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반도 긴장 속 ‘남북 협력’ 내세운 한국 영화 잇달아

워싱턴-박수영 parkg@rfa.org
2022.05.01
영화 ‘강철비’의 한 장면.
/YouTube

앵커: 한국 영화계의분단 영화가 감동을 자극하는 신파에서 벗어나 남북한의 협력관계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는 분석이 제기됐습니다. 실제 한반도의 긴장은 고조하는 상황에서 남북한의 협력을 내세우는 영화가 한국 정치계와 국민들의 인식 변화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 관심인데요. 북한을 소재로 한 한국 영화계의 흐름을 박수영 기자가 짚어봤습니다.

 

한국 영화계, 분단 소재를 신파에서협력관계로 묘사

 

[임용수 대사] 우리가 같이 편먹고 뭔가 할 수 있을 거로 생각하오?

 

고립된 남북공관원들의 탈출 실화를 재구성한 영화 ‘모가디슈속 대사 중 일부입니다.

 

1991년 소말리아 내전으로 한국과 북한 대사관이 공격당하는 상황에서 한국 대사가 북한 대사에게 힘을 합쳐 탈출하자고 제안하자 북한 대사가 반문을 제기하는 내용입니다.

 

지난 몇 년 동안 북한의 무력도발과 핵미사일 발사유예 파기, 국제사회의 대북 경제제재 등으로 한반도 긴장이 고조되는 상황에도 한국 영화계가 그리는 남북한의 모습은 달랐습니다. 남한과 북한이 협력 관계가 될 수 있다는 가능성에 주목한 겁니다.

 

지난 48일 개봉한 한국 영화 야차도 남북 간의 협력을 다뤘습니다.

 

[정대] 조선노동당 중앙위원회 3호 청사 9호실, 일명 39 (중략) 한 달 전에 문병옥이 우리 (남한) 측에 신변 보호 요청을 해왔어요.

 

[희원] 39호를 놓고 북한, 중국 그리고 정체를 알 수 없는 제3의 일당이 충돌했어요.

 

이 영화는 북한 노동당 39호에 몸담았던 탈북민 문병옥이 한국 대사관에 신변 보호를 요청하자 한국 국정원의 해외 비밀공작 전담팀이 그를 보호하기 위한 임무를 수행하는 내용입니다.

 

한국으로 망명 신청을 한 문병옥 북한 노동당 실장을 한국 국정원이 중국과 제3의 세력으로부터 보호하고, 북한 측 핵심 인물과 협력하는 모습을 그려냈습니다.

 

이처럼 한국 영화계에서는 남북한의 협력에 초점을 맞춘 영화들이 꾸준히 제작됐습니다.

 

각각 2017년과 2020년에 개봉한 영화 강철비도 북한 내 군부 세력에 의한 쿠데타가 한반도 전쟁으로 퍼지는 것을 막기 위해 남과 북이 협력하는 과정을 담았으며 앞서 개봉한 영화 공조도 남한으로 숨어든 북한 범죄조직을 잡기 위해 남북한 형사가 합동수사를 벌이는 내용이었습니다.

 

한국에서 문화평론가로 활동하는 동아방송예술대학의 김헌식 교수는 (4 29) RFA에 한국 영화계는 분단 상황을 단순히 휴머니즘을 자극하는 소재로 이용하던 것에서 벗어나어떻게 협력할 수 있는가라는 현실론적인 관점에서 접근하고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외부 또는 내부 세력에 의해 한반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전쟁과 더 큰 혼란을 막기 위한 남북한의 협력 방안을 영화에서 제시한다는 겁니다.

 

[김헌식] 생존을 위해서는 둘이 협력해야 한다는 거죠. ‘모가디슈도 처음에는 두 대사관 직원들이 협력했던 것이 아니고 오히려 반목과 경쟁을 했던 상황이었는데 전쟁이 터져서 그곳에서 살아남아야 하니까 협력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고, 야차같은 경우도 마찬가지로 정보원들이 통일한 것이 아니고 정보 활동 그리고 심지어는 자기 생존이나 복수를 하는 데 있어서 서로가 필요했기 때문에 협력한다는 이야기였죠. 또 북한에서 탈출하려고 하는 사람도남한이 무조건 좋다는 자유 진영에 대한 환상을 갖는 게 아니고 북한에서 살 수 없고 견딜 수 없는 상황이 됐기 때문에 이탈하는 것이고요. 영화 내에 그런 현실적인 이유들이 상당히 존재하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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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모가디슈’의 한 장면. 

 

극단적 휴머니즘에서 현실주의로

 

2000년대의 대표적인 분단 영화였던 공동경비구역 JSA’, ‘쉬리’, ‘웰컴투 동막골등은 남북은 서로 다른 이념을 가진 나라지만, 연민과 사랑 등의 감정을 공유하는 한 민족이라는 점에 주목했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감정보다 현실에 더 주목했다는 것이 영화 평론가들의 설명입니다.

 

[김헌식] 예전의 (분단 영화들을) 보면 약간 극단을 치우쳤습니다. ‘어느 날은 갑자기 주적이라고 했다가 어느 날은 갑자기 또 동포기 때문에 협력해야 된다이런 걸 알 수 없는 휴머니즘을 강조하고는 했었는데, 지금도 북한이라는 국가 체제 자체에 대해서 (부정적인) 인식이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전향적으로 가야 한다고 하는현실론적인 관점에서의 휴머니즘이 많아졌다는 생각이 듭니다.

