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통신] 남한 의사 꿈 이룬 탈북 의사 3인
서울-이수경 xallsl@rfa.org
2009.01.30
2009.01.30
주인공은 청진의학대학 한의학부를 졸업하고 8년 동안 북한에서 한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해
지난 2002년 남한에 입국한 김지은 씨.
함흥의학대학에서 한의사를 양성하는 고려학부를 졸업하고 지난 2004년 남한에 온 이은지 씨. 그리고 함흥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남도에서 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한 정성일 씨입니다. 남한에서 각각 한의사와 의사의 꿈을 이룬 이 탈북자들은 남한과 북한에서 배운 의술로 어려운 탈북자들과 이웃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한의사였던 김지은 씨가 올해 남한에서 치러진 제64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소감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꿈만 같고 즐겁습니다.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러나 김지은 씨가 한의사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남들과 달랐습니다. 김지은 씨는 북한 청진 의학대학에서 7년 동안 한의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8년 동안 병원에서 한의사로 활동했지만 북한의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남한에서 한의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김 씨는 한의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달라고 국회에 청원했고 언론에 호소도 했습니다. 그 결과, 김 씨는 세명대학교 한의학과에 편입할 수 있었고 올해 졸업과 함께 당당히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의학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직장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30-40대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에서 일하는 것인데 그 일이 천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도 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의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김 씨는 막상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결심은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문을 사용하지 않아 공부할 때 한문 해독에 어려움을 겪었고 영어도 익숙지 않았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머리 회전이 빠르고 또 한국 한의대는 총명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경쟁하기가 어려웠고 또 한국 한의학에서는 한문을 많이 사용해서 배우기 어려웠습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공부에만 열중해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학비며 생활비까지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 타는 것을 꼬박꼬박 모았습니다. 한 달에 1만 5천 원을 쓴 적도 있었습니다. 도시락 싸 가지고 걸어 다니면서 주변에서 무섭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생활비가 모자라도 내가 공부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돈이 없어서 밖에서 아무 일이나 할 것이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사는 것이 어려워서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일을 했다면 4년 후나 지금이나 나아지는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지금 4년을 투자해서 공부할 때 4년 후에 나의 모습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김지은 씨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꾸준히 오직 한의사가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는 김지은 씨. 그는 남한과 북한에서 배운 의술을 통해 앞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상투적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현재 남과 북의 한의학 대학을 모두 나왔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잘 조합해서 더 나은 의술로 발전시키는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북한에서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치료하지 못했던 분들에게 보상도 하고 싶습니다.”
또 함흥의학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한의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남한에 온 이은지(가명) 씨는 독학으로 올해 처음 한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해 합격했습니다. 이씨도 처음 남한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의사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한 때 한의사가 되려고 했던 꿈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탈북자 출신 의사나 한의사들도 심사를 통해 학력이 인정되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보호정착지원법의 시행령’이 2007년 개정되면서 지난해부터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씨는 북한에서 배운 한의학이 남한과 다르지 않아 혼자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시험 정보다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한의대를 찾아다니며 문의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시험을 보려면 자료가 있어야 하잖아요. 한의학에서 보는 과목이 18개 과목, 과목 수가 워낙 많고 관련된 자료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한국에서 시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경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북한에서 공부했다고 하니까 북한 사람도 외부인이라며 경계를 했습니다.”
어린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긴 후 하루에 8시간 혼자 공부한 끝에 남한에서 한의사가 된 이은지 씨. 그는 오랜 탈북과정에서 얻은 병으로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위해서도 봉사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저는 우리 탈북자들 위해서는 가장 우선 봉사할 것입니다. 앞으로 탈북 동포들 생각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한편, 함흥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남도 지역에서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한 정성일 씨는 지난해 낙방했으나 올해 제73회 의사 국가고시에서 뜻을 이뤘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정씨는 외래어가 많은 의학 용어 때문에 공부하는 데 힘들었지만, 누구나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함흥의학대학에서 한의사를 양성하는 고려학부를 졸업하고 지난 2004년 남한에 온 이은지 씨. 그리고 함흥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남도에서 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한 정성일 씨입니다. 남한에서 각각 한의사와 의사의 꿈을 이룬 이 탈북자들은 남한과 북한에서 배운 의술로 어려운 탈북자들과 이웃들을 돕고 싶다고 말했습니다.
북한에서 한의사였던 김지은 씨가 올해 남한에서 치러진 제64회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소감은 남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꿈만 같고 즐겁습니다. 그동안 어렵고 힘들었던 일들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납니다.”
그러나 김지은 씨가 한의사의 꿈을 이루기까지의 과정은 남들과 달랐습니다. 김지은 씨는 북한 청진 의학대학에서 7년 동안 한의학을 공부하고 졸업 후 8년 동안 병원에서 한의사로 활동했지만 북한의 학력이나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남한에서 한의사 시험을 칠 수 있는 자격조차 없었습니다.
김 씨는 한의사 자격시험에 응시할 수 있는 자격을 달라고 국회에 청원했고 언론에 호소도 했습니다. 그 결과, 김 씨는 세명대학교 한의학과에 편입할 수 있었고 올해 졸업과 함께 당당히 한의사 국가고시에 합격한 것입니다. 끝까지 자신의 꿈을 버리지 않은 결과였습니다.
