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박성우 xallsl@rfa.org
파벌이라는 말... 한동안 문제가 됐었는데. 이 말이 요즘 추성훈이라는 K-1 격투기 선수가 한국에서 인기를 끌면서 다시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한국 유도국가대표 선수가 되고 싶었던 추 씨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
추성훈 씨는 원래는 유도선수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일본에서 K-1이라는 이건 손과 발을 다 쓸 수 있는 격투깁니다. 전세계적으로 굉장히 인기가 있는 스포츠구요. 여기서 선수 생활을 하고 있습니다.
종합전적이 13전 10승 1패, 투경기는 무효 경기가 됐습니다. 승률이 높죠. 그래서 일본에서도 굉장히 유명한 선숩니다. 이 선수가 최근 한국에 와서 한 텔레비전 예능프로에 출연했습니다. TV 프로에서 소개된 말인데요.. 추성훈 선수가 K-1에서 한 경기를 이기고 난 다음에 관중들에게 한 말입니다.
추성훈: 지금 한국 사람이 아니에요. 그래도 여기 가슴 안에는 지금 여기 들어가는 피는 완전 한국입니다.
추성훈 선수(34)는 재일동포 4세입니다. 재일동포는 한국 사람이죠. 그런데 사정이 있어서 일본인으로 2001년에 국적을 바꿨습니다. 그 이유는 잠시 후에 설명을 드리겠습니다. 유도 선수였던 아버지 영향을 받아서 세 살부터 유도를 했구요.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하고 싶어서 1998년에 부산으로 건너옵니다. 부산시청 유도팀 소속으로 한국 생활을 시작했는데요. 당시 추성훈 선수의 말, 잠시 들어보시죠.
추성훈: 일본에서 살았어도 마음은 한국 사람이니까. 한국 국가대표 하고 싶어서요. 어릴 때부터 생각했으니까요. 귀화 하지 않고 여기 왔습니다.
추성훈 선수가 실력이 없는 선수가 아니었습니다. 일본인으로 귀화해서 일본 국가대표를 할 수도 있었지만 한국인이니까 한국에서 대표선수를 하고 싶어서 왔다는 말이죠. 일본에서도 유도를 제일 잘하는 학생들이 들어가는 고등학굔데요. 세이후 고등학교 출신입니다. 말씀하신 데로 당시에 일본인으로 귀화를 했다면 일본에서 국가대표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높았던 거죠. 그래도, 한국에서 국가대표를 하고 싶다면서 한국으로 왔는데... 여기서부터 소설 같은 추성훈씨의 인생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한국에 와서도 성적이 좋았습니다. 2000년 코리아오픈 유도대회에서 준결승과 결승전을 모두 한판승으로 우승했습니다. 한국에 온 지 1년만에 81kg급의 새로운 강자로 급부상한 거죠. 그런데. 유독 경기가 판정까지 가면 지는 일이 많았습니다. 그래서 추성훈 선수는 국가대표 되기 위해서는 판정 아닌 한판승으로 이겨야 한다.. 이런 생각을 가졌다고 하구요.
그 다음해인 2001년에 몽골에서 열린 아시아선수권 대회에서 전경기를 한판승으로 금메달을 땄습니다. 그리고 최고의 선수상도 탔습니다. 이젠 한국 국가대표가 될 수 있다는 희망을 가졌는데 또 대표 선발전에서 탈락합니다. 추성훈 선수의 말입니다. 왜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는지... 자신이 생각하는 이윱니다. 잠시 들어보시죠.
추성훈: 실력이 아니고 파벌이 있어서 실력이 있어도 안됐습니다. 그거는 확실합니다. 지금은 어떻게 됐는지 모르겠는데, 제가 할 때는 우리 선수도 그렇고, 다른 선수도 그렇고... 실력이 있는 상태에서도 안된 사람, 진짜 많이 있었습니다.
아시아에서 1등을 했는데도 한국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다... 이건 실력탓이 아니라 파벌 때문이었다... 추성훈 선수는 그렇게 이해하고 있습니다. 국가대표 되는 거, 이렇게 힘드나..싶어서 갈등도 많이 했다고 합니다.
추성훈: 네. 너무 어려웠었습니다. 그때. 시합 때마다 한국에서 이상한 판정 같은 거에서... 실력이 아니고 판정 때문에 시합 지는 거 많이 있었습니다.
유도에는 어느 대학을 나왔느냐에 따라서 판정이 오락가락 한다.. 이런 말이 과거엔 있었고 한때 문제가 됐었습니다. 추성훈 선수도, 2000년대 초반까지만 해도 그런 분위기가 있었다는 말을 하는 거구요. 그리고 이 말을 워낙 실력이 있던 추성훈 선수가 하고 있으니까, 이 주장이 설득력이 있구나.. 이런 생각을 한국 국민들이 하고 있는 거지요. 게다가 추성훈 선수의 경우엔 한 가지 문제가 더 있었습니다. 바로 재일동포에 대한 편견입니다.
