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12 싱가포르회담 이후①] 장기전 돌입한 북핵 협상…“트럼프 VS 김정은 ‘시간표’ 조율이 관건”

서울-김은지 kime@rfa.org
2018-08-0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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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 서명식장을 나서고 있다.
싱가포르 센토사 섬 카펠라호텔에서 미국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북한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공동합의문 서명식장을 나서고 있다.
사진-연합뉴스 제공

앵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분수령이 된 미북 정상회담이 열린 지 50여일이 지났지만 비핵화를 둘러싼 미북 간 입장차로 후속 협상이 난항을 겪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은 미북 정상회담 이후 교착 국면에 빠진 북핵 협상과 한반도 정세를 전망해보는 기획보도를 세차례 준비했습니다.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장기전에 돌입한 북핵 협상에 대한 전망을 보내드립니다.

보도에 서울의 김은지 기자입니다.

한국의 외교가는 현재의 비핵화 협상 국면이 미북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져 이뤄진 만큼 향후 상당기간 협상 국면이 이어질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후속 협상이 사실상 답보 상태에 놓였지만 미북 두 정상의 국내 정치적 필요에 의해 양측 모두 판을 깨기가 쉽지 않을 것이란 관측입니다.

김상기 통일연구원 통일정책연구실장(6월 27일 통일연구원 학술회의): 미북 두 정상의 정치적 동기와 의지가 매우 뚜렷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경우 지난 4월 20일 노동당 7기 3차 전원회의에서 채택한 경제건설총력 집중노선을 달성하기 위해선 대미관계 정상화가 필수적이고, 이는 비핵화 없이는 이뤄지지 않는다는 점을 분명하게 인식하고 있습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역시 북핵 문제에 진전이 있어야 오는 11월 중간선거에서 정치적 입지를 강화하고 2020년 대선에서 유리한 고지에 설 수 있다고 판단하는 것 같습니다.

따라서 ‘2020년 대선’과 ‘경제건설 노선’이라는 미북 두 정상의 정치적 동기는 향후 후속 협상을 견인하는 중요한 동력으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미북 정상이 큰 틀에서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의 맞교환에 합의한 만큼 후속 회담을 통해 보다 구체적인 시간표를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관건은 신고-사찰-검증-불능화-폐기로 이어지는 비핵화 단계의 신속한 이행 여붑니다. 이 과정에서 비핵화의 대상과 범위, 시한과 속도, 비핵화와 체제보장의 선후관계가 핵심 쟁점이 될 전망입니다.

국가안보전략연구원장을 지낸 남성욱 고려대 행정대학원장은 비핵화의 핵심은 핵시설의 신고와 사찰, 검증이라며 2005년 9.19 공동성명에서 명기한 ‘검증’이란 단어조차 싱가포르 합의문에 포함되지 않아 향후 비핵화 협상에 상당한 난관이 예상된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시간표’가 상이하다는 데 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첫 임기 내인 오는 2020년까지 최대한 가시적인 비핵화 성과를 거두려는 반면, 사실상 임기가 없는 김정은 위원장은 시간을 끌며 협상을 장기화하려 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김형석 전 통일부 차관은 북한은 미국과 달리 가급적 시한을 늦추며 안전보장조치 등이 진행되는 상황에 따라 단계적으로 비핵화를 해나가려 할 것이라며 결국 비핵화의 시한 설정 문제가 쟁점이 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한국 내에서는 이에 따라 북한이 현재와 미래의 핵은 포기하면서 과거 핵의 일정 부분은 상당기간 유지하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핵탄두와 핵물질 폐기 카드는 마지막까지 남겨둔 채 체제보장과 직결되는 평화체제나 주한미군 철수와 맞교환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는 겁니다.

신범철 아산정책연구원 안보통일센터장: 북한의 협상전략은 미국과의 관계를 먼저 개선하고 종전선언을 통해 신뢰를 구축한 뒤 자신들의 조치를 단계적으로 해나가겠다는 것으로, 신고나 검증에 대한 언급없이 이른바 ‘살라미식 접근’을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여기에는 중국과의 관계 개선을 통해 어느 정도 버틸 힘이 생겼다는 판단이 작용한 것으로 보이고, 북한은 따라서 이같은 입장 하에 일방적으로 핵을 포기하지 않는 장기적인 협상전략을 취할 가능성이 크다고 판단됩니다.

