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마당 돋보기] 북한 돈주들은 감자 먹는 법도 달라

안녕하세요? 이예진입니다. 고양이 뿔 빼고 모든 게 다 있다는 북한의 장마당, 그런 장마당에서 파는 물건 하나만 봐도 북한 경제의 과거와 현재, 미래를 엿볼 수 있다고 하는데요. 북한에만 있는 물건부터 북한에도 있지만 그 의미가 다른 물건까지, 고양이 뿔 빼고 장마당에 있는 모든 물건을 들여다 봅니다. <장마당 돋보기>, 북한 경제 전문가 손혜민 기자와 함께 합니다. 안녕하세요?

손혜민 기자: 안녕하세요?

진행자: ‘하짓날은 감자 캐 먹는 날’이라는 옛말이 있습니다. 하지가 지나면 장마가 시작돼 이맘때 수확한 하지감자 맛이 으뜸이기 때문이라는데요. 그렇다고 먹거리가 넘치는 한국에서 하지에 일부러 감자를 사 먹는 사람들은 찾아보기 힘든데요. 손 기자, 북한에선 어떻습니까?

판매용, 소비용 따라 다른 북한 감자 삶는 법

손혜민 기자: 하지가 다가오면 북한의 내륙에서는 국수나 떡보다 삶은 감자를 끼니나 간식으로 사먹는 사람들이 정말 많습니다. 지금이 감자를 수확하는 계절이다 보니 다른 음식보다 가격이 절반 이상 싸기 때문인데요. 장마당 입구에도, 길거리 매대에도 삶은 감자를 접시에 놓고 파는 상인들이 저마다 손님들을 부릅니다. 심지어 학교 정문 옆에 자리한 매대에도 주먹만한 크기의 삶은 감자를 간식으로 팔고 있어 휴식시간 학생들이 우르르 달려와 감자를 사먹고 교실로 뛰어가곤 합니다. 도둑을 막겠다고 텃밭 감자를 하지 전에 수확한 주민들도 삶은 감자를 밥상에 놓고 식구들과 함께 오이 냉국을 곁들여 끼니로 먹습니다.

하지 감자는 장마당 판매용이냐, 식구들의 소비용이냐에 따라 삶는 방식이 다릅니다. 장마당에서 판매할 목적으로 삶는 감자는 가마에서 감자가 한창 익어갈 때 솥뚜껑을 열고, 굵은 소금을 칼도마에 놓고 식칼로 지대어(문질러의 평안도 사투리) 보드랍게 간 다음 그것을 감자 위에 뿌려 줍니다. 그러면 감자가 간이 잘 배어들어 양념장이나 김치가 따로 없어도 먹기가 좋거든요. 반면 가정 집에서 삶는 감자는 가마에서 한창 감자가 익어갈 때 그 위에 콩기름을 뿌리고, 다시 사탕가루를 뿌려 줍니다. 그러고 나서 한 김 띄우면 삶은 감자 맛이 고소하고 달고, 쫄깃하여 가족의 특식으로 맛있게 먹습니다.

물론 살림이 어려운 가정에서는 소금만 뿌려 삶은 감자를 먹기도 하고, 식량을 절약하기 위해 감자밥을 해먹기도 합니다. 강냉이 쌀밥이 거칠거든요. 입쌀을 10~20% 섞어도 먹기 좋은데, 입쌀이 없다 보니 그 대신 감자를 넣거든요. 강냉이쌀밥 위에 잘 익은 감자를 주걱으로 으깨서 강냉이쌀밥과 골고루 섞어주면 거친 밥 맛도 덜하고 밥량도 불어나 지금은 감자밥을 해먹는 가정이 가장 많습니다. 강냉이쌀마저 살 수 없는 집에서는 감자만 삶아서 끼니를 때우는데요. 7월 하순이 되어야 햇강냉이를 먹을 수 있으니까, 그때까지 감자는 주민들의 식량으로 유용합니다.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 경단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 경단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 경단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AFP)

돈 있는 사람들은 감자 먹는 법도 달라?

진행자: 돈 없는 사람들이 삶은 감자나 감자밥을 먹는다고 하셨는데, 그럼 돈 있는 사람들은 감자를 안 먹나요?

손혜민 기자: 잘사는 집에서는 햇감자가 나오면 별식으로 한두 번은 삶아 먹습니다. 가난한 집처럼 식량 대용으로 먹는 게 아니라 반찬 요리로 사용하는데요. 특히 소득이 높을수록 감자 전분으로 생산한 농마국수를 소비합니다. 여름이면 북한에서 가장 비싸고 맛있는 국수가 농마국수인데요. 한국에서 흔히 냉면으로 불리죠. 물론 장마당 음식매대에서도 냉면이 판매되지만, 그 냉면은 메밀국수를 오이냉국에 말아주는 것이거든요. 농마국수는 소고기 육수를 냉동실에 넣었다가 손님에게 대접할 때 달걀과 고명을 얹어 판매하기 때문에 일반 냉면 국수보다 몇 배 비쌉니다.

며칠 전 평안남도 주민과 전화로 연결되어 냉면 가격을 물어봤더니 식당에서 농마국수 한 그릇에 양과 품질, 즉 냉면 위에 고기와 달걀을 얼마나 놓느냐에 따라 1만원~1만5천원(0.4~0.6달러)에 판매한다고 하더라고요. 지금 평성 장마당에서 햇감자 1kg에 1,500원 정도라고 하니까 농마국수 한 그릇 사 먹으려면 햇감자 8~10kg 살 수 있는 가격을 지불해야 하죠. 이 때문에 소득이 낮은 주민들은 농마국수를 맛 볼 생각도 못합니다. 같은 감자 음식을 먹는다 해도 영세민들은 통감자를 알로 세어 끼니로 먹지만, 돈주들은 농마가루로 만든 국수를 육수에 말아 여름철 음식으로 외식하는 것입니다. 한마디로 감자를 통해 보는 북한 사회 빈부의 축소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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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자 주산지 양강도에서도 농마국수 사먹기 어려워

진행자: 농마국수가 육수부터 소고기, 각종 고명까지 얹었으니 비싼 건 알겠는데, 삶은 감자 먹을 때와 가격 차이가 너무 나네요. 면을 만드는 농마가루가 비싸기 때문일까요?

