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행자 : 최근 북한 당국이 주민들의 세부담을 없애고 ‘자발적 기금’ 명목의 현금을 징수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번 조치로 북한 주민들의 큰 고충이었던 세부담이 사라질까요? 취재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 알아봅니다. 김지은 기자 나와있습니다.
김지은 기자 : 결론적으로는 사라질 것 같지 않습니다.
북한에서 말하는 ‘세부담’은 국가가 주민이나 단체에 의무로 부과하는 각종 현금, 현물, 노동력 제공 등을 의미하는 것으로 세금이 없다고 주장하는 북한에서 인민들에게 걷는 실질적인 ‘세금’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이런 발표도 처음은 아닙니다. 북한 당국은 과거에도 수차례, 주민들에게 ‘원수님의 지시’라며 세부담을 없앤다고 밝혔지만 세부담은 점점 늘었습니다. 북한에선 어떤 간부도 당의 명령 없이 자신의 독자적인 충성심을 내세워 주민들로부터 현금을 거둘 순 없는 체제이지 않습니까? 목이 달아날 일이죠. 결과적으로 생계가 어려운데 각종 명목의 지원금을 거두는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을 잠재워 보기 위한 일종의 꼼수였던 겁니다.
공화국 창건 이후 처음 일어난 일?
진행자 : 그렇다면 이번 지시는 좀 다릅니까?
김지은 기자 : 과거에는 ‘걷지 않겠다’는 말만 있었다면 이번에는 걷기는 걷되 ‘자발적으로 걷겠다’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함경북도 소식통은 “이달 중순 도 내의 각 인민반에 세부담을 없애라는 당의 지시가 하달돼 공화국 창설 이래 처음으로 거둬들인 사회지원금을 다시 나눠주는 소동을 벌였다”고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따라서 “각 종 건설 자금으로 매달 빠짐없이 거둬들이던 지원금이 사라지게 됐지만 대신 이제부터 기부금을 전체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생활화, 제도화한다는 방침이 하달됐다”고 전했습니다.
진행자 : 그렇다면 지원금이 완전히 사라지는 건 아니지 않습니까?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공식으로 세부담을 없애겠다고 했으나 아무도 환영하지 않는 분위기라고 합니다. 형식만 바뀌었을 뿐, 실제로 ‘기부’라는 다른 방식으로 돈을 바치는 것과 같기 때문입니다.
이는 예전의 지원금보다 더 확실하게 거둬들이겠다는 의미로도 해석됩니다. 지원금은 조금씩 여러 번 바치지만 기부는 각자가 얼마를 바치겠다는 명세를 만들어 놓고 이에 따라 바쳐야 하기 때문입니다. 또 항상 충성심을 평가받는 북한 사회에서 기부금 액수에 대한 주민들의 압박도 상당할 겁니다.
지금 북한 주민들은 차라리 세금을 내는 것이 나을 것 같다는 말을 합니다. 표면상 북한은 ‘세금 없는 국가’를 선언했지만 실제, 강제로 거두는 돈과 물품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습니다. 공장, 농장, 학교, 인민반에서 끊임없이 거둬들이고 있습니다. 이런 현상에 대해 주민들은 실제 세금을 내는 것보다 더 빼앗긴다고 생각하는 거죠. 세금 제도가 있다면 버는 만큼, 쓰는 만큼만 내면 되는데 지금은 국가로부터 근거도 없이 또 세금을 낼 때 받는 혜택도 전혀 없이 강탈만 당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세금을 내는 국가들은 세금 납부의 의무가 있지만 대신 세금을 내기 때문에 국가로부터 받는 것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금 북한 주민들은 국가로부터 전기와 물, 노동의 대가 등 뭐 하나도 제대로 받지 못하면서 오직 충성심을 발휘하라는 조건으로 지원금을 거두고 있으니 어떤 말로 포장해도 분통이 터지는 일이 아니겠습니까.
돈주들 기부금액 밝혀 은근히 주민 압박
진행자 : ‘자발적 참여’, ‘자발적 기부’… 이 말이 참 애매합니다. 어떻게 집행하겠다는 겁니까?
김지은 기자 : 말 그대로 ‘자발적’으로 바치는 것을 원칙으로 합니다만 기부 금액에 대해서는 조직적으로 총화하는 방식으로 발표한다고 합니다.
