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주민들 “천안함 사건 김정은 소행”
서울-문성휘 xallsl@rfa.org
2010.05.31
2010.05.31
MC : ‘천안함 침몰사건’이 김정일의 후계자로 지목된 삼남 김정은의 소행이라는 주장이 일부 북한주민사이에서 제기되어 주목되고 있습니다. 평양에서 ‘천안함 사건 조사 결과를 규탄하는 10만명 군중집회’가 열렸지만 일부 북한 주민들이 이를 북한의 소행으로 알고 있다는 얘깁니다.
서울에서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30일,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는 ‘천안함 사건조사 결과를 규탄하는 군중집회’가 열렸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날 “‘천안함 사건’을 날조한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적개심을 안고 달려 온 10만명의 군중이 집회에 참가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기업소별로 집단 징집된 주민들로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집회에 끌려나온 것”이라고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살고 있는 백모씨가 전해왔습니다.
신의주시 모 대학 교수인 백모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천안함 사건’은 김정은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무비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천안함 사건’이 김정은의 모략으로 밝혀져 후계자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풀이했습니다.
백씨는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것은 ‘서해해군사령부’”라고 지목하고 “‘김정은 대장이 서해해군 사령부에서 직접 작전을 지휘했다’는 소문이 ‘김일성 종합대학’과 ‘인민경제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일성 종합대학’과 ‘인민경제대학’은 우리나라(북한) 최고위급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이기 때문에 여기서 흘러나오는 소문들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평양에서 10만명 군중대회를 가졌다고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미국의 날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속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김정일이 ‘세상이 한번 놀라게 크게 일을 쳐보라’고 김정은을 밀어주었다”며 “‘천안함 사건’은 그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백씨는 “지금 상황은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하던 1980년대와 비슷하다”며 “80년대 ‘사회주의 대진군’을 외치며 주민들을 동원하던 건설방식이나 지금 ‘강성대국 완성’을 떠들며 주민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비롯해 모든 일이 판에 박은 것처럼 너무도 꼭 같이 닮았다”고 풀이했습니다.
백씨의 주장에 의하면 김정일은 1983년 6월, 김일성과 함께 처음 중국을 방문했으나 ‘후계세습은 봉건적 잔재이므로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등소평의 충고를 받고 이후 등소평을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김정일은 중국과 소련 지도부를 의식해 자신이 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북한 군부까지 모두 쥐고 흔든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해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버마 랑군테러사건’을 일으켰다는 설명입니다.
백씨는 “지금 우리 내부에서는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김정은이 ‘강성대국사상’을 창시했다는 3대위인, 3대사상론이 선전되고 있다”며 “‘천안함 사건’도 김정은의 담력을 선전하기 위해 조직됐고 초기에는 그러한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는데 사건이 점차 커지면서 발뺌을 하기에 급급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신의주 주민 김모씨도 30일,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 ‘장군님의 담력’이요, ‘김정은 대장이 크게 한방 먹였소’하고 떠들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미제의 조작이라고 선전하니 누가 믿겠느냐”며 천안함 사건을 두고 “어느 때는 저희들이 했다고 인정한 적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처음(천안함 사건 초기)에는 학습이나 강연회 시간에 ‘김정은 대장이 남조선 괴뢰들을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젊은 대장의 기질을 세상에 알렸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더니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다 ‘역적’이라고 떠든다”며 “아무리 말바꾸기를 해봐야 곧이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초기 김정일 정권이 저들의 소행임을 내부적으로 과시했다는 주장은 ‘NK지식인연대’와 ‘성통만사’를 비롯한 탈북자 단체들도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밝힌 바가 있습니다.
서울에서 문성휘 기자가 보도합니다.
지난달 30일, 평양시 김일성광장에서는 ‘천안함 사건조사 결과를 규탄하는 군중집회’가 열렸습니다.
북한 당국은 이날 “‘천안함 사건’을 날조한 미제와 남조선 괴뢰도당에 대한 치솟는 분노와 적개심을 안고 달려 온 10만명의 군중이 집회에 참가했다”고 선전했습니다. 그러나 이들은 모두 기업소별로 집단 징집된 주민들로 “개인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억지로 집회에 끌려나온 것”이라고 평안북도 신의주시에 살고 있는 백모씨가 전해왔습니다.
