후지타 스스무 씨 실종 직전에 북 공작선 출몰
2006.01.10
일본 당국이 또 다른 일본인이 납북됐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하고 있습니다. 일본 경찰은 지난 1976년 2월 후지타 스스무 씨가 북한 공작선에 의해 납치됐을 가능성에 대해 조사를 벌이고 있습니다. 도쿄의 채명석 기자와 함께 자세한 소식을 알아보겠습니다.
후지타 스스무 씨는 언제, 어떻게 행방불명됐습니까?
도쿄 가쿠게 대학 1학년생이던 후지타 씨는 1976년 2월 7일 알바이트하러 간다는 말과 함께 외출한 뒤 행방불명됐습니다. 그러다가 재작년 12월 일본 국내에 거주하는 한 남성이 자신이 후지타 씨 납치에 관여했다고 특정실종자문제조사회에 전화를 걸어와 후지타 씨의 납치 가능성이 대두했습니다.
후지타 씨 가족들도 재작년 9월 사이타마 현 경찰에 고발장을 제출하고 납치 가능성을 수사해 달라고 요청해 경찰이 납치 관련성을 조사해 왔습니다. 또 탈북자가 북한에서 가져온 사진을 전문가가 감정한 결과 후지타 씨 본인일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 밝혀져 일본 정부는 새로운 납치 피해자일 가능성이 높다고 판단하고 납치 경위를 조사해 왔습니다.
후지타 씨가 실종되기 직전에 북한 공작선이 나타났다는 보도가 나왔는데요?
산케이 신문의 보도에 따르면 일본의 수사당국은 후지타 씨가 실종되기 직전인 1976년 1월 말 북한 공작선이 니가타, 사도가시마 연안을 항해했었다는 사실을 확인했습니다.
일본의 수사당국은 1975년부터 1976년 1월 사이에 북송간첩 신광수가 일본 국내에 거점을 확보하고 활발히 활동하고 있었다는 점,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납치사건에서도 납치사건의 발생 시기와 장소가 북한 공작선의 출몰 시기와 장소 등과 일치하고 있다는 점을 들어 후지타 씨도 지바 현에서 납치된 후 니가타로 이송되어 당시 출몰한 북한 공작선에 태워졌을 가능성이 높다고 추정하고 있습니다.
시즈오카 현에서 태어나 16살 때까지 일본에 살았던 북송 간첩 신광수가 일본에 처음 잠입한 시기는 1973년부터 1976년 9월 사이로 알려지고 있는데, 신광수가 후지타 씨 납치에도 관여했다는 것이 판명될 경우 신광수는 4건, 5명의 일본인 납치사건에 관여한 셈이 됩니다.
채명석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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