예를 들면 어디의 누구는 이번에 원산-갈마 해안관광지 건설자금으로 얼마를 기부했다, 또 누구는 당의 평양수도건설 방침에 적극 동참하기 위해 얼마를 바쳤다고 하면서 모든 주민의 참여를 독려한다는 것입니다. 기부한 사람들은 대부분 돈 많은 장사꾼이거나 권력을 가진, 생활이 풍족한 사람들이기 때문에 기부 액수가 상당하고 그걸 듣는 사람들은 심리적 압박이 적지 않을 겁니다.
또 기부 실태에 대해 소속 기관이나 해당 공장, 농장, 단체의 내부 조직에서 매달 발표하기 때문에 기부한 사람들은 조직에서 모범 성원으로 평가되는 반면 기부를 못한 사람은 사상적으로 나쁘게 평가 받기에 할 수 없이 ‘기부금’을 내야 하는 처지가 되는 겁니다. 결국 ‘자발적 기부’라는 명분을 내세웠지만 강제로 지원금을 거두는 제도라고 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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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 경제 상황이 좋지 않은 데 세부담만 가중돼, 주민들의 불만이 상당했죠. 북한 당국이 이번 정책을 내세운 배경, 어느 정도 북한 주민들의 이런 불만을 의식한 것으로 볼 수 있을까요?
김지은 기자 : 그렇습니다. 북한에는 여맹, 즉 여성동맹이 아니면 국가의 모든 일을 할 수 없다는 말이 있습니다. 여맹에서 지원금도 내고 또 가족성원들도 여성들에 의해 학교에도 돈을 바치고, 직장에도 바치는 형태이기 때문에 여맹을 노동당의 2중대라고도 부릅니다. 하지만 지나친 세부담에 가정에서 여성들이 지쳐가고 그것이 사회 전반으로 확산되는 분위기입니다.
학생들은 학교에서 바치라는 각종 지원금과 지원 물품을 바치지 않으면 담임 선생으로부터, 학급 동기들로부터 집단 비판을 받게 되는데 이는 결국 당국에 대한 원망과 불만의 씨앗으로 싹트게 됩니다. 공장 노동자, 농장 농민들도 마찬가지 입니다. 명색이 당의 정책이라고 하지만 당에서는 지시만 하고 무조건 내리먹이는 식이고 주민들에게 차례 지는 혜택은 없고 자꾸만 내라는 지시만 강요하니 누군들 불만이 없겠습니까. 당장 하루를 먹고 살기 어려운 주민들은 더 바칠 돈과 지원 물품이 없으니 잡아가겠으면 잡아가라는 식으로 나옵니다.
악에 받친 한 사람이 당에서 세부담을 없애라고 하면서 왜 자꾸만 내라는 요구만 하느냐고 공개적으로 불평을 해도, 맞는 말이니 간부들도 제지하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런 여론이 확산되면서 당에서 대책을 내놓은 것이 바로 이 ‘기부 제도’라고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세부담을 기부 제도로 통합하여 포장한 것을 두고 ‘아닌 보살’이라는 말 외에 다른 표현을 할 수가 없네요.

북한 당국, 세부담에 대한 ‘주민 불만’ 무시할 수 없었을 것
진행자 : 남한식으로는 ‘눈 가리고 아웅한다’, 이렇게 표현할 수 있겠습니다.
실제적으로 이 조치가 세부담을 줄이는 결과로 이어질 것이라고 기대하는 주민은 많지 않겠지만 그래도 현물 과제나 노동 동원 등에 변화를 기대해도 될까요?
김지은 기자 : 큰 변화는 없을 것으로 보입니다. 다만 이번 조치는 당국에 대한 주민들의 불만과 비난 여론이 상당했던 것의 결과이며 당국이 주민 여론을 의식한다는 걸 보여준다는 점에서 주목됩니다.
또 강제적인 방법으로 원망과 불만이 사던 세부담을 기부문화로 바꿈으로써 당에서 강제하지 않는다는 것을 주민들에게 알리고 싶은 면도 있었던 것 같습니다.
‘기부’는 정부의 주도가 아닌 온전히 개인들의 자유 의지로 진행될 때 ‘기부’라는 이름을 붙일 수 있습니다. 조직적으로 기부명단을 작성하며 주민들의 정치 사상성을 평가하고 조직생활, 사회생활로 연결시키는 가짜 기부 정책으로는 주민들의 마음을 돌릴 수 없을 겁니다.
언제면 북한에도 당국이 강요하기 않는,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기부하는 온전한 기부 문화가 가능하게 될까요. 그날을 간절히 바라며 오늘 인사드리겠습니다.
진행자 : [지금 북한은]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집니다.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지금까지 함께해 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