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코로나 대유행 이후 구출 활동이 한층 어려워지면서 한국에 입국하는 탈북민 수도 급감했습니다. 그만큼 탈북민들이 한국에서 시작하는 새로운 삶은 더 소중한데요. 하지만 이들은 정착 과정에서 경제적 빈곤, 사회적 편견 등 많은 어려움을 마주하게 됩니다.
약 500명의 탈북민을 구출한 한국의 인권단체 ‘나우(NAUH)’는 탈북민들의 성공적인 정착을 위해 자원봉사, 쌀 지원, 주말농장 활동 등을 펼치고 있는데요. 이들이 잘 정착하고, 잘 살아야 힘겹게 구출한 보람도 있기 때문입니다.
[중국 내 탈북민 구출기] 오늘은 마지막 순서로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들이 어떻게 자신감을 갖고 소속감을 느끼며 살아가는지 천소람 기자가 들어봤습니다.
구출 후 찾아오는 탈북민 , 10명 중 1명… "마음의 짐 주고 싶지 않아요"
한국의 북한인권단체 ‘나우(NAUH)’가 지금까지 구출한 탈북민은 약 500명이 넘습니다.
올해로 12년째 탈북민 구출 활동을 하고 있지만, 탈북민이 한국에 온 뒤에도 그 관계를 유지하기는 쉽지 않습니다.
‘나우’는 탈북민이 안전하게 중국을 빠져 나와 메콩강을 건너 동남아시아 제3국에 도착할 때까지 돕고 있는데, 그들이 동남아시아 제3국에 도착하면 ‘나우’의 역할도 끝나게 됩니다.
또 탈북민들이 해당 국가의 절차를 거쳐 한국에 온 이후에도 보안상 이유로 탈북민의 개인정보에 접근할 수 없습니다. 구출을 도왔던 탈북민의 한국 정착 상황을 전혀 알 수 없는 겁니다.
한국에서 그들과 다시 연락할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은 탈북민이 직접 ‘나우’를 찾아오는 것밖에 없다고 지철호 정착지원실장은 말했습니다.
[지철호] 10명 중 1명 정도 오더라고요. 탈북민이 어려울 때 도움을 받았지만, 정신이 없다 보니 기억을 못하는 경우도 있고요. 아니면 본인들이 도움을 받은 것에 대해 혹시 다른 브로커들처럼 돈을 요구할까 봐 (나우의 문을) 못 두드리는 경우도 있습니다. 지금까지 거의 500명을 구출했는데요. 다시 한 번 네트워크(관계)를 형성해서 지속적으로 돕고 싶은데 그런 부분이 힘들기도 하고, 보안상의 이유로 개인정보에 접근이 안 되는 것도 있습니다.
[기자] 안타까우시겠어요.
[지철호] 그런 것들도 다 이해하죠. 유형이든 무형이든 탈북민에게는 채무가 될 수 있으니까요. 뭔가 저 사람이 이렇게 해줬으니까, 나중에 한 번은 도와줘야 할 것 같은 마음의 빚이 있잖아요. 그것도 무형의 채무로 느낄 수 있기 때문에...
지 실장은 탈북민이 다시 찾아오지 않는 서운함보다 그들의 한국 정착을 돕지 못하는 아쉬움이 더 크다고 덧붙였습니다.
[지철호] 연락이 닿으면 친하게 지내는 거고, 연락이 안 돼도 그분들이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이 있습니다. 또 탈북민들이 한국 국민과 비교해 자살률이 약 3배 정도 높습니다. 힘들게 왔고, 여러 사람의 후원이 모아져 온 거잖아요. 그러니까 탈북민들이 좀 더 잘 살았으면 하는 바람뿐이죠. 또 연락이 되면 감사하고 반갑고.

나우가 구출한 500여명의 탈북민 중 지금까지 지 실장과 연락하는 사람은 약 200명입니다. 안부를 묻는 연락만 하루에 적게는 50명에서 많게는 150명에 달합니다.
지 실장은 코로나 대유행 이후 구출 활동이 어려워진 만큼 이미 한국에 정착한 탈북민에 대한 마음이 더 애틋해졌다고 말했습니다.
[지철호] 아침 9시에 시작한 안부 연락이 저녁 5시가 되어서야 끝나기도 합니다. 이런 연락 하나가 탈북민에게는 ‘(나도) 한국 사회에서 연관이 있는 사람이 있다’고 느낄 수 있고요. 그 자체가 한국에서 살아가는 탈북민들에게 심적인 도움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봉사 활동으로 자신감 회복하고 , 소속감 느끼기도
지철호 실장에 따르면 한국에 온 탈북민들은 대부분 기초생활수급자로 정착을 시작합니다.
한국에서 모든 것을 처음 경험하는 많은 탈북민이 외부의 도움 없이 기초생활수급자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은데, 사회, 문화, 언어 등에서 오는 차이 때문에 더욱 정착에 어려움을 느끼고 있다고 지 실장은 덧붙였습니다.
