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카메라 속 탈북민] ② “무대 위에선 내가 주인공”

0:00 / 0:00

앵커 :카메라에 담긴 아리랑 예술단의 모습은 화려하지만, 이들이 무대를 내려오면 또다시 냉정한 현실을 마주하게 됩니다.

무대 위에서는 밝은 조명 아래 주인공이 되지만, 무대 뒤에서는 여전히 낯선 세상에서 살아가는 이방인처럼 느껴지기도 합니다.

한국의 이동근 사진작가는 지난 10년 동안 ‘아리랑 예술단’과 동행하며 이들의 삶을 카메라에 담았는데요.

어떤 상황에도 무대 위에서만큼은 내가 주인공이라고 외치는 탈북민들의 이야기를 천소람 기자가 전해드립니다.

“촌스러움의 B급 감성”

‘키치(Kitsch)’란 말의 사전적 의미는 저속한 모조품 또는 대량 생산된 싸구려 상품을 뜻합니다.

또 다른 의미로는, 보기에 기이하고 저속한 ‘나쁜 예술’의 미적 가치를 일컫는 말이기도 합니다.

특히 문화, 예술 분야에서 많이 쓰이는 ‘키치하다’란 표현은 ‘저급하다’의 의미보다는 ‘B급 감성’으로 설명됩니다. 조금은 촌스럽지만, 그 나름의 매력이 있다는 겁니다.

한국의 사진작가 이동근 씨가 촬영한 ‘아리랑 예술단’의 사진에도 ‘B급 감성’이 있습니다.

사진1.jpeg
두 명의 아리랑 예술단 단원이 꽃을 들고 카메라를 보며 웃고 있다.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화장을 진하게 하고, 화려한 옷을 입고, 표정과 몸짓도 예쁘게 보이려 하는데 어딘가 모르게 촌스러운 모습입니다.

하지만 이동근 작가는 사진을 보는 관객들이 그들의 모습을 통해 향수를 달래기도 한다고 말합니다.

[이동근] 사진들을 보면 조금 우습죠. 촌스럽기도 하고. 이런 것들이 ‘B급 감성’을 자극하는 부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이분들이 살아왔던 배경들이 우리와는 많이 다르잖아요.

한국 사회에 익숙지 않은 모습과 행동에서 나오는 탈북민 단원들의 촌스러움이 사진에 그대로 묻어납니다.

[이동근] 우리가 여기서(한국) 살아가면서 지켜야 하는 것들, 하지 말아야 할 것들, 남의 이목에 신경을 쓰는 부분들, 내가 내 주체를 드러내는 부분들에 대해서 매끈하지 못한 것들이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사진에) 조금씩 나오기도 하고 그런 것 같아요. 예뻐 보이고 싶긴 한데, 또 하다 보면 촌스럽고….

“무대에 올랐을 때 비로소 스포트라이트를 받는다.”

사진2.jpeg
아리랑 예술단이 공연 전 임시로 마련된 대기실 안에서 공연 준비를 하고 있다.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한 사진에는 임시 천막 안에 어지럽게 널브러진 짐가방과 의상들, 맨바닥에 깔린 은색 돗자리 위에서 분주히 공연 준비를 하는 아리랑 예술단원의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평범한 검은색 원피스에 하나로 질끈 묶은 머리, 무채색 상의에 격자무늬 치마, 흰색 블라우스 위에 걸친 겉옷.

무대 위에서는 화려한 의상과 공연으로 관객의 시선을 사로잡지만, 무대 뒤의 모습은 평범합니다.

이들은 주로 지방에서 열리는 축제 무대나 통일 관련 행사에 초청받아 공연을 합니다.

행사의 성격과 규모에 따라 공연 시간도 정해지는데, 약 20분의 짧은 공연에는 2~3명의 단원이, 1시간 정도의 공연에는 6~7명의 가수, 무용수가 무대에 오르게 됩니다.

