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의 대형마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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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주의 계획경제를 앞세웠던 북한에서도 시장경제는 주민들의 일상생활 속에 뿌리내리기 시작한 지 오래입니다. 이제 북한에서도 '돈'은 사상이나 이념을 넘어 삶의 가장 중요한 수단이자 가치가 됐는데요. 특히 돈을 버는 경제활동의 주체로 여성의 역할이 커졌습니다. 탈북 여성 경제인의 시각으로 북한 실물경제의 현재와 미래를 들여다보는 '돈 버는 재미와 돈맛', 북한 경공업 분야 무역일꾼 출신 탈북자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진행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오늘도 김혜영 씨와 함께합니다. 혜영 씨 안녕하세요. 추석은 잘 보내셨어요? 북한에서는 올해 추석 명절을 어떻게 보냈는지 궁금합니다. 전해 들은 내용이 있나요?

[김혜영] 네. 저는 한국에 있는 딸과 사위가 집에 찾아와 함께 추석 명절을 보냈습니다. 그러면서 올해 추석은 잘 지내고 있는지, 북한에 있는 가족 생각이 났죠. 가족과 연락이 닿은 주변 탈북민에 따르면 그래도먹고살 만한 사람들은 추석을 잘 보냈다고 하는데,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은 그렇지도 못한 것 같습니다. 요즘 북한 시장의 물가가 너무 오르고, 채소나 과일도 비싸서 사 먹을 엄두가 나지 않았다고 하는데요. 국경지방에서 쌀값도 중국 돈 100위안에 5kg 정도밖에 못 산다고 하니까 물가가 정말 비싼 것 같습니다. 저희 가족도 그럭저럭 쓸쓸하게 보냈다고 들었습니다.

- 오늘은 북한의 대형마트에 관해 이야기해보려 하는데요. 최근 한 곳에서 식료품부터 의류, 잡화 등 다양한 품목을 구매할 수 있는 '복합 대형마트'가 평양 시내에 들어섰다고 합니다. 혜영 씨가 평양에 있었을 때는 이런 대형마트가 없었죠?

[김혜영] 없었죠. 저도 뉴스에서 평양에 대형마트가 생겼다고 소개하는 내용을 보았습니다. 전 많이 놀랐습니다. 북한에는 이미 어디에나 백화점이 다 있습니다. 하지만 아무나 구경하거나 물건을 만지면서 살 수 없었죠. 그런데 이 평양의 대형마트는 사람들이 물건을 마음대로 고르고, 옷걸이를 돌려가며 옷 구경도 하고, 한국에 있는 마트처럼 과일이나 채소 등 식료품과 공업품, 옷 매대 등 여러 가지 품목들이 한자리에 있는 것을 보니 반갑기도 하고 신기했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외화상점도 이렇게까지 되어있지 않았고, 물건 하나를 보고 싶어도 꼭 판매원을 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평양 시내에 대형마트가 생기면서 북한도 조금 달라지는 모습을 보니 반가운 마음이었습니다.

- 이 대형마트는 판매 방식이나 운영 방식도 다르다고 합니다. 말씀하신 대로 다양한 물건을 한 장소에서 자유롭게 구매할 수 있다는 것이 이전과 다른 점이라고 하는데요. 시대에 맞춰 변화하려는 북한의 노력으로 볼 수 있을까요?

[김혜영] 전 그렇다고 생각합니다. 북한도 어쩔 수 없이 시대의 변화에 뒤처지는 것이 싫은 겁니다. 평양에는 간부들도 많이 살고, 외국인과 관광객들도 많기 때문에 북한이 못 사는 나라가 아닌, 발전하고 변화된 나라라는 것을 알리고 싶은 것도 있겠죠. 또 지금은 평양 시민들이 외부 정보를 많이 접하고, 외국에 다녀온 사람도 많거든요. 그만큼 바깥세상을 알고, 의식이 깨어있기 때문에 그 눈높이에 맞추기 위해서는 옛날 형식을 과감히 버리고, 새로운 모습으로 상업체계 등을 도입할 수밖에 없는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 한 가지 인상적인 점은 대형마트에서 구매한 물건을 집까지 배달해주는 서비스까지 해준다고 하는데요. 배달 서비스에 대해 북한 사람들은 어떻게 생각할까요? 배달 서비스를 해주면 더 사고 싶은 마음이 생기겠죠?

[김혜영 씨] 전 배달 서비스에 많이 놀랐습니다. 제가 북한에 있을 때는 '배달'이라는 용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북한에서는 배달을 해준다는 것이 잘 상상이 안 가는데요. 물론 물건을 운송해주는 것은 있지만, 내가 산 물건을 집에서 편하게 받는다는 개념이 없었거든요. 당연히 배달 서비스를 해주면 신기하고 편해서 더 많이 이용할 거라 생각합니다. 평양에는 돈 있는 사람들이 많고, 요즘은 코로나비루스 때문에 마음대로 다닐 수도 없는데, 그래서 이런 배달 서비스를 도입하지 않았을까란 생각도 해봤습니다.

또 한국만큼 배달 서비스가 잘 돼 있는 나라가 없잖아요. 물건을 주문하면 먹는 음식까지 집으로 배달해주는데요. 이런 배달 서비스가 전 세계적인 추세니까 북한도 이를 따라 하는 것이 아닐까란 생각도 했고요. 또 북한에서 배달 서비스라는 것이 생기면서 이를 어떻게 운영해야 돈을 벌 수 있을지도 많이 고민할 거라 생각합니다. 북한에서는 돈을 벌 수 있는 기회라면 절대 놓치지 않으니까요.

