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문가들 “MZ세대 김정은, 나만의 통치 스타일 중시”
2023.04.28
앵커: 지난 4월 15일 태양절 때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할아버지인 김일성 주석에 대한 참배를 생략했습니다. 대신 화성지구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에 참석하며 선대의 정통성을 강조하기 보다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는 행보를 보였는데요. 매우 이례적이라는 분석이 많았습니다.
전문가들은 이밖에도 부인 리설주와 딸 김주애의 파격적인 등장, 여성에 대한 시각 변화, 빈번한 대외 노출 등 선대와 다른 김 총비서의 통치 스타일과 정책 등은 ‘MZ 세대’의 특징으로 볼 수 있다고 분석했습니다.
보도에 천소람 기자입니다.
태양절에 김일성 참배 생략… ‘이례적’
한국의 블록체인 기반 여론조사 사이트인 ‘더 폴’이 2021년에 진행한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국민의 약 60%가 차례를 지내지 않거나 간소화된 차례를 지내는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한국 여성가족부의 2020년 가족실태조사에서도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하는지’를 묻는 말에 ‘대체로 그렇다’와 ‘매우 그렇다’고 응답한 비율은 10대가 53%, 20대는 63%, 30대는 54%로 MZ세대 절반 이상이 제사를 지내지 않는 것에 동의했습니다.
이처럼 MZ세대 내에서 차례 혹은 제사에 대한 필요성이 점점 옅어지는 가운데 김정은 북한 총비서도 자신의 아버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생일인 광명성절(2월 16일)과 김일성 주석의 생일인 태양절(4월 15일)에 참배하지 않았습니다.
‘MZ 세대’는 1980년대 초반부터 1990년대 초반 태어난 밀레니얼 세대와, 1990년대 중반부터 2000년대 초∙중반에 태어난 Z세대를 통합해 칭하는 용어입니다.
김정은 총비서는 1984년생으로 엄밀히 말하면 ‘MZ세대’에 속합니다.
김 총비서가 태양절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은 건 2020년 이후 두 번째입니다. 태양절 참배는 김씨 가문의 ‘정통성’을 보여주는 만큼, 그가 참배를 생략한 것은 이례적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입니다.
태양절이 북한에서 가장 큰 민족의 명절이고, 김씨 가문의 정통성이 선조에서 시작되는 것이기에 태양절 참배를 생략하는 건 정통성을 부정하는 일이라고 박원곤 한국 이화여대 교수는 (26일) 지적합니다.
[박원곤] 김정은을 비롯해 김정일도 마찬가지고 그들의 정통성이 태양절부터 시작돼서 나오기 때문에 그것을 쉽게 무시할 수 없는 거거든요. 그래서 김정은이 참배하지 않았다는 점은 뭔가 내부에 이유가 있긴 있을 텐데, 그걸 확실히 파악하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태양절은 북한 주민들에게도 의미가 큽니다.
태양절에는 각종 기념행사가 진행되는데, ‘각종 행사에 참여하는 게 김정은 총비서에 충성하는 것이고, 김정은에게 충성하는 것이 수령을 대를 이어 모시는 것’임을 북한 당국은 강조하고 있다고 한국 탈북자동지회 서재평 회장은 (26일) 설명합니다.
[서재평] 북한의 창건자이자 공화국의 시조인 김일성은 북한 최고의 수령으로 ‘영원히 함께 계신다’고 해요. 그러니까 당연히 김일성의 생일은 국가 최고 기념일로서 주민들이 김일성을 회고하고 김일성에 대한 충성의 마음을 지금의 김정은에게 돌릴 수 있도록 늘 강조하고 있습니다. 북한 최고의 기념일이니까요. 그날은 북한 주민들이 당연히 김일성에게 참배해야 합니다.
“김일성 참배보다는 자신의 업적 부각 ”
김일성 주석의 111회 생일이었던 지난 4월 15일. 김정은 총비서는 할아버지의 시신이 안치된 금수산 태양궁전을 참배하는 대신 화성지구 1단계 1만 세대 살림집 준공식에 참석하는가 하면, 자신의 딸 김주애와 함께 체육 경기를 관람했습니다.
김 총비서가 김씨 일가의 ‘정통성’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과시하고 있는 듯한 행보입니다.