북핵 협상에 참여했던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도 북한에게 핵은 일종의 ‘보험’으로, 북한은 마지막까지 핵을 쥐고 협상하려 할 것이라며 각 단계별로 군사훈련과 전략자산 중단, 주한미군 철수 등 미국의 적대시정책 철폐와 연계하고 나설 가능성이 크다고 전망했습니다.

북핵 협상이 장기화될 경우 트럼프 대통령이 ‘불완전한 비핵화’로 목표를 수정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습니다.

북핵 문제에서 조기 성과를 바라는 트럼프 대통령이 미국의 국내 정치적 소요를 충족시키는 수준에서 북한이 ‘정치적 선물’을 제공할 경우 타협에 나설 수 있다는 겁니다.

한국 내에선 북한이 신고와 검증은 거부한 채 미국의 중간선거를 앞두고 대륙간탄도미사일, ICBM 일부를 반출하거나, 2020년 미국의 대선에 맞춰 핵탄두와 핵물질 일부를 반출함으로써 트럼프 행정부로부터 ‘보상’을 얻어내려 할 것이란 관측이 나옵니다.

이상현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위원: 트럼프 대통령의 경우 공개적으로는 ‘최대치 입장’을 취하되 실제로는 그 이하에서 타협하는 협상 방식을 보여왔는데, 만일 이같은 협상 방식을 북핵 문제에 적용할 경우 ‘불완전한 비핵화’도 외견상 승리로 보인다면 이를 수용할 가능성이 있는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오고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대북제재는 해제되고 신고나 사찰, 검증 등 이행과정에 문제가 생겨도 흐름을 되돌리기는 불가능해질 것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이에 따라 미북 간 상이한 ‘비핵화 시간표’를 조율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지적합니다.

미국의 신고·검증 위주의 ‘비핵화 우선주의’와 북한의 ‘단계적·동시적 해법’이 끝내 접점을 찾지 못할 경우 협상이 표류하거나 끝내 무산될 가능성이 크기 때문입니다.

여기에다 시간이 갈수록 미국의 협상력은 약화되고 제재는 이완될 가능성이 큽니다. 남성욱 원장은 4년 중임의 지도자와 종신 독재자 간의 임기 차이는 비핵화를 달성하는 데 심각한 장애물이라며 양측의 협상에서 결국은 장기전이 가능한 지도자가 유리할 수 밖에 없다고 지적했습니다.

동북아의 지정학적 구도는 ‘비핵화 시간표’의 설정을 더욱 어렵게 만드는 요인입니다. 한반도의 현상 변경은 동북아의 전략적 환경변화와 직접적으로 연관되기 때문입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동북아에서 미중 경쟁이 심화될 경우 중국에 있어 북한의 전략적 가치는 올라가고 중국의 한반도 개입 수준 또한 높아질 수 밖에 없다고 지적합니다.

시진핑 국가주석이 미북 정상회담을 전후로 3차례나 김정은 위원장과 만난 것도 한반도에서의 영향력을 극대화하기 위한 사전 포석이라고 이동민 단국대 교수는 말했습니다.

미국과 남중국해와 무역통상, 대만 문제 등을 둘러싸고 대립하고 있는 상황에서 ‘북한 껴안기’에 나섬으로써 향후 대미 협상에서 주도권을 쥐려는 의도라는 겁니다.

중국은 이에 따라 향후 비핵화 협상과정에서 한반도 문제의 주요 이해당사국이자 동북아 역내 안정자로서 ‘중국 역할론’을 강조하려 할 것으로 보입니다.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체제 구축과정에 적극 개입함으로써 자국의 이익을 최대한 반영하려 할 것이란 분석입니다.

