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보릿고개] ④ 문 걸어 잠그고 도움의 손길 ‘외면’
2023.04.21
앵커: 북한의 식량난을 걱정하는 국제사회는 대북제재에서 인도주의 지원은 면제하면서까지 북한에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하지만 북한은 이를 외면하고, 국경의 문을 굳게 닫고 있는데요.
미국 정부에서도 북한에서 요청이 없는 한 인도주의 지원의 명분이 없다며, 그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RFA 긴급진단, 북한 보릿고개] 오늘은 네 번째 시간으로 ‘돕겠다’는 국제사회와 ‘모르쇠’로 일관하며 이를 외면하는 북한의 상황을 한덕인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대북 민간단체 “돕겠다는데…, 문제는 북한”
유엔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달 공개한 분기별 보고서에서 북한을 ‘식량에 대한 접근성이 떨어지는 국가’로 분류하고 외부 지원이 필요한 45개국에 포함시켰습니다.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평균 이하를 기록함으로써 식량 안보가 더 취약할 것으로 전망하고, 북한을 17년 연속 ‘외부로부터 식량 지원이 필요한 국가’로 지정한 겁니다.
많은 전문가들도 북한이 보릿고개의 식량난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국제사회의 지원이 반드시 필요하다고 입을 모읍니다. 인도주의 지원이, 당장 식량이 필요한 북한 주민들을 도울 수 있는 최선책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국제기구와 대북민간단체들에 따르면 문제는 ‘북한’입니다.
특히 유엔과 각국 정부가 북한 주민을 위한 인도적 지원을 위해 대북제재까지 면제하고 도움의 손길을 내밀었지만, 몇몇 예외를 제외하곤 북한이 문을 열지 않는다는 겁니다.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의 취재에 따르면 유엔 대북제재위원회가 코로나 대유행 기간에도 유엔기구와 민간단체들의 대북 인도적 사업에 대해 제재를 면제했지만, 실제 이행된 지원 사업은 그리 많지 않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 예로 핀란드의 민간단체인 ‘핀 처치 에이드(Finn Church Aid)’는 2020년 6월에 제재 면제 승인을 받았지만,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로 3년 가까이 지원을 못하고 있습니다.
또 유엔 세계식량계획도 북한 당국의 식량 지원 요청이 있었지만, 북한 당국과 식량 분배, 감시 절차에 관해 조율이 잘 이뤄지지 않아 실행에 옮기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또 익명을 요구한 한 민간단체 관계자도 최근(7일) RFA에 대북 인도적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북한 당국의 승인”이라며 “(국경을 열지 않는) 이 상황이 변하긴 어려울 것으로 본다”고 전망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마커스 놀랜드 피터슨국제경제연구소(PIIE) 부소장도 (11일) RFA에 북한이 최근까지 중국과 러시아 등 매우 제한적인 국가로부터 식량 수입과 지원을 수용하고 있는 점을 꼬집었습니다.
[마커스 놀랜드] 그간 북한이 보여온 외부의 식량 지원에 대한 입장은 코로나 대유행 기간 국제사회의 백신지원 제안에서 보인 태도와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은 코로나 기간에도 국제사회로부터 백신을 얻는 데 관심이 없어 보였죠. 따라서 북한 주민들이 마주한 식량부족 문제의 뿌리는 그저 책임을 지지 않는(unaccountable) 정권에 있습니다.
지난 4월 16일부터 18일까지 일본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외무장관 회의에서 채택된 공동성명에서도 각국 장관들은 “북한이 심각한 인도주의 위기에 직면하고 있는 것에 깊은 우려를 표하며, 북한 정부가 인권을 존중하고, 국제 인도주의 단체의 접근을 용이하게 할 것을 촉구한다”고 강조했습니다.
미 의회, 대북 인도지원 법안 재추진 움직임
미국 연방의회에서도 대북 인도적 지원을 수월하게 하려는 노력이 엿보입니다.