이와 관련해 조한범 통일연구원 선임연구위원은 (26일) 김 총비서가 집권 초기에는 선대를 앞세우는 흐름을 보였지만, 집권 10년이 넘은 현재는 자신을 선대와 동일시 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업적을 더 부각시키고 있다고 분석합니다.
[조한범] 김정은 총비서의 최근 흐름을 보면 ‘위대한 령도 불멸의 업적’이라는 시리즈로 김정은 시대를 찬양하는 우상화 작업에 박차를 가하고 있습니다. 과거에는 선대를 앞세우는 흐름을 초기에 보였다고 하면 지금은 선대와 자신을 동일시 하거나 오히려 자신의 업적을 더 부각시키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이제 스스로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는 정치적 마케팅을 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근에 김정은 체제는 김정은 우상화, 김정은 시대를 강조하는 정치적 흐름이 매우 뚜렷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정성장 세종연구소 통일전략연구실장도 (26일) RFA에 김 총비서가 태양절 참배를 하지 않는 것은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에 대한 후광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의도를 보여주는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정성장] 특히 작년 11월부터는 김정은이 자신의 딸 김주애를 각종 현지 지도, 미사일 시험발사 현장에 대동하고 나섰습니다. 주민들의 관심, 자신의 관심도 ‘선대 수령에 대한 숭배’보다는 이제 조금 더 ‘4대 세습’ 쪽으로 마음이 기울어 있고요. 그래서 상대적으로 선대 수령에 대한 추모 등이 많이 약화하고 있는 분위기라고 할 수 있습니다.
MZ세대 김정은, 선대와 다른 파격 행보
선대의 통치방식과 비교해 MZ세대의 특징으로 볼만한 김정은 총비서의 파격적 행보는 무엇이 있을까.
가장 대표적인 예시는 태양절 참배입니다.
[정성장] 태양절이나 광명성절, 김일성과 김정일의 생일에 금수산 태양궁전에 참배하는 게 우리나라 제사와 비슷한 거죠. 그런 중요한 날에 김정은이 태양궁전을 방문하지 않는다는 건 과거 구세대로서는 상당히 받아들이기 어려운 파격적인 행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또 리설주와 그의 딸 김주애의 파격적인 등장도 선대와는 다른 행보에 속합니다. 기본적으로 여성을 보는 시각이 선대와는 다른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는 해석입니다.
[정성장] 한국의 MZ세대를 보면 기존의 나이 든 세대에 비해 남녀평등 의식이 굉장히 강하잖아요. 김정일만 하더라도 남존여비 사상이 강했고, 한국의 나이 든 세대가 남존여비 사상이 강하다고 한다면 젊은 세대는 다르죠. 근데 김정은도 한국의 MZ세대처럼 자신의 부인을 대하는 태도도 그렇고, 아들도 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자신의 딸을 내세우고 있잖아요. 딸을 가장 사랑하는 자녀, 자제분이라고 이야기하고 있잖아요. 이러한 모습은 북한의 구세대와는 확실하게 구별되는 부분이죠.
또 자신의 통치 색깔을 강조하고, 업적을 과시하며 노출에 매우 적극적인 부분도 파격적인 행보 중 하나라고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설명합니다.
[조한범] 김 총비서의 MZ세대 특징이라 하면 선대에 비해 훨씬 파격적이라는 겁니다. ‘은둔형 지도자’였던 아버지에 비해 인민에 대한 노출도 매우 적극적이고, 부인 리설주 그리고 자제의 공개는 직설적인 정치적 마케팅, MZ세대의 특징을 보여준다고 볼 수 있습니다.
김 총비서가 집권 초기 미국의 농구 선수 데니스 로드맨을 북한으로 초청한 것도 한 예로 평가됩니다. 선대인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은둔형 지도자’라는 타이틀과 달리 대외적인 행보를 가감 없이 보여줬다는 겁니다.
정 센터장은 2017년 제3차 ICBM 시험발사를 계기로 김 총비서의 통치방식 바뀌었다고 분석합니다.
[정성장] 2017년 11월, 제3차 ICBM 시험발사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김정은은 김일성, 김정일의 후광에 크게 의존해 왔습니다. 그러나 3차 ICBM 시험발사 이후에는 국가의 무력을 완성하겠다는 자신감을 토대로 자신의 업적에 기반해서 북한을 이끌어가는 방식으로 나아가고 있습니다. 2021년 1월 노동당 대회에서 주석단 뒤를 장식했던 김일성, 김정일 초상화가 사라졌습니다.
