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예진입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지정한 15개 필수 소비품의 가격이 치솟아도 당국은 별다른 조치를 취하지 않고 있다고 합니다. 자세한 소식 문성휘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녕하세요?
문성휘 기자: 안녕하세요?
국가가 지정한 필수 소비품 가격 천정부지
진행자: 문 기자, 지정된 필수 소비품의 가격과 현재 가격에 얼마나 차이가 납니까?
문성휘 기자: 네, 현재 북한의 물가는 끊임없이 요동치며 오르내리고 있습니다. 그 중 북한 당국이 지정한 ‘15가지 필수 소비품’ 가격은 적게는 2배, 많게는 4배 이상으로 올랐습니다. 북한 당국이 이렇게 15가지 필수 소비품의 가격까지 지정하게 된 배경에는 지난해 1월에 실시한 파격적인 월급 인상 조치가 있습니다. 북한 당국은 지난해 1월, 근로자, 공무원들의 월급을 기존의 2천5백원에서 단번에 3만원으로 급격히 인상하는 조치를 단행했는데요. 아무런 사전 준비도 없이 갑자기 이렇게 월급을 올리다 보니 물가가 극심하게 요동쳤습니다.
월급이 오른 만큼 물가도 급격하게 오르기 시작했는데요. 급해 맞은 북한 당국은 월급 인상조치가 있은 지 석 달만인 지난해 4월, 주민들의 일상생활에 반드시 필요한 기초적인 소비품 15가지를 아주 싸게 가격을 정해 놓았습니다. 당시 북한이 지정한 필수 소비품 15가지는 다음과 같습니다. 간장, 된장, 소금, 계란, 두부, 치약, 칫솔, 세숫비누, 빨래비누, 입쌀, 통강냉이, 밀보리, 운동화, 여성 신발인 편리화, 작업 신발인 지하족, 이렇게 15가지입니다. 북한 당국이 정한 필수 소비품을 놓고도 현지에서 물가가 얼마나 극적으로 오르내렸는지 짐작할 수 있는데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북한 당국은 필수 소비품 15가지의 가격 마저도 지켜내지 못했습니다. 15가지필수 소비품의 가격도 다른 상품들과 꼭 같이 오르내리고 있다는 건데요. 여기다 치약, 칫솔, 세숫비누와 같은 필수 소비품들은 모두 중국산으로 알려졌습니다. 지금은 중국산 필수 소비품들이 북한의 장마당을 완전히 장악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합니다.
북한 필수 소비품은 대부분 중국산
진행자: 필수 소비품 가운데 쌀이 있네요. 쌀 가격도 많이 오르지 않았습니까?
문성휘 기자: 필수 소비품 중에서 그나마 제일 가격이 오르지 않은 것이 쌀입니다. 북한 당국이 정한 쌀 1kg의 가격은 5,400원인데 장마당에서 한때 1kg에 9천7백원까지 올랐으나 지금은 8천7백원 선에서 안정을 찾아가고 있다고 합니다. 제일 가격이 많이 오른 것은 치약, 칫솔인데 북한 당국은 치약 하나에 600원, 칫솔 한 개 400원으로 가격을 정했다고 합니다. 그런데 지금 장마당에서 치약은 하나에 2천5백원, 칫솔은 2천원이라고 하고요. 그마저도 국산은 하나도 없고 전부 중국산이라고 합니다.
중국산 필수 소비품은 지난해 9월부터 장마당에 들어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북한의 무역기관들이 중국에서 수입해 들인 것들이라고 합니다. 이때부터 중국산 필수 소비품이 들어오기 시작해 지금은 장마당을 완전히 장악했다는 것이 현지 소식통들의 얘기였습니다.

진행자: 필수 소비품이라는 게 거의 생활에 꼭 필요한 물품들인데, 이마저도 북한 내에서 생산이 잘 안 되고 있는 겁니까?
문성휘 기자: 네, 물론 생산이 잘 안 되고 있는 것도 있지만, 이렇게 15가지 필수 소비품의 가격을 꼭 집어서 지정한 대목을 놓고 북한 당국이 얼마나 다급했는지를 잘 엿볼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아무런 준비도 없이 월급을 덜컥 올려버렸으니 그에 따른 물가 상승을 걷잡을 수 없었다는 거죠. 그러니까 가장 기초적인, 최소한의 필수 소비품만이라도 가격을 더 이상 올리지 못하도록 정해서 주민들의 불만을 달래 보려는 북한 당국의 다급한 의도를 엿볼 수 있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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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제는 이렇게 주민들의 생활 안정을 위해 필수 소비품의 가격을 지정한 행위가 오히려 극심한 필수 소비품의 부족 현상을 부추기고, 주민들의 혼란만 가중시켰다는 비판의 목소리가 쏟아지고 있습니다. 국가가 공장에 원료, 자재를 공급하면서 필수 소비품의 가격을 올리지 말라고 하면 더 할 말이 없겠는데, 지금 북한은 공장, 기업소들에 원료, 자재를 공급하지 못하고 있습니다.
