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쟁 당시 흥남철수작전에 참여해 1만 4천여 명의 피난민을 구한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호의 선원 로버트 러니(J. Robert Lunney)씨가 방한했습니다. 남한의 재향군인회는 이국땅에서 목숨을 걸고 수많은 인명을 구한 빅토리호 선원들에게 감사의 뜻을 전했습니다.

올해 78살의 러니씨는 23일 서울에서 가진 기자회견에서 1950년 12월 22일 함경남도 흥남부두 철수 작전의 긴박했던 순간들을 생생하게 떠올렸습니다. 그는 당시 중공군이 원산 인근 4 km 까지 접근해 포탄이 비오듯 쏟아지고, 영하 20도의 혹한이 몰아친 최악의 상황 속에서 공포에 질린 피난민을 실어 날랐던 게 어제 일처럼 선명하다고 말했습니다.
Lunney: thousand of people was on the beach.
그는 갑판위에는 더 이상 발 디딜 틈조차 없었으며 배에는 마실 물도 먹을 것도 화장실도 없었다고 설명했습니다. 선원들이 할 수 있는 한국말은 오직 “빨리빨리”라는 단어였다면서, 한사람의 피난민이라도 더 태우려고 노력했다는 것입니다. 선원들은 특히 휘발성이 강한 제트유를 가득 싣고 있던 배 안에서 피난민들이 불을 피우는 것을 보고 간담이 오싹하기도 했다고 회고했습니다.
Lunney: some of the Korean refugees were building fires.
기뢰밭을 뚫고 흥남항을 빠져나온 빅토리호는 3일 동안의 항해 끝에 크리스마스인 12월 25일 거제도에 도착했습니다. 러니씨는 단 1명의 사상자도 없었으며, 배위에서는 5명의 새 생명이 태어나는 기쁨까지 누릴 수 있었다고 말했습니다. 러니씨는 흥남철수의 진정한 영웅은 끝없는 죽음의 공포와 두려움 앞에서도 동요하지 않고 고통을 함께 이겨낸 한국인들 자신이라고 평가했습니다.
Lunney: true hero was Korean people themselves.
로버트 러니씨에게 남한 재향군인회는 23일 흥남철수 작전을 도운 공로로 외국인으로서는 최초로 대 휘장을 수여했습니다. 재향군인회 윤창노 대변인은 남한의 젊은이들은 수많은 한국인들을 구조한 빅토리호 선원들을 포함해 당시 한국 전쟁에서 희생한 유엔군들의 은혜를 잊어서는 안 된다고 강조했습니다.
윤창노: 요즘 맥아더 장군 동상 철수와 자주국방 주장 등 한미 관계가 왜곡돼 있습니다. 그러나 과거 많은 피난민과 국군을 구출한 분들에게 보은을 표함으로써 젊은이들에게 이 사실을 알리는 의미가 있습니다.
한편 러니씨가 승선한 미국 상선 메리디스 빅토리호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1950년 12월 흥남항 인근 해역에서 미 항공기에 제트유 공급 지원 임무를 맡고 있었습니다. 한국군과 유엔군은 1950년 10월 압록강까지 진격했지만 물밀 듯이 밀려오는 중공군으로 수세에 몰려 철수해야 하는 위급한 상황에 처했습니다.
이 때문에 흥남항에는 12월 22일부터 24일까지 병력과 피난민들을 배로 실어 나르는 철수작전이 전개된 것입니다. 빅토리호는 12월 22일 16시간에 걸쳐 승선 정원 2000명의 7배가 넘는 1만 4000명의 피난민을 태우고 거제도에 무사히 도착했습니다. 빅토리호는 역사상 가장 많은 사람들을 구조한 배로 꼽혀 세계 기네스북에도 오르기도 했습니다.
앞서 미군 유해발굴 단원의 일원으로 지난 97년과 98년 두 차례에 걸쳐 북한을 방문했다는 러니씨는 당시 북한측 관계자가 한반도는 아직 전쟁이 끝나지 않은 정전 상태임을 강조해 가슴이 아팠다면서, 한반도에 진정한 평화가 오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이수경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