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간부 옥죄기는 책임전가∙공포조성 노림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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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북한이 최근들어 부쩍 간부들에 대한 기강잡기에 나섰다는 평가입니다. 주민들에 대한 강력한 사상통제와 함께 식량난 등 직면한 어려움을 극복하기 위한 방편으로 보이지만 ‘책임전가’와 ‘희생양 만들기’ 만으로 현재 북한이 맞닥뜨린 위기를 극복하기엔 역부족이라는 지적입니다.

간부들을 옥죄면서 주민들의 사상변화를 틀어막아 난관을 헤쳐 나가겠다는 의도지만 공포정치의 최종 종착지는 고스란히 주민들로 향할 가능성이 커 우려스럽다는 목소리도 나오고 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간부들도 단지 사람일 뿐

[정진화]이 책임을 왜 간부들에게 떠밉니까. 간부들도 사람이에요. 그 사람들도 먹고 살아야 주민들을 통제하고 솔선수범을 하고 하는데 맨날 간부들에게 요구하는 것이 솔선수범해라, 당의 방침을 받들어라 하는데 간부들은 공기를 먹고 살아요? 그 사람들을 죽인다고 그 문제가 해결이 됩니까.

1990년대 중∙후반, 함경남도 함흥에서 고난의 행군 시절을 보냈던 탈북민 정진화 씨.

정 씨는 최근 다시 일고 있는 고위급 간부들에 대한 북한 당국의 대대적인 기강잡기 움직임을 보면서 한편으론 측은한 심정입니다.

10년 가까이 평양에서 생활한 토마스 쉐퍼 전 북한 주재 독일 대사도 북한 간부들을 체제의 ‘피해자’로 여기게 됐다고 털어놓습니다.

[토마스 쉐퍼]북한 관리들과 대화를 나누곤 하면 그들은 북한 당국의 입장을 말해주죠. 저는 그들이 이 문제 있는 체제의 한 부분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동시에 그들도 피해자라고 느꼈어요. 그들은 단지 그런 삶을 살 수밖에 없는 가족에서 태어난 거잖아요… 그들의 선택이 아니고 그냥 그 상황에 놓여진 거죠.

계속된 대북제재에 코로나19 봉쇄 장기화로 누적된 경제적 어려움, 여기다 수해 피해까지 더해지며 유례없는 체제 위기 진단까지 나오고 있는 북한.

노동신문은 최근 (12일) “고난과 시련을 이겨내지 못하고, … (중략) 혁명의 길에서 벗어날 때 가장 치욕스러운 인생이 된다”며 ‘동요’하지 말라고 강조하면서 간부들의 일탈과 배신을 경계했습니다.

앞서 지난 6월 말 열린 당 정치국 확대 회의에서는 당 정치국 위원 등 고위 간부를 무더기 해임하는 등 핵심 고위층에 대한 숙청 바람도 불고 있습니다.

평양 장교 출신인 탈북민 김단금 ( 비단금 TV )씨는 북한이 공포정치를 통해 체제를 유지해온 관행이 있다고 지적합니다.

[ 김단금 ]숙청을 하는 배경은 보통 공포정치입니다. 고모부, 장성택 사건이 있잖아요. (고모부도) 대범하게총살까지 하는 북한인데 하물며 그 아래 간부들은 더 하겠죠…. (중략) 북한체제를 유지하기 위함이 기본 배경이라고 생각합니다. 기본은 공포정치.

여기다 고위 간부를 본보기로 처벌함으로써 얻는 효과도 있습니다.

[김단금]숙청이라는 것이 정치범수용소로 보내거나, 중앙당 간부들을 혁명화대상으로 많이 내려 보내거든요. 혁명화대상이라는 것이 노동자, 즉 중앙당 간부였다가 갑자기 노동자로 '추방'이 되는. 이렇게 처벌을 갑작스럽게 내리기 때문에 일반 주민들이 이를 보면서 생각하는 점이, 간부들도 저렇게 처벌을 받는데 우리가 잘못하면 어떻게 될까 라는 생각을 하게 되죠.

최근 고위층 기강잡기는 '희생양' 찾기용

전문가들은현재 코로나19, 제재 그리고 수해로 ‘삼중고’를 겪고 있는 북한이 책임을 누군가에게 전가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합니다.