“한국에 와서 한의학을 계속 하겠다는 생각을 처음에는 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직장도 알아보고 그랬는데 쉽지 않았습니다. 30-40대 아줌마가 할 수 있는 일은 식당에서 일하는 것인데 그 일이 천하다고 얘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일도 할 수 있지만 가능하면 제가 가장 잘하는 일을 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한의학을 해야겠다고 생각을 했고요.”
김 씨는 막상 공부를 다시 시작하려고 결심은 했지만 쉽지는 않았습니다. 북한에서는 한문을 사용하지 않아 공부할 때 한문 해독에 어려움을 겪었고 영어도 익숙지 않았습니다.
“어린 친구들이 머리 회전이 빠르고 또 한국 한의대는 총명한 사람들이 오는 곳이라 경쟁하기가 어려웠고 또 한국 한의학에서는 한문을 많이 사용해서 배우기 어려웠습니다.”
더욱 힘들었던 것은 공부에만 열중해도 시간이 부족한 마당에 학비며 생활비까지 늘 걱정이었습니다.
“그 사이에 회사에 다니면서 월급 타는 것을 꼬박꼬박 모았습니다. 한 달에 1만 5천 원을 쓴 적도 있었습니다. 도시락 싸 가지고 걸어 다니면서 주변에서 무섭다고 얘기할 정도였습니다. 생활비가 모자라도 내가 공부에 투자할 것인가 아니면 내가 돈이 없어서 밖에서 아무 일이나 할 것이냐 고민을 했습니다.
그런데 내가 지금 사는 것이 어려워서 대학 다니는 4년 동안 일을 했다면 4년 후나 지금이나 나아지는 것이 없으리라 생각했습니다. 만약 지금 4년을 투자해서 공부할 때 4년 후에 나의 모습은 그 이상의 가치가 있으리라 생각했습니다.”
힘든 시간이 많았지만, 그때마다 김지은 씨는 조바심을 내지 않고 꾸준히 오직 한의사가 되고자 노력했다고 말합니다. 따뜻한 마음을 가진 의사가 되고 싶다는 김지은 씨. 그는 남한과 북한에서 배운 의술을 통해 앞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도움을 주고 싶다고 밝혔습니다.
“상투적이지만 마음이 따뜻한 사람이 돼야겠다는 생각을 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현재 남과 북의 한의학 대학을 모두 나왔기 때문에 그 부분들을 잘 조합해서 더 나은 의술로 발전시키는 결과가 있었으면 좋겠고, 그리고 제 개인적으로 돈을 많이 벌어서 북한에서 제가 병원에 있을 때 치료하지 못했던 분들에게 보상도 하고 싶습니다.”
또 함흥의학대학을 졸업하고 3년 동안 한의사로 활동하다 지난 2004년 남한에 온 이은지(가명) 씨는 독학으로 올해 처음 한의사 국가고시에 도전해 합격했습니다. 이씨도 처음 남한에 들어와서는 북한의 의사 경력을 인정받지 못해 한 때 한의사가 되려고 했던 꿈을 포기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행히 탈북자 출신 의사나 한의사들도 심사를 통해 학력이 인정되면 시험을 볼 수 있도록 ‘북한이탈주민보호정착지원법의 시행령’이 2007년 개정되면서 지난해부터 응시할 수 있었습니다.
이 씨는 북한에서 배운 한의학이 남한과 다르지 않아 혼자 공부하는 데 큰 어려움은 없었다고 밝혔습니다. 다만, 시험 정보다 자료를 구하기가 쉽지 않아 한의대를 찾아다니며 문의하는 과정에서 힘들었다고 토로했습니다.
“시험을 보려면 자료가 있어야 하잖아요. 한의학에서 보는 과목이 18개 과목, 과목 수가 워낙 많고 관련된 자료를 구하기가 상당히 어려웠습니다. 왜 그런가 하면 중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한 학생들이 한국에서 시험을 보려고 하기 때문에 한국에서 한의학을 공부하는 학생들이 경계하더라고요. 그래서 저는 북한에서 공부했다고 하니까 북한 사람도 외부인이라며 경계를 했습니다.”
어린 아기를 보육시설에 맡긴 후 하루에 8시간 혼자 공부한 끝에 남한에서 한의사가 된 이은지 씨. 그는 오랜 탈북과정에서 얻은 병으로 고생하는 탈북자들을 위해서도 봉사할 생각입니다.
“당연히 저는 우리 탈북자들 위해서는 가장 우선 봉사할 것입니다. 앞으로 탈북 동포들 생각해서 좋은 일도 많이 하고 싶습니다.”
한편, 함흥 의학대학을 졸업하고 함경남도 지역에서 지난 1999년부터 2004년까지 의사로 활동하다 탈북한 정성일 씨는 지난해 낙방했으나 올해 제73회 의사 국가고시에서 뜻을 이뤘습니다. 합격 통보를 받고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는 정씨는 외래어가 많은 의학 용어 때문에 공부하는 데 힘들었지만, 누구나 열심히 하면 꿈을 이룰 수 있다고 강조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