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코로나 19' 방역을 위한 북중 국경 봉쇄가 장기화하면서 북한에서 생필품 부족과 가격 상승이 점점 더 심각해지고 있습니다. 또 중국산 원자재 수입이 중단되면서 북한 내 비누와 담배 생산 공장도 가동을 멈췄습니다.
여기다 시장 활동의 위축, 경기 침체에 따른 현금 수입도 급감하면서 북한 주민들은 생활고에 내몰리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중국산 생필품 부족으로 가격 상승 불가피"
"요즘 북한 시장마다 식료품부터 생활용품에 이르기까지 많은 품목에서 생필품 부족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 북한 신의주에 사는 한 여성이 최근(5월 22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전한 북한 내부 상황입니다.
'코로나 19'에 따른 북중 국경의 봉쇄로 중국에서 들어오는 물량이 거의 없어 일반 세면, 세탁비누를 비롯해 기름, 라면, 담배 가격도 2~3배나 껑충 뛰었습니다.
국경 봉쇄 이전만 해도 중국으로부터 기본적인 식료품과 의류, 생활용품 등이 공식 무역과 밀수를 통해 공급됐지만, 지금은 하루에 트럭 몇 대 분량만 오갈 뿐입니다. 이마저도 국가 차원에서 필요한 물품이 대부분이라 일반 주민들의 수요를 채우기는 턱없이 부족한 실정입니다.
북한 당국의 적극적인 개입으로 쌀값은 안정을 되찾았지만, 다른 생필품의 부족과 가격 상승을 막기는 역부족이라고 이 신의주 여성은 설명했습니다.
북한 북부 지방에 사는 가족과 자주 전화 통화를 한다는 50대 탈북 여성 박미화 씨(신변 안전을 위해 가명 사용)는 올해 벌써 두 차례나 가족들에게 돈을 보냈습니다.
지난 1월과 3월에 적지 않은 생활비를 보냈지만, '코로나 19' 이후 생필품 가격 상승으로 살림살이가 빠듯해 또 돈을 보내달라는 연락을 받았다고 최근(5월 2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박미화 씨(가명)] 기름, 고기 등 먹는 것이 제일 많이 오르고요. 밀수도 못하니까 이런 것이(생활용품) 몇 배가 오르고 엄청 뛰어서 먹고살기 힘들다고 하죠. 돈을 보내주면 생필품 사고, 먹고사는 데 다 씁니다.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도 함경북도와 양강도의 시장을 조사한 결과 중국산 물품의 수입이 중단되면서 생필품 품귀 현상이 계속되고, 국내 유통마저 원활치 않다 보니 북한 주민의 현금 수입 감소 등 경제적 타격이 매우 큰 것으로 나타났다고 최근(5월 23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전했습니다.
시장에 쌀과 옥수수 등 식량은 북한 당국의 통제로 안정세를 유지하고 있지만, 수입에만 의존했던 중국산 물품은 가격이 많이 올랐다고 이시마루 대표는 덧붙였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중국에서 수입해 왔던 여러 물건들이 지금은 없어서 값이 올랐다는 것이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기름, 즉 식용유입니다. 콩기름인데요. 4.7kg 짜리가 한 통이 국경 봉쇄 직전에는 중국 돈으로 37위안(약 5달러)이었는데, 지금은 65위안(약 9달러)까지 올랐다고 합니다. 일반 주민도 놀랄 만큼 값이 급상승한 품목이고요. 담뱃값도 올랐더라고요. 담배는 계속 수요가 있지만, 중국 담배가 거의 없어졌다고 합니다. 함경북도와 양강도 시장의 이야기입니다.
"북한 내 공장 가동까지 멈춰… 생필품 부족 악순환"
앞서 북한 시장의 생필품 품귀 현상을 전해줬던 신의주 거주 북한 여성은 북·중 국경의 봉쇄로 원료와 원자재의 수입이 중단돼 북한 내 공장 가동까지 중단되는 현상도 생겨나고 있다고 전했습니다.
'봄향기 화장품'을 생산하는 공장에서 비누도 만들었는데, 중국에서 원료가 공급되지 못하면서 가동이 중단됐고 이제껏 잘 가동돼던 담배 공장도 종이, 필터, 포장지 등 원자재 수입이 끊기면서 일부는 최근 이미 멈춰 섰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시마루 대표가 전한 상황도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북한 나선시에 있는 담배 공장이 가동을 멈췄고, 개성의 '고려인삼화장품' 도 생산이 중단됐습니다. 모두 중국으로부터 원자재를 공급받지 못해섭니다.
