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우울증을 앓던 탈북 청년의 사망, 고독사 뒤 1년 만에 발견된 탈북 여성, 그리고 탈북민 모자의 아사 등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의 사망 사건이 근절되지 않고 있습니다. 탈북민 단체와 심리상담 전문가들은 정부의 지속적인 탈북민 관리와 민간단체와 협력이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최근 서울 양천구의 한 임대아파트에서 백골 상태로 발견된 49세 탈북 여성 김 모 씨.
정확한 사인은 아직 밝혀지지 않았지만, 겨울옷을 입은 채로 발견된 것으로 미뤄 사망 뒤 최소 1년이 넘는 기간 동안 방치됐던 걸로 추측되고 있습니다.
앞서 지난 2019년 서울 관악구에서 발생한 탈북민 모자 아사 사건과 불과 며칠 전(9일) 발생한 우울증 진단을 받고 치료받아온 탈북 청년 사망 등 탈북민의 생활고, 우울증으로 인한 사망사건과 고독사는 어제오늘의 일이 아닙니다.
[오은경] 안쓰럽고. 얼마나 외로웠을까. 그들이 겪은 외로움이라는 게 험난한 여정을 거쳐 탈북해 한국에 왔지만, 해결되지 않은 채 또 홀로 간 점이 마음이 안 좋습니다. 혼자 왔다가 혼자 간 거잖아요.
상담심리 전문가로 다수의 북한 이탈 주민들을 상담해온 공군 보라매리더십센터 오은경 교수는 안타까운 마음을 표현합니다.
어떤 이유에서 이런 일이 발생했을까 .
[오은경]자신은 정작 누군가를 도와주는 일로 열심히 활동했지만, 나는 폐 끼치기 싫고 누군가에게 내 힘든 점은 남에게 말하기 어려운 사회적 결핍, 관계의 결핍이 있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도움을 구하고 힘들다고 말하기 어려운 여건이지 않았을까 생각합니다.
탈북민의 심리, 취업을 돕고 상담사로 일하기도 했기에 더 자신의 어려움을 공유하지 못했을 거라는 추측입니다.
[오은경]성공적으로 잘 정착한 사람 중 하나였기 때문에 더 말하기 어려운 상황이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보는 많았고 무엇보다 어디에 어떻게 도움을 받고 지원받으면 된다는 점은 알았지만, 성공적으로 정착한 탈북민으로 언론에 소개됐는데, 내가 힘들다고 말하는 건 그동안 내가 쌓아왔던 나의 이미지를 흔들어 놓는 일이기도 하니까. 도움을 받아야 할 때 도움받지 못하게 하는 요인이 되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탈북민 지원 단체인 새롭고 하나된 조국을 위한 모임(새조위)의 신미녀 대표는 탈북민이 상대적으로 고립된 점에 주목합니다.
[ 신미녀 ] 우리는 학교에 다니며 동창도 있고 지인도 있고 직업적, 사회적 배경 등 다양한 형태로 인적 네트워크(관계망)가 있지만, 이분들은 그게 없다는 거죠. 그래서 탈북민들만이 아닌 일반 국민들과 심적으로 깊이 교류할 수 있는 인적 네트워크가 제도적으로 만들어졌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서재평 탈북자동지회 회장은 관리 문제를 지적합니다.
[서재평]위기가구 안에 들어갔음에도 불구하고 관리를 못 한 거잖아요. 담당 하나센터도 있었고, 지역에서도 놓친 거죠. 또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하는 점이 신변보호관에 대한 문제인데요. 경찰이 도와줬으면 그 친구 상황을 조금 더 빨리 인지하고 사망도 더 빨리 알 수 있었는데, 이분은 신변 보호를 해제했어요. 이번에도 신변보호관이 있었으면 다른 평가가 나왔겠고, 이런 비극적인 사태가 나오지 않았을 겁니다. 신변보호관은 언제든지 조치를 취할 수 있는 부분이 있어요. 아파트도 그렇고, 누구도 강제로 문을 열 수 있는 상황이 아니란 말이에요.

2002년 한국에 입국해 20년이 가까이 한국에서 생활한 탈북자 김 모 씨.
그런데도 위기감을 느낄 수 있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고 오은경 교수는 강조합니다.
[오은경]양천구 (김 씨는) 한국에 온 지 10년이 훨씬 넘었잖아요. 그런데도 여전히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한번 점검해봐야 할 중요한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보다 더, 깊이 있는 관심이 필요하다는 겁니다.
[신미녀]탈북민의 특징이 잠재적인 위험 요소가 존재하는데, 외부 사람들은 더더욱 모르고, 본인조차도 그것을 깊이 인식을 못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슬프다, 괴롭다, 가족을 두고 떠난 게 죄책감 등이 있을 수 있잖아요. 그런 것들이 굉장히 위험한 수준으로 간다는 걸 간과하고. 이런 요인들이 누적돼서 위험수위를 넘었을 때 그때는 이미 늦은 시기입니다. 우리가 그분들을 대하면서 끊임없이 이분들의 (위험 신호를) 알아차리게 해주고, 외부 전문가들이 위험 요소를 발견하고 후속 조치를 하고 이런 것들이 체계적으로 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된 것 같아요.
