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의 대북정책과 관련해 직접 트럼프 대통령을 인터뷰하고 최근 '격노(RAGE)'란 책을 펴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의 대북 외교를 '육감에 기반한 외교'였다고 평가했습니다.
반면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북한 체제의 특성과 과거 북미 관계를 고려하면 미북 두 정상이 합의의 진전을 위해 나름 진정성을 보였다고 분석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우드워드 기자 "북미 관계는 대담한 외교 행보 중 하나"
미국의 저명 언론인 밥 우드워드 워싱턴포스트 기자는 최근(9월 25일) 언론인을 대상으로 한 컨퍼런스(IRE, Investigative Reports and Editors)에서 "그동안 북미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육감에 기반한 외교"였다고 말했습니다.
자유아시아방송(RFA)은 당시 행사에 연사로 나온 우드워드 기자에게 "직접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과 관계를 듣고 그를 인터뷰하면서 양국 정상이 단지 정치적 수사(political rhetoric)가 아닌 북미 협상 진전을 위한 진정성과 의지를 갖고 있었다고 느낄 수 있었느냐"고 물었습니다.
이에 우드워드 기자는 "북미 관계는 트럼프 대통령의 매우 대담한 외교 행보 중 하나"였으며 (It's one of the most daring to be honest diplomacy moves by the president.) "많은 사람이 김 위원장과 만남을 만류했지만, 본인의 경험과 판단에 따른 육감적인 외교(a seat of the pants diplomacy)였다"고 답했습니다.
[밥 우드워드 기자] 북미 두 정상의 관계는 이번 책에서 가장 흥미로운 내용 중 하나입니다.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서로 말로써 전쟁 직전까지 갔다가 대화로 돌아서서 신뢰를 쌓았고, 마치 원탁기사단의 충성맹세와 같은 친서를 주고받았습니다. 두 정상의 대화와 신뢰 쌓기로 전쟁을 막았다고 하지만, 훗날 역사학자들이 이를 평가하겠죠. 많은 사람이 "이는 그동안 트럼프 대통령이 말했던 외교가 아니다"라며 만류했지만, 김 위원장과 만남까지 추진한 것은 트럼프 대통령의 매우 과감한, 그리고 육감적인 외교였습니다.
그러면서 트럼프 대통령이 재임 기간 트위터 등을 이용해 예측불가능하고 "한 번 해보자"는 식의 충동적인(on the impulse of the moment) 행보를 보여왔다고 우드워드 기자는 덧붙였습니다.
실제로 우드워드 기자가 쓴 책 '격노'에는 트럼프 대통령이 직접 김 위원장과 좋은 관계를 강조하는 내용이 자주 등장합니다. 책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2019년 6월 30일 판문점에서 김 위원장과 찍은 사진을 보여주면서 자신이 군사분계선을 넘어간 최초의 미국 대통령임을 강조하고, 매우 상징적이며 멋진 사진이라고 자랑합니다.
하지만 우드워드 기자가 "여전히 북미 관계는 위험하다"고 말하자 트럼프 대통령은 "우리가 서로 좋아하기 때문에 이전보다 덜 위험하다"며 "사진 속 김 위원장의 이런 미소를 이전에 본 적이 있으냐"고 되묻습니다.
또 전 세계의 모든 언론이 자신에 집중했던 싱가포르 정상회담 당시의 경험에 감격해 하는가 하면 김 위원장이 자신에게 보낸 친서에서 언급한 극존칭 'Your Excellency'에 대해서도 매우 만족해한 것으로 책에 기술돼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미국의 한반도 전문가인 켄 고스 해군분석센터 적성국 분석 국장은 (9월 28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에게는 세계 무대에서 자신이 어떻게 보여지는지가 매우 중요하다고 지적했습니다.
[켄 고스 국장] 제 개인적인 견해입니다만, 트럼프 대통령은 어떻게 하면 자신이 세계 무대에서 돋보일 수 있는지가 가장 중요합니다. 이를 정상적인 정치적 시각으로 해석하기는 어렵다고 보는데,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무대에서 자신의 업적을 남기기 위해 노력하는 인물입니다.

