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 :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시간입니다. 언론인이자 학자로서 북한 문제, 특히 경제 분야를 중심적으로 다뤄온 문성희 박사와 함께 짚어봅니다. 일본에서 언론인으로 활동 중인 문 박사는 도쿄대에서 북한 경제 분야 연구로 박사학위를 취득했습니다. 이 시간에는 북한에 나타나고 있는 시장경제체제의 현황과 그 가능성을 짚어보고, 개선해야 할 점까지 중점적으로 살펴봅니다. 대담에 노정민 기자입니다.

“평양에선 퇴근길에 술 한 잔”… 지방과 삶의 질 격차 여전
[기자] 박사님. 안녕하십니까. 오늘은 북한 평양과 지방에 사는 주민의 생활과 경제 활동을 비교해 볼까 하는데요. 우선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의 일과에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요?
[문성희] 네.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의 일과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지만 , 그래도 약간의 차이는 있다고 봅니다. 평양 시민과 지방 주민 모두 아침 일찍 출근해서 일을 하고, 점심시간 후에 다시 일을 한 뒤 퇴근하는 생활이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평양에서는 사무직을 하는 사람들이 많은 반면, 지방은 아무래도 농사일을 하는 사람이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도시와 농촌에서의 하루가 다를 수밖에 없지요. 그리고 이건 어디까지나 제 견해입니다만, 가장 다른 것은 하루 일과를 마치고 술 한잔을 하러 갈 때라고 봅니다. 평양에는 맥줏집도 있고, 이탈리안 식당이나 불고깃집, 중국요리집 등 술을 마시며 즐기는 장소가 많지만, 지방은 그렇지 않습니다. 지방에서도 큰 도시에는 가게가 좀 있지만, 농촌 같은 곳은 그렇지 않죠. 그러다 보니 술은 집에서 먹게 되는 겁니다.
[기자] 조금 전 말씀하신 대로 평양에는 사무직 근로자가 많고, 지방에는 농사일을 하는 근로자가 많다고 하셨는데요. 평양과 지방에 따라 근로자의 만족도에도 차이가 있을까요?
[문성희] 앞에서도 말씀드렸듯이 평양에는 일자리는 다양하지만 , 지방에는 협동농장원이나 시장에서 물건을 파는 정도밖에는 일자리가 없습니다. 물론 지방에서 남자의 경우 공장이나 기업소에서 일을 할 수 있지만, 여성들이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는 많지 않습니다. 평양이라면 여성도 식당이나 호텔, 박물관, 전람관, 그리고 관광지의 안내원과 같은 일을 할 수 있지만, 지방에서는 그것도 흔치 않습니다. 저는 경험이 없지만, 협동농장의 일은 힘들거라고 생각합니다. 매일 농장에 나가서 아침부터 저녁까지 힘든 일을 해야 하니까요. 그 일을 좋아해서 하는 사람들은 많지 않겠죠.
그리고 평양에는 여러 사무직 자리도 있는데 사무직의 임금이 많지는 않지만 , 일이 그렇게 힘들지도 않습니다. 예를 들어 재일동포들이 북한에 가면 안내원으로 붙는 사람들이 있는데, 이들은 '해외동포영접국'이라는 부서에서 파견됩니다. 여기에는 일본뿐 아니라 미국, 중국, 유럽 국가 등 여러 담당이 있습니다. 이들이 하는 일은 우리가 가는 장소를 결정해서 그곳에 연락하는 것이죠. 가끔 재일동포가 가고 싶어도 가기 어려운 장소가 있기 때문에 그런 교섭을 할 때는 약간 고생해야 하지만, 힘든 육체노동을 하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찌 보면 북한에서 가장 쉬운 사무직이 아닌가 싶기도 합니다. 그리고 평양 여성들은 호텔, 식당, 상점 등이 많기 때문에 그곳의 접대원으로 배치되기도 하죠. 그러니까 당연히 지방 주민보다 평양 시민들의 직업 만족도가 높다고 할 수 있습니다.

