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지난 달 서울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겨울옷을 입은 채 백골 상태로 발견된 탈북민의 소식에 한국 내 탈북민 사회는 충격에 휩싸였습니다. 고인의 통장에는 고작 40만 원이 남아 있었던 것으로 확인됐습니다. 고인은 생전 다른 탈북민의 취업, 심리상담을 도왔기에 자신의 어려움을 쉽게 내비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임대아파트 한쪽에는 고인을 위한 분향소가 설치됐습니다. 천소람 기자가 현장에 다녀왔습니다.
[장세율]통장에는 40여만 원이 남았다고 하더라고요. 관리비는 총 수백만 원 이거든요. 한참 모자란 금액이죠. 이분은 그때부터 의지, 희망을 잃었을 수도 있어요.
지난 달 19일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된 49세 탈북민 김 모 씨.
관리사무소가 확인한 고인의 통장에는 밀린 관리비와 월세를 납부하기엔 턱없이 모자란 돈만 남아있었습니다.
아파트 한 쪽에 마련된 고인의 분향소

지난 1일, 흐린 날씨 속 노랗게 물든 단풍잎이 떨어진 길을 따라 걷자 드러나는 한 임대아파트.
아파트 후문에 도착하자 천막이 쳐진 분향소가 눈에 들어옵니다. 제단 위 흰 국화꽃 속에 활짝 웃는 고인의 모습이 담긴 영정 사진이 놓였습니다.
고인의 쓸쓸한 마지막을 배웅하기 위해 탈북민 단체가 마련한 분향소입니다.
전국탈북민연합회 장세율 상임대표는 생전 만났던 고인의 모습을 떠올립니다.
[장세율]얼굴은 두 번 정도 봤어요. 남북하나재단 상담사로 있을 때요. 많은 분들이 그분이 상담사를 했기 때문에 탈북민들에게는 추억이 깊은 분이죠. 뉴스에서 백골 시신이 나왔다고 들어서 탈북(민) 사회가 충격이 컸습니다. 우리 지역 탈북민에게 전화하니까, 온 가족의 상담을 담당했었다고 말했고요. 탈북민 사회가 혈혈단신인데…. 제대로 발견을 못 해서 1년 동안 방치된 건 마음이 아프지만 어쩔 수 없고, 이제라도 조금 달래줘야 하지 않냐고 해서 이야기를 하던 중에 (분향소를 마련하게 됐습니다).
생전, 성공적으로 국내에 정착한 탈북민으로 언론에 소개되기도 한 김 씨이기에 탈북민 사회에서 충격은 더 컸습니다.
[장세율]충격이죠, 탈북민 사회는. 어떻게 1년 넘도록 시신을 방치할 수 있냐는 반응입니다. 한국에서도 잘 못 들어본 뉴스잖아요. 선진국 반열에 든 대한민국에서, 집에서 죽은 사람을 1년 넘게 발견하지 못했다는 것 자체가 그만큼 탈북민에 대한 사회적 관심도 없고, 방치한다는 느낌….
분향소를 정리하던 탈북민 박운병 씨는 고인의 쓸쓸한 마지막을 말하며 결국 눈물을 보입니다.
[박운병]뉴스를 보면 우리 사람이잖아요. 대한민국에서 잘 살고, 자유를 위해 찾아왔는데 마지막 결과가 이렇게 되니까 우리 마음이 다 똑같이 안 좋죠. 북한 사람들이 고생 없이 넘어온 거 아니고 어려움, 고난을 통해 왔잖아요. 사람같이 못살고, 압박도 받고 하다가 넘어온 건데…. 그런 고통 속에서 온 사람들이 아무도 모르게 죽었다는 게 그만큼 새터민에 대한 대책이 잘 안됐다는 걸 보여준다고 생각해요. 관리가 잘 됐다면 이런 일이 없죠.
고인을 만난 적이 있는 탈북민 김인희(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요청) 씨는 같은 임대아파트 주민입니다.
[김인희]한 번 본 적 있어요. 설문조사 한다고 집에 와서 한 적 있어요. 곱게 생겼고 점잖더라고요. 아무래도 마음이 안 좋죠. 탈북자가 죽으면 우리도 기분이 안 좋죠. 이 좋은 데 와서 오래 살아야지. 아직도 한참 젊은 나이인데, 왜 그렇게 빨리 운명했을까….
김 씨는 2002년 탈북한 뒤, 2010년부터 탈북민의 정착을 돕는 상담가로 일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신의 어려움을 탈북민 사회에 토로하기 어려웠을 것이라 장 대표는 말합니다.
[장세율]지역 탈북민들도 가장 안타까운 점이 본인이 탈북민들 상담을 해주고 정착에 도움을 주던 분이 자신의 어려움을 탈북민 사회에 토로하기 어려웠을 거라 생각합니다. 자존심도 상하고, 지성인인데다가. 그런 상황이니까 전화번호도 바꾸고, 완전히 소통을 끊었는데. 탈북민들이 생활이 어려워지면 소통을 안 해요. 움츠려서.
2020년 후반기부터 임대료와 관리비가 밀렸던 김 씨.
고인의 마지막 모습이 목격된 건 김 씨가 직접 관리비 납부 통보장을 받은 2021년 3월이었습니다.
[장세율] 여기 관리사무소에서 확인한 바에 의하면, 2020년 11월부터 관리비를 못 냈어요. 이제는 2년이 됐잖아요. (관리비가 밀리면) 통보장을 보내는데, 통보장이 본인에게만 수령이 가능한 게 있습니다. 2021년 3월에 최종 본인에게 통보됐다고 합니다. 그 다음부터는 단절이에요.
1년 반 동안 완전히 사회와 차단됐던 김 씨. 그가 발견된 장소는 침대 위가 아닌 바닥이었습니다.
[장세율] 경찰이 들어가 보니, 침대에 누워있는 게 아니고, 침대에서 멀리 떨어져 있다고 하더라고요. 겨울옷을 입고 있는 게 보였고, 그 안에는 해골이 있었어요. 굶어 죽거나 했으면 침대에 누워있어야 하는데. 이분은 일단 나오려고 시도를 했는지 밖에서 들어간 건지 침대는 아니었어요. 사람이 진짜 백골이 됐대요. 살집이 하나도 없고, 뼈가 우르르 나왔대요. 그 썩는 동안 냄새가 안 났다는 점이 수수께끼라고 생각하고요. 지역주민들도 냄새가 엄청났을 텐데. 한여름도 지났는데.
이웃 주민 , "1년 동안 발견 안된 점 이해안가"