이러한 일이 되풀이되지 않기 위해 남겨진 숙제는 무엇일까 .
신미녀 대표는 민간단체의 한계를 강조하며 지속 가능한 관리 체계가 필요하다고 강조합니다.
[신미녀] 시민단체는 예산이 부족합니다. (정부와 진행하는 사업은) 짧게는 6개월, 10개월밖에 안 돼요. 근데 탈북민 문제는 이렇게 짧은 시기에 해결이 안 돼요. 몇 년이 됐든, 그 문제 요소가 해소될 때까지 건강한 삶을 살 수 있을 때까지 끊임없이 지속돼야 하는데, 그게 안 되는 거죠. 예산 문제가 크니까. 그게 마음이 아픕니다.
결국, 위기 대상자의 발굴과 그 대상자에 대한 맞춤형 지원이 얼마나 잘 연계가 되는지 중요하다는 겁니다.
[신미녀]지역에는 다양한 방법으로 탈북민을 지원하는 민간단체가 있습니다. 그 조직과 인적 망을 통한 위기 발굴이 필요합니다. 하나센터로만은 역부족이에요. 인원 문제도 있고. 잠재적으로 위기를 가지고 있는 분이 건강하게 다니시는 분들도 계시지만 은둔형도 많아요. 그 은둔형은 인적망을 통한 다양한 방법을 통하지 않으면 발굴이 어렵습니다. 민간단체들과 조직적인 소통이 필요하고, 이런 발굴이 됐다고 하더라도 이분들이 후속으로 어떻게 지원을 할 것인가가 문제입니다.
결국, 정부 중심의 개편과 고위험자를 우선순위에 두는, 더 촘촘한 체계가 필요하다는 겁니다.
[오은경]탈북민 전체 명단을 가지고 있으면 1순위는 나이가 많은데 직장이 없는 사람, 지병이 있는 사람, 연체가 있는 사람 등 고 위기인 사람들, 중간 위기인 사람, 취약계층이지만 도움을 받지 못하는 사람은 없는지 등 체계화를 통해 더 촘촘하게 해서 다시는 그 사람들이 복지 사각지대에서 홀로 외롭게 있지는 않은지를 돌아볼 필요가 있을 거 같아요.
이러한 관리를 정부 부처에서 모두 하기엔 한계가 있기에 지역마다 탈북민을 관리하는 지역 하나센터와 민간단체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전문가들은 강조합니다.
[서재평] 지금 전국단위로 하나센터가 있는데. 하나센터가 일일이 다 관리하기는 힘들고, 정부 지자체별로 갖고 있는 복지시스템(체계), 사각시스템 등을 탈북민에게 집중할 수 있도록 지자체와 통일부가 손을 잡고 영향을 키워서 위기가구 찾는 시스템을 만들어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에서 삶, 중국에서 삶을 통해 한국에 들어올 때 많은 형태의 숙제를 안고 들어온 탈북민.
그리고 그 숙제를 풀지 못하고 ‘한국’이라는 새로운 사회에서 새로운 삶을 구축하고 있는 그들이기에 많은 숙제가 발생되고 있다고 신미녀 대표는 지적합니다.
[신미녀]중첩된 이런 숙제를 개인 혹은 단체가 (해결하기엔)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시스템이 (정부 차원에서) 면밀히 보고 재구축되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야 재발이 없을 거예요.
“탈북자들은 남한 사회에 빨리 적응하고 싶은 마음에 속병을 드러내지 못하면서 위축되고, 남한 사람들은 탈북자들의 소극적인 태도를 탓하며 점점 멀어져 간다.”
생전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김 씨가 한 말입니다.

[오은경] '바쁠 망'이라는 한자가 있습니다. '바쁠 망(忙)'은 '마음 심(心)'과 '망할 망(亡)'이 합쳐진 한자입니다. 바쁜 사회는 마음이 망하고 돌보기 어려운 사회이니까 우울, 자살, 불안, 공황 등 정신과적 문제를 경험하기 쉽고 부적응 같은 문제를 경험하기 쉽고, 또 서로를 돌보지 않게 되고 하잖아요. 시대의 흐름이기도 하지만, 바쁜 사회를 보여주는 모습인 것 같고….
결국 탈북민만의 문제가 아닌, 빠르게 변화해가는 사회 속 우리 모두가 겪는 일이기에 모두의 관심이 필요하다고 오은경 교수는 말합니다.
[오은경]고독사 문제는 탈북민의 문제만이 아니라 우리 사회에서도 고독사가 나오곤 하거든요. 우리 사회의 형식인 것 같아요. 무관심, 단절, 다른 사람의 고통을 헤아리기 어려운 여건들, 그리고 함께하길 원하지만, 또 먼저 선뜻 먼저 한 걸음 다가가기 어려워하는 마음들. 그런 것들이 같이 합쳐져 고독사가 나타나는 것 같습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