RFA에서 보도된 북한 주요 내부 소식을 보도 기자와 함께 심층 분석해 보는 <지금 북한은>, 이 시간 진행에 이현주입니다.
진행자 : 지난 5월 21일 청진조선소에서는 새로 건조된 5천톤급 구축함을 물에 띄우는 진수 과정에서 배가 넘어져 선체가 파손되는 사고가 발생했습니다. 북한은 다음 날, 노동신문을 통해 사고 내용은 물론 처벌 과정도 빠르게 공개했는데요. 여론은 이 사고를 어떻게 보고 있을까요. 취재 기자와 함께 알아봅니다. 안창규 기자 나와 있습니다.
최초로 공개된 ‘망쳐진 1호 행사’
안창규 기자 : 안녕하세요. 김정은이 참석 하에 진행된 새 구축함 진수식에서 사고가 나 함선이 자빠진 사실을 신문과 방송을 통해 전격 공개한 데 대해 많은 언론과 마찬가지로 북한 주민들도 놀라고 있습니다. 청진시는 물론 북한 전역이 이 소식으로 ‘난리’라는 게 소식통의 전언입니다.
역대적으로 북한 언론에 사고나 범죄 같은 부정적인 소식이 실리지 않습니다. 북한에서는 별치 않은 사소한 것도 다 비밀로 취급하고 있고 특히 지도자가 참가하는 1호 행사와 관련한 것은 더 철저히 봉인되고 통제되는 것이 관례였습니다.
약 한 달 전 남포항에서 진행된 진수식 때와 마찬가지로 사고 당일 청진조선소 부두에서는 성대한 진수식 행사가 열렸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은 최현호 진수식 때처럼 딸을 동행했다고 하는데요. 김 위원장은 딸과 함께 행사장 주석단에 올라 물갈귀(물보라)를 날리며 구축함이 바다에 띄워지는 ‘역사적 순간’을 기대했을 것입니다. 하지만 구축함은 제대로 바다에 띄워지지 못한 채 옆으로 넘어졌습니다.
북한에서 1호 행사는 최고의 수준에서 진행됩니다. 이런 1호 행사가 망쳤다는 사실을 공개한 것 자체가 북한 사상 처음이 아닌가 싶습니다.
또 김정은이 진수 사고를 엄중한 범죄행위로 규정했고 이에 따라 조선소 지배인 홍길호를 비롯한 관련 간부들이 잇달아 구속 체포되었다는 사실이 언론을 통해 공개되면서 이에 대해서도 주민들이 충격을 받고 있습니다.
사소한 부족함이 없이 완전무결해야 할 1호 행사가 눈앞에서 완전히 망쳐졌으니, 체면을 구김과 동시에 실패를 용납하지 못하는 김정은이 격노한 건 어찌 보면 당연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만 그렇다 하더라도 기술적 문제로 발생한 사고를 범죄 행위로 규정하고 엄한 처벌을 예고하면서 앞으로 어떤 일이 펼쳐질지 주민들도 우려하고 있습니다.
‘구축함 사고’ 청진조선소는 어떤 곳?
진행자 : 청진조선소는 어떤 곳입니까? 4월 25일 진수된 최현호는 남포 조선소였는데 크기나 중요도 등으로 두 조선소를 어떤 차이가 있는 궁금합니다.
안창규 기자 : 함경북도 청진시 수남구역에 위치한청진조선소는 일제 강점기 작은 선박 수리소였으나 광복 후 수차 확장을 거쳐 현재 서해의 남포조선소와 함께 북한에서 최고로 손꼽히는 2대 조선소입니다.
1960년대까지는 주로 소형 선박을 건조하다가 1970년대부터 1만 4천 톤급 화물선을 10여 척 건조했고 1990년 이후에는 2만 톤급 화물선과 1만 2천 톤급 여객선 ‘만경봉-92호’도 건조했습니다. 맨 마지막으로 청진조선소가 건조했다고 북한이 공개한 선박은 2002년 5월 진수된 2만톤급 화물선 ‘군자리호’ 입니다. 이 배는 선박탐지기와 위성항법장치 등 최신 항해 장비를 갖춘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남포시 항구 구역에 위치한 남포조선소 역시 일제 강점기 작은 선박수리소였습니다. 이후 수차 확장되었고 현재까지 청진조선소와 마찬가지로 1만 4천 톤급 화물선을 많이 건조했고 2만 톤급 화물선도 몇 척 건조했습니다. 경제난 이후 두 조선소 모두 일반 선박 건조 실적은 거의 없이 가끔 군함을 건조해 왔습니다.
두 조선소는 우선 청진조선소는 동해에, 남포조선소는 서해에 있다는 차이가 있고 청진조선소는 바다와 인접해 위치하고 있다면, 남포조선소는 바다가 아닌 대동강에 위치하고 있습니다.
