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북한] ① 곡물 생산량 증가에도 식량 부족 여전

0:00 / 0:00

앵커 :지난해 북한에서 쌀과 옥수수 등 곡물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증가한 것으로 평가됐지만, 올해 북한의 식량 상황은 여전히 나쁠 것으로 전망됩니다. 북한 당국이 국가 보유 식량을 확보하는 데 주력하면서 시장 거래를 강력히 단속하기 때문인데요.

이와 함께 북중, 북러 국경 개방으로 북한 경제가 회복세를 보이고 있지만, 아직 활발한 물적∙인적 교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는 점에서 올해 전면적인 국경 개방 여부가 관건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습니다.

[2024 북한] 오늘은 첫 번째 순서로 북한의 식량 상황과 경제 전망을 천소람 기자가 보도합니다.

‘곡물 생산 목표량’에는 미달... 시장 거래 단속은 강화

지난해 주요 경제 목표로 ‘12개 고지’를 제시하면서 그중 알곡 생산을 첫 번째로 정한 북한.

한국 농촌진흥청에 따르면 2023년 북한의 쌀과 옥수수 등 식량작물 생산량은 전년보다 31만 톤, 6.9% 증가한 약 482만 톤으로 추정됩니다.

지난해 북한 날씨와 기온 등이 농업에 유리한 환경이었고, 대규모 자연재해가 없었기 때문에 식량작물 생산량이 증가할 수 있었다는 게 농업 전문가들의 평가입니다. 적절한 시점에 비도 잘 내렸고, 일조율도 잘 맞아떨어졌다는 겁니다.

실제로 조선중앙통신과 노동신문 등 북한 관영매체들도 가을걷이가 한창인 지난해 11월, “전년도보다 작황이 좋다”고 잇따라 보도했으며, 일본의 대북 매체인 ‘아시아프레스’도 지난해 일부 협동농장의 옥수수 수확량이 증가했는데, 그만큼 북한에서 ‘농업 제일주의’를 최우선 정책으로 내세웠기 때문으로 분석했습니다.

하지만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도보다 늘었음에도 여전히 목표량에는 도달하지 못했다는 평가도 있습니다.

탈북민 출신 북한 농업 전문가인 조충희 굿파머스 연구소장은 최근(12월 18일) 자유아시아방송에(RFA) “북한에서 곡물을 식량과 식품 생산 등에 이용하려면 최소 600만 톤 이상이 필요한데, 500만 톤을 넘지 못하면서 목표치에 도달하지 못했다”고 지적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가 추정한 북한의 연간 필요량도 576만 톤입니다.

[조충희] 북한이 농업 생산에 전당, 전국, 전민을 총동원하고 투자했다고 하는데요. 사람에 대한 총동원은 제대로 진행됐지만, 사실상 투자는 크게 이뤄지지 않았기 때문에 (목표량을) 달성하지 못했죠. 돈이 없으니까요. 실질적으로 지난해 북한 날씨와 기온이 농업생산에 매우 유리한 환경이었음에도 (생산을) 더할 수 있는 것을 못 했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기후를 제외하고는 우량 품종과 농약, 비료, 농기계 등의 부족, 미흡한 밭 관수 등이 알곡 생산에 좋은 환경은 아니었다는 겁니다.

0102-2.jpeg
북한 조선중앙TV가 평안북도 곽산군에서 지난해 9월 2일 첫 추수가 진행된 소식을 보도했다. [조선중앙TV 화면] / 연합뉴스

따라서 농업 전문가들은 북한 주민이 직면한 식량난이 올해도 한동안 지속될 것으로 내다봤습니다.

한국 농어촌공사 농어촌연구원의 김혁 선임연구원은 (12월 19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해 곡물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주민을 위한 공급보다 국가 보유 식량을 최대한 많이 확보하려는 움직임이 보였다”고 진단했습니다.

