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경제, 어제와 오늘] ‘사상’ 된 정면돌파

평양 3대기술혁명전시관에 설치된 북한의 주요 지역별 석탄 분포도. (2010년9월)
평양 3대기술혁명전시관에 설치된 북한의 주요 지역별 석탄 분포도. (2010년9월) (/문성희 박사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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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분야를 중점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보는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문성희 박사는 현재 일본 도쿄에서 시사 주간지, 슈칸 킨요비(주간 금요일) 기자로 한반도 문제를 주로 다루고 있고 2017년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돼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박정우 기자입니다.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 (사진 제공:문성희))

<기자> 문성희 박사님, 먼저 북한 경제 문제에 들어가기 전에 최근 이란 정세에 대한 북한의 반응부터 잠시 살펴볼까요? 미국이 이 달 초 가셈 솔레이마니 이란 혁명수비대 쿠드스군 사령관을 살해한 뒤 이란이 이라크에 있는 미군기지에 폭격을 가했습니다. 트럼프 대통령이 군사력을 쓰지 않겠다고 밝힌 것으로 일단은 군사충돌 위기는 피했는데요, 북한은 이 문제에 대해 어떻게 보고 있는지요?

문성희: 조선중앙통신이 지난 4일 미국에서 반전시위가 벌어지고 있다는 보도를 통해 솔레이마니 사령관 암살에 대해 간접적으로 언급을 한 뒤 12일에는 암살로부터 이란의 미군기지 공격, 미국의 이란에 대한 추가 제재까지 비교적 상세하게 사실관계에 대해 보도했습니다. 하지만 객관적인 보도만 이뤄졌고 이에 대한 논평 같은 건 현 시점에서는 안 보입니다. 나아가 미국에 대한 직접적인 비판 기사도 안 보입니다. 다만 과거에 부시 전 미국 대통령이 이라크와 이란, 북한을 묶어 '악의 축'이라고 지적한 바 있고 이란과 북한은 핵문제를 둘러싸고 대미관계에서 공통점이 있기 때문에 북한도 물론 중시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그런데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살해된 뒤 김정은 위원장이 당분간은 공개석상에 안 나오지 않겠나, 하는 추측도 있었는데 김 위원장은 직후에 경제건설 현장을 지도했지요?

문성희: 네, 북한은 김 위원장이 순천인비료공장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했다고 관영 매체를 통해 보도했습니다. 현지지도한 날짜는 명기돼 있지 않지만 조선중앙통신의 지난 7일 보도에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전원회의사상을 높이 받들고'라는 표현이 있는 걸로 봐서 올해의 일, 그것도 솔레이마니 사령관이 암살된 이후라는 것은 틀림이 없어 보입니다. 김 위원장이 이번 사건 뒤에도 공개 활동을 벌이고 있다는 것은 중요한 메시지라고 볼 수 있습니다.

<기자> 그 만큼 자신있다는 건가요?

문성희: 네, 그렇게 생각합니다. 그리고 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 사이의 개인적 친분관계에 북한이 자신감을 가지고 있다는 뜻이겠지요. 지난 11일에는 김계관 외무성 고문이 담화를 발표했는데, 김 위원장 생일에 즈음해서 트럼프 대통령한테서 직접 친서로 축하인사를 받았다는 사실을 밝히고 있어요. 아시다시히 김 위원장의 생일은 1월 8일이니까 막 이란과의 군사충돌 위기가 고조되고 있을 때도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에게 친서를 보내왔다는 것이겠지요.

<기자> 북한은 지난해 말 4일간에 걸쳐서 진행된 당중앙위원회 제7기 제5차 전원회의에서, ‘모든 난관을 정면돌파전으로 뚫고나가자’라는 구호를 내걸었습니다. 결국 북한이 직면한 가장 큰 어려움은 경제난 아닐까요?

문성희: 주된 난관이 경제라는 건 김 위원장이 경제가 '침체되어있다'고 말한 것으로도 알 수 있지요. 그것은 역시 경제 제재의 영향이 조금씩 나타나고 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이란도 지난해 5월에 미국이 이란산 원유의 전면 수입금지라는 제재 조치를 취한 뒤 경제가 매우 어려워지고 있다고 합니다. 민생부문에 관한 대북 제재가 본격적으로 시행되기 시작한 것은 2016년입니다. 거기서부터 올해는 4년 째가 되는데 아무래도 그 영향이 차차로 나오고 있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기자> 그러니까 현재 북한의 경제 상황이 매우 어렵다는 거요?

문성희: 네, 김 위원장 자신도 '나라의 형편이 눈에 띄게 좋아지지 못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저도 지난해 말 북한 주민들의 생활이 힘들어졌다는 얘기를 한 소식통을 통해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어떤 측면이 어떻게 어려워졌다, 하는 것은 듣지 못했지만, 제재를 받고 있는 이상 원유나 재료가 외부에서 안 들어오면 정상적인 생산 보장에 지장이 있겠지요. 제가 과거에 북한을 여러 번 방문해서 느낀 측면이지만, 북한 사람들은 매우 온순하고 국가의 명령에 대해서는 충실하게 수행하자고 열심히 노력을 하는 분들입니다. 아무리 조건이 안 좋아도 인내심을 가지고 창의창발성으로 극복하려고 하지요. 과거에 북한 사람들로부터 조건이 어려우니까 못한다는 말은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조금 일이 겹치면 불만이 생기는 저와는 대조적이지요. 그렇다고 한들 지금 놓인 형편은 정말로 어렵다고 보고, 노력에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평양 3개기술혁명전시관에 전시된 ‘련하기계' 상표의 CNC 선반. (2010년9월)
평양 3개기술혁명전시관에 전시된 ‘련하기계’ 상표의 CNC 선반. (2010년9월) (/문성희 박사 제공)

<기자> 북한의 어려운 경제상황, 좀 더 구체적으로 전해주시죠.

