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벼랑끝에 내몰리는 북 여성들] ① “중국서 팔려가 강제결혼”
2021.07.28
앵커: 법의 사각지대에 놓인 탈북 여성들. 목숨을 걸고 자유를 찾아 북한을 떠난 뒤 쉽게 인신매매의 희생양이 되곤 하지만 강제 북송이 두려워 쉽게 도움을 요청하지도 못하는데요,
세계 인신매매 반대의 날(World Day Against Trafficking in Persons)을 맞아 RFA 자유아시아방송이 마련한 특별 기획 [벼랑끝에 내몰리는 북 여성들], 오늘은 첫 번째 시간으로 북한 여성들이 탈북 과정에서 인신매매 피해를 겪으면서 맞닥뜨리는 좌절감과 무력감, 그리고 고통을 박수영 기자가 살펴봤습니다.
[박금옥 씨] ‘우리 아기만큼은 나처럼 키우고 싶지 않다. 똑똑한 아이로, 돈 없어서 자기 나라 사람들하고도 못사는 그런 아이로 키우고 싶지 않다’(고 생각했죠).
2010년 인신매매에 연루돼 북중국경을 넘었던 박금옥씨가 그녀의 아들만큼은 본인과 같은 일을 겪지 않기를 바란다고 말했습니다. 그녀는 탈북 당시 가족들과 함께 살 돈을 벌기위해 고향을 떠났지만 가족과 다시 만날 수 없었습니다.
[박금옥 씨] 철석같이 믿었던 것이 중국에 가면 식당일을 한다고 믿었어요. ‘식당에 가서 일해서 거기서 돈을 벌어서 올 수 있다, 중국에는 식당에서 일하겠다고 하는 사람이 없다.’ 이렇게 북한에서 제일 초창기에 만났던 사람이 그렇게 말하니까 그 말을 믿었던 거죠.
2010년 당시 24살 꽃다운 나이의 박금옥 씨가 북한을 떠나야겠다고 결심한 건 가족들과 함께 모여 살 조그마한 방 한 칸이라도 마련해보려는 마음에서였습니다. 태어나자마자 가족들과 수용소에서 가족들과 생활해야 했던 그녀는 찢어질 듯한 가난 탓에 가족과 흩어져 살아야 했던 한을 풀기 위해 돈을 벌어야겠다고 결심했습니다.
하지만 탈북 중개인(브로커)을 따라 압록강을 건너 중국으로 도착한 뒤 듣게 된 말은 뜻밖이었습니다.
[박금옥 씨] 중국에 와서는 당연히 우리를 식당에 일 시키러 보내겠지 하고 그 분 따라가면 된다고 해서 따라가다 보니까 그분이 조선족이었고 한 분이 탈북민이었는데, 그 분이 얘기하기를 ‘너희는 이제 인신매매가 된 거다, 식당이 아니라 남자한테 팔려 가야 한다’ 이렇게 된 거죠.
[기자] ‘중국에 가면 돈 벌 수 있다’라고 한 사람은 누구였나요?
[박금옥 씨] 북한에 있는 분이었는데, 그 때 당시에는 인신매매하시는 분인 줄은 모르고 ‘그냥 저 사람이 좋은 일을 하시는 분이구나, 중국하고 연결해주시는 분이구나’ 이렇게 생각을 했는데. 알고 보니까 그분이 (인신매매) 브로커였던 거더라고요.
브로커는 국경지역 강가에서 중국으로 탈북한 여성이 돈을 벌어 넘겨주는 장면까지 직접 연출해 신뢰을 얻어낸 뒤 박 씨의 탈북을 부추겼습니다.
[박금옥 씨] 제가 직접 목격한 것은 (브로커가) 8살짜리 아이를 데리고 있었는데, 그 아이 엄마가 중국에 가 있다고 하면서,…그 아이를 북한에 두고 갔으니까 자기한테 돈을 보내주는 날이라고 하더라고요. 약속한 시각에 압록강으로 나가더니 서로 사인을 하고 그 남자아이를 데리고 나가서 그 강을 3분의 1 정도 중국 쪽에서 건너오고 저 소개해준 그 브로커 아줌마도 강가에 들어서다 보니까 중국 쪽에서 비닐봉지에 뭘 싸서 북한 쪽으로 던지더라고요. 와서 보니까 ‘중국 돈이다’ 이렇게 얘기를 해서. 그걸 눈으로 보다 보니까 ‘아 진짜 중국에 가면 돈을 벌 수 있네’ 이렇게 생각하고 탈북을 하게 된 거죠. 그걸 눈으로 목격을 했으니까.