[김혁] 2024년 상반기는 만만치 않을 겁니다. 북한이 지금 곡물 통제를 굉장히 강화하는 상황입니다. 특히 시장으로 유출되는 곡물을 적극적으로 통제하는 모습들이 한동안 유지될 텐데요. 이렇게 되면 시장 기능이 약화하고, 시장 기능이 약화하게 되면 실질적으로 쌀 가격이 상승할 가능성이 높습니다. 그래서 일반 주민들이 생활하는 데 상당한 어려움이 있을 수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 대표도 지난해 11월 자유아시아방송에 “기본적으로 국가 보유 식량이 모자란다”며 북한 당국이 양곡판매소가 아닌 시장에서 식량 거래를 강력히 단속하고 있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지난해) 협동농장에서 감자와 옥수수 수확이 다 끝났는데, 수확 시기에 맞춰 엄청난 농장 통제를 시작했습니다. 농장에서 수확한 식량이 유출되는 것을 매우 강하게 통제하고 있습니다. 다시 말해 시장과 암거래에 대한 경계죠. 왜냐하면 양곡판매소에서 식량을 판매하는데, 어떨 때는 없으니까 암거래 장사꾼들이 식량 거래의 주도권을 갖기도 하거든요. 결과적으로 말씀드리면, 암거래를 포함한 시장에서 식량 유통에 변동이 커서 가격에도 심한 변화가 있습니다.

결국, 식량 분배와 시장 활동 등에 관한 제도적 변화가 없다면 올해도 북한 주민의 식량 사정은 나아지기 어렵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전망입니다.

[조충희] 신년은 기후가 안 좋아지고, 특히 현재 겨울이 추워서 가을에 파종한 밀보리 상태가 안 좋아질 것으로 보이는데요. 그런 상황에서 (지난해) 방식을 답습해선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새로운 변화가 있지 않으면 계속 (식량) 부족 상태로 있지 않을까 생각합니다.

0102-3.jpg
북한 연말 전원회의 종료 '2024년도 투쟁과업' 제시 북한은 지난해 12월 26일부터 개최된 연말 전원회의가 30일 결속됐다고 조선중앙통신이 31일 보도했다. / 연합뉴스 (김준영/YNA)

“북한 경제 회복세… 국경 전면 개방이 관건”

북한은 코로나 대유행에 따른 국경봉쇄로 심각한 경제난을 겪었습니다.

특히 코로나 기간 수입 물자가 들어오지 못해 시장 활동이 위축됐고, 시장에 의존하던 주민들이 큰 타격을 입으면서 취약계층은 더 어려워지는 구조가 됐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반면, 권력과 자본을 움켜쥔 계층은 북중 국경이 봉쇄된 상황에도 화물열차나 선박을 이용한 무역에 관여하면서 부를 축적했는데, 코로나를 계기로 북한에서 빈익빈 부익부 현상이 더 악화했다는 분석도 제기됩니다.

그러던 중 지난해 8월 코로나 방역 조치의 완화에 따라 약 3년 7개월 만에 공식적으로 국경을 개방했지만, 북한의 경제 지표는 아직 회복 추세에 있다고 정은이 통일연구원 연구위원은 진단했습니다.

[정은이] 아직 트럭의 이동이 활발하지 않습니다. 인적 교류도 그렇게 활발하지 않고요. 지금 겨우 중국에 있는 북한 노동자들이 조금씩 되돌아가는 상황인데요. 그래서 완전한 회복은 아니지만, 회복의 길목에 들어섰다고 볼 수 있습니다. 환율도 다시 회복했잖아요. 아마 이대로 가면 2024년은 코로나가 남긴 상처와 충격이 더 옅어지지 않을까 생각하고 있습니다.

또 정 연구위원은 올해 북중 또는 북러 간 경제 협력을, 북한 경제의 성패를 가늠할 수 있는 중요한 요인으로 꼽았습니다.

