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대북 교역의 핵심 창구로서 북중 간 '황금다리'로 불리던 중국의 '랴오닝 훙샹그룹'. 이 기업은 북중 간 무역과 물류 운송 등을 주관하다 북핵 프로그램 개발 물자를 공급했다는 의혹을 받고 대북 제재 대상이 됐는데요. 당시 중국 당국이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직접 조사에 나서면서 당시 그룹을 이끈 마샤오훙 총재도 모습을 감췄습니다.
그런데 최근 북중 간에 인적 교류가 재개되면서 훙샹그룹의 마 총재가 다시 모습을 드러냈다고 하는데요. 물류 운송을 시작으로 대북 무역 활동을 재개했을 가능성이 제기됐습니다.
서혜준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조사받고 사라졌던 마샤오훙 총재 , 활동 재개 "
지난 2000년 중국과 북한 간 무역 중개업으로 시작해 2011년 대기업으로 성장한 중국의 ‘랴오닝 훙샹그룹’.
당시 훙샹그룹은 북중 간 수출입 무역과 물류 운송, 문화 교류 행사를 주관하는 대북 교역의 핵심 창구로서 큰 이익을 거뒀는데, 당시 알려진 연 매출만 중국 돈으로 3천만에서 5천만 위안에 달했습니다.
그러던 중 2016년, 훙샹그룹은 중대 경제범죄 혐의로 중국 공안 당국의 조사를 받게 됩니다.
석탄과 화학제품, 금속, 섬유 기계류 등을 북한과 거래하다 핵 프로그램 관련 물자를 불법으로 공급해 대북 제재를 위반했다는 의혹을 받고 중국 정부가 직접 조사에 나선 겁니다.
미국 재무부도 같은 해 9월, 북한에 핵 프로그램 개발 관련 물자를 제공했다는 혐의로 훙샹그룹의 계열사인 ‘단둥 훙샹실업발전유한공사’와 이 그룹을 이끈 마샤오훙 총재를 포함해 경영진과 대주주 등 4명을 제재했는데, 당시 한국 아산정책연구원과 미국 선진국방연구센터(C4ADS)의 공동보고서에 따르면 ‘단둥 훙샹실업발전유한공사’가 2011년 1월부터 2015년 9월까지 북한과 거래한 무역 금액은 미화 5억 달러 이상이었습니다.
그렇게 조사 대상이 된 마 총재는 소리 소문 없이 자취를 감췄습니다.
그리고 지난해 8월 북한이 국경을 개방하고 중국과 인적 교류를 재개한 가운데 한동안 사라졌던 마 총재가 다시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북중 국경 상황에 밝은 중국 단둥의 한 무역업자는 최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중국에 체류했던 북한 주민이 본국으로 송환되는 가운데 이들의 이삿짐 운송을 마 총재가 관여하고 있는데, 대부분을 도맡아 하고 있다”고 밝혔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이를 계기로 훙샹그룹이 이전에 활동했던 존재감을 되찾을 것으로 보인다”고 덧붙였습니다.
또 다른 대북 소식통도 RFA에 훙샹그룹의 마 총재가 활동을 재개했다는 사실이 일부 무역업자들 사이에 잘 알려져 있다고 말했습니다.
[ 대북 소식통 ] 마샤오훙 대표가 중국 당국에 체포돼 어디론가 사라졌었어요 . 그래서 20 년 징역형을 받았네 , 죽었네 등등 온갖 소문이 있었습니다 . 그런데 지금 훙샹그룹이 사업을 하고 있어요 . 마샤오훙이 사장으로 다시 활동하고 있단 말입니다 .
이 소식통은 현재 마 총재가 북한으로 귀국하는 사람들의 이삿짐과 화물 운송 정도만 하고 있지만, 북중 무역이 본격화되면 그가 중심이 돼 주요 거래가 이뤄질 것이 거의 확실하다고 전했습니다.
" 마 총재 , 북중 교류에 유용할 것 " vs " 영향력 제한적 "
마샤오훙 총재의 활동 재개와 관련해 영국 리즈대학교 동아시아학 교수이자 북중 문제 전문가인 애담 카스카트(Adam Cathcart) 박사는 RFA에 “북중 정상들이 양국 간 무역을 부활해야 한다는 신호를 보내고 있다”며 “마 총재가 활동을 재개했다면, 중국 정부가 목표를 달성하는 데 그가 유용하다고 판단한 것”이라고 평가했습니다.
지난해 9월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평양에서 류궈중 중국 국무원 부총리를 만나 교류 협력 분야를 논의했고, 12월에는 1년여 공백 끝에 평양에 부임한 왕야쥔 북한 주재 중국 대사가 신의주에 있는 기업들을 방문했는데, 이런 행보가 북중 교류 활성화의 시작을 의미한다는 겁니다.
그러면서 “북한과 중국이 경제적 상호작용을 가속할 필요를 느끼고 있다”고 카스카트 박사는 강조했습니다.
