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 핵무력 법령 통해 비핵화 문 닫고 선제타격 길 열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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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북한이 핵무력 사용과 관련해 다섯 가지 조건을 담은 핵무력 법령을 채택한 뒤 비핵화를 포함한 미국과 한국의 향후 대북정책의 방향이 주목됩니다. 전문가들은 북한이 미국과 한국을 향해 선제타격 가능성을 열어두면서 비핵화 가능성을 닫았다고 평가하면서도 이번 조치로 한미동맹이 더 견고해질 걸로 내다봤습니다. 박수영 기자가 보도합니다.

핵무력 법령 , "선제타격 가능성은 열어두고, 비핵화 가능성은 닫아둔 격"

북한이 핵 무력 법령을 발표한 직후 이뤄진 윤석열 한국 대통령의 (20일) 첫 유엔총회 연설.

북한 문제에 초점을 맞추리란 기대와 달리, 윤 대통령은 북한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습니다.

[윤석열 한국 대통령]오늘날 국제사회는 힘에 의한 현상 변경과 핵무기를 비롯한 대량 살상 무기, 인권의 집단적 유린으로 또다시 세계 시민의 자유와 평화가 위협받고 있습니다. 이러한 자유와 평화에 대한 위협은 유엔과 국제사회가 그동안 축적해온 보편적 국제 규범 체계를 강력히 지지하고 연대함으로써 극복해 나가야 합니다.

한국 국가안보실 고위관계자는 윤석열 대통령의 유엔 연설은 북한에 한정되지 않았지만 북한에도 적용되는 보편적 규범을 언급했다고 밝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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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석열 대통령 유엔 무대 데뷔전 윤석열 대통령이 20일(현지시간) 미국 뉴욕 유엔본부에서 열린 제77차 유엔총회에서 기조연설을 하고 있다. /연합 (서명곤/YNA)

‘핵무력 법령’ 자기방어인가, 선제 타격용인가?

전문가들은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가 선제타격의 가능성을 열어두고 비핵화의 문을 닫은 걸로 평가했습니다.

미 연구기관 ‘로그 스테이츠 프로젝트(Rogue States Project)’의 해리 카지아니스 대표도 (20일) RFA에 ‘핵무력 법제화’는 북한이 핵무기를 자기방어용에서 선제 타격용으로 전환한 징후라고 설명했습니다.

[해리 카지아니스]지난 몇 년 동안 핵 개발의 목적은 자주국방이라고 밝힌 것과 다르게, 최근 김정은 총비서는 "북한이 언제 어떤 식으로든 핵무기를 사용할 수 있는 권리가 있다"고 주장하고 있는 것 같습니다. 핵은 여전히 방어를 위한 수단이기도 하겠지만, 북한은 본질적으로 핵의 목적을 바꾸고 그들에게 자기방어가 무엇을 의미하는지에 대한 정의를 바꾸고 있습니다. 예를 들자면, 만약 미국과 남한이 침략을 위해 군대를 대량으로 모으기 시작했다고 판단하면, 그들은 그 군대를 선제적으로 공격할 권리를 보유한다는 겁니다. 따라서 핵정책 법제화는 매우 위험하고 전쟁의 규모를 확장할 수도 있습니다.

핵무력 법령은 북한 입장에서 한국과 미국을 향한 강력한 도발 신호라는 겁니다.

[해리 카지아니스]법령에는 북한이 언제 핵무기를 사용할지에 대한 정확한 묘사는 없습니다. 이전에는 핵무기가 방어를 위한 수단이었지만 이제는 북한이 원할 때 사용할 수 있다는 매우 광범위한 범주로 확대됐고 또 이를 교리로까지 정해놨습니다.

반면 미 해군분석센터(CNA)의 켄 고스 선임국장은 북한이 핵 무력 조건 다섯 가지를 내건 것은 협상 카드를 확보하기 위해서라고 분석했습니다.