[정은이] 북한 대외무역에서 북러 관계가 차지하는 비중은 굉장히 낮지만, 러시아가 식량이나 에너지는 풍부하잖아요. 예를 들어 북한이 러시아에 무기 지원을 하면 그 대가로 러시아는 풍부하게 보유한 것을 굳이 안 줄 필요가 없는데요. 북한이 정말 필요한 것은 에너지와 곡물이고, 특히 곡물 같은 경우 북한의 장마당 물가를 결정하는 척도잖아요. 그래서 그 부분이 가장 중요할 것 같습니다.

한국 통일의료연구센터의 안경수 센터장도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올해 북한이 외국인 관광객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입국을 허용할 때 전면적 국경 개방이 됐음을 평가할 수 있다고 말한 바 있습니다.

[안경수] 지금까지는 항공, 철도, 버스 등의 교통편으로 해외에 나갔던 외교관, 성원들, 북한 기관 요원, 단체, 유학생들을 복귀시키고, 대체 인력을 다시 출국시키는 상황입니다. 계획적으로 입국하고 출국하는 상황으로 보입니다. 중요한 것은 앞으로 북한에 들어가고자 하는 자유의지, 즉 외국인 관광객처럼 불특정 다수에 대한 북한 입국이 전면적으로 허용돼야 전면적인 국경 개방이 됐다고 평가할 수 있습니다. 내년 4월에 있을 평양 국제 마라톤 대회가 전면적인 국경 개방의 기준점이 될 수 있다고 봅니다.

0102-4.jpg
평양 시민들이 1월 1일 새해를 맞아 김일성, 김정일 부자에 경의를 표하기 위해 이동하고 있다. / AP

“식량난 해결책 실마리는 외부에서 찾아야”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증가했지만,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는 지난해 11월 발표한 ‘작황 전망과 식량 상황 분기 보고서’에서 북한을 외부 식량 지원이 필요한 46개 나라에 포함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가 해당 조사를 시작한 이래 17년 연속입니다.

농업 전문가들은 북한 자체적으로 식량난을 해결할 수 없기 때문에 결국, 외부에서 해결책을 찾아야 한다고 입을 모읍니다.

[조충희] 북한의 식량난 해결 방법은 한 마디로 수입이 필요합니다. 북한이 갖고 있는 수준에서 자력갱생이나 과학기술의 발전을 통해 부족한 부분을 만들어 낸다는 것은, 앞으로 정말 많은 투자가 이뤄진다면 모르겠지만, 힘듭니다. 북한 국토의 85%가 산으로 되어 있고, 현재 경지 면적의 거의 50~60%도 산의 경사지로 되어 있습니다. 워낙 토심이 약하고 경사가 급한 땅에서 나오는 농작물로 부족한 식량 문제를 해결한다는 것은 말이 안 됩니다.

[김혁] 자체적으로 하려면 생산 능력이 올라가야 하는데, 생산 능력을 끌어올리기 위해서는 첫 번째는 기계화가 필요하고, 농자재가 필요합니다. 그다음 기반 시설들이 많이 확충돼야 합니다. 지금은 굉장히 부족한 상황이거든요. 이런 부분들을 계속해서 끌어올리지 못하면 결국 생산성은 계속해서 정체될 수밖에 없는 거죠.

북한 협동농장 농장원에 따르면 지난해 북한의 곡물 생산량이 전년보다 증가했어도 예년보다 훨씬 낫다고는 평가할 수 없습니다.

게다가 늘어난 수확량도 주민들에게 분배하기보다 국가 소유가 될 가능성이 커서 올해 북한의 식량 상황은 여전히 암울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뿐만 아니라 북한 당국이 국제사회의 인도적 지원의 손길에도 소극적인 가운데 쌀과 옥수수 등 곡물의 자유로운 시장 거래도 통제하고 있어 식량을 비롯한 북한 주민의 팍팍한 살림살이는 한동안 계속될 것으로 예상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