군사분계선 복무 북 병사에 대북 방송 내용 ‘함구령’
2024.10.09
앵커: 북한 당국이 최근 군사분계선 인근 부대에서 복무 후 제대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들었던 대북 방송 내용에 대해 함구령을 내린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한국군의 대북 확성기 방송이 북한 사회에 미칠 영향을 우려했기 때문으로 보이는데요. 방송에서 들었던 한국 노래를 자신도 모르게 흥얼거렸던 병사들도 적지 않았다고 합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일부 군인들, 자신도 모르게 남한 가요 ‘콧노래’
일본의 언론매체인 ‘아시아프레스’ 오사카 사무소의 이시마루 지로 대표는 전연 지역, 즉 남북한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부대에서 근무한 후 제대한 군인들을 대상으로 이들이 복무 중 들은 한국군의 대북 방송 내용을 일절 발설하지 말 것을 지시했다고 9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밝혔습니다.
이시마루 대표는 양강도 현지 취재협조자를 인용해 “지난 8월에 제대한 군인을 만나 들은 내용”이라며 “군사분계선 지역에 근무했던 병사들에게 각서까지 받고, 대북 방송에서 들은 내용을 말하지 않도록 강력히 통제하고 있다”라고 말했습니다.
특히 대북 방송 내용을 유포할 경우 반사회주의 행위에 해당한다는 것도 통보했다는 겁니다.
[이시마루 지로] 전방에 근무했던 군인들이 제대해서 고향으로 돌아온 친구들을 (지난 10월 초에) 만나서 이야기를 들었는데, 군인들이 한국의 대북 방송을 접촉하잖아요. 노래를 듣기도 하고. 이에 대해 강력히 단속하고, 전방에서 들었던 대북 방송 내용이나 한국 노래 등을 일절 이야기하지 말라는 함구령을 아주 세게 내렸다고 하더라고요.
북한 당국은 대북 방송뿐 아니라 군인들이 본 대북 전단에 대해서도 일절 발설하지 말 것을 경고한 것으로 전해졌습니다.
또 이시마루 대표는 군사분계선 인근 부대에서 한국 노래를 흥얼거리다 문제가 된 병사들이 많은데, 보위사령부가 이와 관련한 군부대 동향 자료를 보고 받고, 문제가 된 병사는 다른 부대로 재배치하는 경우도 있었다고 덧붙였습니다.
[이시마루 지로] 군인 중에는 한국 노래가 계속 남쪽에서 들려오고 그게 습관이 돼서 자기도 모르게 흥얼거리는 일이 발생하니까 전방 부대들이 계속 주의를 받았대요. 남쪽 노래를 부르지 말라고. 대북 방송 중에는 선전 방송도 있고, 노래도 있잖아요. 이에 대해 아주 신경을 많이 쓰고 다른 곳에 이야기하지 말라…
RFA의 주간 프로그램 ‘39호실 리정호의 눈’에 출연하는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 대표는 9일, 대북 확성기 방송의 효과가 매우 크고, 이는 김정은 정권에 매우 큰 위협이 되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리정호] 김정은이 집권해서 (한류 문화 확산을) 못 하게 막았고, 원래는 사회 안전성이 하는 건데, 보위부가 하라고 과제를 줬단 말이에요. (대북 방송의 효과가) 굉장히 크죠. 남한 노래는 멜로디(선율)가 좋단 말이에요. 사랑에 대한 노래도 있고. 그러니까 남한 노래가 북한 군인들의 사상을 물렁물렁하게 만드는 거죠. 철저히 사상으로 무장하도록 계속 교육하지만, 그런 음악이 들어가고 남한의 정서와 정보가 들어가면 군인들의 사상적 변질이 빠르단 말이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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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질문있어요] 대북 확성기 방송, 진짜로 영향이 있나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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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제로 지난 8월 20일, 북한군 한 명이 새벽에 강원도 고성군에 있는 남한 부대 작전 구역으로 넘어가 귀순 의사를 밝힌 바 있습니다.
당시, 이 북한군은 한국군이 송출하는 대북 확성기 방송을 들을 수 있는 지역에서 근무한 것으로 알려졌는데, 이 때문에 남북 접경지역에서 탈북민이 넘어오는 것은 대북 확성기의 효과라는 분석도 제기됐습니다.
또 지난 8월 8일 북한 주민이 교동도를 통해 귀순한 것도 대북 확성기 방송의 영향을 받은 것일 수 있다는 전문가들의 분석도 있었습니다.
한국군은 지난 6월 9일 최전방 전선 지역에서 대북 확성기 방송인 '자유의 소리' 송출을 재개했으며, 한국 유명 가수의 노래와 뉴스, 북한 장마당의 물가 동향과 최근 탈북민의 소식 등을 전하고 있습니다.
이와 관련해 한국의 TV조선 등 일부 언론은 지난 3일, 정부 관계자의 말을 인용해 “대북 확성기 방송을 재개한 뒤 귀순자까지 발생하자 북한이 병사들에게 방송을 듣지 못하도록 귀마개를 지급한 것으로 알려졌다”라며, “군사분계선 인근에서 작업하는 부대의 보급품에 귀마개가 포함됐고, 대북 확성기 소리가 들리면 합창을 하면서 일하라는 지침까지 하달됐다”고 보도했습니다.
2023년 5월, 북한 황해남도 해주시에서 목선을 타고 탈북한 김일혁 씨도 “군사분계선과 가까운 황해도에서는 한국 방송 수신이 가능했다”라며, “고향에 살면서 텔레비전으로 한국 드라마를 봤다”고 밝힌 바 있습니다.
[김일혁] 제가 살던 곳이 황해도라, 한국의 파주 위쪽이거든요. 38선이랑 가까운 위치라 한국에서 나오는 방송이 잘 잡힙니다. 그러니까 TV를 시청한 거죠.
그러면서 김 씨는 한국 방송이 북한의 ‘MZ 세대’, 즉 젊은 층에 많은 영향을 미쳤다며 한국을 비롯한 외국 문화에 대한 북한 당국의 단속이 강화됐어도 여전히 외부 정보에 대한 수요는 끊이지 않고 있다고 강조했습니다.
[김일혁] 뇌물이면 다 통하고 다 해결됩니다. 제가 입을 열면 본인들도 피해를 볼 게 뻔한 일이라 실수를 하기는 했지만, 그래도 괜찮았고 지금까지 처벌받을 위기까지 가보지 못했습니다.
[리정호] 2012년도에 시군 보위부장들도 단속을 받았는데, 7명인가 되는데 이 사람들 집을 단속하니까 다 남한 드라마가 있더래요. 보위부장들 집에. 이 사람들이 다 혁명화에 갔다고요. 북한은 단속하는 보위부나 안전부도 다 그런 거 보고 있단 말이에요. 붙잡기 힘들어요.
그동안 한국군의 대북 방송은 남북 관계에 따라 중단과 재개를 반복하다 2018년 4월 판문점 선언과 9.19 남북 군사합의에 따라 중단됐습니다. 그리고 올해 북한의 오물 풍선 살포에 따른 대응으로 대북 확성기 방송이 재개됐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이경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