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역사(198회) 일제의 식량 공출제도편-심재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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식민지통치 말기에 들어선 일제는 강제징집으로 조선청년을 군대로 입대시키고, 강제징용으로 노동자들을 군수공장으로 보내고, 정신대로 여성들을 차출하고, 이어서 강제공출로 식량을 수탈하는 정책을 썼습니다. <;오늘의 역사>; 이 시간에는 일제의 식량강제 공출편을 보내드립니다.기획에 심재호기잡니다.1937년 중국과 전쟁을 일으킨 일제는 국가재정이 당연히 어려워졌습니다.전시체제로 들어간 일제는 조선전역에 이른바 조선미곡 배급조종령을 선포하고 식량을 강제로 수탈하기 시작했습니다. 이것을 공출제도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농산물 수탈 정책이었습니다.농산물 종자를 빼놓고는 지은 농산물 대부분을 총독부에 바치는 것입니다.이렇게 강제도 거두어들인 쌀은 일본으로 보내졌습니다.1944년도 기록을 보면 조선땅에서 지은 농산물전체의 60%이상이 일본으로 가져간 것으로 나타나 있습니다.공출제가 시작되면서 자기들이 지은 쌀을 마음대로 팔고 살 수도 없게 됐습니다. 쌀을 거래하던 자유시장이 완전히 폐쇠된 것입니다.이렇게 쌀을 수탈한 일제는 만주등지에서 값싼 잡곡이나 먹을 수도 없는 대두박을 수입해서 배급으로 나누어주었습니다.특히 식량이 나지 않는 봄철에는 굶줄이는 농민들이 나무껍질이나 풀뿌리를 캐먹고는 얼굴이 누렇게 퉁퉁 붓는 경우가 많았다고 합니다.공출제를 실시하던 초기에는 종자와 자가소비용을 제외한 쌀을 받치기로 했습니다.그러다가 나중에는 농사도 짓기 전에 동네마다 미리 정한 할당량을 연대책임으로 바치게 했습니다. 그러자 대부분의 농민들은 최소한의 식량마저 빼앗기는 형편이 됐습니다.그래도 일본에 붙어먹던 극소수의 지주들을 제외하고는 전 농가가 몰락하고 전 농촌이 피폐되고 말았습니다.따라서 러시아땅이나 만주땅으로 가는 이민이 속출하고 조선민족의 한을 노래하는 망향가들이 전국에 번져갔던 것입니다.다음은 10월의 소삽니다.1783년 10월 23일 당시 봉건적인 신분제도의 철폐를 주장한 조선조후기의 학자 홍대용이 세상을 떠났습니다. 그는 또 신분을 막론하고 누구나 노동에 종사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1990년 10월 23일 남북통일축구대회 제2차전이 서울에서 열렸습니다.지금까지 <;오늘의 역사>;로 일제가 한반도에서 농산물을 강제로 수탈해간 공출제도편이었습니다.RFA 심재홉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