그동안 쌓아놓은 자신의 업적이 없었기에 집권 초기에는 차별화할 수 없었지만, 자신이 충분한 성과를 거두었다고 판단한 2017년 이후부터 본격적으로 자신의 ‘정치 색깔’을 강조하고 있다는 겁니다.
[정성장] 자신의 할아버지, 아버지와는 확실하게 차별화하는 행보를 보이고 있습니다. 아버지 시대의 선군 정치와도 일정하게 선을 긋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김정은은 자기 색깔이 자신의 아버지보다 훨씬 더 강하다고 볼 수 있습니다.
장마당 세대 김 총비서의 통치방식 변화하고 있어
박원곤 교수는 김정은 총비서의 모든 것이MZ세대의 특징이라고 해석할 순 없지만, 통치 방식이 변하고 있는 건 사실이라고 분석합니다.
[박원곤] 선대와 다르게 굉장히 파격적인 모습을 많이 연출합니다. 본인의 잘못을 직접 인정하고 눈물을 흘리는 모습을 보이는 것도 북한 수령주의의 무오성을 생각한다면 굉장히 파격적인 행보인 것은 분명합니다. 다만 본인도 해외 경험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선대와 다른 점이 있다고 판단이 됩니다. 북한도 어쨌든 장마당 세대로 대변되는 새로운 세대들이 등장했으니 그 세대들과 눈높이를 맞춰야 되는 부분도 김정은으로서는 분명히 생각하고 있을 것이고, 그런 것들이 종합적으로 작동하지 않았을까 생각이 듭니다.
정성장 센터장은 더 나아가 북한의 세대 변화를 북한 지도층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정성장] 예를 들어서 리설주가 등장했는데 처음에 짧은 치마를 입고 등장했잖아요. 그런 것도 나이 든 세대에게는 상당히 큰 충격이었죠. 리설주의 복장 등이 한국의 젊은 세대 취향과도 통하는 굉장히 파격적인 거였고, 그걸 보고 북한 젊은 세대들도 따라 합니다. 어떻게 보면 세대 변화를 지도층에서 주도하고 있다고 볼 수 있는거죠. 기본적으로 김정은, 김여정이 젊은 시절 세계관이 형성될 때 서구에서 생활했기 때문에 그 영향이라고 봅니다.
‘장마당 세대’라는 새로운 세대가 등장했으니, 그에 맞는 맞춤 통치 방식을 꺼냈다는 겁니다.
반면, 조한범 선임연구위원은 김 총비서의 행보가 MZ 세대의 특징이라기보다 자신의 콤플렉스, 즉 열등감에서 비롯된 통치 방식이라고 해석합니다.
[조한범] 김 총비서는 집권 초기부터 권력 콤플렉스가 있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라는 건데요. 김정일 위원장이 1973년경부터 공식적인 후계자로 등장해 20년 이상의 권력 기반을 다졌습니다. 그런데 김정은 총비서는 2009년에 후계자로 등장해서 아버지가 2011년에 죽었으니 권력 기반을 다지고, 후계 승계 수업을 가질 시간이 3년 정도밖에 없었습니다. 준비되지 않은 지도자였죠.
하지만 김 총비서의 파격적인 행보는 주민들에게 비판 혹은 불만의 여지를 줌과 동시에 잘못된 메시지를 줄 수 있다고 서재평 회장은 말합니다.
[서재평] (참배를) 안 하는 건, 할아버지에 대한 제사를 안 지낸 거나 똑같은 겁니다. 굉장히 예의 법도에 어긋납니다. (자신은 안 하면서) 주민들에게 충성을 강요할 수도 없잖아요. 아파서 못 갈 형편이 아니고서는 (꼭 참여해야 합니다). ‘자기는 할아버지에게 찾아도 안 가면서 우리보고 충성의 노래 모임, 학습하라’고 하냐고 속으로 생각하죠. 자신부터 할아버지에게 앞장서서 충성하고 할아버지를 잘 모셔야지….
선대에 대한 ‘숭배’보다는 자신의 ‘업적’을 부각하고 우상화를 강조하는 김 총비서의 통치 방식이 앞으로 북한 주민들에게 어떤 메시지를 줄 지 관심이 집중됩니다.
기자 천소람, 에디터 노정민, 웹팀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