미 전문가들 "북미 협상 진전에 두 정상 관계 필요조건"
북한 체제의 특성과 북미협상의 전례를 알고 있는 미국 내 한반도 전문가들은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단지 정치적 수사만이 아닌 나름대로 진정성을 갖고 협상에 나서고 있다고 판단합니다.
트럼프 행정부 현직 관리들과 자주 만나는 해리 카지아니스 미 국가이익센터의 한반도 담당 선임 국장은 (9월 2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트럼프 대통령이 김 위원장을 상대하는 것뿐 아니라 북미 간 외교적 협상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 진지하게 노력했다고 본다고 말했습니다.
그동안 북미 간에 있었던 실무회담마다 북한 측 대표단은 늘 협상의 결정권이 없었기 때문에 협상의 진전과 합의에 도달하려면 두 정상 간의 친밀한 관계는 필수적이라는 겁니다.
만약 트럼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하면 앞으로 몇 년 동안은 북미 관계의 운명이 두 정상의 관계에 달린 것이 한편으로는 위험하지만, 이는 오히려 과거의 불운했던 북미 사이의 외교 실패를 반복하는 것보다 낫다고 카지아니스 선임 국장은 덧붙였습니다.
켄 고스 국장도 두 정상이 모종의 합의점을 찾기 위해서는 어찌 되었든 좋은 관계를 유지하는 것이 서로 정치적으로 유리하리라 판단했을 것으로 분석했습니다.
[켄 고스 국장] 트럼프 대통령과 김 위원장이 서로 특별히 좋아한다기보다 그것이 서로에게 정치적으로 유리할 것이라 생각했기 때문이라고 봅니다. 김 위원장은 대북제재에서 벗어나기를 원하고, 트럼프 대통령은 세계 무대에서 외교적으로 큰 업적을 세운 위인으로 평가받고 싶기 때문에 지금 두 정상이 서로 어떤 관계에 있든지 간에 이는 훗날 어느 시점에 거래를 성사시키고자 하는 이기적인 동기를 내포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반면, 미 랜드연구소의 수 김 정책분석관은 (9월 27일) 자유아시아방송에 지난 몇 년간 미국은 협상에 임하는 북한의 기대와 한계를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고, 이는 결국, 대화를 위한 충분한 준비를 하지 않았다는 것을 방증한다고 지적했습니다.
그러면서 김 분석관은 미국이 북한을 상대하는 데 있어 즉흥적인 행동을 했다면, 일부 결정도 임시방편으로 이뤄졌을 가능성을 시사한다고 꼬집었습니다.
한편, 우드워드 기자는 트럼프 대통령으로부터 전쟁 직전까지 갔다는 말을 들었지만, 평양에서 직접 김 위원장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그것이 정말 위협이었는지, 단지 엄포를 놓은 것인지는 말하지 않았다고 답했습니다.
[밥 우드워드 기자] 트럼프 대통령이 저에게 "김 위원장이 전쟁에 가까웠다"고 말했다고 했습니다. 김 위원장으로부터 같은 말을 들은 마이크 폼페이오 미 국무장관은 그것이 정말 위협인지, 단지 엄포였지는 확인해주지 않았습니다. 또 제임스 매티스 당시 국방장관은 김 위원장이 많은 핵무기를 사용하면 어떻게 될지, 또 미국을 보호하기 위해 트럼프 대통령에게 핵무기 사용을 건의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도 매우 고민하고 우려했다고 합니다.
책 내용에 따르면 트럼프 대통령은 만약 북한이 대륙간탄도미사일을 발사한다면 북한은 이전에 경험하지 못한 큰 문제에 직면하게 될 것이라며 ("Big problem, bigger than anybody's ever had before") 새로운 비밀 핵무기 체계(secret new nuclear-weapon system)를 갖췄다고 말했고, 미군 당국자도 우드워드 기자에게 이를 확인해줬지만, 정확한 내용은 밝히지 않았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