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련, 한국전쟁에서 전세 불리해지자 북한에 전쟁 포기 지시

소련은 한국전쟁 중에 전세가 크게 불리해지자 김일성에게 북한을 포기하고 빠져나오라는 지시를 했다는 사실이 소련의 옛 외교문서를 통해 드러났습니다.

미국의 정책연구기관인 우드로우 윌슨센타의 냉전사가인 캐서린 웨더스비 (Kathryn Weathersby) 박사는 24일 자유아시아방송과의 회견에서 이같은 사실을 공개하면서, 이 일을 계기로 김일성은 소련에 대해 불신을 갖게 됐다고 말했습니다.

그간 한국전의 발발 원인를 놓고 남과 북 어느 쪽에서 먼저 한국전쟁을 일으켰느냐를 놓고 한동안 논란이 있지 않았습니까?

저희들이 확보한 소련의 외교문서에는 김일성과 스탈린이 한국전쟁에 관해 나눈 대화내용이 들어 있습니다. 특히 김일성과 스탈린이 서로 주고 받은 전문에 이런 내용이 자세히 나와 있습니다.

김일성은 1949년 3월 소련과 공식적으로 동맹관계를 맺기 위해 모스코바를 방문했는데요, 이때 처음으로 남침 계획을 스탈린에게 알리고 도움을 요청했습니다. 그렇지만 스탈린은 아직 미군이 남한에 있다는 이유로 이를 거절했습니다.

1949년 여름에 미군이 남한에서 철수하자 김일성은 다시 스탈린에게 남침을 주장했는데요, 소련도 이때는 진지한 자세로 남침에 필요한 사항들을 북측과 점검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결론은 '아직 때가 안됐다'였습니다. 일단 전쟁을 일으키면 미군이 개입하기 전에 신속하게 남한을 점령해야 하는데, 그러기 위해서는 북한의 군사력이 남한을 압도하고도 남아야 한다고 스탈린은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아직 북한이 그 정도로 군사력을 갖추지는 못했다고 판단한 거죠. 김일성은 여기에 굴하지 않고 1950년 1월에 남침을 도와달라고 스탈린에게 다시 요구했습니다. 그리고 스탈린은 결국 남침을 승인했습니다.

스탈린이 김일성의 남침계획을 승인한 이유는 무엇이었습니까?

스탈린은 국제정세가 변했기 때문에 이제는 북한의 남침계획을 지지할 수 있게 됐다고 김일성에게 설명했습니다. 이런 사실은 김일성이 1950년 4월 모스코바를 방문해서 스탈린과 나눈 대화에서 잘 나타나고 있습니다. 스탈린은 국제정세가 두 가지 측면에서 남침계획에 유리하게 변했다고 했습니다.

첫째는 중국에서 공산당이 권력을 잡음으로써 중국이 북한에 군사 지원을 해줄 수 있게 됐고, 둘째는 미국이 남한과 대만을 극동방위선에서 제외한다는 입장으로 돌아섰기 때문에 남침을 해도 미국의 개입을 걱정하지 않아도 됐습니다.

그런데 전쟁이 실제로 터진 다음에 미군이 참전하지 않았습니까? 스탈린의 판단과는 전혀 다른 상황이 벌어졌는데, 소련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미군이 참전한 직후에 스탈린이 김일성과 또 북한에 파견한 소련 고문관들과 주고받은 전문을 보면, 스탈린이 미군의 개입에 정말 초조해하고 당황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특히 미군이 인천상륙작전에 성공해서 북한 땅으로 진격해 들어가자 소련은 한국전쟁을 포기할 생각까지 했습니다. 당시 소련은 미국과의 전면전을 피하기 위해 군대를 보내지 않고 중국에 그 역할을 맡기려고 했습니다. 중국 공산당 안에서도 논란이 많아서 바로 군대를 투입하지 못했습니다.

스탈린은 사태가 심상치 않다고 판단하고, 김일성에게 북한 지역에서 철수하라는(evacuate) 지시를 내렸습니다. 그러나 바로 그 다음날 중국이 참전하겠다고 알려오면서 스탈린의 지시는 없던 일이 됐습니다. 이 일이 있고 난 다음에 김일성은 소련을 더 이상 믿을 수 없다는 생각을 한 것 같습니다.

1950년 12월에 열린 북한 노동당 대회에서 김일성은 소련을 거의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소련을 높이 찬양하던 이전의 연설들과 비교하면 정말 엄청난 변화였죠.

소련과 북한이 전쟁중에 또 대립한 사건은 없었습니까?

휴전협상을 놓고 서로 대립했습니다. 전쟁이 교착상태에 빠지고 중공군이 미군을 38선 부근에 묶어두게 되자, 한국전쟁은 소련에게 더 이상 위협이 되지 않았습니다. 미국과의 전면전으로 확대될 가능성이 없어지게 된 거죠.

스탈린은 전쟁을 계속하라고 북한과 중국에 요구했습니다. 그렇지만 1952년 무렵부터 김일성은 휴전을 강력하게 원하기 시작했습니다. 미군의 폭격을 더 이상 견디기 어렵다고 판단한 거죠. 1953년 3월에 스탈린이 죽고 나서야 비로서 소련은 휴전을 허락했습니다. 이 사건은 김일성의 입장에서 볼 때 또 한번 소련에게 크게 실망할 수밖에 없는 일이었습니다.

김연호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