같은 평양이라도 교외는 낙후된 지역
[기자] 역시 평양에 사는 것이 생활이나 삶의 질, 만족도에서 높다고 할 수 있군요. 그런데 같은 평양이라고 해도 상대적으로 발전한 지역과 낙후된 지역이 있지 않습니까? 발전한 지역은 잘 알려져 있는데, 낙후된 지역은 어느 정도인가요?
[문성희] 네. 평양의 중심은 중구역입니다 . 재일동포들이 기본적으로 머무는 평양여관(호텔)도 중구역에 있어요. 거기서 10분 정도 걸으면 열병식이 열리는 김일성 광장이 있고, 그 맞은 편에는 주체사상탑도 있어서 이곳이 북한의 중심지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여기에 아파트들이 있는데, 그 아파트에 사는 것이 북한 주민의 목표이기도 합니다. 제 친척도 여기에 살았는데, 물론 매우 낡은 아파트입니다. 최근에는 김일성, 김정일 동상이 있는 만수대 언덕 인근에 세워진 창전거리 아파트 같은 것이 인기이고, 여기에 배정된 사람들이 매우 기뻐하고 있습니다. 우리 친척도 미래과학자거리에 있는 새로운 아파트를 배정받고 그곳으로 이사했는데, 살기가 매우 좋은 것 같습니다.
다만 , 같은 평양이라고 해도 교외 같은 곳은 낙후된 지역이라 할 수 있습니다. 솔직히 통일거리나 광복거리 등 1980년대에 정비된 거리는 설비가 많이 낙후해졌습니다. 제 친구 한 명이 광복거리 아파트에 사는데 2011년 당시에 전기가 안 들어온다고 하소연한 적이 있습니다. 여름에는 선풍기도 작동하지 않으니까 더워서 밤에 잠도 못 잔다는 겁니다. 그리고 통일거리나 광복거리는 교통도 불편합니다. 한 마디로 같은 평양이지만, 중심지와 교외는 차이가 있습니다. 심지어 북한에서 유명한 동명왕릉도 평양 교외에 있는데, 여기서는 화장실에 가고 싶어도 화장실이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기자] 그래서 북한이 대규모 건설사업을 통해 평양을 균형적으로 발전하려는 것이 아닌가 싶습니다. 그런 의도가 있다고 봐야 할까요?
[문성희] 저도 그렇게 생각합니다 . 코로나가 유행했던 지난 3년 동안 북한에서 여러 건설 사업이 추진됐는데, 이를 증명해 주고 있지요. 북한의 유명한 아나운서인 이춘희 씨가 배정받은 살림집도 새로 건설한 아파트였습니다. 그리고 운동장과 같은 시설들도 새로 건설되거나 재건되는 것 같습니다. 이는 평양 내에서 덜 발전되거나 낙후된 지역들을 좀 더 활성화해서 균형적으로 발전시키려는 의도가 있다고 봅니다. 제가 보기에도 평양 중심지는 많이 발전했는데, 교외는 관광객들도 잘 안 갑니다. 그래서 평양에도 낙후된 지역이 있다는 것을 체감하지 못하는데, 실제로는 중심지와 교외 사이에 엄연한 차이가 있습니다.

돈 잘 버는 국경 지역 주민 , 생활 수준 높아
[기자] 하지만 지방이라고 해도 평양 못지않게 발전하고 잘 사는 지역도 있습니다. 중국과 마주하는 평안북도 신의주나 양강도 혜산이 그렇고요. 이런 지방 대도시와 평양의 생활 수준에서 큰 차이가 있다고 보시나요? 아니면 점점 좁혀지고 있을까요?
[문성희] 자세한 통계를 조사한 것이 아니기 때문에 어디까지나 제 개인적인 인상을 말씀드리겠습니다 . 2000년대 후반에는 오히려 평양보다 나선경제특구 사람들이 더 잘 산다는 이야기를 들어본 적이 있습니다. 나선경제특구는 중국, 러시아와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물류가 활발했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이곳에서는 장사도 잘되고 돈을 잘 버는 사람들이 많았다고 봅니다. 그렇게 되니 이곳의 직장에서 일하는 직원의 임금도 다른 지역보다 많았겠지요. 제가 아는 한 조선신보 기자는 "나선시에 가면 본인이 밥을 사주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대접을 받았다"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그만큼 이곳 사람들의 생활에 여유가 있었다는 거죠. 물론 장성택이 처형된 이후 나선시에 대한 단속이 강화돼서, 지금도 과거처럼 잘 사는지는 모르겠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신의주시와 혜산시 모두 중국과 국경을 접하고 있기 때문에 나선시처럼 중국에서 많은 물자가 들어올 수 있죠 . 그런 측면에서 평양과 다름없는 생활을 누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저의 한 친구는 함흥시에서 물류 장사를 했는데 2011년에 들은 이야기로는 집에 24시간 내내 따뜻한 물이 나오는 목욕시설이 설치돼 있었습니다. 한국이나 일본 같으면 아무것도 아닌데 북한에서 24시간 내내 따뜻한 물이 나온다는 것은 상상도 못 하는 일입니다. 그러니 평양 일부 지역은 오히려 지방 도시의 부자들보다 못사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고 봅니다.
[기자] 그렇군요. 일반적으로 평양과 지방 도시 사이에 생활 수준이나 발전 속도에 차이가 있는데요. 그 격차를 줄이기 위해서는 무엇이 가장 필요하다고 보십니까?
[문성희] 도시와 농촌 , 평양과 지방을 가리지 않고 평등하게 발전시켜야 하는 것은 명백합니다. 북한 지방에 가면 옛날 집이나 아파트가 그대로 있는 것을 자주 목격합니다. 평양에서는 새로운 주택이 많이 건설되고 있는데, 북한 당국이 많지 않은 국가 예산을 우선적으로 평양시에 돌리고 싶은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할 수 있지만, 지방 발전에도 신경써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니 모두가 평양에서 한번 살고 싶어 하고, 평양에서 지방으로 가게 되면 좌천됐다고 느끼는 것 아니겠습니까. 북한 간부들도 지방 생활을 하게 되면 두 번 다시 경험하고 싶지 않을 거라 생각하는데요. 간부들이 지방의 현실을 최고 지도부에 구체적으로 보고해서 균형 발전을 위한 대책을 순차적으로 세워가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기자] 네. 문 박사님. 오늘 말씀 고맙습니다. ‘북한 경제 어제와 오늘’, 지금까지 일본의 언론인이자 학자인 문성희 박사와 함께했습니다.
워싱턴에서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팀 김상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