손혜민 기자: 농마국수 면은 100% 농마가루로 만듭니다. 백반가루를 조금 첨가할 뿐이죠. 농마가루를 생산하는 원가가 농마국수 가격에 반영되기 때문에 더 비싸진 겁니다. 감자 10kg면 농마가루가 1.3kg 정도 밖에 안 나옵니다. 감자 1톤이라야 130kg의 농마가루가 생산된다는 말인데요. 이 수치는 기계설비가 구축되었을 때죠. 그런데 전기가 공급돼야 농마가루 생산이 될 게 아닙니까.

2017년 양강도 삼지연에 감자가루 공장이 준공되면서 기계설비로 농마가루가 생산되어 마대로 포장되는 현장이 북한 매체로 보도되긴 했지만, 건물 규모를 보면 5급 정도의 기업으로 작았습니다. 이 공장을 만가동(풀가동)한다 해도 여기서 생산된 농마가루는 전국뿐 아니라 양강도 내 상업망에 공급하기에도 부족하다는 말입니다. 아마 양강도에서 공장에서 생산된 농마가루나 농마국수를 먹었다는 주민은 간부를 빼고는 없을 것입니다. 이 때문에 농마가루나 농마국수는 개인이 수동적으로 만들어 먹는 경우가 많습니다.

양강도는 대홍단을 비롯한 북한에서 유명한 감자 고장이므로 일반 주민들은 살림집 움에 수많은 양의 감자를 보관했다가 겨울에 언 감자로 농마가루를 만들고, 그 농마가루로 소형 분틀로 국수를 눌러 먹는 기회가 많습니다. 돈 있는 사람만 농마국수를 맛볼 수 있는 평안도 지역과 다른 특징을 보이는 건데요. 평안도에서는 감자 원천이 적기 때문에 개인이 집에서 농마국수를 눌러 먹는 사례는 드물고, 양강도에서 나오는 농마가루를 조달해 식당에서 직접 농마국수를 눌러 손님들에게 판매했었습니다. 유통 비용이 들어가니 농마국수 가격이 올라갈 수 밖에 없죠.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으로 만든 요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으로 만든 요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북한 전국요리경연대회에서 감자전분으로 만든 요리들이 전시되어 있는 모습. (AFP)

농마가루 만드는 사기업들 등장, 서민들도 농마국수 먹을 수 있을까

진행자: 그래서 감자가 많이 나는 양강도 주민들처럼 직접 만들어 먹지 않고서는 먹기 어려운 게 농마국수군요.

손혜민 기자: 그나마 최근에는 평안도 내륙에도 농마가루를 직접 제조하는 사기업이 등장했습니다. 감자 원천을 조달하는 방식부터 설비를 구축하고 농마가루를 생산하는 공정이 자본주의 사회에서 계열사 기업을 연상케 합니다. 제가 지난 1개월 간 내부 소식통들과 연결해 감자 농마가루 생산 공정을 취재한 결과, 안주 청천강 지역에서 농마가루 생산하는 사기업이 밀집되어 있더라고요. 농마가루를 생산하려면 물 원천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죠.

여기에 감자를 전문 공급하는 주체를 보니, 안주와 멀지 않은 숙천군 염전사업소로 이동해 그곳에서 소금을 싸게 사들이며 감자를 공급하는 개인이었습니다. 이들은 그렇게 사들인 소금을 차에 다시 싣고 박천군과 구장군 등 농촌지역으로 이동하여 농민들 대상으로 소금과 감자를 1:6으로 바꿉니다. 농촌에는 소금이 귀하니 감자와 소금이 교환되는 물물거래가 잘 된다고 합니다. 수십 톤 정도의 감자가 확보되면 개인업자는 다시 차에 감자를 싣고 안주 청천강 지역으로 운송합니다. 감자를 싣고 온 차가 도착하면 청천강 일대에서 농마가루를 전문 생산하는 업자들이 감자를 통째로 사들이는데요.

이후 이들은 청천강 일대에 차려놓은 설비에 30분 단위로 100kg의 감자를 쏟습니다. 그러면 섞인 감자가 갈아지면서 관으로 나가고, 1차, 2차 여과기를 통해 감자 전분이 쌓입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매일 청천강 물을 사용하는 비용과 설비를 차려놓은 부지 사용 가격을 지방정부에 바쳐야 합니다. 이렇게 생산된 농마가루는 다시 잡채 면과 농마국수 면을 전문 생산하는 개인에게 도매됩니다. 면을 전문 생산하는 개인은 냉동 설비와 전기가 필수이므로 국영 냉동사업소와 연계되어 있었습니다. 시간상 더 길게 말씀드리지 못하겠지만, 개인적으로 북한의 현실을 취재할 때마다 보이지 않는 북한 시장의 저력을 느끼고 있습니다.

진행자: 개인업자들이라도 늘어서 북한의 서민들이 마음 편히 농마국수를 사 먹을 수 있었으면 좋겠네요. 오늘 소식은 여기까지입니다. 함께해 주신 손혜민 기자 감사합니다. <장마당 돋보기> 지금까지 이예진이었습니다.

에디터 양성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