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북한, 개성에 천태종 영통사 낙성식 가져

남한불교 천태종이 지난 16세기 불타버린 영통사를 5백여년만에 북한과 함께 복원해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남한천태종 김무원 스님은 앞으로 영통사는 남북한이 성지순례의 사찰로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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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통사 복원작업을 마치고 지난달 31일 열린 낙성식 - PHOTO courtesy 천태종

천태종은 개성 송악산 자락인 오관산에 남북공동 작업으로 영통사 복원작업을 마치고 지난달 31일 낙성식을 가졌습니다. 특히 이번 영통사 복원공사에서는 북한의 국보급 유물인 대각국사비를 비롯해 보물급 유물들도 함께 복구가 됐습니다. 지난 1997년부터 영통사 발굴 복원사업의 실무를 맡아온 남한 천태종 김무원 스님은 남북이 함께 영통사 복원사업을 했다는 것이 무엇보다 뜻 깊다고 말했습니다.

김무원: 대한불교 천태종의 근원 발상지가 개성입니다. 개성은 고려 시대의 수도였고 개성에서 천태종이 시작되었기 때문에 발상지를 찾아가는 의미도 크겠다고 보겠습니다. 남쪽에서는 물자를 대고, 북쪽에서는 인력지원을 해서 공동복원을 했습니다. 남쪽이 물자지원에 기와가 46만장, 단청재료, 내부시설 재료 또 불상 등 그리고 성지순례 가는 길을 닦기 위해서 중장비도 지원이 됐습니다. 거기에 들어간 총금액은 약 50억이 됩니다.

영통사 복원사업이 시작된 이후 총 공사비용만 미화로 5백만 달러 상당이 들었으며 특히 남쪽에서 공사를 위해 현지를 방문한 인원만도 330여명에 달한다고 김 무원 스님은 덧붙였습니다. 이번 낙성식에는 불교신도를 포함한 남측 방문인원만 3백여 명이 참석했고 북측에서는 2백 명이 참석을 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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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무원: 절하나 낙성을 하기 위해서는 부처님을 모시는 의전행사를 합니다. 부처님을 점안, 봉안하는 의전행사를 하고 오색 테이프를 끊고, 절을 일으켜 세웠다는 축하하는 뜻에서 식을 올립니다. 남쪽에서는 국회의원들이 7명 정도 참여를 하고 북쪽에서는 조선불교연맹 부위원장 서기장 이하 스님들이 한 50여명 참여를 했습니다.

김 무원 스님은 그간 8년의 기간 동안 영통사 복원사업을 위해 북한을 30여 차례 오가며 수많은 북한주민들과 정을 나눈 것이 무엇보다도 기뻤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특히 남쪽에서 육로를 통해 개성까지 공사자제들을 싣고 갔던 순간을 가장 큰 감동의 순간으로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김무원: 2003년 10월26일 입니다. 그때 대한 통운 차를 18톤 트럭으로 30대에 기와 10만장을 실어서 1차로 경의선 육로를 통해 개성공단을 지나고 개성시 중심부를 거처 영통사로 들어갔습니다. 서로가 놀랠 일이죠. 저희는 북쪽에 처음 갔을 때 놀랐고, 북쪽은 또 우리가 많은 트럭에 짐을 싣고 가는 모습을 보고 놀래고...

그는 이어 북한이라는 사회주의 국가서 신앙생활을 하는데 어려움은 있겠지만 영통사가 복원 된 것은 의미가 있는 일로써 북한뿐만 아니라 남한의 주민들에게도 여러 가지로 기쁨이 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무원: 바로 3.8선 위가 개성이라서 실향민들이 먼저 고향을 찾을 수 있는 기쁨도 있고 특히 남쪽의 250만 천태종 신도들이 개성 영통사의 성지를 참배함으로써 신앙적으로 또 남북의 하나 되는 통일의 마음을 키워가는 그러한 분위기가 조성되어 가지 않겠는가.

김무원 스님은 영통사는 1만 8천평이 넘는 부지에 모두 29개의 건물이 세워졌으며 개성시에서 영통사까지 12KM 구간이 2차선 도로로 정비가 됐다면서 앞으로 이곳은 천태종의 성지순례 사찰로 남북이 함께 이용하게 될 것이라고 설명했습니다.

김무원: 영통사는 앞으로 성지순례지로서 남북이 서로 자주 만나서 함께 성지복원 차원에서 머리를 맞대고 고민하고 연구하는 곳이 되지 않겠는가 생각합니다. 또 북쪽에서는 주지 스님을 내놓고, 문화보존지도국에서 관리소장을 배치해서 65명의 관리인이 배치되어 있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앞으로 서로 도움을 주고받는 그런 만남의 자리를 만들어야겠죠.

한편 영통사는 1027년 창건돼 고려왕들이 참배했던 사찰로 고려 문종의 넷째 아들인 의천 스님이 이곳에서 출가했고 천태종을 개창한 명문사찰 알려져 있습니다.

이진서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