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얼마 전까지만 해도 길 가다 아카시아 꽃 향기를 맡고 가던 길을 멈춘 적이 있는데요. 북한에선 아카시아 꽃이 피면 양봉업자들이 바빠진다고 합니다. 꿀 찾는 사람도 많다는 얘기겠죠. 북한에서 일반 주민들도 꿀을 많이 먹는 편입니까?
꿀은 ‘수령님의 하사품’
손혜민 기자: 한국과 달리 북한에서는 일반 주민들이 꿀을 많이 먹느냐, 적게 먹느냐의 기준이 아니라 맛 볼 수 있냐, 없느냐의 기준으로 봐야 할 것 같습니다. 오죽하면 정말 맛있는 음식을 표현할 때 ‘꿀에 찰떡 찍어 먹는 것’ 같다고 하겠나요. 국가 공급시대에 일반 주민들은 구경도 할 수 없었죠. 태양절(김일성 생일 4.15)이나 광명성절(김정일 생일 2.16)을 맞아 고위 간부들, 1호행사 참가자 등에게는 김일성과 김정일의 명의로 선물 식품이 공급되었는데, 그 안에 꿀이 있었습니다. 결국 북한에서 꿀은 수령이 독점한 하사품이라는 정치성이 부여되어 계급을 상징하는 상품이었죠.
혹간 산골 사람들이 나무하러 갔다가 운이 좋아 산청을 따게 되면, 가족의 보약으로 먹기도 했는데요. 산골이라 해도 이런 경우는 드뭅니다. 1990년대 장마당이 등장해서야 일반 주민들도 꿀을 사서 먹을 수 있었습니다. 평양을 비롯한 제가 살던 평안도 등지에는 꿀 장사꾼들이 어디서 왔는지 많았는데요. 이들은 배낭에 꿀 병을 가득 넣고, 등에 지고 다니며 똑똑이 장사로 꿀을 팔았는데요. ‘똑똑이 장사’란 무작위로 동네를 순회하면서 개인의 살림집 출입문을 ‘똑똑똑’ 두드리며 장사 물건을 판매하는 상행위를 말하는데, 한국에서는 ‘방문 판매’라고 하더라고요.
똑똑이 장사꾼들이 팔던 꿀 한 병 가격은 1990년대에 공장 노동자 2개월 월급과 맞먹었습니다. 일반 주민들이 쉽게 소비할 수 있는 가격이 아니었다는 말입니다. 설날이면 장사로 돈을 번 주민들이 꿀 한 병을 구매해 찰떡에 꿀을 찍어 가족과 먹으며 명절을 보냈는데요. 하지만 산모에게 꿀물이 최고의 영양제로 인식되면서 출산을 앞둔 딸이 있으면 친정 어머니는 한 푼, 두 푼 돈을 모아 가장 먼저 사는 것이 꿀이었습니다. 개인적인 경험을 덧붙인다면, 고등학교 교사였던 남편 덕분에 저도 1990년대 말 아들을 출산하고 학부모들로부터 달걀과 꿀을 고맙게 받았던 추억이 있습니다.

북한의 가짜 꿀 판별법
진행자: 그렇군요. 한국에서도 과거엔 보따리를 들고 꿀 팔러 다니는 아주머니들이 있었는데, 팔던 꿀이 진짜가 아닌 경우가 많아서 주의하라는 뉴스가 나오기도 했거든요. 북한에선 어떤가요?
손혜민 기자: 북한도 같습니다. 2000년대 들어서 꿀 장사가 돈 번다는 소문이 퍼지자 많은 사람들이 꿀 장사에 나섰는데요. 꿀 생산은 전부 남성들이 하지만, 똑똑이 장사로 꿀을 유통해 소매하는 상인은 대부분 여성들이었습니다. 다시 말해 자강도를 비롯한 산을 낀 고장에 양봉을 전문으로 하는 남성들이 있는데, 여기서부터 중국에서 수입된 사탕가루를 물에 넣고 끓여 식힌 후 양봉 꿀에 섞어 똑똑이 장사꾼들에게 넘기는 겁니다. 그러면 똑똑이 장사꾼들은 똑같은 방식으로 사탕가루 물을 병에 넣고 윗부분에만 양봉업자에게 넘겨 받은 꿀을 살짝 얹어 판매한 겁니다.
이런 행위는 콩기름 장사나 연료 장사에도 정말 많았죠. 드럼통으로 콩기름이나 연료를 사고 보니 통 안에 물을 가득 넣고 위에만 콩기름과 휘발유가 있어서 황당했던 기억이 납니다. 한국에서는 가짜 꿀을 주의하라고 뉴스에서 직접 보도해주지만, 북한은 오로지 개인이 판단해야 합니다. 가짜 꿀이 많다는 소문이 나면서 진짜 꿀을 판별하는 대중적 방식은 젓가락을 꿀 병에 넣었다가 꺼내는 것이었죠. 젓가락에서 꿀물이 주르륵 떨어지면 가짜이고, 천천히 한 방울씩 떨어지면 진짜라고 판단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엉터리였던 것 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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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행자: 한국에서도 예전엔 꿀을 물에 넣고 흔들어 벌집 모양이 나타나면 진짜 꿀이라는 말이 있었는데 그것도 과학적인 근거는 부족하다고 하네요. 그럼 꿀 종류는 어떨까요, 한국에는 아카시아꿀부터 야생화꿀, 밤꿀, 유채꿀 등이 많이 팔리는 것 같은데요. 북한에는 한국에 없는 꿀도 있을 거 같은데 어떻습니까?