지난 117대 회기 때는 상∙하원에서 ‘대북 인도지원 강화 법안’이 발의됐다가 뚜렷한 진전을 이루지 못하고 폐기됐지만, 올해 새로 출범한 118대 회기에서도 관련 법안을 계속 추진할 것으로 예상됩니다.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입법을 추진해온 민간단체 ‘위민크로스DMZ’, 미국친우봉사회(AFSC), 메노나이트중앙위원회 등은 (18일) RFA에 오는 6월 초, 한 주 간(5~9일) ‘한반도평화주간’이라 불리는 입법 청원 활동을 계획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한반도평화주간’ 동안 미 전역에서 모인 참가자들이 의회 사무실 관계자들을 만나 ‘한반도 평화법안’, ‘대북 인도지원 강화 법안’, ‘한국전 이산가족 상봉 추진 법안’ 등에 대한 지지를 호소할 예정으로 알려졌습니다.
미국의 대외원조 기관인 국제개발처(USAID)도 “북한 주민들을 위해 미국 정부가 인도적 지원을 재개할 계획이 있느냐”는 (3월3일)자유아시아방송의 질의에 “미국은 북한 주민의 안녕과 인도주의 상황에 대해 깊은 우려를 갖고 있다”고 답했습니다.
다만 북한에서 아무런 지원 요청 기록이 없고, 미국 정부의 인도주의 지원을 위해 요구되는 항목 중 하나인 ‘수혜 국가로부터의 지원 요청’이 없는 관계로 실제 지원에 나설 근거와 명분이 없는 상황이라고 국제개발처는 설명했습니다.
이와 관련해 정 박 미 국무부 대북정책 특별부대표도 (20일) 자유아시아방송과 한 회견에서 “미국 정부가 대북 인도적 지원에 관한 의사를 분명히 밝혔지만, 실제 이뤄지지 않은 책임은 북한에 있다”고 꼬집었습니다.
[정 박] 우리는 북한의 인도주의 상황을 도우려 하고, 대북지원을 촉진하기 위해 노력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대북지원단체들의 유엔 대북제재 면제 신청 과정을 신속히 하기 위한 노력을 계속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2021년 대북정책 검토에서 북한의 핵∙미사일 상황과 관계없이 대북 인도적 지원을 돕겠다는 점을 분명히 했습니다. 하지만 결국, 북한 당국이 인도적 지원에 대한 책임을 지는 데 실패한 겁니다.
국제사회 “북, 인도적 지원 수용해야”
많은 전문가들은 북한이 식량 부족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외부 지원의 수용이 필요하다고 거듭 강조합니다.
마커스 놀랜드 부소장은 북한의 핵미사일 개발에 대한 국제사회의 대북제재 속에서도 인도주의적 측면에서 식량 원조를 더 수월하게 할 수 있는 몇 가지 방법이 있을 것으로 본다고 말했습니다.
문제는 북한이 외부의 지원을 받아들일 의사가 없고, 잇따른 미사일 시험 발사로 국제사회에 대한 군사적 긴장과 위협을 증대하는 상황에서 사실상 이런 방안을 추진하기는 어렵다고 놀랜드 부소장은 지적했습니다.
유럽연합 이사회는 지난달 말(31일) 낸 보도자료에서 북한에 대한 인도주의적 지원을 제재 대상에서 면제한다고 밝혔고, 유엔 안전보장이사회도 지난달 23일, 대북제재위원회 전문가단의 임기를 1년 연장하는 결의안을 통과시키면서, 대북제재가 북한 주민의 삶에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라는 문구도 유지했습니다.
엘리자베스 살몬 유엔 북한인권 특별보고관도 지난달 21일 유엔 인권위 제52차 회의에서 발표한 북한인권상황 특별보고서에서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지원을 받아 모든 주민이 굶주리지 않는 권리를 실현할 것”을 강조하는 등 전 세계는 북한을 향해 도움의 손길을 내밀고 있습니다.
특히 보릿고개 시기를 맞아 식량난에 대한 우려와 관심이 커지는 가운데, 북한 당국도 주민들을 위해 국제사회가 내민 손을 ‘모르쇠’로만 일관하지 말아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습니다.
기자 한덕인,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