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출 단체들 “러시아 내 탈북민 구출∙지원 적신호”
2024.03.15
앵커: 러시아에서 탈북민과 북한 노동자를 돕던 한국인 선교사가 최근 간첩 혐의로 체포된 가운데 앞으로 러시아 내 탈북민 구출 활동에 적신호가 켜졌다는 우려가 제기됐습니다.
이번 선교사의 체포는 그동안 러시아가 묵인해 오던 탈북민 구출 활동을 본격적으로 통제하겠다는 경고일 수 있다는 분석인데요. 탈북민 뿐 아니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에도 단속이 시작되면, 이들의 상황이 악화할 수 밖에 없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탈북민 구출 활동 위축 불가피”… 구출 단체들 한 목소리
[김성은] 그 체포로 인해서 러시아와 북한의 관계가 더 돈독해지는 모습을 보여주게 되고, 우리 선교자들에게는 경고성의 메시지겠죠.
[지철호] 러시아를 통해서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지는 않았지만, 과거보다 더 줄어들거나 감소하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서재평] 이번에 러시아에 나와 있는 사람들 대상으로 선교 활동을 했던 사람을 간첩 혐의로 체포했다는 거는 ‘(탈북민을 돕는) 활동도 통제를 하겠다’, 그리고 ‘그 활동을 하지 말라’는 의미로 해석이 되는 거죠.
지난 1월 15일, 러시아 현지에서 북한 해외 노동자와 탈북민에 대한 인도적 지원과 구출을 돕던 한국인 선교사 백 씨가 러시아 당국에 간첩 혐의로 체포된 것과 관련해 한국의 탈북민 구출 단체들이 밝힌 내용입니다.
특히 러시아는 중국과 달리 탈북민에 대한 통제가 비교적 느슨하고, 인터넷 사용과 이동의 자유 등이 보장된 국가였기 때문에 구출 단체들이 받은 충격은 더 컸습니다.
또 선교사 백 씨의 체포 이후 러시아 현지에서 탈북민 구출 활동이 많이 위축될 것으로 이들은 내다봤습니다.
러시아 출신 북한 전문가인 안드레이 란코프 한국 국민대학교 교수는 1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러시아 당국자들은 1990년대 초부터 러시아 영토에서 탈북민들이 체류하는 것에 대해 대부분 눈감아줬고, 이들이 시끄러운 상황에 놓이지 않도록 도와줬지만, 이제는 옛날이야기가 됐다”고 지적했습니다.
란코프 교수는 오늘날 국제 상황을 고려할 때 러시아가 북한과 더 가까운 관계를 맺을 필요가 생겼고, 이런 상황에서 북한 측 요구를 무시할 수 없게 됐다고 설명했습니다.
김정은 정권이 ‘탈북 현상’을 심각한 체제 위협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러시아가 북한을 위해 탈북민 지원과 구출 활동을 차단하는 조치를 취하기 시작했다는 겁니다.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도 14일 RFA에 “러시아도 중국처럼 단속과 통제를 강화하지 않을까란 우려가 현실이 됐다”고 평가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러시아도 외부 정보, 외국인 단체 활동의 영향을 차단하기에 바쁩니다. 특히 탈북민 지원은 한국을 비롯해 외국인들의 활동이 꼭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런 거에 대한 견제 차원에서, 또 북한으로부터 당연히 요청도 있었을 테고요.
러시아 내 탈북민과 북한 노동자들에 대한 인도적 지원을 해온 강동완 한국 동아대학교 교수 겸 하나센터장도 (12일) RFA에 “러시아 내 선교사들이 탈북민들을 지원하는 것에 대해 러시아 당국이 그동안 크게 신경을 쓰지 않던 상황”이라고 전한 바 있습니다.
주로 인도적 차원의 도움이었기 때문에 러시아 당국도 묵인해 왔다는 겁니다.
[강동완] 대부분 활동을 하면서 발각될 경우, 러시아 법적인 규정으로 벌금이나 추방 정도에 해당하는 부분인데 이렇게 간첩 혐의를 씌웠다는 것은 상당히 이례적이고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받아들일 수밖에 없습니다.
