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개방’, ‘봉쇄’ 전승절 기점으로 윤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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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 시장화 버리고 계획경제로 회귀

[기자] 박사님. 최근 일본 ‘아시아프레스’의 이시마루 지로 오사카 사무소 대표와 인터뷰를 통해 북한 내부 상황을 전해 들었는데요. 북한이 이제는 시장이 아닌 국가 양곡판매소를 통해 식량 거래를 유도하고, 생활용품도 국영상점을 통해서만 사도록 한다고 합니다. 또 시장 활동에도 깊숙이 개입하면서 국가 중심의 계획 경제로 돌아가는 듯한 분위기인데요. 박사님께서는 어떻게 평가하십니까?

문성희 박사
문성희 박사

[문성희] 국가가 시장화의 움직임을 단속하면서 경제를 완전히 통제하려는 의도겠지요. 원래 북한이 하던 대로 되돌아가는 것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양곡판매소를 통한 식량 공급이나 국영상점을 통한 생활용품 구매는 북한이 원래 하던 방식이지 않습니까. 그러니까 사회주의 공급제도를 완전히 부활시키려 애쓰는 것이겠지요. 북한이 지난 2002년에 경제개혁정책을 시행한 이후 시장화가 빠르게 촉진됐는데, 이것이 정치 개혁으로 확산할 것을 우려해서인지 2005년에 다시 양곡전매제를 시행하는 등 경제개혁이 후퇴한 적이 있습니다. 김정은 정권에서도 ‘사회주의 기업 책임관리제’라는 경제개혁 정책을 도입해서 어느 정도 시장의 자유화가 진전됐지만, 이렇게 가다가 시장 경제로 넘어가는 것을 북한 당국이 매우 우려했다고 봅니다.

[기자] 하지만 문제는 현재 양곡판매소에도 쌀이 바닥난 상황이고, 국영 상점에서도 물건이 많지 않다는 것 아니겠습니까. 이미 국가가 통제하는 계획 경제는 실패했는데요. 그럼에도 다시 시장을 강력히 통제하고 계획 경제로 돌아가는 이유는 뭐라고 보십니까?

[문성희] 네. 저도 기자님 의견에 동의합니다. 아무리 양곡전매제를 시행하고, 국영 상점에서 생활용품을 구매하는 방식을 확산하려 해도 결국, 파는 식량이나 상품이 없으면 사람들은 시장에서 살 수밖에 없지 않겠습니까. 2005년에 양곡전매제를 시행했을 때도 처음에는 국가나 당이 운영하는 전매점에서 국정 가격으로 사는 것이 훨씬 쌌기 때문에 처음에는 환영받았습니다. 하지만 결국, 국가가 확보한 식량이 바닥났는지 전매점에서 파는 양이 적어졌고, 그곳에서 식량을 살 수 없는 사람들은 다시 시장으로 가게 됐습니다. 비싼 시장가격으로 식량을 구매할 수밖에 없었죠. 하지만 그렇게 해서라도 북한이 다시 계획경제로 돌아가려는 의도는 하나입니다. 바로 경제의 시장화를 우려하는 것이죠. 김정은 정권은 지금 국가가 경제를 통제하지 못하는 것에 대한 위기감을 느끼고 있다고 생각하는데요. 국가의 경제력을 회복하는 방법으로 시장화가 아닌 계획경제 노선을 택했다고 할 수 있습니다.

[기자] 저는 특히 바코드(상품 관리를 위한 막대 코드)를 이용한 시장 거래 단속이 인상적이었습니다. 바코드가 없는 물건은 시장에서 거래할 수 없다고 하는데요. 박사님이 북한에 계셨을 때도 바코드를 이용해 물건을 계산하기도 했나요? 북한에서 바코드에 대한 인식은 어떻습니까?