김현욱 국립외교원 교수: 미북 간의 비핵화 협상이 시간이 갈수록 미중 간의 경쟁으로 점차 바뀌고 있는 상황입니다. 이미 ‘재팬패싱’(일본 배제)과 한반도 비핵화라는 성과를 이루고 있는 중국은 추가적으로 한미동맹 약화와 북중관계 강화 등 자국의 이익을 극대화하려 할 것입니다. 만일 미북 간 비핵화 평화프로세스가 계속 지연될 경우 이를 가장 반길 국가는 중국일 수 밖에 없습니다.

북한이 미국과의 후속 협상에서 종전선언을 중요 의제로 부각시키고 있는 것도 북한 문제에 영향력을 행사하려는 중국의 입김이 강하게 반영된 결과라는 게 한국 외교가의 관측입니다.

중국의 이같은 행보는 1인 지배체제를 완성한 시진핑 주석의 중장기적인 대외전략과도 맞물려 있습니다.

정재흥 세종연구소 연구위원: 지난해 19차 당대회와 올해 3월 양회를 통해 시진핑 1인 지배체제를 완성한 중국은 오는 2050년까지 사회주의 강대국을 실현시키겠다는 전략적 구상을 밝히며 미국 중심 질서에서 벗어나 중국 중심의 새로운 역내 질서를 구축하겠다는 방침을 제시했습니다. 이에 따라 시진핑 주석은 앞으로 ‘중국꿈’의 실현과 부흥을 위해 매우 적극적이고 대담하게 자국의 이익을 관철하는 대외전략을 추진해 나갈 것으로 전망됩니다.

트럼프 행정부 역시 지난해 말 발표한 국가안보전략(NSS) 보고서에서 중국을 미국 주도의 기존 질서에 대한 ‘전략적 경쟁자’로 규정한 만큼 향후 양국 간 대립과 갈등은 더욱 첨예해질 것으로 보입니다. 이는 북한의 전략적 입지 강화로 이어져 신속한 비핵화 이행을 저해하는 요소로 작용할 전망입니다.

싱가포르 회담 이후 한국 내에서 비핵화 협상에 대한 회의론이 커지고 있는 것도 이러한 배경에섭니다.

일각에서는 트럼프 행정부가 내세워온 완전하고 검증가능하며 불가역적인 비핵화, CVID 목표 달성이 더욱 요원해진 게 아니냐는 우려가 나옵니다. 정상간 만남에서도 합의하지 못한 CVID 원칙을 후속 실무회담에서 합의하기가 사실상 쉽지 않기 때문입니다.

싱가포르 회담 합의문에 CVID 원칙은커녕, 북한의 입장이 고스란히 반영된 점도 이런 우려를 뒷받침합니다. 4항인 유해송환을 제외한 나머지 3개항 모두 북한이 회담 하루 전 관영매체를 통해 밝힌 입장과 내용이나 표현은 물론 순서까지도 동일하기 때문입니다.

태영호 전 영국주재 북한대사관 공사는 CVID 개념의 핵심은 강제 사찰과 무작위 접근이라며 북한이 이같은 CVID 원칙을 수용할 가능성은 매우 낮다고 전망했습니다.

한국의 전문가들은 북한의 ‘시간끌기 전략’으로 인해 북핵 협상이 자칫 북한의 ‘완전하고 불가역적이며 돌이킬 수 없는 승리’(CVIV)로 귀결되지 않도록 정교하고 치밀한 비핵화 로드맵, 이행방안을 마련해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아울러 북한에 대한 체제보장이 기존 안보 구도의 변화로 이어지는 만큼 이에 대한 한미간 긴밀한 조율과 협의가 무엇보다 중요하다고 강조합니다.

한국의 전직 고위 당국자는 북한에게 주어지는 반대급부는 어디까지나 북한의 비핵화 조치 이행과 비례해야 한다며 북한이 합의를 이행하지 않을 경우 제재와 압박을 복원하는 ‘스냅백(snap-back)’ 조항이 반드시 포함돼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서울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김은지입니다.

앵커: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기획보도, 오늘은 그 첫번째 순서로 장기전에 돌입한 북핵 협상에 대한 전망을 보내드렸습니다. 내일 이 시간에는 속도 조절에 나선 남북관계를 전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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