각 조선소에서 건조한 중소형 선박이 남해를 거쳐 동해나 서해로 가는 것이 쉽지 않은 상황에서 동해가 거점이 될 군함과 어선은 청진조선소에서, 서해를 거점으로 활동할 군함과 어선은 남포조선소에서 건조해 왔습니다.
규모와 생산 능력에서는 남포조선소가 청진조선소보다 조금 앞서 있습니다. 특히 청진조선소는 배를 건식에서 건조할 수 있는 독이 없는 반면 남포조선소는 2개의 독을 보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남포조선소에서 건조된 첫 5천 톤급 구축함은 완성된 배가 독에 물을 채워 바다에 띄우는 진수 방식이다 보니 특별히 장쾌한 모습이 없고 결국 배를 남포항 부두에 가져다 놓고 진수식을 열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독이 없는 청진조선소는 현재까지 거의 모든 선박을 육지에서 건조해 바다에 띄웠습니다.
청진조선소 부두는 바다와 직접 면하고 있는 것이 아니라 좁은 공간을 통과해 육지 쪽으로 들어와 있는 데다 공간이 충분하지 못하고 수심이 깊지 못해 경사진 레일을 통해 배를 옆으로 바다에 띄우는 횡진수, 측면 진수를 해왔습니다.
김정은 원하는 ‘장면’ 공개 못 해 격노했을 듯
횡진수는 함선을 부두에서 측면으로 균일하게 미끄러트려 옆으로 물에 띄우는 방식입니다. 배 전체의 무게를 골고루 지지해야 하는 만큼 상당히 까다로운 방식이지만 횡진수는 배가 물로 미끄러져 들어가며 배 양쪽으로 많은 양의 물이 힘차게 밀려나며 멋진 풍경이 펼쳐집니다. 구축함 진수가 성공했으면 김정은도 물보라가 이는 모습을 볼 수 있었겠지요. 최현함처럼 옆에 있는 청진항이 아니라 조선소에서 진수식이 열린 것도 이 장면을 보여주기 위해서였을 것입니다.
청진조선소 문제는 청진조선소가 큰 선박 건조해 횡진수로 바다에 띄운 지 적어도 20년이 훨씬 넘었다는 점입니다. 과거 조선소에서 횡진수를 해본 경험이 있는 기술자들이 다 은퇴해 세대교체가 된 상황으로 지금 있는 기술 일꾼들이 큰 배의 횡진수를 해본 경험이 없어, 인적 기술력 부족이 진수가 실패한 주요 원인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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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호 행사 중 자빠진 구축함”…북 주민들, 사고 사실 공개에놀라
진행자 : 주민들도 이번 사건에 관심이 크다고 하셨는데, 내부 여론은 어떻습니까?
안창규 기자 : 조선소가 위치한 청진시와 함경북도는 한마디로 초상난 집 분위기입니다. 사실 군함 건조는 함경북도나 청진시는 책임이 없습니다. 북한에서 군수산업은 각 지방 당위원회나 인민위원회가 절대 개입하지 못하며 2경제위원회가 전적으로 담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김정은이 청진에서 진수식 실패를 보고 격노해 돌아간 만큼 청진 지역에 절대 좋은 일이 아닙니다. 특히 사고와 관련해 중앙 조사단이 청진에 내려와 있는 만큼 함경북도와 청진시 간부들 그리고 주민들도 긴장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청진조선소 노동자들 특히 간부들이 서로 눈치를 보며 발언과 행동을 극력 조심하고 있다는 소식도 있습니다. 북한에서는 지도자의 말이면 뭐나 가능하고 코에 걸면 코걸이 귀에 걸면 귀걸이 식으로 처벌 범위에 한계가 없는 만큼 두려움에 떨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넘어진 구축함에 대한 청진 주민들의 관심도 매우 높습니다. 사고 사실이 보도된 후 일부 주민들이 구축함 상태를 보기 위해 어항으로 몰려갔습니다. 하지만 이미 보위부와 안전부가 조선소 부두가 있는 어항 일대를 봉쇄하고 근처에 다가가지 못하게 통제했다고 합니다.
일부 주민들은 기술적 문제로 발생한 사고가 1호 행사를 망친 정치적 사고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낙인한 데 대해 의문을 제기합니다. 적어도 범죄 행위는 아니지 않느냐는 비판입니다.
김정은 위원장이 6월 안으로 원상 복구하라고 호통을 쳤지만 복구가 쉽지 않을 것으로 보는 시각이 우세합니다. 우선 조선소에 5천 톤급의 큰 선박을 들어 올릴 큰 기중기가 없습니다. 기중기 배를 다른 데서 가져올 수는 있지만 조선소 부두로 들어오는 길목이 좁아 기중기 배가 사고 현장까지 들어오는 것도 문제입니다. 또 부두의 수면 면적이 크지 않아 큰 기중기 배 여러 척을 배치하기 어렵지 않겠느냐는 지적도 나옵니다.
