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상준 씨 석방: 탈북자 돕다 조선족 밀고로 체포됐었다

2007-12-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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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전수일 chuns@rfa.org

지난 8월초 중국 네이멍구 자치주에서 탈북자들을 안전지역으로 안내하다 붙잡혀 수감생활했던 유상준씨가 16일 귀국했습니다. 그는 조선족의 밀고로 체포됐으며 동행하던 탈북자들은 모두 북송됐다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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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8월초 중국 네이멍구 자치주에서 탈북자들을 안전지역으로 안내하다 붙잡혀 수감생활했던 유상준씨 - RFA PHOTO/전수일

체중이 7키로그램 정도 빠졌다는 유상준씨는 비록 말랐지만 건강한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인터뷰 하는 동안 마른기침을 자주 했습니다. 탈북자 3명과 동행하다 공안에 체포될 당시의 상황을 물어봤습니다.

유상준: 뒤돌아 보니까 어떤 사람들이 우리 탈북자 여자 남자를 잡았습니다. 아 이것 잘못됐다고 생각해 다시 돌아서는데 누군가 나를 꽉 붙잡고 ‘네가 북한을 나와 한국에 간 탈북자이고 탈북자들을 몽골로 보내려고 여기 왔지않냐’고 말합니다. 기자: [그 내용을 다 알고 있었어요?] 예. 기자: [그럼 미리 정보를 다 갖고 있었단 얘기네요?] 그래서 제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냐? ’쯔무쯔도(중국어)라고 하니 -중국말을 간단한 것은 압니다- ‘조선족이 고발했다’ 하더군요. 내몽고 자치구 얼련허토 변방공안지대 장교 7명이 사복입고 나와서 미리 차까지 대기시켜놓고 그래서 저희가 잡히게 됐습니다. 기자: [그때 같이 동행하던 탈북자는 몇분이셨나요?] 세분이었습니다. 기자: [그럼 동행했던 탈북자 세분은 어떻게 됐어요? 행방을 아시는지?] 그분들이 9월말에 북한으로 북송된 걸 알고 있습니다. 기자: [누구한테 들으셨어요?] 제가 간수소(수감소)에서 생활하는 과정에 쓰리트리(빗대어) 간수에게 한번 물어봤습니다. ‘음식 같고온 것은 ’베이초선‘ (북조선) 사람들에게 갖다줘라 하니, ’타물쫄라‘ 즉 ’그들은 갔다, 북한에 갔다,‘ 이렇게 얘기하는 겁니다. 그래서 9월 27일에 -저와 동행한 탈북자 전원 북송된 것을 알게 됐고, 이번 12월 15일 석방될때 저를 호송한 군인들에게 물어봤습니다. 저를 동행한 탈북자 어떻게 됐냐고 하니까 전원 단동으로 북송됐다고 얘기했습니다.

그는 살인 폭력 대형절도범 등, 강력범죄자 12명 정도와 함께 수감생활을 했다고 합니다. 강력범들과 한 감방에 있으면서 문제가 없었는지 궁금했습니다.

유상준: 제가 잘 사는 나라, 한국, 부유국가에서 온데서 조금은 질투하는 것도 있고, 9월말 이후에 한국 영사관에서 저에게 의복을 갖다줘서 의복을 받으니까 새거지요, 또 한국산이니까 그들이 ‘팅평와’라고 우리말로는 ‘아름답다’ ‘아주 좋다‘고 욕심내면서 상대적인 빈곤감으로 질투내는 것, 또 언어적 문화적 소통이 되지 않으니까 이질감 같은 것이 많이 작용하지요.

중국에서도 가장 열악하다는 내몽고의 ‘시린호토’ 간수소 수감생활중 폭력이나 폭언같은 것은 없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배고픔이 가장 어려운 것 중의 하나였다고 합니다. 하루에 세 끼 주는데 아침에는 한 컵도 안되는 죽, 그리고 점심과 저녁은 중국빵 하나씩만 주었다고 합니다.

유상준: 제가 운이 나빠 그곳에 들어갔는지는 모르겠지만 어쨌든 그들이 배고프니까 늘 하는 소리는 먹는 소리고, 한 보름 이후부터는 엄청 배고픈 겁니다. 그다음 40일 정도 지나면 배고픔이 숙련되어 가지고 견딜 만 했습니다.

유준상씨는 11월 26일, 그러니까 수감된지 3개월이 지나서 재판을 받았다고 합니다. 재판과정에서 특별히 언급된 것은 없었고 기소문 내용을 확인만 하는 정도였다고 합니다.

유상준: 기소내용은 제가 중국에 불법체류한 탈북자들을 3국으로 밀반입, 탈출을 조직한 죄로 되어 있습니다. 중국에서는 조직죄가 가장 엄하다고 합니다. 기자: [그래서 얼마 정도나 징역형을 받을 걸로 생각하셨습니까?] 제가 말한 그대로 하면 7년 이상일 겁니다. 저도 솔직히 제가 이렇게 살아 돌아오리라 생각은 하지 못했습니다.

그런 생각을 하게 된 것은 탈북자들과 자신을 한국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재판부에 청원했지만 재판부가 단호히 거부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유상준: 제가 그들을 한국으로 보내달라 했더니, ‘안된다’고합니다. ‘안되면 나도 그들과 같이 가겠다. 그 사람들 죽고, 뭐 나도 이제 이렇게 됐으니까, 살고 싶지도 않고 또 살아야 될 이유도 없고.’ 그렇지 않습니까? 그래서 ‘같이 가겠다.’했더니 그것도 ‘안된다’고 합디다.

유상준씨는 1990년대 후반 북한의 식량난때 부인과 차남을 잃고 1998년 장남 철민군과 탈북해 2천년 먼저 남한에 입국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12살의 장남 철민군은 2천1년 별도로 한국에 들어오려다 몽골 사막에서 탈진 사망했습니다. 모든 가족을 잃은 유씨는 2천3년부터 중국을 드나들며 탈북자 돕는 일에 헌신하며 70명 가까운 사람들을 한국에 입국시키고 200명이 넘는 탈북 난민들에게는 피난처에 피신시키거나 먹을 것과 입을 것을 주었습니다. 최근 중국 내 탈북자들의 상황이 어떤지 물어봤습니다.

유상준: 우리 탈북자들은 정말 현대판 노예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인간이 아니고 현대판 노예일 뿐이지요. 단, 그들이 노동능력을 갖고 있기 때문에 그 노동능력을 이용하기 위해서 그들이 언어가 통하고 일정 지능능력이 있으니까 노동수단으로 쓸 뿐이지 누가 그들을 인간으로 대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기자: [그만큼 탈북자들의 상황은 어렵다는 말씀이시네요?] 그렇지요. 지금도 저 어느 모 산에 가면 열댓명의 탈북자가 집단으로 생활하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들도 가보면 -저의 집에 사진자료가 있습니다만- 비상땅굴을 파놓고 있습니다. 전시 전투원들도 아마 그런 비상 땅꿀을 파고 살지는 않을 것입니다. 기자: [만의 하나, 공안이 오면 피신할 장소로 마련해 놓고 있다는 거죠]. 네.

유상준 씨는 이제 자신은 중국에서 탈북자들을 도울 수 없는 처지가 됐지만 중국내 탈북자들이 결코 희망을 잃지 않고 어려움을 견뎌내면 자신처럼 결국 자유의 땅을 밟는 꿈을 이루게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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