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정일 국방위원장이 후계 구도를 확립하려고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는 분석이 날로 설득력을 더해 가고 있습니다. 국제 사회의 전문가들은 한국 해군에 소속한 장병 46명의 생명을 앗아간 천안함 폭침의 배경을 깊이 들여다 본 끝에 여러 요인 중에서 후계 구도의 확립 쪽으로 방향을 잡고 있습니다. 이에 관한 자세한 내용을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보겠습니다.
앵커: 천안함 사건이 후계 구도의 확립과 관련이 있다는 분석이 속속 나오고 있습니다. 이것이 무슨 이야기인지부터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한마디로 김 위원장이 후계자로 내정된 세째 아들 김정은 씨의 지위를 더 확고하게 하기 위해 천안함 사건을 일으켰다는 이야기입니다. 이는 아직 나이도 어리고 통치 경험이 일천한 세째 아들을 위해 군과 인민의 지지를 받게 하려면 세째 아들의 업적이 필요하고 그런 작업의 하나로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는 분석이기도 합니다. 북한이 천안함 사태를 일으킨 배경으로 지금까지 1)후계 구도의 확립, 2)대청해전의 패배에 대한 보복, 3)일선 지휘관의 독단 행동, 4)북한 군부 내의 강경파 득세, 5)고질적인 경제난에서 인민의 관심 돌리기와 같은 여러 요인이 나왔습니다. 전문가들은 이 가운데 후계 구도의 확립에 제일 많은 비중을 두고 있습니다.
앵커: 그렇게 추론하는 전문가나 기관의 사례를 들어주시겠습니까?
기자: 상당수 대북 전문가가 이런 견해를 갖고 있습니다. 우선 미국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해외지도자연구국장의 견해가 있습니다. 미국의 유력한 일간지 뉴욕 타임즈(NYT)도 이런 의견을 피력합니다.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빅터 차 조지타운 대학교 교수도 마찬가지 생각을 나타냈습니다. 이밖에도 한국의 국책 연구기관인 통일연구원의 전성훈 박사도 NYT와 회견하고 천안함 사태의 배경은 북한의 권력 세습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앵커: 위에 나온 전문가나 기관의 견해를 좀 더 자세히 설명해 주시겠습니까?
기자: 고스 국장은 9일 김 위원장이 세째 아들에게 권력을 세습하기 위해 그 계획의 일환으로 천안함 사태를 일으켰다는 북한 전문가와 정보 관계자가 늘고 있다는 견해를 나타냈습니다. 또 정찰총국 총국장인 김영철 상장이 군부 내에서는 세째 아들의 후견자이며 김씨 가족과 긴밀한 관계를 유지했다고도 지적했습니다. 뉴욕 타임즈는 5월 27일자에서 김 위원장이 한국전쟁/ 조선전쟁 이후 최악의 무력 도발을 감행했던 이유는 세째 아들의 지위를 더 확고하게 하는 데에 있다면서 세째 아들이 군부와 인민에게 폭넓은 지지를 얻게 하려고 준전시 상황을 만들었다고 분석했습니다. 한편 빅터 차 교수도 자유아시아방송(RFA)과 회견하고 북한은 천안함을 공격한 업적을 바탕으로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삼는 작업을 정당화하려 한다고 진단했습니다.
앵커: 이처럼 천안함 사건이 북한의 후계 구도와 관련이 있다고 볼 수밖에 없는 이유는 어디에 있다고 보이나요?
기자: 후계 구도의 확립이 현재 김 위원장에겐 가장 시급한 현안이기 때문입니다. 김 위원장의 현안은 물론 권력 세습 이외에도 고질적인 경제난의 해결, 미국과 평화협정 체결, 유엔 안보리 제재의 해제, 핵무기 보유국 지위의 획득 등과 같은 사안이 있습니다. 그런데 이 가운데에서도 가장 우선적인 사항은 권력 세습입니다. 김 위원장은 앞날을 장담할 수가 없을 정도로 건강이 좋지 않기 때문입니다. 어차피 북조선이 독재국가여서 인민의 저항이 사실상 없기 때문에 다른 사항은 시간을 끌면서 처리할 수가 있지만 권력 세습은 그렇게 할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세째 아들을 후계자로 만들려면 화려한 업적이 필요합니다. 천안함 사건은 세째 아들에게는 화려한 업적이 될 수가 있었습니다. 김 위원장은 이런 맥락에서 한국전쟁/조선전쟁 이후 최악의 사태로 평가되는 천안함 사태를, 상당한 부담을 안고서도 일으킬 수밖에 없었다고 분석됩니다.