[지철호] 탈북민들이 외부 생활을 하지 못하고 주로 집에 있습니다. 처음에는 그렇게 생활할 수 있지만, 우울증에 빠지기 쉽고, 심할 경우에는 자살까지 이어지기도 합니다.
그동안 탈북민 구출에 힘쓰던 ‘나우’는 코로나 대유행으로 구출 활동에 제약이 생긴 이후 탈북민 정착 지원에 더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한국에 오는 대다수 탈북민이 여성이고(23년 6월 현재 총 71.9%: 출처 통일부), 한부모 또는 미혼모 가정도 적지 않기 때문에 경제적으로 어려운 가정에 쌀을 보내기도 했습니다.
북한에서 쌀 배급을 받을 때가 가장 좋았던 기억을 되살려 생각해 낸 아이디어였습니다.
[지철호] 나이가 많아 경제 활동을 하기 어려운 분들, 그 외에 기초수급자분들께 쌀을 보내드리고 있습니다. 탈북민들에게 ‘쌀’이라는 개념이 엄청 특별하거든요. 북한에 살 때 가장 좋았던 게 쌀로 배급을 줄 때였습니다. 또 한 번은 구출한 탈북민 중 한 명이 생일이어서 케이크를 들고 가정 방문을 했습니다. 식사하고 가라며 밥을 주더라고요. 그런데 쌀이 좀 퍼석퍼석한 거예요. 생일에 그런 쌀밥을 먹는 것을 보면서 마음도 아팠고, 최소한 탈북민들이 맛있는 쌀을 먹으며 ‘밥심으로라도 잘 정착했으면 좋겠다’는 바람이 있었습니다.
탈북민에 대한 편견을 바로잡기 위해 서울역에서 노숙자에게 식사를 배식하는 봉사활동도 진행했는데, 오히려 탈북민들의 반응이 더 좋았습니다.
그들은 자신이 한국 사회에서 취약계층이라고 생각했는데, 봉사 활동을 통해 ‘본인보다 어렵고, 도움이 필요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을 알게 됐고, ‘자신도 누군가를 도울 수 있다’는 자신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주말농장 치유 활동은 농사일에 익숙한 탈북민에게 안성맞춤이었습니다.
한 번만 참가한 사람이 없을 정도로 결과는 대성공이었는데, 직접 수확한 농산물은 집에 가져가거나 후원하는 단체 등에 보내기도 했습니다.
[지철호] 북한에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농촌 동원을 많이 나가다 보니 농사일을 한 번도 안 해본 사람이 없습니다. 주말농장 프로그램(활동)을 계획할 때, 첫째로는 탈북민들을 밖으로 나오게 한다는 게 목표였고요. 두 번째는 자연을 가꾸면서 자신의 생명도 소중하다는 걸 깨우쳐 주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우울증, 자살에서 벗어나게 하는 방안을 계획했고요. 또 한 가지는 농수산물을 직접 본인이 수확하면서 성취감도 느끼게 할 수 있었습니다.
지 실장은 더 많은 탈북민의 정착을 돕고 싶지만, 현실적인 어려움도 적지 않다고 털어놓습니다.
[지철호] 거동이 힘드신 어르신, 한부모, 미혼모 세대의 가족까지 함께 모셔와 쉬게 하고, 가끔은 육아에서 벗어나 자신만의 시간을 드리려는 게 목적입니다. 신청을 많이 할 때는 한 번에 15명씩 가기도 하는데, 저희가 모시고 갈 수 있는 인원이 4명 이상이 안 됩니다. 큰 차가 있으면 한 번에 많은 분들, 몇 가정 씩 모셔서 쉬게 하고 싶은데, 그런 게 많이 아쉽죠.
강을 건너 북한을 떠난 탈북민들은 몇 날 며칠을 걷기도 하고, 중국의 감시를 피해 숨어다니며 차를 타고 이동하다가 하루에만 몇 개의 산을 넘기도 하고, 쪽배에 몸을 의지한 채 메콩강을 건너기도 합니다.
목숨을 건 고생 끝에 그토록 꿈꿨던 한국에 도착했지만, 경제적 어려움과 사회적 편견, 외로움과 소외감 등으로 이들이 한국 사회에 마음의 뿌리를 내리기까지는 오랜 시간이 걸립니다.
지 실장은 그 과정이 당연히 힘들겠지만, 그래도 탈북민들이 행복하길 바란다고 말합니다.
지금도 중국에는 한국행을 바라며 누군가의 도움의 손길을 기다리는 많은 탈북민이 있기 때문입니다.
[지철호] ‘한국 사회는 힘들다’, ‘각박하다’, ‘세상이 날 알아주는 것 같지 않다’, ‘나만 세상에서 이렇게 힘들게 살아야 되는 것 같다’ 등의 인식을 변화시켜 주고 싶어요.
RFA 자유아시아방송 천소람입니다.
에디터 노정민,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