고인과 같은 아파트에 사는 이웃 주민들도 믿을 수 없다고 말합니다.
[이웃 주민 A씨]마음이 안 좋지. 더군다나 저도 혼자 사는데. 우편물이 쌓여 있으면 이상이 있다는 거잖아요. 옆집에서 모르는 것도 이해가 안 가고. 저도 나이가 있으니, 열쇠를 경비아저씨에게 맡겼어요. 하루라도 안 보이면 문 따고 열어보라고. 지난 여름에 얼마나 더웠어요. 구더기나 벌레도 나왔을 텐데, 그걸 모른다는 게 나는 이해가 안 돼요.
이 임대아파트에서 고독사가 처음 발생한 것은 아니지만, 1년 가까이 발견하지 못한 적은 없었다고 덧붙입니다.
[이웃 주민 A씨]내가 여기 2층에 사는데, 1층 엘리베이터 옆집에서 사람이 죽었는데 화장실에서 냄새가 많이 났어요. 누가 죽었나 요양 선생님한테 찾아보라고 했었어요. 시체가 나가고 나니까 냄새가 안 나더라고요. 그 시체는 한 일주일 됐었어요. 1년 됐는데, 냄새가 모른다는 게 말이 되냐고요.
[이웃 주민 B씨]안됐지. 젊은 사람이고, 어찌 저렇게 갔는지…. 가까운 이웃이 왜 몰랐을까 싶어요. 깜짝 놀랐죠. 1~2달도 아니고 1년이 다 되어가도록. 뉴스 보니까 (문 앞에) 딱지가 붙어 있던데요. 관리비도 많이 밀렸다고 하고. 3달 밀리면 주택 공사에서 가고 그런다는데, 왜 그렇게 놔뒀는지…. (관리비를 안 낸지) 3달이면 경고장이 가고, 끊긴다고 들었어요.

여러 고지서가 붙어있던 고인의 집 문과 우편물이 수북이 쌓여있던 우편함은 이미 고인의 흔적을 지우듯 깨끗이 정리돼 있었습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