탈북 국군포로, 미 의회 증언서 국군포로 조속송환 촉구


2005-04-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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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을 탈출한 뒤 남한에 정착한 국군포로 두 명이 사상 처음으로 22일 미국 의회를 방문해 아직도 북한에 남아있는 국군포로 실상에 대해 증언하고, 한국전쟁이후 아직도 귀향하지 못하고 있는 국군포로들의 조속한 송환을 촉구했습니다.

이날 민간단체인 디펜스 포럼 등이 미 연방의회 건물에서 주최한 토론회에서 지난 1994년 북한을 탈출해 극적으로 귀환한 조창호 예비역 중위와, 지난 2000년 북한을 탈출해 남한에 정착한 김창석 씨가 북한의 국군포로 실상에 대해 증언했습니다. 특히 육군소위로 6.25전쟁에 참여했던 조 씨는 지난 1951년 강원도 인제에서 중공군에 포로로 잡혀, 43년 동안 북한수용소와 탄광을 떠돌다, 1994년 10월 목선을 타고 서해로 탈출했던 ‘돌아온 국군포로 1호’입니다.

조 씨는 올해 초 81세의 국군포로 양한석 씨가 한쪽 발을 잘린 채 북한을 탈출한 사실을 상기시키며, 북한이 살아있는 국군포로들을 하루속히 남한으로 보내주기를 호소했습니다.

조창호: 한국 국방부가 확인한 숫자만 해도 미귀환 포로 6만 명 중 생존포로 547명이라는 숫자를 확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명백한 제네바 협정에 대한 위반이며 인권유린 행위입니다. 나는 이 자리를 통하여 그들의 조속한 송환이 이루어지도록 강력히 호소합니다.

조 씨는 자신이 1952년부터 1958년까지 정치범 수용소에서, 그리고 1958년부터는 일반감옥에서 1964년까지 모두 13년간의 복역생활을 하는 동안, 동료 국군포로들이 영양실조와 각종 전염병으로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보아야만 했다고 말하며 울먹였습니다.

조창호: 비인간적이고 야만적인 인간 살육의 현장을 고발하려고 합니다. 외부세계와는 엄격히 단절되었으며, 세상에 알려진 바는 거의 없는 상태였으며, 여기에는 깡통으로 만든 감방은 동물원과 흡사했습니다. 기생충과의 처절한 전쟁은 우리들의 일과였습니다. 13년 동안 한 번도 양치질을 못했더니 40세가 되는 해 이빨이 다 빠져버리고 말았습니다.

조 씨에 이어 증언대에 선 김창석 씨는 한국전쟁 중 심한 부상을 당해, 1953년 8월 중순경 중공군 병원에 있다가, 평안남도 강동군 포로수용소에 이송된 뒤, 지난 50년 내내 북한의 탄광에서 강제노역을 하며 보냈다고 밝혔습니다.

김창석: 그 중환자가 북한에서는 쓸모없는 사람이었지만, 그런 사람도 포로교환에 돌려보내지 않았습니다. 김일성은 전쟁에서 파괴된 것을 복구하자니 수많은 노동력이 필요하기 때문에 그 값싼 노동력을 우리 국군포로에서 해결하고자 했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탄광에 가스가 많기 때문에 심한 지압이 많고 하여 규정상 굴속에 들어가는 사람은 15일간의 안전교육을 주어서 들여보내야 하는데 그런 교육하나 국군포로는 받지 못했습니다.

이날 증언에는 제임스 릴리 전 주한 미국대사, 미국 재향군인회, 남한 재향군인회 관계자들, 한국전 참전 20개국 대사들 여러 명과, 미국 하원국제관계위원회 관계자 등이 참석해, 이들의 증언을 청취했습니다.

한편 국군포로 문제에 대해 북한은 1954년 1월 포로교환 이후 북한에는 ‘단 한명의 국군포로로 없다“고 주장하며, 포로송환자체 논의를 거부하고 있는 실정입니다.

장명화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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