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한국에서는 건설현장에서 힘 쓰는 일용직을 구하거나 식당, 개인집 가사 일 등을 구할 때 주로 동네마다 있는 인력사무소를 찾는데요. 북한에서는 장마당 앞에서 비슷한 상황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손 기자, 급하게 일을 구하려면 장마당 앞에 그냥 서 있으면 되는 겁니까?
장마당 앞 담배 피우는 사람들의 정체
손혜민 기자: 네, 그렇습니다. 북한에선 공식적으로 종합시장으로 불리고 있는데요. 전국 지역마다 자리하고 있는 종합시장, 즉 장마당 입지는 역세권이라는 특징이 있습니다. 역전과 멀지 않아 시장과 연결된 각종 물류와 식당 등 상권까지 밀집된 곳이 장마당 일대죠. 이에 따라 자연스레 장마당 인근에는 인력을 팔고 사는 노동시장(인력시장)까지 형성된 겁니다. 서너 명이 서서 담배를 피우거나 앉아 있으면 할 일이 없는 사람들이 아니라 인력을 팔려 나온 사람들입니다.
물론 북한에서의 인력 시장은 원칙상 불법입니다. ‘사회주의 사회에서 노동은 공동의 목적과 이익을 위한 근로자들의 집단적인 노동’(노동법 2조)이며 ‘공장 기업소의 생산 노력은 국가의 승인 없이 다른 일에 동원할 수 없다’(노동법 34조)는 게 사회주의 노동법 조항으로 규정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1990년대 경제난 이후 공장 자재와 노동자 식량을 공급하던 제도가 무너지며 등장한 인력 시장은 국가의 기능을 보완하는 역할을 수행하고 있어 준 합법적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진행자: 그럼 인력시장에 나온 사람들을 단속할 일은 없다는 거네요?
손혜민 기자: 그렇습니다. 예를 들어 2002년 발표된 7.1경제관리개선조치 이후 국영 공장기업소마다 8.3노동자와 8.3작업반이 공식적으로 조직된 것을 꼽을 수 있습니다. 주민들의 식수나 목욕탕 영업에 필수인 수자원이 시장 수요로 부각되자 펌프 설치 공급자로 활약하고 있는 8.3노동자들의 경제활동이 대표적입니다. 또 각 지역마다 종합시장을 증축하는 공사가 진행되면, 여기에 필요한 인력은 일감이 없는 공장 노동자들이 파견되는데, 이 경우 역시 준 합법적인 노동시장의 전형입니다.
장마당 인근에서 노동력을 팔려고 서 있는 사람들은 보통 남성들인데요. 이들 속에 장사 수익의 일부를 공장에 바치고 장사 활동을 허가 받은 8.3노동자가 아니라면, 이들을 고용한 업주는 불법 행위에 해당합니다. 하지만 통제에서 벗어나는 대안은 마련합니다. 주로 개인의 소토지 농사나 살립집 보수 등에 고용되는 노동자들은 병원에 뇌물 주고 환자로 진단 받은 공식 확인서를 공장에 제출합니다. 바닷가 지역에는 출항 및 귀항하는 선박마다 물품을 상선하거나 하선하는 인력이 필요한데요. 여기에는 인력 모집 주체가 누구냐에 따라 합법 및 불법 인력으로 분류됩니다.
2000년대 이후 커진 여성들의 인력시장
진행자: 장마당에 일 구하러 나온 사람들은 다 남성이라는 건데, 그러면 여성들의 인력시장은 어디에 있습니까?
손혜민 기자: 2000년대 중반만 해도 인력시장에는 남성 인력이 큰 비중을 차지했죠. 하지만 2000년대 후반부터 여성 인력 수요가 급증했는데요. 대표적으로 외화벌이 상품으로 부각된 눈썹 가공과 가발 가공, 수예 등에 젊은 여성이 필요했기 때문이죠. 이 경우 인력 모집은 남성과는 조금 다른 양상을 보입니다. 중국 대방으로부터 가발과 눈썹 자재를 공급받아 가공 수주를 받은 북한의 무역회사 대표가 다시 개인에게 위탁 가공을 의뢰하는 겁니다.

가공 수주 위탁에는 지역 단위로 그 동네에서 살고 있는 주민이 선택됩니다. 그 주민은 남성일 수도 있고 여성일 수도 있습니다. 무역대표가 동네 단위로 그 지역에 거주한 주민을 고용하는 이유는 중국에서 들어오는 눈썹 자재를 공급하면, 가공된 눈썹을 납품 기일에 신속하게 조달하거나 품질 감독이 수시로 이루어지는데, 효과적인 적임자가 필요하기 때문이죠. 눈썹이나 가발 가공 등에는 10대 여학생까지 고용됩니다.
