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당국, 매년 반복 가뭄∙수해 근본 해결책 세워야”
2022.06.27
앵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 봅니다. 일본에서 북한 전문 언론인으로 활동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기자> 북한이 지난 5월 중국에서 식료품을 대거 수입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문 박사님, 북한이 중국에서 주로 들여간 품목이 콩류, 설탕, 밀가루 등이네요. 이들 품목을 콕 집어 수입한 배경이 뭘까요?
문성희 우선은 주민들의 식량과 직결된 품목이라는 사실에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특히 콩류는 아이들에게 공급할 콩우유의 재료로 쓰이는 것이 수입 배경에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1990년대 고난의 행군 시기에도 아이들이 굶주리지 않도록 콩우유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저도 고난의 행군 시기에 평양특파원을 할 때 콩우유공장도 방문했고 거의 도로에서 차량을 목격하지 못할 때에도 유독 콩우유를 운반하는 트럭만큼은 평양시내에서 거의 매일 목격했습니다. 고난의 행군 시기에는 어른들은 배고픔을 참아야 했지요. 그러니까 옥수수로 만든 죽을 하루 두 끼만 먹으면서 견뎌냈지요. 초등학교 고학년 정도 이상의 아이들은 어른들이 얼마나 고생을 하고 있는지 어느 정도 이해가 가는 나이였다고 봅니다. 그렇지만 초등학교 저학년 이하의 어린 아이들은 어째서 굶어야 하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겠지요. 그래서인지 북한 당국에서도 우선적으로 어린 아이들에게는 콩우유를 공급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이 나이 아이들은 성장기이기 때문에 영양실조가 되지 않게 나름 신경을 쓰고 있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콩우유 공장을 취재했을 때 직접 콩우유를 마셔 보았는데 솔직히 그렇게 맛있지는 않았습니다. 물론 콩우유 공급도 평양 얘기이고 지방의 사정은 달랐을 수도 있습니다.
<기자> 콩과 함께 대두박으로 알려진 콩찌꺼기가 대량으로 수입됐는데 이건 인조고기의 원료라면서요?
문성희 네, 그렇습니다. 북한에서 고난의 행군 시기에 진짜 육고기는 거의 얻을 수가 없을 때 고기를 대신하는 인조고기, 그러니까 콩으로 고기맛을 내는 대체식품을 만들어 그것을 먹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맛은 꽤 괜찮았어요. 제가 북한에서 친척 집을 방문했는데 인조고기를 내준 적이 있어요. 제겐 꽤 맛있어서 제가 친척들에게 “어째서 이런 맛있는 것을 이제까지 안 내주었는냐?” 뭐 그렇게 말했더니 앞서 말한 바와 같은 눈물겨운 이야기를 해주었습니다. 그러니까 북한 사람들은 육고기 대용으로 인조고기를 먹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번에도 인조고기 재료로 콩찌꺼기를 수입하지 않았을까 그런 생각이 듭니다. 제가 아는 평양여관 접대원 중에는 육고기는 먹지 못하는데 인조고기 같으면 먹을 수 있다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인조고기에도 여러 종류가 있었고 튀김으로 만들어 먹는 방법, 양념 등과 함께 먹는 방법 등 여러가지가 있었습니다. 콩이니까 영양도 보장할 수 있어요. 그리고 설탕, 밀가루 등도 모두 먹는 문제와 관련되어있지요, 그만큼 북한 식량 사정이 심각하기 때문이지 않을까요? 다만 제가 알기로는 콩은 비교적 북한에서도 기르기 쉽기 때문에 많이 심고 있었던 기억이 있는데 그것마저 수입에 기대야 한다는 것이 걱정스럽습니다.
<기자> 이번에 중국에서 들여간 품목들 외에도 어떤 식료품들이 앞으로 중국에서 더 수입될 걸로 예상하시는지요?