앵커: 김 위원장은 천안함 사태까지 일으키면서 후계 구도의 확립에 나섰다고 분석됩니다. 과연 김 위원장이 생각한 각본대로 권력 세습이 이루어진다고 예상할 수 있습니까?
기자: 김 위원장이 건재하는 한 권력 세습은 일단 각본대로 진행된다고 보입니다. 김 위원장이 친척인 장성택 국방위 부위원장에게 막강한 권력을 주며 세째 아들의 후견인 역할을 더 확실히 하라는 이유는 여기에 있습니다. 그렇지만 김 위원장 건강에 갑자기 이상이 생길 경우 그대로 진행되기가 어려운 측면이 있습니다. 북조선은 사실상 왕조국가입니다. 그런데 조선시대처럼 창업 군주의 후손이 반드시 지도자로 나서야 한다는 동의가 완전히 이루어졌다고 보기 어려운 상황입니다. 따라서 김 위원장이 갑자기 유고(有故) 상황을 맞아서 세째 아들이 통치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으면 사실상 허락을 받은 장성택 부위원장의 섭정(攝政)은 불가피합니다. 그러나 권력은 속성상 나누기가 어렵기 때문에 이 상황이 지속한다고도 말할 수가 없습니다.
앵커: 현재 북한에서 권력 승계와 관련해 벌어지는 일은 이미 조선시대에도 있지 않았습니까?
기자: 이와 비슷한 일이 있어 왕조국가인 북한에 이를 적용해 보는 일도 의미가 있습니다. 우선 조선 왕조 초대 군왕인 태조의 후임을 놓고 아들들이 권력 투쟁을 벌인 소위 '제1-2차 왕자의 난'이 있습니다. 후계 자리를 놓고 김정남, 김정철과 김정은을 둘러싼 알력이 이와 비슷합니다. 다만 이 알력은 김 위원장이 건재할 때 세째 아들로 교통정리를 해 왕자의 난까지 비화하지는 않았습니다. 수양대군이라는 이름으로 유명했던, 조선의 제7대 왕인 세조는 어린 조카 단종을 왕위에서 내리고 대신 그 자리를 차지했습니다. 상황이 혼란하면 북한에서도 고모부가 조카의 후계자 지위를 빼앗는 일은 얼마든지 상정할 수가 있습니다. 현재 장성택 부위원장은 어떠한 상황에서든 상당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자리에 일단 올라섰습니다. 그래서 장 부위원장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가 김 위원장이 사망한 이후의 북한 행로에 아주 중요하다고 보입니다.
앵커: 김 위원장의 매제인 장성택 씨는 이미 노동당 행정부장을 비롯해서 여러 요직을 맡았는데 이번에 국방위 부위원장까지 겸임하게 됐습니다. 이것은 천안함 사태와 어떤 연관이 있나요?
기자: 천안함 사건이나 장성택 부위원장의 승진이나 북한 내부에 긴박한 현안이 있다는 데에 그 배경이 있다고 보입니다. 김 위원장은 권력 세습이 최대 현안입니다. 그래서 천안함 사태까지도 일으켰다고 분석됩니다. 이 같은 맥락에서 장성택 부위원장의 발탁은 천안함 사태의 연장선에 있습니다. 김 위원장은 권력 세습과 관련해 천안함 사태로는 모자라 세째 아들을 돌봐줄 피붙이 섭정왕(攝政王)에 장 부위원장을 앉힐 정도로 심적으로 불안한 상황에 있다고 관측됩니다.
기자: 지금까지 북한에서 벌어지는 후계 구도의 확립과 남한에서 일어났던 천안함 사태가 갖는 상관 관계에 관해서 허형석 기자와 함께 알아봤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