-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일하는 판매원들은 어떤 사람들인가요?

[김혜영] 물론 이곳에서 일하는 사람들의 출신성분이 좋아야 하지만, 상업대학을 졸업하거나 최소한 전문학교라도 나와야 이런 곳에서 일할 수 있습니다. 상업대학이라는 곳은 이런 대형마트나 공업, 상업 계통의 간부를 육성하는 곳입니다. 또 전문학교에는 경제 전문학교, 상업부문 양성소 등이 있는데, 손님을 어떻게 대하고 봉사해야 하는지에 대해 배우고, 일 년 동안 사회봉사 시설에서 실습 기간을 거친 뒤 자리를 배치받아 일할 수 있습니다. 기본적으로 품성도 좋아야죠. 물론 외모나 출신 성분이 뛰어나면 더 좋은 곳에 배치받을 수 있고, 고위 간부가 힘을 써줘서 일할 수도 있지만, 무조건 그런 것은 아니고요. 이 분야에서도 자격증과 실력을 갖춰야 기회를 잡을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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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에서 식료품부터 옷, 잡화, 전자제품까지 다양한 품목을 한 공간에서 살 수 있는 ‘복합 대형마트’가 평양 시내 곳곳에 들어섰다고 재일본 조총련 기관지인 조선신보가 지난 3월 보도했다. /연합뉴스


- 이런 대형마트는 국가가 주도해 운영하겠지만, 여기에서 돈을 버는 사람들도 있을까요? 어떤 사람들이 돈을 벌까요?

[김혜영] 이런 대형마트처럼 국가사업으로 지은 것은 어느 개인이 운영하는 체계가 아닙니다. 그러니 개인이 돈을 벌 수도 없죠. 그날 판매 금액이 모두 전산에 기록되고, 그날 벌어들인 돈은 국가에서 가져갑니다. 한국처럼 대형마트와 납품 계약을 맺은 판매업자들이나 근로자들이 돈을 벌 기회를 얻는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지만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그래도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틈새가 있다면 유통기한이 지났거나 잘 팔리지 않는 재고품들은 일반 상점으로 갑니다. 그러면 그곳의 점원들이 이 상품들을 빼돌려 되팔아 이윤을 남길 수도 있지만, 지금도 그것이 가능할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북한에는 이런 비리에 대비해 늘 사상투쟁 회의를 하는데요. 특히 상업부문 산하 일꾼들이 주요 대상입니다. 이들은 일자리를 잃을까 봐 좀처럼 비리를 저지르지 않으려고 노력합니다. 또 점원들이 받는 월급은 적지만, 때마다 재고품이나 식료품들을 판매일꾼들에게 나눠주기도 하는데요. 이를 다시 되팔아 수입을 만드는 경우는 있죠. 이는 불법도 아니기 때문에 개인이 돈을 벌 수 있는 좋은 기회이기도 합니다.

- 처음에도 언급했지만, 평양 제1 백화점에는 진열된 물건은 많지만, 정작 물건을 살 사람도, 팔 물건도 없다는 지적이 있었습니다. 선전용 또는 과시용이었다는 건데요. 이번에 등장한 대형마트는 다르다고 할 수 있을까요?

[김혜영] 만약 뉴스에 소개된 내용처럼 북한 주민들이 직접 물건을 만져보고 자유롭게 사고팔며, 배달 서비스까지 해준다면 저는 천지개벽했다 해도 틀린 말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평양이나 지방에 있는 백화점은 보여주기식 장식장처럼 그냥 진열만 해놓고, 사는 사람도 없고, 물건도 유통되지 않으니까 실패한 사회주의의 모습을 대변했거든요. 가끔 외국인들이 물건을 사곤 했지만, 북한 주민들은 절대 살 수 없었죠. 판매직원이 "진열품입니다"라고 말하면 사람들이 입을 삐쭉거리며 많이 비웃었죠.

그런데 대형마트에서 이렇게 사람들이 자유롭게 물건을 고르고, 사고, 배달 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다고 하니 북한에서 그런 것을 전혀 경험해보지 못한 저로서는 놀라운 겁니다. 정말 북한에서도 한국처럼 누구나 대형마트를 이용할 수 있는 때가 오길 바랍니다.

- 평양에 등장한 대형마트가 앞으로 지방 도시에도 들어설 수 있을까요?

[김혜영] 아직 지방에는 이런 대형마트가 있다는 소식을 못 들었는데요. 신의주나 혜산 등 지방의 대도시에도 아직 이런 대형마트는 없을 겁니다. 앞으로 희망 사항이라 할 수 있겠죠. 하지만 김정은 정권의 특성상 평양에 대형마트가 세워졌으니 지방에도 대형마트 바람이 불 거라고 봅니다. 평양에서 시작하면 지방으로 확산했거든요. 이런 대형마트가 세워져서 많은 사람들이 편의를 누리고, 대형마트와 연계해 개인이 돈을 벌 기회도 많아진다면 얼마나 좋을까요. 그런 날이 빨리 오기를 바랍니다.

-네. 오늘은 북한의 대형마트에 관해 이야기를 나눠봤습니다. [돈 버는 재미와 돈맛], 오늘 순서는 여기까지입니다. 지금까지 전직 북한 무역일꾼 출신인 김혜영 씨와 함께했습니다.

기자 노정민, 에디터 박정우,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