타 지역과 달리 청진 주민들이 조선소 노동자들을 통해 구축함 복구 소식을 알 수 있는 만큼 향후 복구 상황에 대한 관심은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보입니다.

잇따른 진수식, 북한 주민 여론은?
진행자 : 내부적으로 4월 25일 진수식이 크게 보도돼 비교도 많이 될 것 같습니다. 김정은 위원장의 딸과 다른 간부의 자녀도 함께 등장했던 최현호 진수식도 내부 여론은 별로 좋지 않았죠?
안창규 기자 : 네, 우선 남포에서 진행된 최현호 진수식에 김정은과 김여정의 자녀를 비롯해 다른 고위 간부 자녀들이 함께 등장한 건 미래 세대를 겨냥한 정치적 의도로 볼 수 있습니다.
북한이 장기간 헤어나지 못하고 있는 어려운 경제 상황에서 방대한 자금이 드는 군력 강화에 몰두하는 것이 권력층을 위한 것이 아니라 국가와 미래 세대의 행복을 위한 것이라는 인식을 주기 위해서일 겁니다.
언급하신 것처럼 주민 여론은 김정은과 같이 나란히 등장해야 할 이설주 대신 어린 딸이 등장하는 데 대해 점점 더 부정적입니다.
어린 딸이 복장이나 머리를 너무 어른스럽게 하고 다니는 것, 분명 학생일 딸이 학교는 안 가고 왜 아버지를 따라다니는가, 할아버지뻘 되는 고위 간부들이 김정은의 딸 앞에 무릎을 꿇고 머리를 조아리며 귓속말하는 모습에 가관이라며 어처구니없어 하는 주민도 있습니다. 때문에 사진, 영상 이외에 다른 수식어를 붙여 기사를 쓰지 않습니다.
진행자 : 한국 통일부에서는 관련 사고에 대한 처벌 대상자의 실명까지 언급하는 것은 이례적이라고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요즘 워낙 위성으로 잘 보이기 때문에 부인할 수도 없었을 것 같습니다. 관련자들 처벌 수위, 앞으로의 파장 어떻게 진단하십니까?
안창규 기자 : 네, 1호 행사를 망친 정치적 사고로, 용납할 수 없는 범죄행위로 낙인된 만큼 이번 사고에 대한 파장이 클 건 뻔합니다. 조선소 간부들과 청진 주민들이 긴장해 하며 향후 상황을 우려하는 것은 절대 지나친 것이 아닙니다.
번쩍번쩍하고 요란한 행사 같은 형식을 좋아하고 즐기는 김정은이 자기가 참가한 행사가 실패한 데 대해 어떻게 책임을 물을지, 그 범위가 어디까지 일지 우려하는 겁니다. 형법은 물론 헌법도 능가하는 김정은의 격노한 기분과 엄한 처벌을 강조한 발언에 더해 연좌제까지 겹쳐 사고 관련자뿐 아니라 그 가족들에 대해서도 엄한 처벌이 이뤄지는 것은 시간 문제로 보고 있습니다.
진행자 : 남측에서 보자면 사고에 가족까지 처벌하겠느냐... 너무 과한 처벌이 아닌가 생각되는데요.
안창규 기자 : 이미 김정은이 “정치적 사고”로 규정하지 않았습니까? “정치적”으로 엮인 만큼 가족까지 처벌될 가능성이 높습니다.
북한에서 김정은의 지시는 그 어떤 이유와 조건에 관계없이, 몸이 쪼개지더라도 무조건 제 기일에 수행해야 하는 것이 원칙입니다. 만약 6월까지 배를 원상 복구하지 못하는 경우 김정은이 지시를 관철하지 못한 죄까지 더해질 수 있습니다.
그런 만큼 복구 과정에 구축함이 뒤틀리거나 구멍이 나는 등 군함 성능에 부정적 영향이 있더라도 이에 상관없이 배를 바로 세우는 데 몰두할 겁니다. 그러고는 배에 아무런 무리가 없이 100% 원상 그대로 복구했다고 김정은에게 보고하겠지요. 뭔가 이상이 있다고 할 수 없는 것이 북한의 실정입니다.
처벌이 두려워 사실을 부풀리거나 과장해 거짓 보고하는 허풍이 지금까지 북한 경제를 망쳐왔는데 국방 부문도 다르지 않습니다. 몇 년 전부터 김정은이 간부들이 허풍 보고를 하지 말 것을 강조하고 있지만, 사실 오래전부터 북한에서 허풍과 엉터리 거짓 보고가 지속돼 왔고 그 책임과 원인은 바로 지도자인 김정은 자신입니다.
진행자 : 오늘은 여기까지 듣겠습니다. 안창규 기자, 수고하셨습니다.
안창규 기자 : 감사합니다.
진행자 : 진행에 이현주였습니다. 함께해주신 청취자 여러분 감사합니다.
에디터 :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