북한에서 살 때 인신매매가 뭔지도 몰랐다고 털어놓는 박 씨는 탈북민들이 쉽게 인신매매의 표적이 될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기자] (탈북 당시) 인신매매의 위험성을 조금이라도 알고 계셨나요?
[박금옥 씨] 아뇨 없었어요. 전혀 없었어요. 북한에 있을 때는 인신매매가 뭔지도 몰랐고, 사람을 팔고 하는 것 자체도 몰랐던 거에요 저는. 그렇게 자주 왔다 갔다 한 것도 아닌데 어쩌다 거길 왔는데 걸려든 거고. 갑자기 큰돈을 벌 수 있다 하니까 국경을 넘어오게 된 거죠.
헛된 욕심을 부렸다는 자책도 잠시. 박 씨는 중국인 브로커 집에서 20일 가까이 머문 뒤 중국인 남성의 아내로 팔려가야 했습니다.
[박금옥 씨] 중국 시어머니한테 얘기 들은 게 ‘아들이 살짝 장애가 있어서 중국 여자를 데리고 살 형편이 안되니, 우리 아들한테도 여자 (소개) 시켜주소’ 해서 여자 하나를 해준 것이 저였고,… 팔려 가는 길 밖에 없었던 거죠.
중국 외딴 시골에서 장애를 가진 중국인 남편의 아내로 사는 삶은 녹록치 않았습니다. 팔려와 강제로 결혼한 신부가 도망이라도 갈까 감시의 눈초리 역시 박 씨을 항상 에워쌌습니다.
[박금옥 씨] 1년 정도는 저 혼자 시장을 나갈 수도 없었고. 그리고 자기네 시야에 항상 보이는데 있어야 하는데, 저도 사람인지라 주변 사람들을 만나서 친해지고 싶고 또 말도 배워야 하니까, … 집에 있지 않고 동네에 아기 엄마들이나 나이 비슷한 또래나 이런데 다니면서 사람이랑 친하려고 다니면 또 자기네들 시야에서 없어졌다고 온 동네를 ‘우리 며느리가 없어졌다고, 도망갔다고’ 이런 식으로 찾으러 다니고. 우리 집에서만 감시 대상이 아니라 (동네 주민들이) 북한 사람들을 감시하는 느낌을 받았어요.
[기자] 본인 말고도 강제결혼의 피해 여성이 있었나요?
[박금옥 씨] (그 동네에) 북한 여자가 4명이 있었는데, 오래된 여성분이 한 분이 있었고. 제가 팔려 온 뒤로 바로 옆에 옆에 집에 저보다 4살인가 많은 언니가 며칠 있다가 팔려 왔는데, 그 분 하고도 못 만나게 해서 저희는 몰래몰래 만나다가. 중국말을 어느 정도 배우고 나서는 ‘그 언니하고 나하고는 그냥 언니 동생 할 테니, 그냥 수다 떨려고 그 집하고 나하고 왔다 갔다 하는 건 허락해주세요’ 해서 이렇게 만나고 하는 것은 있었죠. 대신 같이 멀리 시장을 가던가 시내를 나간다던가 이건 절대 안 되고요. 도망갈까 봐, 네. 예전에 살던 (여자가) 아기를 낳고 도망갔대요. 그렇다 보니까 도망갈까 봐 감시를 했던 거죠.
강제결혼에 출산까지 강요당하고 온갖 집안 일도 도맡아 해야 하는 비참한 생활이었지만 도망은 꿈도 꾸지 못했다고 박 씨는 털어놓습니다. 탈북자 신분이었기 때문입니다.
[박금옥 씨] 브로커도 저한테 ‘네가 싫으면 언제든지 도망쳐, 내가 다른 데다가 팔아줄게’ 이렇게 얘기를 하는 거예요. 이렇게 얘기하니까, 나는 항상 돈이라는 것에 팔려 다니고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는 거예요. 중국이란 나라에서 내가 갈 수 있는 곳도 하나도 없는 거예요. 어디 가서 제가 뭘 잘못하면 ‘경찰에 신고한다’하다 보니까 항상 저는 북한 사람이니까 ‘나는 붙잡히면 북한으로 북송되는구나’라는 그런 생각을 하고 있고. 또 잊어버리고 만 하면 주위에서 ‘너는 북한 사람이니까 경찰에 신고하면 넌 잡혀가’ 이렇게 얘기하니까 (그곳에 머물렀던 거죠).
