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주민들 ‘유관순’ 누군지 몰라

내일은 3.1절입니다. 3.1운동이 일어난 지 올해로 정확히 90년인데요. 북한에서 3.1 운동은 일제 침략에 대한 저항운동이라고 공식적으로 평가를 하고 있지만, 그 해석이나 주장에 있어서 남한과는 다른 생소한 부분이 있습니다.
서울-노재완 xallsl@rfa.org
2009.02.27
노재완 기자가 보도합니다.

1919년 3월 l일은 한민족이 일본의 식민통치에 항거하고, 독립선언서를 발표해 독립 의사를 알린 기념비적인 날입니다.

하지만 3.1운동을 놓고도 남북한은 큰 차이를 보이고 있습니다.

한국은 3월 1일을 국경일로 정하고, 매년 기념식을 열어 독립운동을 했던 순국선열을 위해 추모하는 묵념을 올립니다.

북한도 1980년대까지는 이날을 기념해 ‘3.1인민봉기 기념보고회’ 등을 개최했지만 1990년대 이후 별다른 행사를 하지 않고 있습니다.

북한은 3.1절을 '3.1 인민봉기'라고 부르고 있고 매년 3월 1일이면 언론 매체를 동원해 ‘반미 반일 투쟁’과 ‘민족자주’를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3.1 운동이 시작된 곳이 서울의 파고다공원이 아니라, 평양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도명학: ‘유관순’이라고 하면 청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잘 모릅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도 유관순을 독립 운동의 큰 열사로 기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핵심 인물도 유관순 열사가 아니라 김일성 주석의 아버지인 김형직으로 돼 있습니다.

이 때문에 유 열사에 대한 평가도 한국과 다릅니다.

유 열사는 한국에서는 3.1운동을 주도적으로 이끌고 순국한 여성 독립 운동가로서 기록되고 있는 반면,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유관순이라는 이름조차 잘 모르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다만, 1999년에 발행된 <조선대백과사전>에서 “1919년 3.1 인민봉기 때 일제를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운 여학생”이라고 간략하게 소개돼 있을 뿐입니다.

탈북자 도명학 씨입니다.

도명학: ‘유관순’이라고 하면 청년들은 물론이고 어른들도 잘 모릅니다. 이름을 아는 사람이라도 유관순을 독립 운동의 큰 열사로 기리는 일은 거의 없습니다.

북한은 1970년대 후반까지는 “3.1운동은 러시아 10월 혁명의 영향을 받아 수십 만 명의 서울시민이 반일투쟁을 시작하여 발생했다”고 기술했지만, 1980년대를 지나면서 “역사적인 3.1 인민봉기는 평양에서 벌어진 대중적인 시위투쟁을 첫 봉화로 해서 타오르기 시작했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러면서 ‘탁월한 수령의 영도’와 ‘혁명적 당의 지도’가 없이는 혁명에서 성공할 수 없다는 점을 보여주는 대표적인 사례로 평가했습니다.

북한은 또 3.1운동을 주도했던 33인 지도자에 대해서도 “반민족적이며 반인민적인 비굴한 투항자”로 평가한 반면, 김일성 주석이 8살의 나이로 ‘대한독립 만세’를 외치며 평양에서 3.1운동에 참여했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북한 전문가들은 “북한이 1980년대 이후 김일성 가계의 혁명 전통을 강조하는 과정에서 김형직이 3.1운동을 주도했다는 점을 부각했다”면서 “이를 위해 3.1운동의 역사적 사실마저 많이 왜곡했다”고 지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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