[문성희] 제가 북한에 자주 오갈 때는 바코드를 그렇게 많이 이용하지 않았습니다. 각 지역 시장에서 물건을 살 때는 바코드가 아니라 직접 상품 가격을 묻고 구매했습니다. 그러니까 적어도 시장에서는 바코드 같은 것이 존재하지 않았습니다. 2012년에 ‘광복거리종합중심’이라는 북한 최초의 슈퍼마켓에 갔을 때도, 먼저 돈을 지불하고 물건을 사는 방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제가 어느 고급 슈퍼마켓에 갔는데, 그곳에는 외국에서 수입한 물건들이 많았고, 계산대에서 바코드로 계산했던 기억이 납니다. 여기는 외화, 그러니까 달러 사용이 가능했는데요. 그 당시 일반 사람들이 바코드 개념을 잘 알고 있었다고는 볼 수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측면에서도 많이 발전했기 때문에 바코드가 널리 사용되고 있을지도 모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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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의 한 슈퍼마켓에서 평양 시민이 물건값을 지불하고 있다. / AP (Kin Cheung/AP)

[기자] 요즘 북한에서는 개인이 개인을 2명 이상 고용하는 것도 비사회주의 현상이기 때문에 단속 대상이 된다고 하는데, 오늘날 북한의 경제 활동에서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거의 불가능하지 않을까요?

[문성희] 한 가지 짚고 넘어가야 할 것은 아직 북한은 제도적으로 사기업을 인정하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시장화의 조건 중 하나가 사기업의 확대라 할 수 있는데, 아직 거기까지는 가지 않는 것으로 압니다. 다시 말해 북한에서 기업은 기본적으로 국영기업이라고 할 수 있죠. 물론 소규모 장사를 하는 집단이 있겠지만, 그렇게 공개적으로 하는지는 의문입니다. 왜냐하면 돈을 주고 사람을 쓰는 것에 대해 북한 당국은 노동의 착취로 보고 있습니다. 이것은 자본주의 사고방식으로서 북한 당국이 가장 싫어하는 겁니다. 북한에서 노임을 생활비라고 하는데, 이것도 노동의 대가로 임금을 준다는 발상을 피하려는 것이죠. 어디까지나 생활에 필요한 돈은 기업이나 국가가 제공해 준다는 건데, 하지만 이런 것들은 모두 겉치레라 할 수 있습니다. 가족들끼리 장사하는 경우도 있을 것이고, 작지만 기업을 운영하는 경우도 존재한다고 봅니다. 그런 경우 사람을 고용하지 않는 것은 있을 수 없는데요. 한 예로 제 친구가 지방 도시에서 택배 회사를 운영하는데, 그런 경우는 혼자서 할 수 없죠. 어느 정도 운전기사도 고용해야 사업을 할 수 있기 때문에 그런 것을 고려하면 “개인이 2명 이상 고용하면 안 된다”는 것이 과연 가능한지는 좀 더 지켜봐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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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단둥과 평안북도 신의주는 잇는 압록강 철교 / AP

전승절 기점으로 국경 개방 가능성도 배제 못해

[기자] 코로나 국면을 지나 경제적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북한이 ‘자력갱생’, ‘국가 중심의 계획 경제’ 등으로 돌파구를 마련하고 있지만, 한계에 직면한 듯합니다. 이런 가운데 올해 전승절 기념일을 기점으로 북중 국경 개방 가능성도 거론되고 있습니다. 하지만 김정은 정권은 당장 경제도 중요하지만, 권력 유지가 더 중요한 듯 보이는데요.

[문성희] 북한 경제가 잘 돌아가지 않는 것이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고요. 김정은 정권 들어서 갑자기 경기가 침체한 것도 아니지 않습니까. 만성적이라고 할 수 있죠. 그러니까 지금 상황에서 김정은 정권의 경제 정책이 한계에 직면했다고까지 보기는 어렵다고 생각합니다. 또 북한 뒤에 중국과 러시아가 있고, 지금 세계가 신냉전 시기에 들어섰다고 본다면 중국과 러시아가 북한을 지키기 위해 어느 정도 지원을 하겠지요. 하지만 북한이 지금의 경제적 어려움을 돌파하는 길은 미국과의 관계 개선밖에 없다고 보는데, 지금 미국도 대중국, 우크라이나 전쟁 등으로 바쁘기 때문에 북한을 상대할 시간이 없겠죠. 또 북한이 미사일 시험발사를 하면서 계속 미국을 도발하지만, 조 바이든 미 행정부가 지금 북한과 대화에 나설 가능성은 매우 적다고 생각합니다. 그렇다면 북한의 다음 행보를 주목해야 하는데요. 기자님이 말씀하신 것처럼 올해 전승절 기념일 행사에 중국과 러시아를 초청할 수도 있고, 그것을 신호로 전면 개방으로 갈 가능성도 전혀 없다고는 할 수 없습니다. 앞으로 전승절 기념일을 전후로 북한의 움직임을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