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사실혼=자본주의 문화” 처벌 강화
2023.04.28
앵커: 북한이 결혼 등록을 하지 않고 가정생활(동거)을 하고 있는 사실혼 부부에 대한 처벌을 강화하고 있습니다. 자본주의 문화를 퍼트리는 반체제 행위란 주장인데요. 북한 내부 소식, 손혜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북한 장마당의 확산으로 나타나는 사회적 문제의 하나는 ‘8.3부부’가 늘어나는 것입니다. ‘8.3부부’는 1984년 8월 3일 평양에서 열린 경공업제품전시회에서 김정일이 자투리자재와 폐기물을 이용해 인민 소비품, 즉 ‘8.3제품’ 생산을 지시한 날에서 유래된 것인데, 8.3제품이 짝퉁제품이라면 8.3부부는 가짜부부, 다시 말해 사실혼 부부를 의미합니다.
평안북도의 한 주민 소식통은 2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이달부터 정주시 안전부가 8.3부부 조사를 하고 있다”면서 “8.3부부는 혼인신고 하지 않고 가정생활 하고 있는 사실혼 부부를 말한다”고 밝혔습니다.
북한 당국의 사실혼 조사는 지난 2월 하순부터 시작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사회주의제도에 독을 품고 반당적, 반혁명적 행위를 한 자를 징벌한다’는 사회안전성 포고문이 지난 2월 22일 발표되었기 때문입니다.
사회안전성 포고문에는 ‘강도, 강간, 어린이유괴 등 사회적 범죄와 당 정권기관의 일군들과 가족들을 대상으로 폭력행위를 하거나 투서, 낙서 행위 등을 무자비하게 징벌하라’는 내용과 함께 ‘사실혼 생활을 하는 자들을 법적으로 엄격히 처리하라’는 조항도 있다는 것입니다.
소식통은 “포고문 발표 직후 사법당국은 사회주의제도를 위협하는 온갖 범죄를 저지른 주민들은 자발적으로 자수하도록 조치했다”면서 “결혼 등록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사실혼 부부도 한 달(2.22~3.22)이내 자수하도록 했다”고 강조했습니다.
하지만 혼인 등록을 하지 않고 8.3부부로 살고 있는 주민들은 “별걸 다 통제한다”는 반응이어서 대부분 자수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에 사법당국은 4월 초부터 8.3부부를 직접 조사하기 시작했다”며 “사실혼 기간이 1년 이하이면 노동단련대 3개월, 3년 이상이면 2년 이상의 노동교양소 처벌을 주고 있다“고 소식통은 말했습니다.
같은 날 평안남도의 한 소식도 “이달에 들어서 덕천(시)에서는 인민반장들이 주민세대를 방문하는 방식으로 부부의 공민증을 확인하고, 혼인신고를 하지 않은 사실혼 부부의 명단을 작성해 안전부에 넘기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내가 살고 있는 흥덕동 한 개 인민반에는 25세대가 거주하고 있는데, 이중 8.3부부로 단속된 세대는 4세대”이라며 “다른 인민반에도 2~3세대는 8.3부부이며, 이런 경우는 대도시로 나갈수록 더 많아진다”고 언급했습니다.
북한의 지역마다 차이가 있겠지만 혼인 등록을 하지 않고 살고 있는 주민이 어느 정도 비중을 차지한다는 얘깁니다.
2017년 신의주에서 탈북한 김창진(가명) 씨는 2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북한에서 사실혼 부부는 국가 식량배급제가 붕괴되고 장마당이 확산되며 급증했다며 8.3부부로 통용되고 있는 사실혼 부부는 평양을 비롯한 대도시로 나갈수록 더 많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이 사실혼 현상을 썪어 빠진 자본주의 생활문화라며 처벌 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심각한 생활난과 공포정치로 정신적 불안 속에 살아야 하는 북한 사회에서 사실혼이 완전 근절되는 것은 어려울 것이란 게 전문가의 지적입니다.
북한 여성을 전문 연구하는 동국대학교 윤보영 교수는 북한에서 8.3부부 문제는 장마당이 확장되며 시작됐지만 북한 당국이 묵인해왔다며 이는 여러가지 요인이 작용하고 있지만 가부장제문화에 기인하고 있다고 평가했습니다.
윤보영 교수: 북한은 머리 어떻게 해라 옷을 어떻게 입어라 등 여성에 대에서는 국가가 간섭해왔는데 상대적으로 사실혼을 통제하지 않은 건 눈 여겨 봐야 할 점입니다….주민들이 먹고 살기 힘들고, 나라가 어려워지면 모든 사람이 괴로워지는 것이 아니라 약한 사람, 여성들이 힘들어지는데 8.3부부가 많아지기 때문입니다. 국가에 대한 분노를 남성들의 경우 아내에게 해소하거나 8.3부부로 해소하지만 여성들은 해소할 데가 없잖아요.
윤 교수는 이어서 사회주의 도덕규범과 윤리를 강력하게 요구하는 북한이 사실혼으로 가정이 파괴되는 등 사회적 문제가 심각해지자 사실혼을 둘러싼 사회 질서 혼란을 바로 잡으려는 의도로 처벌수위를 높이고 있지만 주민들의 삶이 안정되지 않으면 사회질서 안정은 어려울 것이라고 지적했습니다.
기자 손혜민, 에디터 양성원,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