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국군포로 자녀 3대까지

2005-01-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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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한 국방부는 6.25 전쟁 이후 북한에 억류된 것으로 추정되는 국군 포로의 수는 1천 2백여 명, 그리고 그중 살아있는 사람들은 5백여 명으로 파악하고 있습니다. 반세기가 지난 지금도 이들 국군포로 가족은 북한에서 당국의 감시 속에서 힘들게 살아가고 있다고 남한에 입국한 국군포로의 가족들은 말합니다.

지난 1994년 10월 북한에 억류 된지 43년 만에 조창호 소위가 탈북 해 남한에 입국하면서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의 존재는 세상에 알려지기 시작했습니다. 이후 양순용, 장무환 씨가 잇따라 남한으로 돌아갔고 현재 42명의 국군포로가 남한 땅을 밟은 것으로 알려지고 있습니다.

최근 남한에서 정착생활을 하기 시작한 탈북 국군포로의 가족인 이 모 씨는 북한에서 가장 자유가 없는 생활을 했다고 말합니다. 이 씨는 아직도 북한에 살고 있는 가족이 있어 자신의 이름을 밝히지 않는 조건으로 자유아시아 방송 회견에 응했습니다.

“국군포로를 얼마나 감시를 하는지 모릅니다. 3일에 한 번씩 보고자가 옵니다. 보위부에서 와요.”

이 씨는 또 자신이 경험했던 사회적인 불이익도 지적을 했습니다. “국군포로는 탄광 맞벌이 일을 시킵니다. 아무리 충실하게 일을 해도 국군포로 집은 확실하게 딱지를 붙여서 그 자식을 3대까지 보는 겁니다. 아버지부터 아들, 손자까지 이렇게 봅니다.”

이렇듯 북한에 생존해 있는 국군포로는 그 자식들까지 나쁜 출신성분으로 분류돼서 엄격한 통제를 받고 있는 것이 사실이라고 국군포로 출신 아들로 남한에 입국한 탈북자 박 모 씨는 말합니다.

“정치적으로 간부도 안 시키고 누구를 시키는 일을 할 수도 없고, 엄격히 간부 등록 선발 대상에서 제외된 사람이고. 아무리 교육을 시켜도 방법이 없거든요.” 그는 이어 국군포로는 함경도 일원의 탄광으로 전부 간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습니다.

“아오지 탄광을 중심으로 고건원 탄광, 풍인탄광, 온성탄광, 주원탄광 등으로 다 갔거든요.”

이렇게 북한 당국의 통제와 감시가 세월이 흘러도 풀리지 않자 어떤 국군포로의 아내들은 남편이 어서 이 세상을 떠나 아들의 앞길을 더 이상 막지 않기를 바라는 상상할 수 없는 일도 벌어지고 있다고 이 씨는 말했습니다.

“북한 법에는 아들을 많이 나면 더 불리하죠. 딸들은 다른 집으로 시집을 가잖아요. 그러나 아들들은 자기 아버지 성씨를 따랐기 때문에 ...그래서 어머니가 아버지를 빨리 죽으라고...아버지가 돌아가면 한국에 대한 고리를 끊을 수가 있잖아요. 당사자가 살아 있으면 남한의 친척들과 전화도 할 수 있고 하잖아요. 북한에선 그것을 신경을 쓰는 거죠.”

이제는 대개 북한에서 70세 이상 고령이 된 국군포로는 죽기 전 고향 땅을 찾아 목숨을 걸고 탈북 남한에 입국하는 경우가 늘고 있습니다. 현재 남한 정부는 99년 국군포로 특별지원법을 공포하고 남한에 입국한 국군포로의 경우 군인 연금과 반기세 동안 받지 못한 봉급 그리고 퇴직금 명목 등으로 경우에 따라 금액의 차이는 있으나 대략 4천만 원에서 6억 원, 미화로는 4만 달러에서 60만 달러의 정착 지원금을 이들에게 제공하고 있습니다.

한편 남한 국방부도 지난해 10월 ‘국군포로 문제 실상과 대책’이라는 자료집에서 북한당국을 통해 국군포로의 생사여부와 주소를 파악한 뒤 이들이 남쪽의 가족과 서신교환이나 상봉을 할 수 있도록 적극 추진 할 방침이며 국군포로의 가족만이 남한에 입국 했을 경우에 대한 법적 제도적 장치를 마련 문제도 검토 하는 등 국군포로 2세에 대한 실태 파악과 지원대책도 강구해 나갈 것이라고 밝힌바 있습니다.

이진서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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