인력 고용 방식을 덧붙여 말씀드린다면, 2000년대 만해도 남성 인력은 장마당을 비롯한 인지도가 높은 역세권 일대로 모집자가 이동해 필요한 인력만큼 데리고 갔습니다. 여성 인력은 살림집마다 모집자가 찾아가는 방식이었고요. 하지만 2010년대 손전화 사용이 일반화되면서 달라졌습니다. 손전화가 있다면, 한밤중 집에서 잠을 자다가도 모집자로부터 연락을 받고 현지로 이동해 일한 시간만큼 돈을 받는 겁니다. 손전화가 없는 사람은 노동시장 참여가 원천적으로 줄어든다는 의미인데요. 지금도 장마당 인근에서 인력을 팔려고 서 있는 사람들은 손전화를 살 수 없는 영세민이라는 특징을 보입니다.
관련 기사
[장마당 돋보기] 엄마의 ‘전화돈’ 없으면 굶는 군인들?
[장마당 돋보기] 5.1절 잔치 음식, 돼지에서 개로 바뀐 사연
진행자: 손전화가 없으면 인력시장 순위에서도 밀려나는 군요. 그런데 요즘처럼 농촌 동원 기간에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국가적으로 시키는 일을 해야 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인력시장에 어떻게 나올 수 있는 건가요?
농촌 동원 기간에 몰래 인력시장 찾는 농민들
손혜민 기자: 국가 정책으로 전국에서 동원되는 모내기 전투에는 공장 노동자와 사무원, 가정주부들까지 참여해야 합니다. 농촌지원 시기에는 장마당 개장이 제한되는 배경도 이 때문인데요. 따라서 이 시기에는 인력시장이 위축되지만, 실상은 그렇지도 않습니다. 주택건설이 가장 많은 시기가 봄철이거든요. 특히 이 시기는 보릿고개와 맞물립니다. 북한의 도시보다 상대적으로 장마당이 발달하지 못한 농촌에서의 절량세대(식량이 떨어진 세대)가 더 많은데요.
이에 따라 봄철이면 농촌 인력이 자발적으로 도시로 이동해 품팔이에 나서는 현상이 나타납니다. 자식들이 눈 앞에서 굶고 있는데, 부모라면 국영 농장 농사보다 식량 벌이에 나서야 하는 거죠. 이로써 북한의 인력시장에서 임금 기준이 달라지게 됩니다. 본토박이 인력에게 지불되던 임금의 절반 정도를 타지 인력인 농민에게 지불하는 거죠. 그럼에도 농민들은 인력시장에서 가족의 식량을 살 수 있는 임금을 받기 때문에 불평이 크게 없습니다.
농촌에 자리한 사법당국이 도시로 이동해 부동산 건설장을 수시로 검열하며, 건설 인력 중에 농민들을 선별해 농촌으로 돌려보내며 농민 일공을 단속하는 사례가 많은데요. 하지만 농민들은 알곡 분배도 받지 못하고 국영농장에만 묶여 있느니 어떻게 해서라도 일자리를 찾으려고 애를 씁니다. 이로써 인력을 중개하는 브로커의 역할이 중요해지는데요. 브로커는 인력을 수요하는 업주들과의 인맥을 중시하죠. 업주에게 자신의 연락처를 주고, 언제 인력이 얼마나 필요한지 전화하도록 하고, 어디에 어떤 인력을 보내야 할지 판단하는 겁니다. 요즘은 노동과장이나 인민반장까지 인력 중개에 나서고 있습니다.
인력 중개로 돈 버는 인민반장과 노동과장
진행자: 많은 사람들이 돈 하나 못 받는 국가의 농촌 지원 일을 하느니 어떻게든 빠져 나가서 인력시장에서 일감을 찾으려고 할 거 같은데요. 그런데 인력 중개를 어떻게 인민반장이나 노동과장이 나서게 됐나요?
손혜민 기자: 결론부터 말씀 드린다면, 인력 중개는 수수료가 목적입니다. 원래 북한의 노동력은 각 도 인민위원회 행정 부서인 노동국 산하 시, 군 노동부에서 배치하고 관리하도록 되어 있는데, 인력 중개 수수료가 적지 않으니 공적 기능이 노동시장 확산에 이용되는 것입니다. 노동과 간부가 인력 중개 수수료를 혼자 착복했다면 불법이지만, 공장 지배인에게 승인을 받고 인력 중개 수수료를 공장에 바쳤다면 합법적입니다.
북한의 정책에는 자재가 없어 돌아가지 못하는 공장의 유휴 노력을 비생산 단위로 돌리도록 되어 있는데요. 이로써 공장 노동력을 관리 감독하는 노동과 간부는 개인 부동산 건설에 필요한 인력 숫자만큼 공장 노동자들을 돌리는 겁니다. 공장 노동자들도 환영합니다. 하루 세끼 밥은 먹을 수 있으니까요. 공장 노동과에서 중개하는 인력은 대부분 남성들이고, 주민 행정 말단 기구인 인민반장이 중개하는 인력은 가정주부 여성이라는 구조적 특징을 보이고 있습니다. 이 분야 북한의 시장화가 어디까지 진전할지, 앞으로 더 지켜봐야 할 대목이 아닐까 싶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