이처럼 오랫동안 암묵적으로 탈북민 구출 활동을 눈감아주던 러시아 당국이 처음으로 한국인 선교사를 체포한 것은 탈북민 구출 단체에 심각한 메시지가 되고 있습니다.
한국 탈북자동지회의 서재평 회장은 (15일)“백 씨를 간첩 혐의로 체포한 것은 탈북민과 북한 노동자에 대한 인도적 지원 활동에 대해 러시아가 통제를 시작하겠다는 의미로 해석될 수 있다”고 우려했으며, 한국 ‘갈렙선교회’의 김성은 목사도 이번 일로 탈북민 구출 활동이 위축될 수 있다고 말했습니다.
구출 단체 도움 받던 북 노동자에도 영향
러시아 내 탈북민 구출은 대부분 유엔을 통해 이뤄집니다.
그래서 현지 선교사들은 그동안 직접 구출 활동을 하기보다는 한국행을 택한 탈북민들이 난민 구호소에 가기 전후 이들의 임시 보호를 도와왔습니다. 하지만 이제는 그 역할과 기능이 끝날 수도 있다는 관측이 제기되고 있습니다.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의 지철호 정착지원실장도 “백 씨의 체포로 인해 탈북민 구출과 인도적 지원 환경이 제한될 것이고, 이는 탈북민 구출 활동에도 영향을 줄 수 있다”고 내다봤습니다.
코로나 대유행 당시 중국 내 탈북민들이 한국에 입국하지 못할 때에도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들은 탈출이 가능했는데, 이 길마저 막힐 수 있기 때문입니다.
[지철호] 탈북민들이 러시아를 통해 한국에 입국했는데, 그 일을 돕는 사람들을 체포하고 간첩 누명까지 씌운다면, 말 그대로 (탈북민 구출과 인도적 지원 활동가들의) 활동 범위나 환경이 제한될 것이고요. 아무래도 도움을 주는 사람이 없으면 러시아를 통해 한국으로 오는 사람들이 많지 않았어도, 과거보다 더 줄어들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서재평 회장도 이번 사건을 계기로 선교사들의 활동이 위축되면, 탈북민들의 임시 거처가 사라지게 되고, 큰 위험에 처할 수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서재평] 임시 보호를 선교사들이 했습니다. 예를 들어 안전한 집을 마련하고 그 사람들이 먹고살 수 있는 장소를 제공하곤 했습니다. (백씨의 체포로 인해) 안전지대가 사라진 거예요. 그렇게 되면 탈북민이 다시 북한 보위부 또는 러시아에 남아 있는 북한 권력 집단에 잡히기 쉬워지고요. 탈출했다고 해도 안전하지 않죠. 굉장히 위험하게 됐어요. 그러니까 ‘활동하지 말아라’, ‘우리가 이제부터 통제하겠다’는 게 강해지니까 다른 선교사들도 선뜻 나서기가 무서워질 수 있죠.
또 탈북민뿐 아니라 러시아 내 북한 노동자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수 있습니다.
선교사들이 러시아에 나와 있는 북한 노동자에게 의식주와 각종 의약품 등을 주며 인도적 지원을 해왔는데, 러시아의 통제가 시작되면 이들의 상황도 악화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란코프 교수도 “오늘날 러시아는 북한과 관계 개선을 위해 탈북민의 자유와 생명까지 희생할 수 있게 됐다”고 꼬집으면서 “가까운 미래에 러시아에서 백 씨처럼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하는 것은 매우 위험할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우크라이나 전쟁을 계기로 북한과 러시아가 더 밀착행보를 보이는 가운데 중국이 지난해 10월 탈북민 600여 명을 강제 북송한 데 이어 러시아가 탈북민 구출 활동을 돕던 한국 선교사까지 체포하면서, 탈북민이 마음 편히 갈 수 있는 곳은 점점 줄어들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