탈북자인 그녀를 보호해줄 수 있는 곳은 어디에도 없었습니다. 인신매매범들에 의해 강제로 팔려 온 그녀는 인간으로서 대우받기 보다는 물건으로 취급당했습니다. 브로커들에게 그녀는 돈 받고 팔 수 있는 상품에 불과했고, 그녀를 돈 주고 데려온 중국 사람들에게는 그저 아이를 낳아주고 일을 하는 대리모 혹은 농노에 불과했던 것입니다.
한국 북한인권정보센터의 북한인권기록보존소 김가영 국장은 박 씨의 경우처럼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에 쉽게 노출돼 왔다고 지적합니다.
[김가영 국장] 적지 않은 수의 북한 여성들은 ‘중국에서 좋은 일자리를 소개해주겠다’라는 브로커의 말에 속아 국경을 넘었다가 인신매매를 당하기도 하며, 탈북한 사실을 중국 공안에 신고해 북송시키겠다는 협박에 못 이겨 인신매매에 속수무책인 경우도 허다한 것으로 파악되고요.
김 국장은 (2021년 7월 기준) 북한인권기록보존소에 보고된 4천230건의 인신매매 사건 중 99.2%(4천 196건)가 탈북 혹은 돈벌이를 위해 불법으로 중국으로 건너간 북한 여성들이 겪은 피해라고 덧붙였습니다. 또 1990년대 후반 고난의 행군 이후 생활고로 인해 북·중 국경을 넘는 북한 주민이 급증함에 따라 인신매매 사건도 증가했다고 덧붙였습니다.
북한인권문제를 연구해온 민간단체인 한국미래이니셔티브가 (2019년 5월) 발간한 중국 내 북한 여성들에 대한 실태조사 보고서도 중국으로 탈북한 북한 여성 10명 중 6명 꼴로 성매매에 연루됐다고 밝혔습니다. 또 이 중 절반이 매춘을 강요받았고 30% 이상이 강제결혼, 15%가 인터넷 등 가상공간에서의 사이버 섹스를 강요받았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처럼 탈북 여성들이 인신매매 피해까지 당하고 있지만 북한 당국은 그들을 가혹한 고문과 구타로 처벌할 뿐입니다.
[김가영 국장] 무엇보다 북한 당국은 중국에서 인신매매를 당한 탈북민이 체포돼 북송될 경우, 인신매매로 인해 받은 피해를 치유하는 게 아니라 ‘탈북을 했었다’는 사실에 집중해 강제구금과 고문 그리고 중국인의 아이를 임신한 여성의 경우에는 강제 낙태까지 벌이고 있는 상황입니다.
지난해 유엔인권최고대표사무소(OHCHRP)에서 발표한 보고서(I Still Feel the Pain…)에 따르면 한 탈북자는 “강제 북송된 탈북 여성 중 한 명이 중국에서 아이를 임신했는데, 피가 섞인 아이라는 이유로 인민보안부에서 강제 낙태를 했다”고 증언했습니다. 다른 탈북자의 증언에 따르면, 한 탈북 여성은 임신 8개월 차에 낙태 수술을 받았고 적절한 치료나 처방전 없이 수용소에서 5일간 휴식 후 바로 강제노동에 동원됐습니다.
탈북자 출신 북한 인권운동가 박지현 씨는 피해자 중심의 치유방안이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합니다.
[박지현] 아직 국제사회가 여성들의 인신매매를 이야기하지만, 인신매매 생존자와 피해자들의 보호 방법을 내놓지 못하고 있어요. 사회의 잘못된 시스템으로 이뤄진 피해자잖아요. 이런 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전 세계가 나서서 이 문제를 언급하고 생존자의 이야기를 들어주고, 정신적 피해 보상보다는 우리가 정신적 치료도 도와줘야 하는 시스템이 나와야 하는데, 아직 국제사회는 피해자나 생존자의 입장이 아닌 유엔이나 NGO의 입장만 발표하거든요.
목숨을 걸고 탈북한 여성들이 인신매매의 덫에 빠져 신음하고 있지만 그들을 온전히 보듬고 상처를 치유할 방안 마련은 더디기만 합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박수영입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