문성희 원래 과일이나 채소류 등은 북한에서 그렇게 많이 생산하지 못하기 때문에 중국에서 들여갈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중국 단둥에서의 코로나 확산으로 화물열차 수송이 중단된 것으로 아는데 앞으로 화물차 수송이 재개되면 쌀 같은 것도 수입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식료품 이외에 비료도 중국에서 들여오게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이 올 봄 가뭄으로 쌀을 비롯한 곡물 생산에 지장을 받을 수도 있고 또 4월부터 5월사이의 국내에서의 코로나 확산으로 격리자들이 많아져서 그것이 농촌 동원 시기와 겹쳤기 때문에 이것도 곡물 생산에 영향을 줄 수가 있습니다. 따라서 앞으로 식료품의 수입은 더더욱 많아질 것이라고 추측할 수 있습니다.
<기자> 말씀하신 대로 북한의 이번 식료품 대거 수입은 코로나 확산과 봄 가뭄에 이어 홍수 피해까지 겹쳐 식량난이 우려되는 가운데 이뤄졌습니다. 올 해도 여전히 북한의 식량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면서요?
문성희 네 그렇다고 봅니다. 가뭄과 코로나에 이어 홍수 피해가 겹쳤기 때문에 더더욱 어렵겠지요. 이제까지는 코로나를 막기 위해 국경을 봉쇄하고 있었기 때문에 식량은 물론 식료품 수입도 제대로 안 되었지요. 여기에다 가뭄이나 수해처럼 매년 반복되는 자연재해는 올 해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듯하구요. 다만 북한 주민들은 이런 상황을 이제 수십년 이상 겪어 왔습니다. 제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은 ‘언제 가면 이런 상황에서 벗어날 수 있을 까’ 모두가 고민하고 있었지만 그것이 곧 당국에 대한 불만으로는 이어지는 건 아니었습니다. ‘미국이 이런 상황을 만들었고 미국이 나쁘다’는 그런 북한 당국의 사상교양이 침투하고 있었기 때문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북한 주민들 중에도 ‘언제쯤 이런 상황이 나아지겠는가’ 그런 의문을 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이제 한국전쟁을 겪지 않는 사람들이 인구에서 많은 비율을 차지하고 있습니다. 한국전쟁이나 일제강점기를 겪었던 세대는 ‘그래도 그때보다는 상황이 좋다’고 생각하고 있을지 몰라도 전쟁도 안 겪고 일제강점기도 모르는 사람들은 ‘어째서 이렇게 고생해야 하는가’라며 불만을 갖는 세대도 자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이런 상황 속에서 특히 식량 전망이 그리 밝지 못하다면 북한 주민들이 정말 무엇에 희망을 가지고 살아가겠는가 하는 의문이 들겠지요. 제가 북한에서 만난 사람들 중에서도 표정이 밝지 않은 사람들을 적지 않게 있었습니다. 물론 북한 사람들은 제게 그런 말을 하지 않았지만 어딘가 표정이 밝지 않았다고 할까, 불만을 느끼는 사람들도 많았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가 하면 북한 당국은 이미 올 여름 큰물 피해 대책 마련을 독려하고 있는데요, 이렇게 거의 매년 반복되는 봄 가뭄, 여름 홍수 피해를 근본적으로 해결하지 못하는 이유는 뭔가요?
문성희 북한에서도 김정은 정권 들어 수해가 여러 해 지속되면서 미리 수해를 예견해야 한다며 일기예보 태세를 강화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물론 이런 것은 다른 나라에서는 이미 하고 있는 일이지요. 그러니까 북한도 사전에 수해나 가뭄을 예상해서 그 대책을 미리미리 세우려고 애쓰고 있다고는 생각합니다. 그러나 근본적으로 수해를 막으려면 관련 기반시설을 정비하고 예방체계를 갖춰야 하지요. 그러니까 그런 것들을 해결하지 못하고 있는 상황에서는 아무리 사전에 수해가 온다고 예견해도 그것을 막고 방지하는 것은 어렵다고 봅니다. 홍수조절을 위해 서해갑문을 비롯한 갑문이 곳곳에 건설이 되었지만 그것을 가동시키기 위한 동력은 제대로 확보돼 있는지도 의문입니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
기자 박정우,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