문성희: 직접 이야기를 들은 바는 아니지만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는 것 중 하나는 생산이 침체되기 때문에 물가가 올라간다는 것이지요. 한국의 데일리NK의 조사에 따르면 지난해 12월 22일 기준으로 쌀 1킬로그램의 시장가격은 평양이 4천260원, 신의주가 4천200원, 혜산이 4천310원이라고 합니다. 제가 2008년부터 2012년까지 북한을 오가면서 조사한 쌀 가격은 2천원부터 2천500원 정도였기 때문에 2배 정도로 올라가고 있다는 셈이지요. 물론 한때 6천원대를 기록한 것을 생각하면 값은 약간 내렸지만 그래도 최근 가격을 보면 높은 가격으로 안정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당연히 인민들의 생활은 어려워지지요. 쌀 시장가격이 오르고 있다는 것은 식량공급이 제대로 안 되고 있다는 증명이기도 하니까요. 그리고 생산이 침체된다는 것은 결국 공장 가동율이 낮아지고 있다고도 볼 수 있지요. 공장이 가동되지 않으면 거기 종업원들에게 임금이 지금될 수 없지 않습니까. 물론 1990년대 말처럼 기업에서 임금이 안 나오더라도 노동자들이 살 방도가 없는 것이 아니라 모두가 어떻게든지 살아갈 방도를 찾겠지만 그것에도 한계가 있다고 봅니다. 아마도 시장에서 물건이 사라진 것은 아니기 때문에 일부 돈을 가진 사람들은 그것으로 살아가겠지만 많은 사람들이 힘든 생활을 할 수 밖에 없는 것이라고 봅니다.

<기자> 북한 돈 가치는 어떤가요?

문성희: 데일리NK에 따르면 12월 22일 현재 1달러의 환율은 평양이 8천320원, 신의주가 8천200원, 혜산이 8천290원입니다. 2010년 제가 북한의 통일거리시장에서 전등을 사면서 달러를 지불하고 북한 원화로 거스름 돈을 받았는데 당시 환율이1달러에 1천500원 정도였어요. 이게 다음해인 2011년 여름에는 2천500-2천900원 정도로 올랐어요. 그래도 1달러 당 2천원 대였지 않습니까. 그게 지금은 달러 당 8천원 대라면 4배나 환율이 오른 거죠. 이것을 보아도 북한 원화의 가치가 하락하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고 봅니다. 인플레가 심해지고 있다는 것이겠지요.

<기자> 그렇다면 북한이 제재가 완화될 수 있도록 미국과 협상할 길을 선택할 수 밖에 없는 상황인 듯한데 현재 북한이 내세우는 걸 보면 반대 방향으로 가는 것 같아요.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2018년 일본에서 첫 발간된 문성희 박사의 북한 경제에 관한 저서 ‘맥주와 대포동’ 한국어판이 최근 한국에서 출간됐다.

문성희: 북한이 협상의 길을 선택할 가능성은 당분간 없다고 봅니다. 김 위원장이 7기 5차 전원회의에서 '미국과의 장기적대립을 예고'했고 지난 11일에 발표된 김계관 외무성 고문 명의의 담화도 미국과의 대화를 '시간을 버리는 일'로 간주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담화는 '미국과 다시 대화가 성립되자면 미국이 우리가 제시한 요구사항들을 전적으로 수긍하는 조건에서만 가능하다'고 밝히고 있습니다. 이런 상황을 종합해보면 북한이 미국과 회담에 나설 가능성은 당분간 없을 것이며 그렇게 된다면 제재 문제 역시 풀리기가 어렵다는 것이겠지요.

<기자> 지적하신 대로 북한으로선 당분간 제재 속에서 어떻게 경제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하는 것이 당면 과제인 것 같은데, 무슨 방도를 갖고 있을까요?

문성희: 전원회의에서 제시된 '정면돌파전'이라는 말에 집약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김 위원장은 이 달 초 순천인비료공장 건설현장을 현지지도하면서 '정면돌파전 사상'이라는 말을 썼어요. 이제 '정면돌파전'은 하나의 '사상'이 돼 있단 말이지요.

<기자> 결국 북한 당국이 핵협상 대신 미국과 장기전에 나서면서 주민들을 상대로 더 허리띠를 졸라 메라고 다그치고 있는 듯한데요, 과연 성공할 수 있을까요?

문성희: 물론 성공한다고 말할 수는 없는데 하여튼 북한 주민들이 앞으로도 힘들다, 이것 만큼은 틀림없을 걸로 보고 있고, 그래도 힘들어도 그걸 정면돌파하겠다, 이런 구호를 내걸고 있는 거죠.

<기자> 북한으로선 ‘장기전’으로 주민들의 희생을 각고하고 간다, 뭐 이런 태도라는 거죠.

문성희: 네.

<기자>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