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기는 서울] 이제는 도움을 주는 탈북민으로… ‘새삶인’ 김소영 씨

청취자 여러분 안녕하세요. [여기는 서울] 이승재입니다.

탈북민들에게 왜 목숨을 걸고 고향을 떠나왔냐고 물으면 “먹을 것이 부족해서”라는 말보다 “자유를 찾아서”라고 답하는 사람이 더 많다고 합니다. 지금보다 더 나은 삶을 바라는 마음이 커진다고 하는데요. 이때 비로소 탈북민들은 꿈이나 인생의 사명에 대해서 한번 더 고민하게 된다고 말합니다.

(김소영, 지난 방송) “저는 2010년에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정착했습니다. 요리학원을 운영하고 있고요. 11년째 운영하고 있습니다. 북한 요리를 배워주는 학원이 아니고 대한민국에서 요리할 수 있는 자격증 즉 한식, 중식, 일식, 양식, 복어 이렇게 5가지 조리기능사 자격증을 취득하도록 가르쳐주는 학원입니다. 이렇게 보낸 11년 동안 3천여 명의 제자를 두었다는 게 너무 뿌듯합니다. 그리고 제게 배운 분들이 요리자격증을 취득해서 열심히 일하면서 어디서 조리장도 하고 요리 실장도 하는 모습을 볼 때 정말 기쁩니다”

최근 국립통일교육원에서 열린 ‘통일교육주간’ 행사 현장에서 북한 음식을 만들어 나눠주던 탈북민 김소영 씨를 전화로 따로 만나봤는데요.

기자: 원장님, 많은 분들이 원장님은 한국에서 성공했다고 생각할 겁니다. 11년간 제자 3천 명을 배출한 요리학원 원장님도 되셨고 또 충청북도에서 탈북민 단체를 이끄신다는 얘길 들었어요. 이름이 ‘충북새삶인협회’라고 하던데요. 보통 ‘탈북민’, ‘북한이탈주민’ 이런 용어는 써도 ‘새삶인’이란 단어는 생소합니다. 일부러 만드신 것 같네요.

김소영: 네. 그럼요. 우린 독재정권에서 억압받고 착취당하고 노동의 대가도 안 주는 사회에서 고통당했잖아요? 저도 그렇게 열심히 일했는데 월급이란 걸 받아본 적이 없어요. 그렇게 인권도 누리지 못하는 북한에서 살다가 자유대한민국에 왔습니다. 탈북민들이 다 그렇죠. 그러니, 문화와 제도가 다른 나라에 왔으니 ‘이젠 새로운 마음으로 새 삶을 살자’라는 의미에서 ‘새삶인’이라고 이름 짓고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저희 충북새삶인협회는 순수 탈북민들로 조직됐는데요. 충청북도에 사는 1320여 명의 탈북민으로 모인 비영리단체입니다. 제가 대표고, 단체도 만들고, 이렇게 시작을 했습니다.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탈북민 겨울나기 김장나눔’ 행사에 참가한 자원 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김치를 담그고 있다.
‘중소기업과 함께하는 탈북민 겨울나기 김장나눔’ 행사에 참가한 자원 봉사자들이 정성스럽게 김치를 담그고 있다. (RFA)

탈북민 회원만 1000명이 넘는다니 굉장히 큰 규모인데요. 충북새삶인협회에선 어떤 일을 하고 있을까요?

김소영: 한국의 헌법엔 북한 국민들도 대한민국 국민이라고 나와있습니다. 그래도 우린 한국 출신들과 좀 다른 혜택을 받아요. 우리가 탈북해서 대한민국에 왔을 때 대한민국 정부와 국민들이 우릴 받아 주셨고 또 초기 정착을 잘 하라고 국민들이 낸 세금 가운데서 정착 자금도 주셨어요. 이젠 우리가 어느 정도 정착해서 잘 살기 때문에 우리도 지역사회에 무언가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고자 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한 달에 2번 정도 요양원에 봉사도 가고요. 장애인 시설도 방문합니다. 겨울이 되면 혼자 사시는 어르신들을 찾아가 연탄 나누기 봉사도 하고요. 얼마 전 한국에 산불이 났을 때는 거기 찾아가서, 조금씩 성의를 모아 위로금도 전달했습니다. 이렇게 지역사회에 어려운 곳이 있다면 열심히 달려가서 봉사활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국 사회의 일원으로서 지역 주민들을 돕는 일에 앞장서고 있는 ‘새삶인들’은 정신적으로, 육체적으로 힘든 탈북민 돕기에도 적극 나서고 있다고 하는데요.

김소영: 지금 우리 단체 내에도 중국에서 원치 않는 결혼을 하고 숨어 살던 분들 또 중국에서 잡혀 북송되어 감옥에 몇 번이나 갔다 오신 분들이 있는데요. 그 분들은 건강을 다 헤쳐서 여기 한국에서 일을 할 수가 없어요. 그리고 북한에 두고 온 자식들 생각에 잠 못 이루는 분들도 많아요. 그분들을 위로하기 위해 가정 방문도 하고 함께 힐링하는 프로그램도 만들어서 활동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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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평양가방공장’ 작업실
평양의 ‘평양가방공장’ 작업실 평양의 ‘평양가방공장’ 작업실 (AP)

자유를 위해 찾아온 한국

기자: 원장님 같은 분들이 계셔서 아직 한국사회에 깊이 정착하지 못한 탈북민들의 마음도 든든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원장님의 옛날 얘기가 궁금하네요. 어떻게 한국에 오게 되셨어요?

김소영: 제가 지난주에도, 그제도 어느 중학교에 가서 강의를 했어요. 다음주에도 화, 수, 목 3일이나 중학교에 가야 하는데 학생들은 그때마다 늘 제게 물어요. “선생님은 왜 오셨어요?” 저는 바로 답할 수 있습니다. 자유를 찾아 왔습니다. 최소한의 인권을 찾아 왔어요. 그런 것도 없는 북한에서 살 수 없었고요. 저의 아들, 딸이 다 왔는데요. 자식들에겐 정말 그런 것들을 물려주고 싶지 않았어요. 내 자식들이 꿈도 좀 펼치며 살게 하고 싶어서 정말 위험을 무릅쓰고 왔습니다.

기자: 원장님은 지금 60대의 나이에도 너무나 힘차고 당당해 보이세요. 앞으로 하고 싶은 일도 많은 실 것 같은데요. 혹시 꿈이 있으신지요?

김소영: 저의 꿈은요. 네. 북한에서는 먹고 사는 걱정이 많았는데 지금 현재는 먹고 사는 걱정이 하나도 없어서 다행입니다. 그래서 앞으로 통일운동을 많이 하고 싶어요. 통일을 위해서 제가 조금이나마 할 수 있는 게 무엇인지 늘 고민할 거고요. 한국에서 하는 통일관련 행사에선 제가 어디든 직접 열심히 뛰어가서 요리할 생각입니다. 그렇게 활동하고 싶어요. 또 아까 말씀드렸던 것처럼 우릴 따뜻하게 받아주시고 맞아 주신 대한민국 국민들에게, 도움을 받던 탈북민이 아니라 도움을 줄 수 있는 탈북민으로 살기 위해 노력하고 싶습니다.

한국 사회에 도움을 주는 탈북민 김소영 씨와 그와 함께하는 1320명의 새삶인들에게 응원의 박수를 보냅니다. 지금까지 [여기는 서울]이었습니다.

에디터 이예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