지난해도 그래, 올해도 필수 소비품을 생산하는 공장, 기업소들을 보면 무역기관들과 연계되어 있습니다. 무역기관들이 중국에서 원료, 자재를 들여오면 그와 연계된 공장, 기업소들에서 필수 소비품을 생산하는데요. 단순히 생산을 하는데 그치지 않고 이득을 남기도록 가격을 정해 국가가 운영하는 백화점과 종합상점, 장마당에 넘기고 있습니다.
그런데 국가가 원료, 자재도 공급하지 못하면서 아주 싼 가격으로 필수 소비품 가격을 정해 놓으니 공장, 기업소들은 필수 소비품을 생산하면 할수록 손해를 보게 되는 겁니다. 그러니까 결국엔 필수 소비품을 만들지 않게 되는 거죠.

북한 공장서 만드는 필수 소비품, 장마당에만 있다?
진행자: 아무리 중국에서 수입한다 해도 공장에서 소비품을 안 만들면 가격이 오를 수 밖에 없지 않습니까?
문성휘 기자: 그렇습니다. 공장, 기업소들에서 필수 소비품 생산을 외면하면서 지난해 여름, 주민들은 극심한 필수 소비품 부족 현상을 겪었다고 하고요. 북한에서 골목장이라고 부르는데 일명 암시장이라고 봐도 무방합니다. 이런 암시장에서 지난해 여름, 생필품 가격은 부르는 게 값이었다고 소식통들은 전했습니다. 그동안 북한 당국은 공장, 기업소들에 필수 소비품 생산을 계속 독촉했다고 하는데요. 하지만 공장, 기업소들은 원료, 자재가 없다는 구실로 국가의 독촉을 무시했다고 합니다. 국가가 원료, 자재를 공급하지 못하다 보니 공장, 기업소들에서 필수 소비품을 생산하지 않아도 딱히 처벌할 방법이 없었다고 합니다.
그러는 사이 중국산 필수 소비품들이 장마당을 장악하면서 북한 당국이 떠들던 필수 소비품 가격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다고 하는데요. 북한 당국은 필수 소비품 15가지의 가격을 지정하면서 공장, 기업소, 백화점과 종합상점들이 가격을 준수할 것을 강요했다고 합니다. 그러다 보니 중국산 필수 소비품에 대해서는 언급이 없었고, 장마당에서 개인 장사꾼들이 몰래 파는 필수 소비품은 가격 통제도 먹혀 들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결국 중국산 필수 소비품이 장마당을 장악하고, 개인 장사꾼들이 가격을 마음대로 올리게 되면서 북한 당국이 정한 필수 소비품의 가격은 있으나 마나가 되어버렸다는 것입니다.
지난해 말에 완성된 북한의 지방공업공장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방공업공장들은 전기가 없어 겨울 기간 생산을 못하고 있다가 얼음이 풀려 수력발전소들이 가동을 시작한 올해 3월부터 부분적인 생산을 시작했다고 하는데요. 그러나 지방공업공장들에서 생산된 필수 소비품 역시 백화점이나 종합상점에 가지 않고 전부 장마당에 빼돌려지고 있다고 합니다.
국가가 운영하는 백화점이나 종합상점에 내놓자면 북한 당국이 지정한 가격대로 싸게 팔아야 하기 때문에 원료, 자재 값도 못 건진다는 거죠. 그러니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마당에 빼돌릴 수밖에 없다고 합니다.
지방공업공장이 물건 빼돌려도 당당한 이유
진행자: 북한에서야 흔한 일이라고 하지만 지방공업공장에서 생산한 상품을 그렇게 불법적인 방법으로 장마당에 빼돌리다가 처벌을 받을 일은 없습니까?
문성휘 기자: 북한은 과거부터 국가 자금이나 물자를 몇몇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횡령하였을 경우 매우 혹독하게 처벌을 했습니다. 그러나 설령 불법이 있었다고 해도 개인이나 특정 집단이 횡령을 하지 않았다면 처벌 수위가 매우 낮거나 처벌을 하지 않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그런 사례들이 있으니까 지방공업공장들도 생산한 필수 소비품들을 자체적으로 장마당에 넘기는데 주저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누군가 개인이 횡령을 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번 돈으로 공장 운영에 사용하니 처벌받을 일이 없고, 처벌을 받는 대도 경고 정도의 경미한 처벌을 받게 된다는 거죠. 이렇게 공장, 기업소들은 생산을 안 하거나 생산한 필수 소비품을 장마당에 빼돌리다 보니 주민들의 환심을 사기 위한 북한 당국의 15가지 필수 소비품 가격은 완전히 무력화 되었다는 것이 북한 현지 소식을 전하는 소식통들의 얘기입니다.
진행자: 오늘 준비된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문성휘 기자 감사합니다. <지금 북한은>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