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 전문가들 “북 조의문 전달, 의례적 차원…남북관계 개선 어려워”

서울-홍승욱 hongs@rfa.org
2019.10.31
condolence_call_b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12일 김여정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통해 남측에 고(故) 이희호 여사 별세에 대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했다고 조선중앙TV가 보도했다. 사진은 중앙TV가 공개한 것으로, 김 위원장의 친동생인 김여정 제1부부장이 정의용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에게 김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을 전달하는 모습.
/연합뉴스

앵커: 29일 만에 또다시 발사체를 쏘아올린 북한이 문재인 한국 대통령 모친의 별세에 조의문을 보내왔지만 이는 의례적 차원의 조치일 뿐 남북관계 개선은 당분간 기대하기 어려울 것이란 전망입니다.

서울에서 홍승욱 기자가 보도합니다.

한국 청와대는 31일 문재인 한국 대통령의 모친 고 강한옥 여사 별세에 대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이 문 대통령 앞으로 조의문을 전달해왔다고 밝혔습니다.

청와대에 따르면 강 여사 별세 하루 뒤인 30일 판문점을 통해 전달된 조의문에는 김정은 위원장이 표시한 깊은 추모, 애도의 뜻과 함께 문 대통령에 대한 위로의 메시지가 담겼습니다.

그러나 북한이 조의문을 보낸 지 24시간도 채 지나지 않은데다 청와대가 조의문 전달 소식을 발표한지 3시간여만에 발사체를 쏘아 올리면서 분위기는 또다시 얼어붙었습니다.

한국 내 전문가들은 북한의 이날 무력시위가 남북관계 개선 가능성을 차단하는 것이라는 분석을 내놓았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은 김 위원장이 대외적 이미지 관리 차원에서 조의문을 보내긴 했지만 문 대통령의 상중에 발사체를 쏘아올린 것은 한국은 안중에도 없고 남북관계 개선에 전혀 관심이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것이라고 진단했습니다.

또 북한이 미북 실무접촉 재개에 적극성을 보이지 않으면서도 연말 시한을 계속 언급하는 목적은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발사 등 다음 단계에 취할 행동에 대한 명분을 쌓으려는 의도로 분석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연구기획본부장: 지금 남북관계가 한미연합훈련 문제, 한국의 최신 전투기 도입 문제 등으로 인해서 상당히 냉각돼 있는 상황이기 때문에 이번 북한의 조문을 너무 확대해석하는 것은 적절하지 않다고 봅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은 조의문을 전달한 북측 인사가 공개되지 않은 것을 보면 중량급 인사가 아닐 가능성이 크다며 이번 조의문 전달을 통해 북한의 대남 기조가 변화했다고 볼 수는 없다고 분석했습니다.

홍민 통일연구원 북한연구실장: 김정은 위원장이 현지지도까지 하면서 지시를 했을 때는 대남기조가 어느 정도 확고하게 잡힌 것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것이 쉽게 번복되지는 않는다는 겁니다. 도의적 차원에서 형식을 차려 조의문을 보낸 것이지, 관계 전환의 메시지를 갖고 온 것이라면 무게감 있는 인사를 공개적으로 보냈을 것입니다.

앞서 고 김대중 대통령의 부인 이희호 여사가 지난 6월 별세했을 때 김 위원장은 친동생인 김여정 북한 노동당 선전선동부 제1부부장을 판문점까지 내려 보내 북측 통일각에서 조의문과 조화를 전달한 바 있습니다.

한국 청와대 관계자도 이날 기자들과 만나 북한 측에서 누가 조의문을 전달했느냐는 질문에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겠다며 김여정 제1부부장은 아니라고 말했습니다.

한국 외교가에서는 북한이 사실상 한국 정부를 배제한 채 비핵화 문제는 미국과만 협상하겠다는 이른바 ‘통미봉남’ 행보를 이어가는 게 아니냐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 국가정보원 산하 국가안보전략연구원의 최용환 안보전략연구실장은 최근 발간한 ‘북한의 대미, 대남 압박 의도와 대응방향’이라는 제목의 보고서에서 김정은 위원장의 금강산 남측 시설 철거 발언을 보면 최근 남북관계 경색 국면을 주도하는 것이 김 위원장 자신이라는 점이 분명하다고 분석했습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 스스로 대남 입장을 바꾸지 않는 이상 남북관계 경색국면을 타개하는 것은 힘들어 보인다는 진단을 내놓았습니다.

한편, 북한은 그동안 남북관계 개선에 기여한 한국 측 주요 인사의 장례에 조의 표시를 해 왔습니다.

지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당시에는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김양건 당시 노동당 통일전선부장 등 6명으로 이뤄진 조문단을 파견하며 최고 예우로 애도를 표했습니다.

같은 해 노무현 전 대통령이 서거했을 때는 북한의 2차 핵실험을 앞두고 남북관계가 악화된 상황에도 관영매체를 통해 김정일 위원장 명의의 조의문을 발표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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