북한 정권의 ‘유지’와 ‘안정’을 위해 체제수호세력을 다잡고 있는 역설적인 상황이라는 게 미국 중앙정보국(CIA) 분석관을 지낸 수 김 미국 랜드연구소 정책분석관의 설명입니다.

그는 “한 사람이 나라를 다스리고 있다는 점에서 국가 경영의 책임은 전적으로 김정은 총비서에게 있다”며 “모순적이게도 숙청은 김 총비서가 자신의 지도력 무능에 대한 책임을 다른 사람에게 전가하는 방법”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수 김 분석관은 최근 고위 간부들에 대한 해임 등이 김 총비서가 자신의 권력과 권위가 안정적이라고 느끼지 않는 방증이라고 지적합니다. “자신의 권력과 권위가 안정적이라고 느꼈다면 숙청이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라는 설명입니다.

미국 국가이익센터의 해리 카지아니스 한국 담당 국장도 김 총비서가 지난 18개월 남짓 동안 북한이 겪은 모든 재난에 대한 ‘희생양’이 필요한 상황이라고 설명합니다.

그는 최근 고위급 간부 숙청의 목표는 “이념강화와는 전혀 상관이 없으며 (김 총비서가) 자신의 문제를 남의 탓으로 돌리며 집권을 강화하는 것일 뿐”이라고 잘라 말했습니다.

당근과 채찍 …사상강화와 사치품

일본의 한반도 전문가인 마키노 요시히로 아사히신문 외교 전문기자는 북한 정권이 간부들에 대한 단속과 동시에 당근도 마련하려 애쓰고 있다고 설명합니다.

[마키노 요시히로] 1990년대 독재 체제나 문제가 있는 체제가 붕괴했을 때, 일반주민들의 불만보다는 고위층의 불만이 표시된 다음에 (정권이) 붕괴된 바 있습니다. 그래서 김정은 총비서도 최근 한국 국정원이 밝힌 바와 같이 사치품을 수입하려 한다거나 고위층의 민심 잡기를 여러가지 하고 있습니다.

고위층 사이에서도 생필품 부족 등 여러 불만이 나오고 있기 때문에 채찍과 함께 당근도 제시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겁니다.

결국 피해는 주민들에게

정진화 씨는 김정은 총비서 집권 초반부터 이어지고 있는 고위 간부들에 대한 숙청은 북한의 ‘고위급’에 대한 위상을 떨어뜨렸다고 지적합니다.

[ 정진화 ] 최근에 군, 경제 관료들에 대한 숙청 바람이 또 다시 분다는 소식을 듣고 '이러다가 북한에 생존할 사람이 없겠다'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옛날에는 뇌물 혹은 아첨을 해서라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기를 고대했던 간부들이 요즘에는 높은 자리 올라가는 걸 바라지 않는다는 거에요.

그는 결국 피해는 주민들에게 고스란히 돌아온다고 우려합니다.

[정진화]간부들을 다그치면 간부들은 주민들을 옥죄겠죠. 그럼 결국 피해자는 주민들인 거에요. 간부들을 옥죄는 것은 어떤 방법을 동원해서라도 주민들을 옥죄라 (이런 의미죠). 이게 지도자가 할 일은 아니죠. 간부들을 옥죄는 것은 결국 주민들에 대한 탄압을 내가 아니라 간부들의 입을 빌리고 간부들의 권력을 통해 하겠다는 그러한 시도가 아닐까요.

공포정치로 주민들의 사상 관리

김단금 씨도 북한 주민들 역시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다고 말합니다.

[김단금]이런 사건들이 일어나면 강연자료가 나옵니다. '이번에 중앙당에서 이런 일이 있었기 때문에 이러한 처벌이 진행됐다'는 것을 강연자료를 통해 내려갑니다. 그러면 주민들이 이를 들으면서 (영향을 받는 거죠). 북한은 인터넷도 안되고 꽉 막힌 생활을 하고 있는데 아무리 막고 막아도 한국 드라마나 외부유입이 계속 들어오니까. 그걸 막기 위해서 이렇게 큰 간부들을 치고 그 사실이 강연자료로 나와 주민들에게 직접적으로 영향을 미칩니다.

북한 당국의 고위층 기강잡기용 ‘칼바람’이 거세게 일면서 유례없는 경제난 속에 가뜩이나 고통스런 날을 보내고 있는 북한 주민들이 떨고 있습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박정우, 웹팀 최병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