사진3.JPG
무대 위에서 공연하고 있는 아리랑 예술단의 모습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대부분 단원이 북한의 절망적인 상황에서 벗어나고자 탈북했지만, 한국에서의 삶도 녹록지 않았습니다.

자본주의 사회를 경험한 적이 없기에 경제 활동이 어려웠고, 사람들과 어울리기도 쉽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기자] 사진집에 이런 표현이 있더라고요. “살기가 힘들어 북한에서 탈출했지만, 한국에서 살아가기 위해 또다시 북한 노래를 부르고 춤을 춰야 한다.”

[이동근] 탈출한 과정과 이유는 사람마다 다르지만, 기본적으로 살기가 힘들다 보니 탈출하는 거죠. 너무 힘들어서 탈출했는데…. 여기서 만나는 탈북민들은 북한에 대한 비판을 엄청 많이 합니다. 그런데 막상 (한국에서) 살기는 너무 힘든 거죠.

‘아리랑 예술단’을 창립한 탈북민 이은아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에 따르면 단원 대부분은 여러 가지 일을 겸업하고 있습니다.

지금은 7명의 단원이 ‘아리랑 예술단’을 유지하고 있는데, 각자 생활 전선에 뛰어들다 보니 공연 인원도 유동적입니다.

[이은아] 여기서 살아가려면 뭐라도 해야 할 거 아니에요. 북한에는 그런 명언이 있어요. ‘힘을 가진 사람은 힘으로, 돈을 가진 사람은 돈으로’. 그러니까 지식이 있는 사람은 지식으로 벌어 먹고살라는 건데요. 저희처럼 예술을 하는 사람들은 배운 게 예술이니까, 여기 와서 예술로 살아가는 거죠.

이동근 작가는 화려한 무대에서 내려온 단원들이 마주한 현실과 통일에 대한 기대감도 그다지 낭만적이지 못하다고 말합니다.

[이동근] ‘아리랑 예술단’ 분들도 (북한이) 지긋지긋한데, 또 이렇게 와서 먹고살 게 없으니까 이걸 또 하게 되는 거죠. 사실 이것만 해서는 생활이 안 되거든요. 다른 일이 있고. 아르바이트(부업)하면서 지내죠. 어떤 게 아르바이트인지는 모르겠지만요.

사진4.jpeg
관객들이 아리랑 예술단의 공연을 관람하고 있다.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사진집을 넘기다 한 장의 사진에 시선이 멈췄습니다.

[기자] 사진 중에 인상 깊었던 사진이 있었습니다. 붉은 조명 아래 앉아있는 대부분 관객이 제복을 입고 있는데요. 그중 몇 명은 졸고 있고, 흥미롭지 않은 듯 무미건조한 시선으로 공연을 보고 있네요.

[이동근] 부산의 동아대학교에서 공연할 때입니다. 이 사람들은 ROTC(Reserve Officers Training Corps: 예비역 장교훈련단)입니다. 공연에 참석해야 하니 와서 관람한 거죠. 그러다 보니 잠이 와서 졸기도 하고, 표정 없는 친구도 있고, 잡담도 하고. 어찌 보면 우리가 이 사람들을(탈북민) 바라보는 태도가 담겨있을 수도 있습니다.

“In the Spotlight, 조명 아래서”

사진5.jpeg
두 명의 아리랑 예술단 단원이 아코디언 연주를 하고 있다.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아리랑 예술단’이 창단된 지도 10년이 넘었습니다.

한국 사회와 탈북민 단체가 더불어 사는 세상을 만들어 보자는 의미에서 지은 이름이 ‘한민족 아리랑 예술단’입니다.

이은아 씨에게 무대 위 공연은 ‘자유’를 느낄 수 있는 통로이기도 합니다.