꿀 양봉, 군부대 근처나 정치범 수용소 인근에서만?
손혜민 기자: 한국처럼 북한에서는 아카시아꿀, 야생화꿀 등 상품명을 정확히 표기하지 않습니다. 양봉하는 사람에게 직접 꿀을 사면 이 꿀은 아카시아꿀, 이 꿀은 밤꿀이라고 알려 줄 뿐 상표가 없어 통상적으로 양봉과 토봉으로 인식합니다. 토봉 꿀은 자연산이니까 양봉 꿀보다 두 배 비싼데요. 시각적으로 양봉과 토봉은 색상과 묽음 정도가 확연한 차이가 있었습니다. 하지만 토봉 꿀도 가짜가 많아지며 주민들은 토봉 꿀 식별을 꿀 안에 꿀벌이 있냐 없느냐로 구분했거든요. 그러자 가짜 토봉 꿀에 꿀벌을 잡아 넣는 일부 장사꾼도 있었습니다.
진행자: 북한에서 진짜 꿀 찾기가 참 어렵네요. 그런데 한국에서 자주 접하는 뉴스 중 하나가 북한엔 아직 민둥산이 많다는 겁니다. 꿀을 얻을 수 있는 꽃도 적지 않을까 싶은데, 그렇지 않은 모양이네요.
손혜민 기자: 2012년 김정은 정부가 출범한 이후부터 북한에서는 벌거숭이 산을 복구하는 사업을 국가적으로 전개하고 있지만 아직 꿀벌이 날아들 정도로 아카시아 나무, 밤나무 등 산림이 부족합니다. 2000년대는 더 황폐했죠. 이 때문에 양봉기지는 군부대가 자리한 산지에 많았죠. 민가가 자리한 주변 일대 산은 땔나무로 나무를 베어가기 때문에 민둥산이지만 위장이 필요한 군부대의 경우 사람 접근이 제한되기 때문에 산림이 보존되어 있었죠. 심지어 정치범 수용소 주변 일대에도 산림이 있어 그곳에서도 양봉하는 사람들이 꽤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본다면 평안남도 은산군에 김철주 포병군관학교가 있었는데요. 군관학교에서도 자체로 학교 운영자금을 마련해야 하니까 양봉 기술자를 노무자로 채용해 산 속에서 꿀을 치도록 했었거든요. 군관학교 양봉기지는 여러 지역에 있었는데, 평성에서 평원으로 가는 길에 상차리 고개라고 있는데, 그 일대에도 양봉기지가 있었습니다. 양봉은 중국에서 수입한 벌통을 산속에 놓고 두 세명의 노무자가 천막을 치고 숙식하면서 채집합니다. 채집한 양봉 꿀은 킬로로 장마당에 넘기는데, 현재 평안남도 장마당에서 양봉 꿀 한 병 가격은 5만원(2.17달러), 토종 꿀 한 병 가격은 10만원(4.34달러) 이상으로 알려졌습니다.
북한에서 개인 양봉은 절대 불가
진행자: 그럼 개인이 양봉을 해서 파는 경우는 없는 겁니까?
손혜민 기자: 2000년대 만해도 산골에서 사는 주민들 속에서 양봉에 대한 기초 상식을 배우고 개별적으로 꿀 채집에 나서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2010년대부터 철저히 통제됩니다. 벌거숭이 산을 황금산으로 만들라는 당 정책이 해마다 강조되며 산비탈을 일구어 농사하던 소토지도 회수할 정도로 개인의 접근 자체가 통제되고 있습니다. 북한의 산림은 국가 소유이므로 양봉을 하겠다고 산에 접근하면 불법 행위로 단속되는 겁니다. 그렇다고 산에서 진행하던 양봉이 없어진 게 아닙니다. 철저히 국가에 등록된 공기관에 한해 허용되는 거죠.
특히 지방발전 20x10 정책이 추진되며 산을 낀 곳에서는 산을 이용해 지역적 특산물을 생산하도록 강조되면서 꿀 생산에 나선 기업소 등이 증가하고 있습니다. 아카시아 꽃이 만발한 5월부터 6월이면 북한 상점과 장마당 매대에 꿀 상품이 늘어나는 배경입니다. 꿀 상품명은 지금도 여전히 아카시아 꿀이라고 하지 않고 ‘산꿀’, ‘왕벌젖 꿀’ 등으로 표기하거든요. 또 자강도 화평군 양봉사업소처럼 지역 명을 살려 ‘화평 꿀’이라는 상표를 사용해 지역 특산물로 판매하는데, 가격은 시장가격입니다. 다양한 꿀이 많이 생산되어 일반 주민들도 찰떡에 꿀을 찍어 먹어 배가 부른 날이 왔으면 좋겠습니다.
진행자: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