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강도 하갑 지하시설에 새로운 굴착 활동
2024.09.25
앵커: 미국 정보당국이 핵무기 관련 시설일 수 있다고 언급한 북한 자강도 희천시 하갑 지하시설에서 올해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새로운 지하시설 입구가 만들어지고, 굴착 과정에서 나온 잔해물이 쌓인 정황이 위성사진에서 식별된 건데요. 이곳은 과거에도 영변 핵시설을 연상케 하는 정황이 포착된 바 있습니다.
하갑 지하시설은 여전히 베일에 가려져 있지만, 의심스러운 활동이 꾸준히 이뤄지면서 제3의 핵시설 장소로 의심받고 있습니다.
노정민 기자가 보도합니다.
3월부터 9월까지 잔해물 더미 식별… 저수지도 메워
군수 공장과 산업기지가 밀집된 곳으로 알려진 북한 자강도 희천시.
그중에서도 청천강을 옆에 두고 산으로 둘러싸인 하갑 지하시설은 1998년 미 국방정보국(U.S. Defense Intelligence Agency)이 “2003년까지 핵무기 관련 시설일 가능성이 있는, 또 하나의 확인되지 않은 부지가 있다”고 언급하면서 처음 알려진 곳입니다. (There is one site, of an unconfirmed function, that possibly could be a nuclear-weapons-related facility by 2003.)
당시 국방정보국은 “이곳이 어떤 기능을 하는지 알려지지 않았지만, 핵 생산 또는 저장 부지가 될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The function of this site has not been determined, but it could be intended as a nuclear production and/or storage site.)
이후 하갑 지하시설에 관한 북한 당국의 공식적인 언급이나 국제사회의 조사가 이뤄지지 않은 가운데 지난 3월부터 이곳에서 의심스러운 굴착 공사가 진행 중인 정황이 위성사진에 포착됐습니다.
미국의 상업위성인 ‘플래닛랩스’(Planet Labs)에 따르면 올해 2월 말부터 3월 초까지 산비탈에 새로운 입구가 만들어지고, 굴착 과정에서 나온 것으로 추정되는 잔해물이 쌓이기 시작한 겁니다.
지난 2월 16일에 촬영한 위성사진에는 새 입구를 만드는 정황이나 잔해물이 식별되지 않았지만, 한 달 뒤인 3월 23일에는 지하시설 정문 아래쪽에 새로운 잔해물 더미와 새 입구가 생긴 것이 확인됐습니다.
그리고 6월과 8월, 9월에 촬영한 위성사진에서는 잔해물 더미의 면적이 점점 커지는 것을 확인할 수 있는데, 이는 굴착 작업이 계속 진행 중임을 알 수 있는 대목입니다.
2022년 9월 27일(좌, 구글어스)과 2024년 9월 18일(우, 플래닛랩스)에 촬영한 북한 자강도 희천시 하갑
지하시설. / 분석 – 제이콥 보글 (Jacob Bogle)
위성사진을 분석한 민간 위성 전문가 제이콥 보글은 24일 자유아시아방송(RFA)에 “올해 9월까지 잔해물 더미의 면적이 약 1만 7천 제곱미터에 달한다”라며, “사진만으로 정확한 판독은 어렵지만, 만약 그 높이가 5m일 경우 22만 9천500톤에 달하는 화강암이 제거된 것과 마찬가지”라고 설명했습니다.
또 1991년 이후 지금까지 하갑 지하시설에서 파낸 잔해물의 총량을 고려하면, 북한의 주요 핵 시설인 영변이나 강선보다 내부 공간이 넓다는 것을 시사한다고 보글은 덧붙였습니다.
위성사진 분석 전문가인 정성학 한국 한반도안보전략연구위원도 과거 하갑 지하시설에서 폐수를 배출하는 정황을 확인한 바 있다고 25일 RFA에 밝혔습니다.
[정성학] 지난 2007년부터 2021년 사이에 따뜻한 폐수를 저수지로 배출하는 정황이 8번 포착됐는데요, 지속적으로 무언가 열을 발생하는 기계 설비가 지하에서 돌고 있고, 저수지 물을 이용해 이를 냉각시킨 따뜻한 물을 다시 저수지로 내보내는 처리 과정으로 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는 마치 영변 핵 시설 단지에서 5MW 원자로를 가동하고, 강물을 끌어다 쓴 냉각수를 다시 구룡강에 배출하는 것을 연상케 한다는 겁니다.