추성훈: 국적을 두 개 가지고 있냐고... 이건 말이 안 되거든요. 한가지 밖에 안 되잖아요. 그런 말 하는 사람도 많구요. 한국이 너무 좋아서 사랑하는 마음을 갖고 왔는데, 그때는 마음이 너무 아팠어요.
그러니까 크게 두가지군요. 하나는 추성훈 선수가 한국에서 대학을 안나왔다는 거. 또 하나는, 추성훈 선수가 재일교포였다는 거. 이 두 가지가 다 불리하게 작용한 셈이지요.
한국에서 너무 하고 싶던 국가대표가 되지 못했기 때문에 일본으로 귀화를 결심하게 됩니다. 그러고 나서 2001년에 일본 국가대표가 됐구요. 2002년엔 일본 국제 유도대회 81kg급 우승도 했고, 같은해 부산 아시안게임에서 우승해서 금메달을 따기도 했습니다. 그러고 나서 2004년에 이종격투기로, 새로운 도전을 해 보겠다면서 전향을 했던 거지요.
자기 학교 출신이면 좀 더 잘 봐주고, 자기 고향 출신이면 더 잘 봐주고.. 이런 학연, 지연.. 이게 바로 한국 사회가 안고 가고 있는 병폐다... 그리고 이걸 고치지 않으면 더 이상 한국 사회가 발전하기 어렵다. 이런 주장 하시는 분들이 많이들 계시지요.
추성훈씨가 한국 사회의 한 단면을 보여 준건데 북한의 경우는 사회 특성상 계파, 파벌 이런 게 생기는 게 아주 힘든 구조입니다.
첫 번째 이유로는 북한이 유일 지배 체제라는 데 있습니다. 다시 말해서 김일성-김정일만을 위해서 사회가 굴러가기 때문에, 다른 생각을 하는 조직이나 파벌이 생길 수가 없는 거죠.
예전에는 정치파벌이 있긴 있었습니다. 갑산파, 연안파, 이런 거죠. 그런데 대대적인으로 이뤄진 숙청작업 때문에 지금은 다 사라진 상탭니다. 1956년 8월 종파사건... 이런 게 대표적인 예였지요. 정치파벌 뿐 아니라 사회 전반적으로도 사람들이 개별적으로 모임을 가질 수가 없습니다. 때문에 사회적으로도 특정 파벌이 생기기 힘든 구좁니다.
외교관 출신이고 현재는 <탈북자 동지회> 회장을 맡고 있는 홍순경씨의 말입니다.
홍순경: 동창회나 고향 친구들의 모임이라든가, 이런 것도 전혀 허용이 안되고, 또 현실적으로도 없습니다.
대신에 다른 문제가 있습니다. 유일지배체제의 수혜자들이 있지요. 고위급 당 간부들... 이 사람들은 계속해서 특혜를 받습니다. 이것도 역시 다른 의미의 파벌이라고 부를 수 있는 거지요. 북한 당, 군, 행정부 어디서나 이건 마찬가지라는 설명입니다. 홍순경 회장의 말, 다시 한 번 들어보시죠.
홍순경: 물론 모든 면에서 고위급 간부들의 자제가 우선순위에 들어가지요. 여러 가지 간부로 발탁하거나 중요한 위치에 발탁할 때 그런 간부 자제가 최우선권을 갖는 건 사실입니다.
사회 전반적으로 그렇다고 쳐도 북한에서도 전문분야에서는 어떨까요. 탈북자 중에 서울에서 동의사를 하는 분이 있습니다. 석영환 원장인데요. 이분 설명을 들어보면, 전문 분야 역시도 북한에선 좀 출신에 따라서 배치되는 병원의 급이 상당히 달라진다고 합니다.
특히 평양의대 출신들이 대부분 좋은 자리로 배치된다고 합니다. 때문에 다른 의대 출신들과 갈등도 있다고 하는데요.
석영환: (기자: 갈등 같은 거 없습니까?) 왜 없겠습니까. 지방생들하고 평양생들하고.. 의과대학의... 서로 실력에 관한 논쟁도 심하구요. 자리싸움, 텃새, 밀어내기... 이런 게 굉장히 심하죠.
정리를 해 보자면 북한도 워낙 통제가 강하기 때문에 개별 집단이 파벌을 형성하긴 힘들지만, 고위급 당간부들 같은 기득권들이 만든 파벌은 아주 강력한 영향력을 발휘하고 있다고 보면 되겠습니다.
어느 사회나 이런 파벌, 기득권.. 이런 게 지속되는 한 국가발전, 사회발전은 제대로 이뤄지기가 힘들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