신의주시 모 대학 교수인 백모씨는 ‘자유아시아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천안함 사건’은 김정은의 탁월한 전략전술과 무비의 담력을 과시하기 위한 행동”이라고 주장하면서 “지금 김정일이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천안함 사건’이 김정은의 모략으로 밝혀져 후계자 자리에 오르기도 전에 ‘살인자’로 낙인이 찍히는 것”이라고 나름대로 풀이했습니다.
백씨는 “‘천안함 사건’을 일으킨 것은 ‘서해해군사령부’”라고 지목하고 “‘김정은 대장이 서해해군 사령부에서 직접 작전을 지휘했다’는 소문이 ‘김일성 종합대학’과 ‘인민경제대학’ 학생들을 중심으로 급속히 퍼지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김일성 종합대학’과 ‘인민경제대학’은 우리나라(북한) 최고위급 자녀들이 다니는 대학이기 때문에 여기서 흘러나오는 소문들은 대부분 사실”이라고 설명하고 “평양에서 10만명 군중대회를 가졌다고 하지만 ‘천안함 사건’이 미국의 날조라고 생각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고 강하게 주장했습니다.
그는 “김일성 종합대학 학생들속에서 떠도는 소문에 의하면 김정일이 ‘세상이 한번 놀라게 크게 일을 쳐보라’고 김정은을 밀어주었다”며 “‘천안함 사건’은 그러한 배경에서 일어난 사건”이라고 언급했습니다.
백씨는 “지금 상황은 김정일이 정권을 장악하던 1980년대와 비슷하다”며 “80년대 ‘사회주의 대진군’을 외치며 주민들을 동원하던 건설방식이나 지금 ‘강성대국 완성’을 떠들며 주민들을 동원하는 방식을 비롯해 모든 일이 판에 박은 것처럼 너무도 꼭 같이 닮았다”고 풀이했습니다.
백씨의 주장에 의하면 김정일은 1983년 6월, 김일성과 함께 처음 중국을 방문했으나 ‘후계세습은 봉건적 잔재이므로 공산주의자들에게서 용납될 수 없는 일’이라는 중국공산당 총서기 등소평의 충고를 받고 이후 등소평을 ‘사회주의 배신자’라고 비난했다는 것입니다.
또한 김정일은 중국과 소련 지도부를 의식해 자신이 북한 주민들뿐만 아니라 북한 군부까지 모두 쥐고 흔든다는 강한 인상을 심어주기 위해 그해 10월 9일 전두환 대통령을 암살하기 위한 ‘버마 랑군테러사건’을 일으켰다는 설명입니다.
백씨는 “지금 우리 내부에서는 김일성이 ‘주체사상’을, 김정일이 ‘선군정치’를, 김정은이 ‘강성대국사상’을 창시했다는 3대위인, 3대사상론이 선전되고 있다”며 “‘천안함 사건’도 김정은의 담력을 선전하기 위해 조직됐고 초기에는 그러한 사실을 숨기지도 않았는데 사건이 점차 커지면서 발뺌을 하기에 급급하다”고 말했습니다.
한편 또 다른 신의주 주민 김모씨도 30일, ‘자유아시아 방송’과의 전화통화에서 “처음에는 ‘장군님의 담력’이요, ‘김정은 대장이 크게 한방 먹였소’하고 떠들더니 이제 와서 갑자기 미제의 조작이라고 선전하니 누가 믿겠느냐”며 천안함 사건을 두고 “어느 때는 저희들이 했다고 인정한 적이 있냐”고 반문했습니다.
그는 “처음(천안함 사건 초기)에는 학습이나 강연회 시간에 ‘김정은 대장이 남조선 괴뢰들을 정신이 번쩍 들게 했다’, ‘젊은 대장의 기질을 세상에 알렸다’고 노골적으로 말하더니 지금은 그런 말을 하는 놈들은 다 ‘역적’이라고 떠든다”며 “아무리 말바꾸기를 해봐야 곧이 들을 사람은 아무도 없다”고 비난했습니다.
‘천안함 사건’ 초기 김정일 정권이 저들의 소행임을 내부적으로 과시했다는 주장은 ‘NK지식인연대’와 ‘성통만사’를 비롯한 탈북자 단체들도 북한 내부 소식통을 인용해 밝힌 바가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