.

북한 당국이 ‘두 개의 조선’ 전략을 실제로 활용하고 있는지 여부는 공식 확인되지 않고 있습니다.

‘두 개의 조선’이라는 개념은 북한이 1990년대 들어 이른바 ‘김일성 민족’이라는 표현을 사용했을 때 남한 내 북한 연구자들 사이에서 회자된 적이 있다고 북한학계 관계자는 설명합니다.

“이후 이명박 정부와 박근혜 정부를 거치면서 대북 지원이 줄어들고 남북 교류가 둔화된 상황을 반영해 ‘두 개의 조선’이라는 개념이 북한학계에서 다시 화두가 된 것으로 보인다”고 이 관계자는 말했습니다.

또한 이 관계자는 “북한이 최근 들어 ‘평양시’를 채택하고 북측 언론매체가 남측을 ‘대한민국’이라고 호칭하는 등 북한을 남한과 차별화하고 남북한을 ‘국가 대 국가’ 관계로 규정하려는 시도가 있는 건 분명해 보인다”고 말했습니다.

남한 내 북한학계에서는 내년 김정은 제1비서의 신년사와 5월초 당 대회에서 ‘두 개의 조선' 전략이 어떻게 반영될 것인지에 관심을 모으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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