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일본 도쿄에서 북한인권주간을 맞아 일본 정부 주최로 일본인 납치 문제를 비롯한 북한 인권 상황의 현주소를 재조명하는 국제 심포지엄이 개최됐습니다.
일본 정부와 피해자 가족들은 최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납치 문제를 언급하고,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된 지금이 납치 문제를 해결하는 최적의 시기라고 입을 모았습니다.
하지만 일본 내 재일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 측은 "북한에 납치 생존자는 없다"며, "북한이 이미 납치자 명단을 제출했음에도 이들이 살아 돌아와야만 문제가 풀리는 상황이 돼 버렸다"고 말해 문제 해결까지 쉽지 않은 여정을 예고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 일본 정부 주최 북한자유주간 국제 심포지엄 개최
- 납치 피해자 가족·정부관리·전문가 등 500여 명 참석
- 납치 문제 비롯한 인권 탄압국으로 북 비판
- 전국 청소년 대상 작문 대회 통해 납치자 문제 계몽 운동
[현장음: 작문 최우수상 수상자 작품 낭독]
"올해 13살인 나는 알찬 중학교 생활을 보내고 있다. 하지만 교문에서 반드시 들어오는 또 하나의 광경이 있다. 40년 전 요코타 메구미 씨가 북한에 의해 납치된 주택가에 들어오기 직전 길목이다. 나의 학교 바로 앞에서 귀가 도중 납치돼 학교 앞바다에서 배에 태워져 북한으로 납치된 메구미 상…"
일본 정부 납치 문제 대책본부가 주최한 작문대회에서 최우수상을 받은 니가타 대학 부속 니가타 중학교 2학년인 고이즈미 나와요키 군의 작문 내용입니다.
고이즈미 군은 41년 전 하교길에 북한 공작원에 납치된 일본인 납치 문제의 상징, 요코타 메구미 씨를 회상함과 동시에 납치 피해자 문제를 단결된 힘으로 해결하자고 주장해 참석자들로부터 큰 박수를 받았습니다.

일본에서는 납치 문제를 접할 기회가 적은 청소년들을 대상으로 지난해부터 작문 대회를 열고 있는데, 올해는 북한 인권 문제에 대한 계몽 주간을 맞아 전국 중학생과 고등학생의 작품, 4천485편이 공모됐고 지난 15일, 일본 정부가 주최한 국제 심포지엄에서 최우수상과 우수상으로 선정된 6명의 학생이 표창을 받은 겁니다.
북한인권주간 행사 중 하나로 지난 15일 일본 도쿄에서 열린 국제 심포지엄은 일본인 납치 문제를 비롯한 북한 인권 상황의 현주소를 재조명하는 시간이었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은 물론 일본 정부 관리, 일본인 조기구출 의원연맹 소속 의원, 그리고 미국과 한국, 일본 내 전문가와 언론 등 약 500여 명이 참석해 일본인 납치 문제에 대한 큰 관심을 나타냈습니다.
- 스가 요시히데 관방장관 "납치 문제 해결에 새로운 흐름 기대"
- 납치 피해자 가족 "트럼프 대통령 관심 이후 국제사회 시선 달라져"
- 프레드 웜비어 씨 "납치 피해자 가족의 마음 공감한다"
- 전문가 "미북 정상회담에서 납치 문제·인권 문제 거론해야"
스가 요시히데 일본 관방장관 겸 납치문제 담당상은 이날 북한의 인권 상황이 오늘날 국제사회의 심각한 공통문제로 인식되는 가운데 일본인 납치 문제는 일본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에 직결되는 문제라고 강조했습니다.
특히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지난 6월 개최한 미북 정상회담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나 일본인 납치 문제를 언급해 준 것을 계기로 납치자 문제 해결에 중요한 시기를 맞게 됐다고 스가 장관은 말했습니다.
[스가 요시히데] 납치 문제는 일본의 주권과 국민의 생명, 안전과 직결되는 중대한 문제입니다. 일본 정부는 모든 기회를 동원해 각국에 납치 문제를 제기하고, 협력을 요청하고 있습니다. 지난 6월, 미북 정상회담에서 아베 일본 총리의 요청으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에게 납치 문제를 제기해준 것은 매우 큰 성과라 할 수 있으며, 새로운 흐름이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또 일본 정부는 납치 문제를 해결하고 불행한 과거를 청산해 북일 국교 정상화를 지향해 나갈 의지를 갖고 있습니다.
일본 정부가 공식 인정한 일본인 납치 피해자는 17명. 또 납치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는 사례는 800여 건에 달하지만, 2002년 5명의 납치 피해자가 일본에 돌아온 이후 지금까지 추가로 귀국한 일본인은 없습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자 가족협회에 따르면 김정일 북한 국방위원장이 일본인 납치를 지시한 1976년 이후 40년 넘게 납치 피해자 문제는 해결되지 않고 있습니다. 또 북한의 열악한 인권 상황과 함께 일본인 납치 피해 문제가 여전히 존재함을 널리 알려야 한다는 것이 납치 피해자 가족협회 측의 주장입니다.
