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전쟁포로의 트라우마] “너무 야위어 다리뼈 보여”
2022.11.26
[왕대정] 지금의 전쟁은 옛날과 달라요. 옛날 전쟁은 군인이 총을 들고 공격을 하잖아요. 지금 우크라이나 전쟁은 거의 전투기와 포탄으로 도시를 파괴해버리죠. 전쟁은 일어나지 않은 것이 제일 좋지요. 상대를 죽이지 않으면 내가 죽으니까요.
[부인천] 전쟁은 해서는 안 되는 거예요. 매우 잔인한 일이지요. (젊은 세대들은) 전쟁에 대해 아는 것도 없고, 도대체 전쟁이 무엇인지 이해도 안 될 거예요.
[유순검] (전쟁이란 게) 다 그렇잖아요. (푸틴 러시아 대통령과) 북한 김일성의 욕심이 똑같죠. 어차피 죽는 건 자기가 아닌 남의 자식이잖아요. 파괴되는 곳도 자기랑 상관없는 곳이니까요.
6.25 한국전쟁에 중공군으로 참전했던 왕대정, 부인천, 유순검 씨.
팔순이 넘은 나이지만 이들에게 ‘전쟁’의 기억은 70년의 시간이 지난 현재에도 여전히 몸서리치는 고통입니다.
이들에게는 1950년 한국전쟁과 2022년 우크라이나전쟁이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결국, 전쟁은 누구의 승리도 아닌, 모두를 파괴하는 행위이기 때문입니다.
19살의 국군포로와 23살의 미군포로
1950년 6월 25일 새벽 4시. 북한의 기습 남침으로 한국전쟁이 시작됐습니다. 올해 아흔한 살인 탈북 국군포로 김성태 씨는 72년 전 그 날을 또렷이 기억합니다.
[김성태] 그때가 바로 일요일이요. 북한이 공휴일을 이용해 전선에 걸쳐서 남침을 해 들어왔단 말이오. 아침 9시쯤 되니까 38선 일대에서 천둥소리가 나는 거예요. ‘꽝, 꽝’.
남북한은 물론 유엔군, 중공군까지 참전해 1천129일 동안 치열한 교전을 벌이며 수많은 인명과 재산 피해를 낸 비극의 서막이었습니다.
당시 김 씨가 전투에 참여한 나이는 고작 19살이었습니다.
[김성태] 이것이 포 쏘는 소리인 줄 몰랐는데, 아침 9시쯤 되니까 방송에서 외출 나갔던 장병들은 빨리 자신의 소속 부대로 복귀하라고 했어요. 준비 없이 무기를 손에 들고, 전선에 나가서 싸웠는데, 박격포를 쏘면 소가 쓰러지고, 사람들이 막 죽어 나가고….
기세등등한 북한군의 공세 속에 그는 총탄과 포탄이 쏟아지는 동두천 덕정 전투에서 포로가 됐습니다. 전투에 나선 지 불과 닷새 만이었습니다.
[김성태] 중대장이 부상을 당해서 ‘성태야, 성태야’ 하면서 부르더라 말이요. 그 부상당한 사람을 업고 내려오다가 나 역시 부상을 당해가지고. 그래서 6월 30일에 전투도 몇 번 못하고 포로가 됐어요.
한국전쟁이 발발한 지 사흘 만인 6월 27일, 미국도 한국을 돕기 위해 유엔군의 일원으로 참전했습니다.
미 육군사관학교를 갓 졸업한 마이크 다우(Mike Dowe) 소위가 향한 곳은 북한 평안북도 운산이었습니다.
[마이크 다우] 제가 졸업여행을 떠나 있는 동안 한국전쟁이 일어났고, 졸업 후 바로 전쟁터에 나가야 했습니다. (1950년) 11월 2일 밤, 강행군을 하라는 명령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압록강에서 공격을 받은 남한군 사단을 엄호하기 위해 북쪽 운산으로 밀고 올라가다가 중공군의 공격을 받았습니다.
북한 편에 선 수십만 중공군의 참전으로 유엔군은 밀리기 시작했고, 다우 소위는 백여 명 남짓 병력으로 수천 명의 중공군을 상대해야 했습니다.
[마이크 다우] 우리는 몇 시간 동안 탄약이 떨어질 때까지 싸웠습니다. 그러나 탄약이 떨어진 이후 우리가 할 수 있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
결국, 중공군의 포로가 된 다우 씨는 ‘죽음의 행진’을 거쳐 평안북도 벽동의 포로수용소로 이송됐습니다.
[마이크 다우] 포로수용소로 이동하는 중에 부상자들을 옮기는 것이 매우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부상자가 됐든, 누가됐든 뒤처질 경우, 중공군이 그 사람의 뒤에서 총을 쐈고, 거기서 끝이었습니다.