[켄 고스]핵 법령은 미국과 한국 모두에게 전략적인 메시지를 보내는 거죠. 공격적이거나 전쟁을 유발할 만한 일을 벌이면 핵을 동원할 수도 있다는 경고의 메시지를 보내는 겁니다. 또 한편, 미국이 북한이 핵실험을 진행한 것처럼 보고 협상장으로 먼저 나오기를 바라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북한은 항상 협상장에서 쓸 카드를 확보하려 합니다. 북한이 바라는 대로 미국이 협상장에 먼저 나오려 하지는 않겠지만요.

고스 선임국장은 북한이 아직 7차 핵실험까지 단행하지 않았기 때문에 핵 무력 법령을 선 채택한 것은 자기방어적 성격이 강하다고 덧붙였습니다.

한국 국방부 산하 국책연구기관인 한국국방연구원(KIDA)의 신승기 연구위원도 북한이 불필요할 만큼 구체적인 핵 태세를 언급한데 주목했습니다.

[신승기]북한이 주장하는 바와 같이 미국의 공격을 억제할 수 있는 충분한 핵전력을 이미 보유하고 있다면, 그 자신감에서 굳이 핵전력 사용과 관련한 구체적인 내용을 일일이 설명할 필요성이 없거든요. 다른 핵 강국도 핵 태세나 핵전략에 대해서 개념적이거나 전반적인 내용을 언급하는 정도지 이번에 북한이 이야기한 것처럼 그렇게 구체적으로 말하지는 않거든요. 그래서 결국 '미국과 비교해서 현격히 차이 나는 핵전력이 미국의 오판, 즉 미국의 공격을 부를 수 있다'는 북한 스스로 내재된 공포와 우려가 북한 스스로 미국에 넘지 말아야 할 일종의 '레드라인'을 구체적으로 설명하는 계기가 된 게 아닌가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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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의 ‘핵무력 법령’ 비핵화 문 닫고, 선제타격 가능성 열어> /RFA 그래픽 - 박수영 제작.

한반도 군비 경쟁 심화 우려 …한국 군비 지출 점점 증가

북한의 이번 조치로 남북한 간 군비경쟁이 심화할 것을 우려하는 목소리도 적지 않습니다.

신승기 연구위원은 한국과 미국이 준비 태세를 갖추고 핵억지력을 높이기 위해 군사력을 높이는 데 집중할 걸로 내다봤습니다.

[신승기]일종의 시소게임처럼 계속해서 북한의 핵 개발로 인한 긴장 국면이 단지 이번에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만으로 더 가중된다기보다는 큰 틀에서 북한의 핵 개발 그리고 핵전력이 계속해서 증가함에 따라서 거기에 대응하는 한미 연합의 대응 전략도 강화되고 이런 것들이 계속 시소게임처럼 왔다 갔다. 즉, 악화-완화를 계속해서 반복해 나갈 수밖에 없을 거로 생각합니다.

카지아니스 대표도 북한의 핵 위협에 대응하기 위한 한국의 국방 지출이 계속 증가할 것으로 전망했습니다.

[해리 카지아니스]한미는 사드와 방어용 미사일에 대한 투자도 굉장히 많이 하고 있지만 앞으로도 한국이 미사일 능력, 정밀타격 능력 등을 대폭 끌어올릴 것으로 생각합니다. 그리고 한반도에서 전면적인 군비 경쟁이 벌어질 지경에 이르렀다고 생각합니다. 이미 군비 경쟁에 돌입했다고도 볼 수 있겠지만 앞으로는 군비 경쟁이 당연한 것이 되리라 생각합니다.

실제 2023년도 한국 국방예산은 전년 대비 4.6% 증가한 57조 1천268억 원(402억 1천 741만 달러)으로 이 중 5조 2천549억 원(36억 9천 946만 달러)이 북한의 핵미사일 위협에 대응하기 위해 편성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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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5월 22일 평택 오산 공군기지 내 항공작전센터를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왼쪽에서 두 번째)이 윤석열 한국 대통령(가장 왼쪽)과 함께 방문하고 있다./AFP (SAUL LOEB/AFP)

대북정책의 미래는 ?