또 그는 올해 하갑 지하시설의 인근 저수지가 메워지고 숲을 밀어낸 정황이 식별되는데, 만약 새로운 굴착 작업이 이뤄지고 있다면, 이는 무언가 의심스러운 활동이 계속되고 있다는 것을 뜻한다고 설명했습니다.
[정성학] 굴착공사가 이뤄진다는 것은 지하시설을 넓히거나, 무언가 시설을 확장하는 활동으로 의심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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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갑 지하시설 과거부터 공사 정황 식별
하갑 지하시설에 대한 공사는 2017년과 2019년에도 식별됐습니다.
제이콥 보글에 따르면 2017년에는 지하시설 정문 주변으로 거대한 잔해 더미가 쌓였고, 작은 건물의 수도 증가했습니다. 또 송전탑처럼 보이는 23개의 물체가 세 개의 그룹으로 나뉘어 설치됐고, 인근 언덕에는 대공포가 배치된 것도 확인된 바 있습니다.
2019년에는 터널 공사를 통해 차량이 들어갈 수 있는 새로운 입구를 만드는가 하면, 지하시설로 이어지는 도로 공사도 함께 진행된 것이 위성사진에 포착됐습니다.
하지만 하갑의 지하시설은 자강도의 깊은 산 속 땅 밑에 만들어졌고, 입구와 연결도로, 건물만이 식별되기 때문에 이곳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는 정확히 알려진 바가 없습니다.
또 지하시설 외곽에 담장이나 울타리가 설치돼 있지 않고, 대규모 전기 공급도 불가능한 것으로 보여 여전히 이곳의 용도는 오리무중입니다.
북한 노동당 39호실의 고위 관리 출신인 리정호 ‘코리아번영개발센터’(KPDC) 대표는 RFA에 군수 산업이 몰려있는 자강도는 아무나 들어가지 못할 정도로 봉쇄돼 있기 때문에 핵 시설과도 연관이 있을 것으로 추정했습니다.
[리정호] 우라늄 농축 시설이 많잖아요. 나는 그 분야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김일성 때부터 그걸 확대했기 때문에 자강도 쪽에도 있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영변은 이미 다 노출되지 않았어요. 자강도는 군수공업 지역인데, 그곳은 외부의 출입이 안 되니까. 또 탈북민 중에서 그 지역에서 근무한 사람들도 있을 수 있으니까 아마 그 얘기를 하지 않았겠나…
국제원자력기구(IAEA) 사무차장을 지낸 올리 하이노넨 미국 스팀슨센터 특별연구원도 지난 17일 RFA에 “김정은 북한 총비서가 최근 방문한 우라늄 농축시설은 영변도, 강선도 아닌 제3의 장소일 수 있다”라고 말하기도 했습니다.
[올리 하이노넨] 1990년대 말 북한은 파키스탄으로부터 원심분리기를 받아 우리가 알지 못하는 장소에 설치했습니다. 영변은 아닙니다. 국제원자력기구 요원이 그때 항상 거기 있었기 때문입니다. 강선도 아닙니다. 강선은 그때 존재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정성학] 과거에 하갑 지하시설에서 저수지로 온배수가 배출되는 활동들이 영변에서 일어나는 활동과 유사한 모습을 보이거든요. 핵 관련 시설이 지하에 조성돼 있을 것으로 의심되고요. 그래서 제3의 핵시설 장소라고 하면 하갑이 유력할 것으로 판단됩니다.
미 정보당국이 핵 관련 시설일 가능성을 언급한 이후 지금까지 베일에 싸여 있는 하갑 지하시설.
김정은 정권이 지난 13일 처음으로 우라늄 농축시설을 공개하면서 핵 무력 의지를 거듭 과시하는 가운데 지난 반년 사이 진행된 하갑 지하시설의 수상한 활동에 이목이 쏠리고 있습니다.
RFA 자유아시아방송 노정민입니다.
에디터 박봉현, 웹편집 김상일