[이시마루 지로] 나선시에 큰 담배공장이 있습니다. 나선시 담배공장의 가동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원재료가 들어오지 않아 가동이 중단됐다는 겁니다. 담뱃잎은 북한 내에서도 생산하지만, 이를 가공품으로 만들기 위해서는 종이도 필요하고, 포장재도 필요합니다. 그리고 화장품도 지금 많은 공장에서 생산이 멈췄다고 합니다. 개성시에서 만드는 '고려인삼화장품' 공장을 비롯해 화장품 공장이 중국에서 원료가 들어오지 못해서 생산이 중단됐다고 합니다.
실제로 담배, 비누 공장의 가동 중단으로 북한의 대표적 담배인 '고향', '여명'의 가격은 약 4분의 1 가까이 올랐고, 비누는 중국 제품이 거의 사라진 가운데 국내산 비눗값이 2배 가까이 비싸진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이처럼 북·중 국경 봉쇄로 원재료 수입이 차질을 빚고 북한의 대표적인 생산 공장까지 멈춰 서면서 생필품 부족과 가격 상승의 악순환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북한이 지난 몇 년 동안 국산품 생산을 장려해왔지만, 중국 원료와 원자재의 수입에 크게 의존했기 때문에 '코로나 19'에 따른 북·중 국경 봉쇄의 장기화는 북한 생필품 산업에도 큰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

"생필품 부족보다 현금수입 급감이 더 심각"
북한 북부 지방을 중심으로 생필품 부족과 가격 상승에 따라 북한 주민의 생활이 많이 어려워졌지만, 이보다 더 심각한 것은 경기 침체에 따른 현금 수입의 급감입니다. 시장마다 팔거나 살 물건이 없고, 현금 수입원이 사라지면서 많은 북한 주민이 심각한 생활고에 직면했다는 분석입니다.
박미화 씨도 지금으로서는 자신이 도와주지 않으면 가족들이 다 굶을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고 말했고, 이시마루 대표도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 세대가 늘고 있다는 현재 북한 내부 분위기를 전했습니다.
[박미화 씨(가명)] 지금 일할 것도 없고, 장사할 것도 없고, 내가 도와주지 않으면 다 굶어야 합니다. 어떻게 뭐 할 것이 없습니다. 돈이 없는 사람은 그냥 죽을 수밖에 없는 겁니다. 사람들이 이제 막다른 골목이라며 아우성이라고 하네요.
[이시마루 지로] 여러 가지 물건이 부족해 사람들의 불편해졌다는 것은 당연히 예측할 수 있지만, 이보다 심각한 문제는 중국과 거래 중단으로 국내 유통이 막히고 경제가 멈춘 것이죠. 일반 주민은 시장 경제를 통해 현금 수입을 해왔는데, 이것이 없어진 겁니다. 사람들이 시장 활동으로 돈을 벌고, 장마당에서 생필품이나 식량을 구매해서 살아오지 않았습니까. 최근 내부 협조자가 전해 온 소식은 현금 수입에 타격이 커서 정말 하루에 한 끼밖에 못 먹는 세대가 많아지고 있다는 소식이 들어왔어요. 물건이 없어서 불편한 것이 아니라, 돈이 없어서 구매를 못 하는 더 심각한 문제에 직면했다는 것이 지금 북한의 경제 위기라고 보고 있습니다.
유엔 식량농업기구(FAO)도 북한 주민의 현금 수입 감소에 따른 구매 능력 저하를 지적하면서 오늘날 북한에서는 공급과 수요 모두가 부족한 현상이 나타나고 있다고 평가한 바 있습니다.
인터넷 동영상 공유 사이트인 '유튜브'에는 최근 평양 시내의 평온한 모습과 함께 생필품 가격이 안정적으로 유지되고 있다는 동영상이 게재됐습니다.
북한 당국이 '경제가 아무 문제 없이 돌아가고 있다'는 '눈 가리고 아웅'식 거짓 선전에 몰두하는 사이 주민들은 오른 물가와 쪼그라든 소득 속에서 이중고를 겪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