한편 북한 전문가들은 핵무력 법령으로 인해 한반도 비핵화에는 비관적이면서도 한미 동맹은 더 견고해지리라 내다봤습니다.

카지아니스 대표는 북한이 자주 방어를 목적으로 핵무력 법령을 채택했지만, 의도와는 다르게 한미 간 동맹만 더 강화되리라 분석했습니다.

[해리 카지아니스]국방의 관점에서 핵 법령은 미국과 한국을 훨씬 더 가깝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훨씬 더 많은 한미 군사 훈련을 진행할 것이라고 전망되기 때문입니다. 솔직히 미국과 한국은 북한이 협조적으로 나올 것을 기대하기 어렵기 때문에 반대로 한국의 국방 예산도 더 크게 뛰고, 더 많은 항공모함 전투단과 전략자산들이 한반도를 드나들게 될 것입니다. 따라서 미국과 한국이 최선을 다해 군사 태세와 능력을 갖추고 한국을 방어하도록 한다는 것인데, 이는 한미 동맹을 더 강하게 만들 것으로 생각합니다. 김 총비서가 기본적으로 이를 잘못 계산한 것 같습니다.

실제 23일 원자력 추진 항공모함인 미국의 ‘로널드 레이건호’(CVN-76)가 한국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해 해상 연합훈련을 벌였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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떠다니는 군사기지 레이건호 입항 23일 오전 미국 핵 추진 항공모함 로널드 레이건호(CVN-76)가 부산작전기지에 입항하고 있다. 레이건호를 포함한 미 항모강습단은 한미 양국 해군 간 우호협력 강화와 연합 해상훈련 참가를 위해 입항했다. 10만t급의 레이건호는 2003년 취역해 슈퍼호넷(F/A-18) 전투기, 공중조기경보기(E-2D)를 비롯한 각종 항공기 80여 대를 탑재하고 다녀 '떠다니는 군사기지'로 불린다. /연합 (손형주/YNA)

고스 선임국장은 다만 한미가 북한 문제를 하루빨리 해결하는 데 집중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켄 고스]한미는 북한이 실질적으로 아무것도 할 수 없다는 것에 만족하고 있지만 만약 북한이 결국 한국과 미국을 타격할만한 능력을 갖추게 된다면 상황은 북한에 유리하게 바뀔 것이고 한미는 결국 원하지 않는 것에 순응해야만 할 것입니다.

안킷 판다 카네기국제평화재단 선임연구원도 “이른 시일 이내에 바이든 행정부가 단기적으로 북한 문제에 훨씬 더 많은 에너지를 쏟을 것 같지 않다”며 “7차 핵실험이 바이든 행정부의 태도를 바꿀 수도 있겠지만, 큰 변화가 있으리라 확신할 수 없다”고 말했습니다.

고스 선임국장은 또 비핵화는 어렵지만, 핵을 실제 사용하지 않도록 하는 것을 목표로 북한과 협상에 임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켄 고스]지금 우리가 바랄 수 있는 최선의 방법은 북한을 "박스" 안에 가두는 것입니다. 박스 안에 가둔다는 것은 북한이 핵을 더 이상 실험하거나 확산하지 않고 도발하지 않는 것을 대가로 제재 완화를 협상 조건으로 거는 것을 의미합니다. 이처럼 북한의 핵 증강이 더 이상 진전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실레스트 애링턴 조지 워싱턴대 정치∙국제관계학 교수도 (22일) RFA에 “향후 한미 양국은 북한을 도발하지 않고 대비 태세와 억지력을 유지하는 것이 관건이 될 것”이라며 “한미가 북한과의 소통 창구를 적극적으로 전면 개방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미국 국무부는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에 대한 미 국무부의 입장과 향후 대북정책 방향성을 묻는 RFA의 질문에 (22일) “관련 사안에 대해서는 드릴 말씀이 없다”고만 답했습니다.

북한의 핵무력 법제화에 이은 제7차 핵실험 가능성까지 거론되는 가운데, 한반도의 긴장 수위를 낮추는 방향을 모색할 수 있을지 주목됩니다.

기자 박수영, 에디터 박정우,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