잊히지 않는 야만적 포로수용소
국군포로 김성태 씨는 자신이 끌려간 함경북도 회령수용소에 대한 질문에 깊은 탄식부터 쏟아냈습니다.
[김성태] 이 포로 생활이라는 게 정말 겪어보지 않고는..., 그렇게 멸시를 당하면서 생활했습니다. 식사도 주는 양을 줄이니까 사람이 쇠약해지고.
마이크 다우 씨도 포로수용소에서 죽기 일보 직전의 위기를 경험했습니다.
[마이크 다우] 저는 상상할 수 있는 모든 영양실조 질환을 다 가지고 있었습니다. 저는 제 다리의 뼈와 근육을 볼 수 있었어요. 머리카락은 다 빠지고 더 이상 들을 수도 없었지요.
두 사람이 수감된 수용소는 달랐지만, 처한 현실은 똑같았습니다. 그곳은 인간이길 포기할 수밖에 없는 상황뿐이었습니다.
[김성태] 이가 낀단 말이오. 아침에 일어나서 청소를 하려고 빗자루질을 하면 이가 한 바가지씩 나와. 영양실조에다 잘 못 먹으니까 사람들은 야위지, 목욕도 못 하고 빨래도 못 하지. 야만 생활이란 말이오.
[마이크 다우] 매일 밤 이를 고르지 않으면 감당하기 어려웠어요. 매일 100마리가량의 이를 골라내야 했습니다. 만약 이 잡는 것을 멈추거나, 새 모이만큼의 옥수수 알갱이들을 억지로 삼키지 않으면 삶을 유지할 수 없었어요.

중공군도 수만 명이 포로로 잡혔습니다. 왕대정 씨도 그중 한 명입니다.
[왕대정] 이제 끝장났다 싶었어요. 산꼭대기에 우리 셋밖에 없는데, 적들의 끊임없는 공격으로 옆에 있던 두 명이 죽었습니다. 수류탄과 제 몸에서 터지고, 총알이 제 몸을 지나가고, 옷이 다 너덜너덜해질 정도였습니다.
아버지가 중공군 포로였던 진조훈 씨는 포로수용소에서 살해 위협에 시달렸던 아버지의 공포를 털어놓습니다.
[진조훈] 밤에 잘 때마다 조마조마하셨대요. 난데없이 누군가가 아버지의 코와 입을 가리거나 포대 자루로 머리를 덮고 구타해 죽이고 화장실에 버림을 당할까 봐요. 그 안에서도 서로 죽이는 거죠. 포로수용소는 가장 처절한 곳이었습니다.
1968년 1월 북한에 나포된 미군 정찰함 푸에블로호 선원들도 11개월간 억류됐습니다. 당시 부함장이었던 제임스 켈 씨는 고문과 구타의 연속이었던 기억에 몸서리칩니다.
[제임스 켈] 우린 늘 두들겨 맞았고, 억류 기간 내내 심리적인 고문도 당했습니다. 또 그들은 가끔 권총을 들고 와 보는 앞에서 공이치기를 뒤로 젖혀 내 머리에 대고 방아쇠를 당기곤 했는데, 장전되지 않은 지를 알 수 없기 때문에 그럴 때마다 심장을 내려앉게 했습니다. 아직도 우리 대부분은 여전히 많은 후유증을 겪고 있습니다.
죽음의 문턱까지 갔던 포로 생활의 아픈 기억은 오늘까지도 선명히 남아 있습니다.
몸에 새긴 결심
전쟁포로들은 잔인한 전쟁의 기억을 온몸에 새긴 채 살아가고 있습니다.
중공군 전쟁포로였던 말세경 씨는 양팔과 가슴에 새긴 그림과 ‘공산 도적을 소멸하라’는 글귀를 보여줍니다.
[말세경] 이 문신은 제가 스스로 하겠다고 한 거였어요. 결심을 보여준 거죠. 몸 앞에도 있고, 뒤에도 있습니다.
당시 중공군 포로 세 명 중 두 명이 중국 대신 대만을 선택했는데, 이들은 대부분 몸에 반공 문신을 그려 넣었습니다.

전쟁포로로 51년간 북한에 억류됐던 김성태 씨는 자신의 기억 속에 새겨진 참상을 세상에 끄집어내 폭로하고 싶다고 말합니다.
[김성태] 할 수 있다면 내가 북한에서 체험한 것, 고생한 것, 포로 딱지가 붙어서 인간 대접도 못 받은 것들을 전 세계 사람들에게 다 폭로하고 싶어요. 난 그러고 싶어요.
마이크 다우 씨는 포로수용소를 탈출할 때 가져온 밥그릇과 컵을 70년 동안 간직하고 있습니다.
녹슨 식기에 각인된 당시의 포로수용소에서의 고통을 떠올리며 매일 밤 기도한다고 말합니다.
[마이크 다우] 저는 아직도 매일 밤 저와 함께 전투를 벌이던 전우들과 군대, 그리고 병사를 위해 기도하고 있습니다. 그들을 위해 매일 밤 기도합니다.
2022년 2월 24일에 발발한 우크라이나 전쟁은 수많은 전쟁포로를 낳았습니다.
유엔 인권최고대표사무소는 포로들에게 고문 등 가혹행위가 가해진 사례를 확인했다고 발표했습니다.
전인범 전 한국특전사령관은 전쟁이 사람의 내면에 숨어있던 광기를 끄집어낸다고 말합니다.
[전인범] 저는 광기라고 생각하는데, 전쟁이라는 상황이 되면 우리 내면에 있는 나쁜 면이 나옵니다. 그래서 자기 자신도 몰랐던 아주 사악한 면이 나오고, 또 그 상황이 길어질수록 더 악화됩니다.

우크라이나전쟁을 통해 다시 반복된 전쟁의 광기.
전쟁의 참상이 온몸에 각인된 한국전쟁 전쟁포로들은 여전히 풀지 못한 의문을 되뇌입니다.
[김성태] 이 전쟁의 참화라는 게 정말 눈 뜨고 볼 수 없는 비참한 생활을 겪게 된단 말이오. ‘도대체 전쟁을 왜 해야 하는가’, ‘누구를 위해서 이렇게 전쟁을 하는가’ 이것을 가슴에 깊이 새기게 되더란 말이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