 

김 교수는 이같은 변화가 한국 내 젊은 세대의 인식변화에도 영향을 미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무조건 동포이기 때문에 북한을 끌어안거나 통일을 해야 한다는 것보다 현실적인 관점에서 북한을 바라보고 북한의 태도에 따라 우리도 맞춰가야 한다는 실용적인 현실론으로 젊은 세대들의 인식이 바뀌고 있다는 지적입니다.

 

미 영화계서 북한은 여전히 테러리스트

 

반면, 미국 영화계가 바라보는 북한은 여전히 적대적입니다.

 

2013 8월 개봉한백악관 최후의 날에서는 북한이 정당한 이유 없이 미국의 백악관을 테러하는 내용을 담았습니다.

 

또 2014 12월 개봉한 디 인터뷰는 김정은 북한 총비서를 우스꽝스럽게 연출했고, 이후 미국 행정부는 북한 당국이 해당 영화 제작사를 해킹했다고 공식 발표한 바 있습니다.

 

이에 대해 김헌식 교수는 북한 내부 실정에 대한 미국의 관심은 적을 뿐 아니라, 북한을 적대시하려는 미 정치계에 의해 미국 영화계가 북한을 주로 으로 묘사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김헌식] 북한은 경제 성장이라든지 이런 국가의 위상이 추락하고 있기 때문에 오히려 더 군사적인 부분에 더 집중하는 형태로 가고 있거든요. 북한의 구조적인 측면들은 미국이 간과하고 있다는 점에서 아쉬움이 있다는 생각이 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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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야차’의 한 장면.

 

퇴보하는 북한 문화김정은 정권 불안정성 때문

 

한편, 당국의 엄격한 검열 탓에 북한 영화계는 퇴보하고 있다는 전문가들의 지적도 적지 않습니다.

 

전영선 한국 건국대학교 통일인문학연구단 연구교수는 김 총비서가 내세운 핵심은 변화와 혁신이었지만, 김 총비서의 정치적 위상이 흔들리면서 북한 문화 예술계가 침체기를 맞기 시작했다는 설명입니다

 

[전영선 교수당 조직이 선전∙선동 사업을 장악하고 있습니다. 상대적으로 사회∙문화 쪽의 역할이 완전히 사라졌습니다. 과거처럼 영화나 음악, 미술 등을 동원해서 인민을 선동했던 사업은 다 사라지고, 최근 북한 언론을 보면 공장이나 기업소 등 노동 현장에서 매우 구체적인 자료를 동원한 선전 사업이 이루어지고 있고, 예술인들의 선동 사업에서 당원들의 선동 사업으로 나가는 것이 달라진 점이라 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도 북한 내 문화 검열이 사라지지 않는 한, 북한 문화예술이 발전하기 어려우리라 내다봤습니다.

 

[김헌식] 음악, 영상에 관련된 검열 제도가 없어졌던 때부터 한국 영화라든지 음악이 발전하기 시작을 한 거거든요. 그런데 북한이나 중국은 그런 통제가 너무 심하기 때문에 아무리 기술 관점에서 IT 정보 기술이 향상한다고 하더라도, 안면인식 기술이나 드론 이런 기술은 발전할지 모르지만, 소프트웨어에 해당하는 콘텐츠들은 발전하지 못할 것이라고 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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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 조선중앙TV는 지난 9일 조선4·25예술영화촬영소의 신작 예술영화 '하루낮 하루밤' 예고편을 공개했다. 북한 매체인 노동신문은 “반당반혁명종파분자들의 음모의 내막을 끝까지 폭로하는 공화국영웅 라명희”에 관한 영화라고 소개했다./연합

 

김씨 일가 체제존속 불안정성으로 북한 내 문화 통제가 강화하는 가운데, 북한 매체는 여전히 사상 통제와 주입의 수단으로 사용되고 있습니다.

 

지난 3월 조선중앙텔레비전이 방영한 김정은 총비서의 탄도미사일 발사장 시찰 영상은 파격적이고 화려한 편집기법을 이용했는데, 이는 북한의 젋은층을 사로잡기 위함이라고 평가된 바 있습니다.

 

하지만 이처럼 주변국 안보에 위협을 주는 무력도발을 북한 정부 매체가 긍정적으로 연출하는 것은 김정은 총비서가 전쟁을 가볍게 여긴다는 신호일 수 있다고 김 교수는 경고했습니다.

 

[김헌식] 대량 살상 무기인데 할리우드 방식으로 가볍게 접근을 하고 있는데, 잘못 전개가 되면 위험한 결단도 내릴 수 있습니다. 남북 정상회담도 (김정은 총비서가) 이데올로기나 냉전기에 대한 트라우마가 없기 때문에 긍정적으로 전개 된 경향이 있지만 세상을 가볍게 바라보는 관점이 잘못 풀리게 되면 극단적인 선택도 할 수 있다고 생각이 들어요.

 

이처럼 미국과 북한 영화계가 여전히 군사적인 부문과 대결 구도를 조명하는 가운데, 한국 영화계가 내세우는 남북 협력 관계가 실제 국민들의 인식과 남북미 관계에도 영향을 미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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