실제로 중국 당국이 훙샹그룹에 대해 조사를 벌인 2016년 9월 당시, 미국 일간지인 뉴욕타임스는 “마샤오훙 총재가 북한과 경제적 유대 강화를 열렬히 지지해 왔으며, 훙샹그룹은 북중 사이의 ‘황금다리’로 불렸다”고 보도했습니다.
또 신문은 당시 마 총재가 오랜 대북 교역을 통해 많은 북한 인맥을 확보하고 있었다는 점도 언급했는데, 그는 2013년에 랴오닝 인민대표대회의 단둥시 대표도 겸임하면서 공무원, 기업인들과 인맥을 쌓았고, 활동 범위도 넓힌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따라서 오랜 공백으로 마 총재의 인맥이 축소됐을 수 있지만, 대북 교역에 대한 그의 전문성은 북중 양측 모두에 유용할 것이란 게 카스카트 박사의 분석입니다.
반면, 마 총재가 활동을 재개했어도 북중 간 무역 활성화에 큰 영향을 미치지 않을 것이란 관측도 있습니다.
평양 엘리트 출신으로 미국 컬럼비아 대학에서 석사 과정을 밟고 있는 이현승 씨는 3일 RFA에 “마 총재는 단둥시라는 중국 변방, 넓게는 랴오닝성 안에서 어느 정도의 영향력을 가진 무역상이지 북중 관계를 좌지우지할 영향력은 없다”고 잘라 말했습니다.
[ 이현승 ] 북중 무역이 활성화되려면 일단 김정은 북한 지도자가 국경을 열어야 해요 . 그리고 북중 무역을 활성화하라는 북한 지도자의 지시가 있어야 하고요 . 또 제재 종목이 아닌 제품 중에서 어떤 것을 선택할 수 있는지도 문제입니다 . 그렇게 무역을 한다고 해도 만약 그 제품이 북한의 미사일이나 핵 개발에 사용된다는 증거나 증언이 나오게 되면 마샤오훙은 또 ( 활동이 ) 막히는 거예요 .
이에 대해 카스카트 박사도 “마 총재가 활동을 재개했어도 잠재적인 중국 파트너들의 준비가 돼 있지 않아 당장은 관련 당사자들의 편의를 위한 것일 수 있다”고 견해를 밝혔습니다.
" 중국 , 대북 제재 이행에 관심 없어 보여 "

과거 훙샹그룹은 북한에 유엔 대북 제재의 회피 수단으로 활용됐습니다.
지난 2019년 7월 미국 법무부가 발표한 기소장에 따르면 북한 당국은 2009년 5월 2차 핵실험 이후 미국의 금융 제재가 강화되자, 그동안 자신들의 금융거래를 대행해 오던 훙샹그룹 측에 제재를 피할 방법을 문의하기도 했습니다.
이때 마 총재는 2009년 12월부터 2015년 9월까지 영국령인 버진 아일랜드, 세이셸, 홍콩, 웨일스 등에 위장회사 22곳을 설립하고, 중국은행 계좌를 통해 미국 금융체계를 이용하거나 달러화로 결제하면서 북한의 불법 거래를 도운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당시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인 중국도 제재 강화에 합의하면서 훙샹그룹이 활동에 큰 제약을 받았는데, 이에 대해 카스카트 박사는 “중국이 지난 2016년과 2017년, 대북 제재 이행에 적극적으로 임하고 있다는 점을 부각하기 위해 마샤오훙 총재와 다른 중국 자본가들을 대외적인 증거로 사용했다”고 설명했습니다.
일부에서는 중국이 대북 제재의 이행보다 경제적 이익 때문에 훙샹그룹을 직접 조사했다는 분석도 내놓습니다.
[ 이현승 ] 중국이 겁을 먹은 게 , 미국이 수사하기 시작하면 중국 은행들과 강철 업계가 타깃이 돼요 . 중국 은행이 미국의 제재를 받으면 스위프트 (SWIFT∙ 국제은행간통신협회 ) 시스템에서 빠질 수도 있고 , 강철 업계가 타격을 받으면 미국으로 강철 수출이 막힐 수 있는 문제거든요 . 그래서 중국이 주도적으로 마샤오홍을 수사한 거죠 .
또 당시 중국 당국이 홍샹그룹을 직접 수사한 배경에는 미국 정부가 북한과 불법 거래를 한 여러 가지 증거를 제시하며 이에 대한 강력한 제재를 요청했기 때문이란 소문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중국은 대북 제재 이행에 큰 관심이 없어 보인다는 지적도 있습니다.
미국과 중국이 패권 경쟁을 벌이는 가운데 중국이 북한의 새로운 도발에 대한 유엔 안보리 대북 제재 결의에는 거부권을 행사하면서 북한과 상업적 협력관계는 중요시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런 가운데 북한과 불법 거래로 제재 대상이 된 훙샹그룹의 마샤오훙 총재가 다시 활동을 재개한 것으로 알려지면서, 앞으로 북중 교류에 미칠 영향과 무역의 활성화 여부에 관심이 쏠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서혜준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