[이은아] ‘대한민국에 와서 우리가 나름대로 열심히 살았구나’ 그런 느낌이 들죠. 대기실 모습도 있고, 화장하는 모습도 있고, 의상을 갈아입는 모습도 있고. 북한에서도 이 활동을 했지만, 모든 게 정치적인 행사다 보니 한국과 같지 않거든요. 제일 먼저 느낀 게 자유, 우리가 하고 싶으면 우리 바람대로 할 수 있고...

간혹 휴전선 인근 지역에서 공연할 때면 슬픈 감정이 밀려오기도 합니다.

[이은아] 이북에 두고 온 형제들, 우리 부모님들이 가까이 있는 고장에 가면 슬픕니다. 강원도는 (북한과) 가깝잖아요. 그럴 때 제일 슬프죠. 내 고향이 보이는데, 갈 수 없는 곳에서 공연한다는 게 제일 슬픈 거죠.

이동근 작가는 사진을 통해 같은 민족임에도 여전히 ‘우리’라는 테두리 안에 편입되지 못하고 그 경계에 서 있는 탈북민의 삶과 그들의 이야기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합니다.

[이동근] 원래 제목이 ‘아리랑 예술단’인데요. 영어로는 ‘In the spotlight’, 즉 ‘조명 아래서’라는 뜻입니다. ‘조명 아래서’, 이 말은 곧 우리 사회에서 아무도 탈북민들을 눈여겨보지 않는 거죠. 하지만 무대에 올라가면 이제 주인공이 되는 거예요. 조명을 받으면서 진짜 주인공이 되거든요. 이 책에서 주인공들은 이분들이에요.

사진6.jpeg
천막에 비친 아리랑 예술단의 모습 / ‘아리랑예술단: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목숨을 담보한 새 출발의 통로 , 두만강

이동근 작가가 10년에 걸쳐 촬영한 사진집의 대부분은 아리랑 예술단의 모습과 두만강 유역의 사진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단원들이 공연하는 모습을 비롯해 대기실에서 준비하는 모습, 카메라를 보며 웃는 모습, 휴식 시간을 즐기는 모습 등 인물 사진이 주를 이루는 가운데 황량한 풍경 사진이 나옵니다.

사진7.JPG
북중 접경 지역 인근 두만강의 모습 /‘아리랑 예술단: 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기자] 인물 사진 중간중간에 겨울철 황량한 두만강 풍경 사진을 배치하신 게 인상 깊었습니다. 그 이유는 무엇인가요?

[이동근] 제가 이 작업을 할 때 세 가지 방향으로 작업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살기 위해 한국에 와서 굉장히 힘들게 지내고 있습니다. 사는 것 자체가 힘들다 보니 어쩔 수 없이 지긋지긋하게 싫은 북한의 노래와 춤을 추며 살아가는 공연 장면들 하나, 또 하나는 이들이 탈출했던 국경의 풍경들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이야기하고 공연하는 장면들이 담겨있는 영상 작업으로 구성돼 있습니다.

많은 탈북민이 건너온 황량한 두만강의 모습은 화려한 외모에 감춰진 예술 단원들의 과거와 목숨을 걸었던 이들의 탈북 여정을 보여줍니다.

[이동근] 이 사람들이 탈출했던 황량한 풍경, 또 죽음을 담보해서 건너왔던 길이기 때문에 그런 것들을 내가 직접 보고 싶었고, 책에 다 같이 넣고 싶었습니다.

‘아리랑 예술단: In the Spotlight’, 조명 아래서.

사진집의 제목처럼 밝은 조명 아래서 탈북민 예술 단원들은 정치적 이념과 과거, 사회적 편견에서 벗어나 자유의 몸이 됩니다.

[이은아] 주인공이 따로 있나요? 하는 사람이나 보는 사람이나 다 주인공이죠. 저희처럼 무대에서 공연하는 사람이나, 무대 아래에서 보는 사람이나 다 똑같은 주인공이죠.

사진8.jpeg
파란 조명이 무대를 비추고 있다. /‘아리랑 예술단: In the Spotlight’ 수록 사진, photo by 이동근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