북한에 납치된 요코타 메구미 씨의 남동생이자, 납치 피해자 가족협회의 사무국장을 맡고 있는 요코타 타쿠야 씨는 트럼프 대통령이 일본인 납치 문제를 계속 언급하면서 이 문제를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이 달라졌다고 말했습니다.
[요코타 타쿠야]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이 작년 9월 유엔 총회에서 제 누나(요코타 메구미)를 언급했습니다. 이때부터 전 세계가 보는 눈이 달라졌고, 납치 문제에 대한 흐름도 달라졌다고 생각합니다. 이제 북한은 납치와 인권 문제에 대해 모른 척할 수 없게 됐다고 봅니다. 북한이 외교적으로 어려운 상황에 처했기 때문에 일본 정부가 더 강력한 외교정책을 추진해주길 바랍니다.
또 요코타 사무국장이 김정은 위원장에게 "경제적으로 번영한 밝은 미래를 위해 납치 피해자를 돌려보내는 용기 있는 판단을 내려달라"고 호소할 때에는 참석자들이 큰 박수로 지지를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이 자리에는 북한에 억류됐다 풀려나 사망한 미국인 대학생 오토 웜비어 씨의 아버지인 프레드 웜비어 씨도 참석해 납치 피해자의 마음을 위로했습니다. 웜비어 씨는 북한 정권이 여전히 외국인을 인질로 잡고, 고문하며 재판도 없이 처형하고 있다고 강하게 비판했습니다.
[프레드 웜비어] 북한 지도자들이 자국민과 전 세계를 향해 무엇을 하던, 어떤 행동을 하던 전혀 대가를 치르지 않고 있습니다. 이런 방식은 지난 세월 동안 변하지 않았고, 지금도 똑같습니다. 일본 납치 피해자 가족은 무엇을 할 수 있을까요? 어떤 역할을 해야 할까요? 우리는 북한 주민과 계속 관계를 맺고 연대해야 합니다. 우리 모두가 피해자이기 때문입니다.

일본인 납치 피해 문제가 여전히 해결되지 않고, 내년 초 2차 미북 정상회담이 예정된 가운데 이날 심포지엄에서는 납치와 인권 문제를 어떻게 연계할 수 있을까에 대한 고민도 함께 나누는 시간이 이어졌습니다.
미국 전문가로서 심포지엄에 참석한 에반스 리비어 전 미국 국무부 동아태 담당 수석 부차관보는 정상회담 의제에 인권 문제를 포함하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고 강조했습니다. 미북 관계의 개선을 위해 인권은 물론 납치 문제도 반드시 해결돼야 한다는 것을 주장해야 한다는 겁니다.
[에반스 리비어] 미국과 북한이 비핵화 논의를 하고 있고, 북한의 핵무기와 미사일 등을 거론하면서 인권 문제도 의제에 넣어서 북한 문제 해결 과정의 일부가 돼야 한다는 겁니다. 인권 문제뿐 아니라 오랫동안 미해결 상태인 납치 문제도 해결돼야 한다는 점을 강조하고, 북한이 구체적으로 행동하는 것을 미북관계 개선의 조건으로 삼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 일본 정부·피해자 가족 "납치자 빨리 돌려보내길"
- 납치 문제 해결 전까지 북일 관계 개선 없다
- 조총련 측 "북에 납치 생존자 없어, 살려서 돌려보내야 하나"
- "납치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숙제가 됐다", 험난한 여정 예고
심포지엄 현장에서는 북한 주민에 대한 인권 유린을 이유로 북한 최고 지도층에게 제재를 가한 것처럼 일본인을 납치한 사람에 대해서도 제재를 가할 방법이 없느냐는 질문이 나와 참석자들의 눈길을 끌었습니다. 또 일본 정부와 납치 피해자들은 북한 당국이 납치자를 본국으로 돌려보내 줄 것을 요청하고, 납치 문제가 해결되기 전까지 북일 관계의 개선은 쉽지 않다는 데 목소리를 높였습니다.
한편, 일본 내 재일조선인총연합회 측은 '북한에 남아 있는 생존자는 이제 없다'고 RFA, 자유아시아방송에 밝혔습니다.
조총련의 고위 관계자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에 "이미 북한은 일본 정부와 약속한 대로 납치자 명단을 제출했는데 거절당했다"며 "북한에 생존해 있는 납치 피해자가 없는데, 납치자가 반드시 살아 돌아와야만 해결되는 상황이 되어 버렸다. 일본인 납치 문제는 영원히 풀릴 수 없는 숙제가 됐다"고 말해 앞으로 납치 문제 해결이 쉽지 않은 여정임을 예고했습니다.
일본 도쿄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